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1화 (191/322)

191화 - 영지전?(3)

온몸이 묶여 있는 레민턴의 모습.

“으으으읍!!”

재갈이 물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눈 가리개 또한 되어있어 멀리서 보면 저게 사람인가 살짝 생각을 해봐야했다.

솔직히 처음엔 팔딱팔딱, 거리는 생선인 줄 알았다.

“······ 뭔데 진짜.”

그렇기에 시안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어이가 승천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얘가 왜 여기에 있어?”

레민턴이 왜 여기 루벤에 있단 말인가.

크라우드 백작령이 아니라.

심지어 온몸이 꽁꽁 묶인 채, 팔딱거리는 자세로 말이다.

물론 어찌된 경위인지야 충분히 들었다.

아멜리아의 상행 호위로 나갔던 잭슨에게서 말이다.

그러니까.

“사로잡았습니다.”

사로잡았단다.

“그러니까 어떻게?”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잭슨을 바라봤다.

하지만 잭슨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도망치는 걸 사로잡았습니다.”

사로잡았단다.

정확히는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라며 어떤 행동을 선보이기는 했다.

보아하니 레민턴을 사로잡을 때의 행동인 모양.

시안은 출타하는 어이를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로잡았다는 잭슨의 말 때문일까.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팔딱거리는 레민턴은, 뭍에 나온 활어처럼 아주 싱싱해보였다.

지금 당장 회쳐도 괜찮을 만큼.

“그게 말이죠 영주님···.”

결국 보다 못한 아멜리아가 나서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시안은 그때서야 어째서 레민턴이 여기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로잡았구나.”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 그런··· 셈이죠···?”

아멜리아는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묶여있는 레민턴을 바라봤다.

온몸이 묶여있다 못해 눈까지 가려진 레민턴.

그것이 매우 답답했던 것일까.

“으으으으읍!!”

생선도 한 수 접어줄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은 왜 가렸어?”

“오면서 눈을 하도 부라리는 바람에 말입니다. 몇 대 때릴 수도 없어서 그냥 가려놨습니다.”

“그냥 몇 대 쥐어박지.”

“아무리 그래도 귀족을 때리기엔 좀···.”

잭슨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시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적대적인 관계라고는 하나, 레민턴은 귀족이었다.

반면에 잭슨은 루벤의 영지민.

신분으로만 따지면 평민이었다.

아무리 평민이 제국의 귀족을 건드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내가 때렸다고 하면 되는데.”

물론 시안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정확히는 시안은 개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사항이었다.

“지금이라도 풀어줄까요?”

“아니 됐어. 칭찬하려고 그랬던 거야. 지금 루벤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좀 그렇거든. 잘했어.”

시안은 성큼, 레민턴을 향해 다가갔다.

“야.”

“으읍!! 으으으읍!!”

그러자 레민턴이 더욱 팔딱거리며 소리쳤다.

“얘가 뭐라는 거야. 똑바로 말로해.”

“으으으으읍!!”

레민턴의 모습이 이제는 지랄발광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 시안의 말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똑바로 말로 하라는 것에···.

“아, 미안. 재갈이 물려있었구나.”

시안은 그때서야 레민턴의 입가에 물려있는 재갈을 자각할 수 있었다.

시안은 레민턴에게 물린 재갈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눈 가리개는 풀지 않았다.

“푸하! 이, 이 새끼가···! 지금 당장 이 눈 가리개도 풀지 못해···!”

“너도 참 어지간하다. 그렇게 쳐맞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기사, 그러니까 그 지랄을 떨었지.

“나는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이다···! 이렇게 대할 수는 엄써···! 이 사실이 퍼지면 넌 귀족들에게서 매장당할 거다···!”

뭐, 이건 시안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가문과 가문 간의 영지전.

그 영지전에 있어서 귀족을 해하는 것은 엄연히 금지되었다.

그런 짓을 행했다간 귀족 사회에서 매장 당할 수 있는 파렴치한 짓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절대 금기 시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뭐, 어쩌란 말인가.

“뭐, 뭐라코···?”

“다른 귀족들이 뭐라하든 말든. 내가 알게 뭐야?”

솔직히 시안은 개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뭐 어쩌란 말인가.

애초에 귀족 사회의 평판에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어둠의 숲에 위치한 터라 교류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걸 신경썼다면 처음부터 엘란두르와 척을 지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다른 걸 다 떠나서 다른 귀족들이 험담좀 하는 게 진짜 뭐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누가 안다고?”

“그게 무슨 말─.”

“네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네가 여기에 잡혔다는 사실을 누가 안다고?”

시안의 말에 레민턴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마따나 레민턴이 죽으면 그 사실은 그대로 묻혀버린다.

어둠의 숲에 버려진 시신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마수의 밥이 되어있을텐데 말이다.

물론 심증이야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물증은 없었다.

그러니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막말로 사로잡았다가 그냥 불쌍해보여서 풀어줬다.

이러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거짓말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뭐 어쩌란 말인가.

그 행동을 입증할 증거는 이미 마수의 밥이 되어버렸는데.

무엇보다 지금은 영지전이 진행 중인 상황.

제국법으로도 귀족 살인죄를 적용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레민턴도 이 빌미로 아멜리아를 납치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

레민턴은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쫄기는. 그러니까 지랄염병 그만 떨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

레민턴은 아무런,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레민턴의 모습에 시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들려온 시안의 목소리.

“너. 얼마 정도하냐?”

“······?”

레민턴은 순간 저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

제국 남부에 위치한 크라우드 백작령.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함과 더불어 제국에 유통되는 곡물의 15%를 책임지는 초거대 가문.

그런 가문에 걸맞게 크라우드 백작령의 저택은 웅장하기 그지 없었다.

백작령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될 수 없는 크고 화려한 저택.

“레민턴이··· 포로로 사로잡혔다고?”

그 저택에는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저택에 위치한 크라우드 백작의 집무실.

들려온 집사의 보고에 크라우드 백작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어쩌다···! 어쩌다가 레민턴이 포로로 사로잡혔단 말인가!!”

크라우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집사에게 물었다.

“그, 그것이···.”

하지만 크라우드의 집사는 차마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걸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어째서 레민턴이 포로로 사로잡혔는지 알고는 있었다.

다름 아닌 레민턴과 함께 갔던 크라우드 병사들의 증언.

병신이 다 되어버린 병사들이었지만 입을 여는데 있어서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증언은 정말이지 기가 차지도 않았다.

이게 귀족인지 망나니인지 모를 행동.

그렇기에 집사는 이 행동을 차마 크라우드 백작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여인을 겁박하려다가 되려 사로잡혔다?

귀족의 체면을 져버리고 파렴치한 짓을 하다가 역관광 당했다?

아니면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데 괜히 나대다가 인질로 잡혔다?

대체 뭘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분명 이렇게 말해봤자 제 자식이 그럴 리가 없다며 분노할 것이 뻔했다.

어디서 거짓 보고를 하냐며 노발대발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을 증언한 병사들을 찾아가 모조리 죽여버릴지도.

그렇기에 집사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런 집사의 모습 때문일까.

“이 놈들이 감히··· 감히···!”

쾅!!

“전면 승부로는 상대가 되질 않으니 그런 얄팍한 수를 써?!”

크라우드 백작은 제 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크라우드 백작가.

반면에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변방의 영지였다.

누가 봐도 전력으로는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다.

승패는 사실상 정해져있었다.

지금도 귀족 사회는 이 이야기로 떠들썩해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곧 루벤이 멸망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니 레민턴을 납치하여 인질로 삼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쉽사리 공격할 수 없게끔 만들려는 수작질이 분명했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법.

변방에 위치한 영지라더니 역시나 그 수법 또한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이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하나는 모르고 둘은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감히 내 아들을···!!”

크라우드 백작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레민턴을 인질로 잡은 의도는 알겠으나.

솔직히 레민턴의 안전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영지전이라 한들 귀족을 해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으니까.

그런 짓을 자행했다간 다른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레민턴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골드를 쥐어주는 것으로 받아올 수 있었다.

그것이 영지전의 관례였으니까.

그러니 이건 또 하나의 명분을 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름 아닌.

“지금 당장 출병을 준비해라!! 곧장 루벤으로 향하겠다!”

지금 바로 루벤과 전쟁을 벌여도 이상할 것 없는 명분을 말이다.

#

“뭐, 뭐라···코?”

레민턴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시안의 말.

그러니까 너, 얼마 정도 하냐는 시안의 말.

그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이게 뭔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너 몸값 얼마냐고.”

하지만 이어진 시안의 말에 레민턴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영지전이라고 한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한들.

귀족을 해치는 것은 금기시 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

상대의 수장을 사로잡아 포로로 삼는 것까지 금기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귀족이 상대에게 포로로 사로잡히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 정해진 수순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협상.

즉, 몸값을 지불하고서 귀족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얼마가 필요하지?”

레민턴은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앞서서 시안이 쿨한 척, 상관 없는 척.

수틀리면 죽이겠다해서 조금은 식겁했거늘.

역시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

“너도 선제시 충이었냐? 너 돈 많나보다?”

“하!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나?”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하고 있는 크라우드.

시안이 얼마를 부르든 그것을 지불할 여력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아버지께서 병력들을 이끌고 오시겠지.’

아마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이 가문에 전해졌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출병을 끝 마쳤을 터.

어쩌면 벌써 코앞까지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풀려나기만 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럼 크라우드의 병력들이 순식간에 루벤을 밀어버릴 터.

차라리 자신을 인질로 들먹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터였다.

그렇다면 크라우드 병력들이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을테니까.

그런데 돈에 눈이 멀어도 정도가 있지.

시안은 레민턴의 몸값을 받아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그야말로 멍청한 놈이나 다름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멜리아. 이번에 얼마 벌었다고 했었지?”

시안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있었다.

눈이 가려져 있는 탓에 아멜리아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랜 만에 봤던 아멜리아는 더욱더 아름다워져있었다.

‘영지전이 끝나면···.’

레민턴은 속으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830만 골드 정도요. 정확히는 829만 9,320골드지만요.”

그리고 들려온 아멜리아의 목소리.

“뭐, 뭐라?”

레민턴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830만 골드? 83만 골드가 아니라?

지금 830만 골드를 한 번의 상행으로 벌었다는 건가?

아니, 83만 골드여도 문제는 다분했다.

한 번의 상행으로 83만 골드를 버는 상단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크라우드 관할의 상단도 힘들었다.

물론 모든 수입을 합한다면야 83만 골드 정도는 새발의 피였다.

그런데 한 번의 상행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면 아니었다.

크라우드라도 한 번에 83만 골드를 벌어들이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흉년이 들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지금 뭐?

830만 골드?

“오. 많이 벌었네? 770만 골드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물건이 잘 팔렸어요. 완판 될 줄은 몰랐거든요.”

“아멜리아님이 상행 루트를 기가 막히게 짰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 놀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기겁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당연한 일을 마주하는 듯한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가만있어보자···.”

이윽고 시안이 생각에 잠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눈이 가려져 있는 탓에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흉년이 들어서 너네도 요즘 힘들테니까. 인심이다. 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메긴기요르드만큼만 받을게.”

“메긴기요··· 뭐?”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안의 말에 레민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5,000만 골드. 어때?”

“이런 미친놈이!!!”

레민턴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도 정도가 있거늘.

“왜. 안돼?”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헛소리라 해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보통 영지전의 몸값은 관례처럼 정해져있었다.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다만.

보통 남작은 10만 골드.

자작은 20만 골드.

백작은 50만 골드.

후작은 100만 골드.

공작은 예외의 귀족이라 측정되지 않았다.

공국의 주인인 공왕(公王)은 사실상 한 나라의 국왕.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영지전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전쟁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귀족들의 적정 몸값은 위와 같았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반값 정도로 통용되었다.

그러니 ‘백작’ 가의 자제인 레민턴은 50만 골드의 절반.

25만 골드가 적정선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민턴은 50만 골드까지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조금 더 과하다만 100만 골드.

아주 인심 써서 200만 골드까지 낼 의향이 다분했다.

그런데 뭐, 뭐?

5,000만 골드?

“제정신이냐!!”

세상 어떤 귀족이 5,000만 골드를 몸값으로 달라한단 말인가!

이건 그냥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너네 가문 돈 많다며. 흉년도 들었겠다. 영지전으로 뜯어낼 보상금도 있겠다. 원래 1억 골드 부르려던 거 깎아준건데?”

“뭐, 뭐? 1억 골드? 이런 미친놈이!!”

물론 크라우드 백작가의 재산을 끌어온다면 가능은 했다.

그런데 그걸 모두 줄리가 없지 않은가!

“에이, 뭐야. 제국 최대 곡창지 보유 가문이라더니. 별 거 없네.”

“이 새끼가···!”

레민턴은 이를 빠득, 갈았다.

저 녀석은 5,000만 골드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지껄이는 걸까.

아마 모를 것이다.

아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둠의 숲에 위치한 쥐똥만한 영지에서는 감히 접할 수 없는 금액일테니까.

5,000만 골드는 커녕 50만 골드는 보기나 했을까.

5만 골드를 봐도 벌벌, 떨 것이 분명했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금액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저건 그냥 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너 이 새끼···!!”

레민턴은 이를 빠드득, 갈며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전신이 묶여있는 탓에 뭍에 나온 활어처럼 팔딱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격한 몸부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재갈이 풀리면서 같이 묶여져있던 눈 가리개가 헐렁해졌기 때문일까.

레민턴의 눈을 가렸던 가리개가 슬쩍, 흘러내렸다.

그 덕분에 레민턴은 가려졌던 시야를 조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레민턴의 눈에 보인 건 시안과 아멜리아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둘은 레민턴을 신경도 쓰지 않고 뭐라뭐라 대화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레민턴의 눈 가리개가 살짝 흘러내린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 주위로 비치는 루벤의 풍경.

루벤··· 루벤···?

이게 루벤의··· 풍경이라고···?

“어···?”

레민턴의 움직임이 덜컥, 하고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두 눈이 부릅, 하고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레민턴의 시야로 살짝 보이는 루벤의 풍경.

“이게··· 루벤··· 이라고?”

그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레민턴의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살짝 흘러내린 시야로 본 터라 모든 모습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벤을 단단히 에워싼 방벽.

철통 같은··· 아니 그냥 철통의 방벽은 그야말로 쥐새끼 한 마리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저게 뚫리기는 할까···? 싶은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범상치 않은 수준을 아득히 넘어 미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주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자는 물론.

사각 지대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경비탑까지.

또 그 뿐이랴.

루벤 안 쪽에 건물 하나하나가, 아무렇게나 즐비해있는 건물 하나가.

거진 크라우드의 저택과 맞먹고 있었다.

게다가 언뜻언뜻 비치는 루벤의 거리를 순찰돌고 있는 병사들, 기사들.

그들이 입고 있는 범상치 않은 갑옷과 무구들.

알 수 없는 거대 병기들을 옮기는 드워프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깡깡, 쇠망치 소리.

“이, 이게···?”

생각과는 전혀 다른 루벤의 모습이었다.

아니,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루벤의 풍경이었다.

이게··· 변방에 위치한 일개 영지라고?

그것도 폐허나 다름 없는 어둠의 숲에?

“마, 말도···.”

레민턴은 눈앞의 풍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크라우드 백작령?

웃기는 소리 말라지!

이건 제국의 수도 다르칸은 물론.

대륙의 그 어떤 영지를 들이밀어도 비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모, 못 이겨··· 이건··· 못 이겨.’

못 이긴다.

이건 이길 수가 없다.

애초에 체급 자체가 맞지 않았다.

한두 단계의 차이가 아니었다.

1만의 군대? 웃기는 소리다.

이건 그냥 수준 자체가 맞지 않는.

극복할 수 없는 체급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알려야했다.

지금 당장 출병시킨 아버지를, 크라우드 백작을 뜯어 말려야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염병이고!

살려면 영지전을 당장 취소시켜야했다!

엎드려 싹싹 빌어야 했다!

그러나 레민턴은 지금 사로잡힌 상황.

“주, 주겠다!”

레민턴은 크게 소리쳤다.

5,000만 골드든 나발이든 일단 이곳을 나가야한다.

나가서 영지전 자체를 뜯어 말려야한다.

그 과정에서 5,000만 골드 정도야 줄 수 있었다.

큰 지출이긴 했으나 줄 수 있었다.

이대로 영지전을 진행했다간 5,000만 골드는 염병.

크라우드 전체가 거덜나게 생겼으니까!

레민턴은 고개를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슬쩍 비친 시안의 표정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그건 마치 어떤 훼방꾼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꼭 보물을 빼앗으려는 도둑놈을 마주한 듯.

소중한 꿀단지를 훔쳐가려는 어떤 방해꾼을 만난 듯.

한낱 피조물이 기어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것을 본 어떤 절대자처럼.

“너···.”

들려오는 시안의 목소리가.

“봤구나···?”

너무도 섬뜩하게 들려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