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89화 (189/322)

§ 189화 - 영지전?(1)

어디서 오우거 폐라고 삶아먹은 걸까.

크라우드 백작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못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뭐, 보이는 모습은 오크와 다를 바 없다만.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크라우드 백작가.

그 압도적인 생산량에서 크라우드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부유하다 못해 풍요로운 가문.

그 때문에 제국의 명문가하면 빠지지 않는 가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내 아들, 레민턴을 불구로 만든 원한을 반드시 갚고야 말겠소!”

듣자하니 시안 백작이 그런 크라우드 백작의 둘째 아들.

레민턴이라는 자를 불구로 만든 것 같았다.

그것도 꽤 오래 전에 말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건국일 행사 당시.

시안이 수도로 향하던 와중에 둘이 시비가 붙어 싸움을 했다나 뭐라나.

그 결과 레민턴이 심히 다쳤단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쥐어 터졌단다.

급히 사제를 동원하여 레민턴을 치료했지만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고.

턱관절이 아작이 나서 발음이 질질, 샌다는데.

결과만 놓고 본다면야 시안의 처사가 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또 그렇지가 않았다.

레민턴이라는 놈팽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물론 레민턴이 시안 백작에게 시비를 건 것은 아니었다.

아, 당시에는 시안 엘란두르.

뭐, 어쨌든 레민턴은 아멜리아라는 여인을 겁박했단다.

문제는 아멜리아라는 여인이 시안의 영지민이었다는 것.

레민턴은 그것도 모르고 여인에게 해서는 안될 말까지 입에 담았다고 하는데···.

아니, 알고 있었다고 했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러니 그 이후에 아멜리아와 더불어 시안 백작까지 모욕했지.

아, 그러니까 당시에는 시안 엘란두르.

‘맞아도 싸지.’

솔직히 맞아도 싼 일이었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용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배 나온 귀족들이 어찌 그런 생각까지 할까.

그냥 저 마음에 안들면, 저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상대가 잘못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라우드 백작은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정확히는 행동에 나서려고 했지만···.

‘엘란두르의 이름에 깨갱, 했다지 아마.’

시안에게 붙어있던 엘란두르라는 이름에 꼬리를 말았다.

지금이야 시안 백작이지만, 당시에는 시안 엘란두르였으니까.

그 때문에 크라우드 백작가는 되려 시안에게 보상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만···.

뭐, 이해할 수는 있었다.

제국에서 엘란두르와 척을 지고도 멀쩡히 살아있을 가문은 없었으니까.

세상 어떤 미친놈이 엘란두르와 척을 질까.

크라우드의 처사는 어쩔 수 없다 못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사건이 유야무야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가문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줄 것이네!!”

이제 와 그 사건을 빌미로 영지전을 하겠단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다.

이렇게까지 화가 잔뜩 나 있으면 그때 행동에 나설 것이지.

그때는 꼬리를 말고는 이제 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엘란두르가 아니다 이거지.’

시안은 더 이상 엘란두르가 아니었으니까.

시안이 백작위를 받고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렸다.

그와 동시에 엘란두르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척을 지게 되었다.

물론 시안과 엘란두르와 척을 졌다는 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백작위을 받았다고 하여 기존의 가문과 척을 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쨌거나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

시안과 엘란두르가 협력 관계에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가문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도 루벤을 상대로 영지전을 걸었다라···.’

뭐, 사실이야 어쨌든.

크라우드에게 명분도 있겠다.

적법한 절차도 따르고 있겠다.

딱히 막을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현 시각 부로 루벤과 크라우드간의 영지전을 허용합니다. 영지전은 해당 가문이 영지전의 사실을 안 날로부터 시작되고. 그 때로부터 90일간 진행됩니다.”

“하! 90일은 무슨! 10일이면 충분하네!”

크라우드 백작은 호기롭게 소리쳐보였다.

그런 크라우드의 모습에 황궁의 서기관은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기관은 알고 있었으니까.

현재 황태자와 황녀가 있는 루벤.

그 때문에 루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거진 황가에 보고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그들과 루벤이 격돌한 사실은 물론, 그들을 패퇴시켰다는 것 또한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와 황녀님께서는 언제 루벤에서 나오시는 겐가?”

그리하여 지금 보이는 크라우드 백작의 모습.

솔직히 우습지도 않았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지금 당장 루벤을 겁박했던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이들을 똑같이 크라우드 백작에 보낸다?

‘크라우드 백작가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과장 섞인 생각이긴 했다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루벤은 그런 전력을 패퇴시킨 것이고.

그러니 지금 크라우드의 당당함은 멍청함에 지나지 않았다.

신종 자살 방법으로 치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마 크라우드 백작은 모르는 것 같았다.

알고 있다면 그냥 조용히 남부에서 농사나 짓고 있을 터.

비단 크라우드 백작 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제국의 귀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루벤이 어떠한 힘을 감추고 있는지.

왜 시안이 당당히 엘란두르와 척을 졌는지.

지금 크라우드를 비롯한 다른 귀족들은 루벤을 만만히 보고 있었다.

어둠의 숲이라는 척박한 땅.

변방 중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쥐똥만한 영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호기로운 것일테지만···.

서기관은 굳이 그 사실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서기관은 영지전의 절차를 따라 서류를 작성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서기관은 고개를 들어 크라우드 백작에게 말했다.

“아, 참. 영지전에서 패배하면 보상금을 지불해야하는 건 알고 계신─.”

그런데 성질도 급해라.

서기관의 시야로 저 멀리, 쿵쿵거리며 떠나가는 크라우드 백작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기관은 그런 크라우드 백작을 붙잡기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에이, 됐다.”

정확히는 일어나려다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백작씩이나 되어서 영지전의 법률을 모를리도 없고.

그것을 알려줘야 할 의무 또한 서기관에게는 없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황궁 서기관은 다시 자리에 앉아 영지전의 서류를 작성했다.

#

“크라우드 백작가···?”

서신의 맨 마지막에 적혀있는 가문.

그건 엘란두르가 아닌 크라우드 백작가였다.

“크라우드 백작가라면··· 남부에서 제국 최대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일텐데?”

시안의 말에 옆에서 콘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남부의 귀족이자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하고 있는 크라우드 백작가.

“그런데 크라우드 백작이 왜 자네에게 영지전을···?”

그런 크라우드 백작가가 왜 루벤을 향해 영지전을 걸어온단 말인가.

“혹시 크라우드 백작가에 원한을 산 일이 있었나?”

콘라드의 물음에 시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딱히··· 원한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시안이 원한을 살 건덕지가 뭐가 있단 말인가.

루벤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시안은 내다버린 자식이었다.

사생아로서 무시받기 일 수 였고.

매일 괴롭힘을 받아 은둔 생활을 하며, 가문 밖으로 나간 적도 드물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와 교류한 적도 거의 없었다.

친구는 커녕 친분이 있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의 원한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되려 시안이 누군가를 원망하면 원망했지.

누군가의 원한을 살 건덕지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크라우드 백작가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명망 높은 가문이지 않은가.

“대체 크라우드 백작가에서 왜···?”

“아마··· 그때의 일 때문이 아닐까요?”

시안의 말과 동시에 엘레나가 말했다.

“그때의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겁니까?”

“그 왜. 공자님께서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을 뭉개버리신 일 말이에요.”

“제가요?”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까.

“엘레나의 말을 듣고보니··· 나도 그때 관련한 보고를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군.”

하지만 콘라드 마저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무슨 일을 저지르긴 저지른 모양이었다.

시안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엇다.

그리고 그런 노력 때문일까.

“아··· 아아··· 그때··· 건국일 행사 때문에 수도로 가던 와중, 식당에서 아멜리아한테 집적거리던 놈팽이가 하나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어렴풋이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름이 레민턴···? 이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브라헤 영애가 관련되어있는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레민턴은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 이름이 맞네요. 아니, 그런데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요?”

엘레나는 어처구니 없는 눈빛으로 시안을 흘겨봤다.

“하하, 기억이 잘 나지 않은 터라···.”

시안은 멋쩍에 한 번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레나에게 물었다.

“그보다 황녀님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당시 사교계에 소문이 떠들썩했으니까요. 결투도 아니고 그냥 두들겨패셨다면서요? 역시  망나니이니, 깡패니 뭐니 하는 말들이 있었어요. 물론 시안 공자님 이야기에요.”

엘레나는 황녀로서 사교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

귀족가의 소식들은 가장 먼저 엘레나의 귀에 들어갔다.

물론 그 일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냐는 별개의 문제였다만.

“아··· 그러고보니 그때 크라우드 백작이 보상금을 주고 갔던 것 같습니다.”

시안은 그때서야 온전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크라우드 백작이 화가 나있었던 모양이군.”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우드 백작이 루벤을 상대로 영지전을 걸어온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잠잠이 있다가 지금 갑자기 왜?

“자네가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렸기 때문일테지.”

“아.”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모든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크라우드가 영지전을 걸어온 지금 이 시기.

‘엘란두르에서 크라우드를 부추긴 건가?’

이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아니, 아마 거의 맞는 것 같았다.

남부의 귀족이자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크라우드 백작 가문.

그 명성과 위명은 제국에서도 쉬이 무시할 것이 못되었다.

하지만 엘란두르에 비할 바는 여전히 못 되었다.

시안이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안이 엘란두르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도 사실.

만일 엘란두르에서 그래도 핏줄이라고 비호하려 든다면?

크라우드 입장에서는 낭패 중에서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럼에도 크라우드가 당당히 영지전을 걸어왔다는 것.

그건 엘란두르가 알게 모르게 개입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음···.’

그렇기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황상 엘란두르가 크라우드를 부추긴 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영지전이 이상했다.

만일 엘란두르가 개입했다면 되려 영지전은 성립되었으면 안 되었다.

엘란두르는 루벤의 힘을 알고 있었으니까.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그들로부터 루벤의 저력을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았는가.

다른 가문과 귀족들은 몰라도 엘란두르는 아니었다.

그러니 크라우드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말렸어야했다.

그런데 크라우드는 영지전을 걸어왔다.

‘엘란두르가 알려주지 않은건가.’

아무래도 그 사실을 크라우드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부추기기만 했을 뿐.

루벤에 대하여 입도 벙긋 안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우리를 떠보려는 건가.’

루벤의 전력을 한 번 더 떠보기 위함.

앞으로의 전면전에서 루벤의 전력을 파악하고 떠보고자 크라우드를 부추긴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버리는 패이자 화살 받이.

물론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기반한 정황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뭐, 어쨌든.

그럼에도 크라우드와의 영지전은 피할 수 없었다.

“괜찮··· 겠나? 이렇게 있어도? 뭐라 준비라도···.”

그 때문인지 콘라드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엘레나 또한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라우드 백작은 제국에서도 이름난 가문이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

압도적인 생산량을 기반으로 크라우드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를 해야할까요?”

시안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준비를 한단 말인가.

엘란두르도 아닌데? 굳이?

물론 시안이라고 크라우드 백작가의 위명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뭐 어쩌란 말인가.

지금 루벤의 전력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현질을 통한 성장 버프.

골드를 치덕치덕 바른 S등급의 장비.

여기에 로열 나이츠들과 밤낮을 바꿔가며 대련을 한 경험까지.

루벤의 병사들은 웬만한 기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루벤의 기사들은 거진 로열 나이츠들과 맞먹으려 하고 있었다.

또 그 뿐이랴.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로르실트의 아르카닉 마법 병단.

아르카닉 마법 병단에도 밀리지 않을 다크 엘프들의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심지어 마스터 상급의 켄드릭.

천 년의 원귀 레아.

준비는 뭔놈의 준비란 말인가.

악마라도 소환해서 덤벼들지 않는 한 딱히 문제거리가 없었다.

막말로 얼마 전 수 십의 오우거가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루벤으로 오다가 어둠의 숲에 존재하는 마수들 선에서 정리될 수 있었으니까.

그냥 귀찮은 사건 하나에 지나지 않았─.

‘아니, 아니지.’

시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이잖아.

그럼 돈이 많을 거 아니야.

당연히 뜯어낼 것도 많겠네?

영지전에서 이기면 보상금을 받아낼 수도 있잖아?

‘개꿀인데? 이런 젠장. 이렇게 한가롭게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잖아.’

역시 준비를 하긴 해야할 것 같았다.

‘가만있어 보자.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필요한 골드가···.’

돈 쓸 준비를 말이다.

시안은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시안의 표정을 바라보던 콘라드와 엘레나.

콘라드와 엘레나는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마주 바라봤다.

“다음엔 만두 말고 다른 걸 만들어 오는 게 어떻겠냐.”

“시안 공자님이 다른 걸 좋아하시면 그때 생각해볼게요.”

정말이지 걱정 같은 걸 왜 했나 싶었다.

#

“멍청한 새뀌.”

레민턴은 입가를 한 번 비죽였다.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 레민턴 크라우드.

레민턴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멍청한 놈팽이의 모습에 정말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시안이라는 멍청한 놈팽이를 말이다.

엘란두르의 이름 안에 숨어있었으면 되었거늘.

여우 새끼 마냥 호가호위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거늘.

멍청하게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리면서 홀로 서기를 해버렸다.

굳이, 구우욷이 이렇게 복수의 기회를 주었다.

물론 레민턴이라고 시안을 둘러싼 소문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북부 사건의 최고 공로자.

새로운 제국의 별.

레민턴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하의 둔재이자 망나니가 하루 아침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소문이 과장되고 와전되어 퍼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시안에게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천하의 둔재이니, 망나니이니.

시안은 이제 그런 소문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망나니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천하의 둔재는 아닌 것 같았다.

“사생아라더니···.”

꼴에 엘란두르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봤자였다.

이건 단순한 결투나 대련이 아니었으니까.

가문과 가문이 맞붙는 영지전.

군대 단위로 움직이는 영지전은 개인의 무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크라우드 백작가에서 준비한 병력은 어마무시했다.

보병과 궁병이 각각 6천. 3천.

중기갑병이 2천.

여기에 기병 1천과 더불어 기사 500까지.

1만이 넘는 병력을 끌어모았다.

백작령의 전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

이 정도면 영지전이 아니라 전쟁이라 봐도 무방한 규모였다.

백작가라도 쉬이 끌어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

역시나 ‘크라우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규모 앞에서 쥐똥만한 루벤은 순식간에 사라질 터.

원래는 여기에 용병들 또한 끌어모으려 했었다.

용병은 돈만 주면 뭐든 마다않는 치들.

용병에게 영지전은 돈을 두둑히 얻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용병은 모집할 수가 없었다.

크라우드의 의뢰를 받지 않았으니까.

정확히는 용병왕이 나서며 크라우드의 의뢰를 묵살시켰다.

3배에 달하는 보수를 약속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돈을 쥐어주어도 받지 않았다.

친우가 있는 곳을 향해 검을 들이밀 수 없다나 뭐라나.

뭔 개소리인지 몰랐지만 용병왕은 크라우드 쪽으로 붙는 용병들에게 단단히 경고까지 해왔다.

이에 수많은 용병들이 항의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현재 용병계는 용병왕을 거스르면서 활동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용병들은 모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 큰 상관은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루벤을, 시안을 짓밟아 버리는 건 문제 없었으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때만 생곽하며는···!”

레민턴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레민턴은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었다.

시안에게 얻어맞고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던 그때를 말이다.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아작이 난 턱관절에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으니까.

사제를 불러 치료를 했음에도 턱관절을 온전히 치료할 수 없었다.

그 탓에 어눌한 발음을 평생 가지고 가야했다.

말을 할 때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분노로 이성을 잃으면 언제나 발음이 뭉개졌다.

하지만 그 동안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엘란두르라는 이름 앞에 크라우드는 땅 넓은 농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때가 왔다.

제 발로 이렇게 기회를 주는 멍청이 덕분에 때가 왔다.

“뭉청한 새뀌.”

레민턴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벌써부터 눈에 선했으니까.

영지전이 끝나면 시안은 발 아래를 기며 잘못했다, 살려달라.

그렇게 애걸복걸 빌고 있는 시안의 모습이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루벤으로 병사를 이끌고 가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울먹거리는 시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전하와 황녀님께서 루벤에 계실줄은···.”

황태자와 황녀가 현재 루벤에 있었으니까.

아무리 영지전이라는 명목이었다만 그럼에도 이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만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태자와 황녀는 떠날 터.

그리고 뭐···.

전면전만 시작되지 않았다뿐.

영지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공자님. 루벤 브라헤 상단이 지금 막 상단을 마치고 복귀한다는 정보입니다.”

“그으래?”

들려오는 기사의 보고에 레민턴의 입가가 비죽였다.

루벤 소속으로 활동하는 루벤 브라헤 상단.

그리고 듣자하니···.

루벤 브라헤 상단의 상단주가 아멜리아였다.

가문이 몰락한 뒤 시안에게 빌붙어 자신의 턱관절을 이렇게 만든 여우같은 년.

그런 아멜리아가 이번 상행에 책임자로 있었다.

만일 상행을 떠난 아멜리아가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 새끼의 얼굴이 얼마나 볼 만할까.”

레민턴은 차오르는 희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자님.”

그 순간 재차 들려오는 기사의 목소리.

“루벤 브라헤 상단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레민턴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즐거운 상상을 끊은 것도 기분 나빠 죽겠거늘.

뭐가 어쩌고 저째?

“그래봤자 일개 병사 따위들 아니야?”

고작 상행 호위로 따라붙은 병사들의 수준이 심상치 않아봤자 얼마나 심상치 않겠는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준비나 단단히 해둬.”

“죄송합니다.”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레민턴은 혀를 한 번 차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멜리아, 그 년. 얼굴 하나는 반반했지.”

레민턴의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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