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엘레나(2)
엘레나는 격하게 손사래를 쳐보였다.
“아, 아니예요! 갑자기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움···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잖아.”
“그, 그렇긴 한데···.”
“그럼 엘레나는 시안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
엘레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거세게 뛰며 붉어지는 얼굴.
“얼굴 빨개졌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세라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난 시안이가 좋은데.”
그리고 다시 들려온 세라의 말.
그와 동시에 갑자기 나무가 크게 뒤흔들렸다.
나뭇가지들이 움직이며 세라를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모습도 모습이었거니와.
마치··· 질투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엘레나는 속으로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나무가 질투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런데 왜일까.
“꺄핫. 인스티즈도 좋아!”
세라의 말과 함께 흔들리던 나무가 잠잠해졌다.
그 신기한 광경에 엘레나는 조금 진정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세라의 말을 듣고보니··· 전 황녀 이외에 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왔던 것일지도.
여인의 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황녀로서의 의무.
그렇기에 황녀로서의 의무감이라는 건···
어쩌면 엘레나가 생각한 변명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엘레나는 레아를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샤를롯과 레아.
콘라드와 엘레나.
천 년의 세월이란 격차가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둘의 위치는 비슷했다.
그러나 걸어가는 길은 달랐다.
엘레나는 주어진 길을 걷는 반면.
레아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왔다.
엘레나는 어쩌면 그런 레아를 부러워 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엘레나는 레아처럼 될 수가 없었으니까.
레아처럼 되고 싶어도 엘레나는 할 수 없었었으니까.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
그 순간 들려온 세라의 말.
“하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을 수 있는 걸.”
세라는 엘레나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마. 너무도 많은 색들을 무분별하게 담다보면. 결국 검게 물들 뿐이야. 때로는 덜어낼 줄도 알아야 해.”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야. 때로는 이렇게 인스티즈 위에도 누워보고. 바람의 속삭임을 듣기도 하고. 저기 하늘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들을 봐라봐.”
배시시, 웃는 세라의 얼굴.
“그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닌걸.”
바라본 세라의 모습은 참으로 순수하고 또 아름다웠다.
그래서일까, 엘레나는 왜인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위로해주시는 건가요.”
“아니. 격려하는 건데.”
세라의 답에 엘레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그 소리이지 않은가.
하지만 세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로와 격려는 달라. 슬픔에 빠진 이에게는 위로를 해야해. 슬픔은 상처니까. 그런데 엘레나는 슬픔에 빠지지 않았잖아.”
“그런가요?”
“그럼. 엘레나는 슬퍼하지 않아. 그냥 엘레나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거잖아. 방향성을 잃은 거지.”
그리고 이어진 세라의 말.
“그건 상처가 아니야.”
엘레나는 잠깐이지만 정신이 멍해졌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여 될 수 없었다.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향성을 잃은 건 상처가 아니다, 라는 세라의 말.
“꼭 무언가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시안이도 그랬어. 쓸모가 없으면 좀 어떠냐고. 사람인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
엘레나는 다시 한 번 넋을 놓았다.
그동안 황녀로서의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던 엘레나.
콘라드와 황제는 그런 엘레나에게 누누히 말해왔었다.
과하게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실은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 그러게요. 저는 왜 항상 좋은 사람이려고 했던 걸까요.”
지금에야 세라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너무도 많은 색을 담으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방향성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럼 아까 전, 세라가 놀랄 타이밍을 놓쳤다는 건 상처였어요?”
“응··· 그건 상처였어.”
세라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엘레나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가끔은 혼자 우는 것도 좋아. 아니, 스스로를 위해 울기도 해야해. 나도 혼자 우는 걸. 어제도 울었어.”
“어제 울었어요?”
“응. 아끼던 오브가 망가졌거든. 진짜 엄청 아끼는 거였는데···.”
세라는 어제의 일이 생각났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째, 세라와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아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튼. 그런거야. 그리고 엘레나는··· 무언가를 되고자 한 적이 없었다 했었지.”
“그렇죠···?”
“그럼 뭐가 되고 싶은지 같이 찾아보자. 재밌겠다!”
“세라도 같이요?”
“응. 엘레나는 뭘 하고 싶어? 좋아하는 건 없어? 시안 말고.”
엘레나는 순간 뭐라 하려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딱히 좋아하는 건 없어요. 그나마 다과를 먹을 때 좋았던 것 말고는 딱히···.”
“다과? 엘레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
“그런 뜻은 아니에요. 저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황녀가 요리를 한다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
그런데 세라는 역시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지금요?”
“응! 생각난 김에 바로 해보자. 다나한테 가르쳐달라하면 가르쳐줄거야. 다나는 요리를 엄청 잘하거든! 어서 가자!”
그러면서 세라가 엘레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역시나 힘이 어찌나 센지.
“자, 잠깐만요 세라! 저는 아직···!”
엘레나는 세라의 손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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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 Lv.3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 뭡니까? 이건.”
시안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이걸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할까.
일단 집무실 탁자에 놓인 만두.
방금 만든 것인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 저··· 그, 그게···.”
그 앞으로 엘레나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엘레나 옆.
“엘레나강! 시안 중다공! 열심히 만들었엉!”
세라가 양 볼 가득, 만두를 먹고 있었다.
시안은 다시 한 번 차분히 상황을 짚어보았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만두.
어쩔 줄 몰라하는 엘레나.
양 볼 가득 만두를 먹고 있는 세라.
“······ 뭡니까 대체?”
시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탁자 위에 놓인 만두를 바라봤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
겉모양새로는 상당히 그럴 듯해보였다.
“이걸 황녀님께서 만드셨다고요?”
“네···.”
엘레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시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녀가 무슨 요리란 말인가.
아, 혹시 밑의 사람들에게 시킨 건가?
그러니까 명령만 내리고 자기가 만든 것처럼 가져온 음식?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또한 금방 고개를 저었다.
다름 아닌 엘레나의 왼쪽 볼.
새하얀 엘레나의 피부와 더불어 그보다 더 하얀 밀가루가 살짝 묻어있었으니까.
머릿결에 교묘하게 감추어진 터라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요리를 해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자세한 과정 또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만두는 적어도 엘레나의 손길이 닿은 만두인 건 확실해보였다.
“갑자기 왜 요리를···? 혹시 요리가 취미셨습니까?”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역시나 엘레나는 요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보였다.
한 마디로 이 만두는 엘레나가 처음 시도한 요리.
동시에 처음 만들어보는 만두라 할 수 있었다.
그걸 시안에게 먹으라고 가져온 것이었다.
‘설마 독을 탄 건가?’
순간 시안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금방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하니 엘레나가 그런 짓을 했을까.
아무래도 지난 번 커너의 사건 때문에 망상이 조금 과했던 것 같았다.
‘그때도 만두이기도 했고.’
그러고보니 내가 만두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지?
시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슬쩍, 만두가 놓인 통을 살폈다.
그리고 역시나라 해야할지.
아니면 다행이라 해야할지.
‘2단 도시락은 아니네.’
2단 도시락은 아니었다.
만두에 독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독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면 지금 엘레나 옆에서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세라.
“시안동 먹어봥!”
세라가 진즉에 목을 움켜잡고 쓰러져야했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만두를 집어 먹는 것을 보니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대로 가만두면 세라가 만두를 죄다 먹어버릴 것 같았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그래도 엘레나가. 그것도 황녀가 직접 만들어왔다는데 맛은 봐야할 것이 아닌가.
맛이라도 안 본다면 황족 모욕죄를 들먹일지도 몰랐다.
시안은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입 안에 넣었다.
아그작,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입안 가득 터져나오는 육즙.
“어, 어때요···?”
엘레나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시안은 살짝 눈을 치켜 뜨며 답했다.
“괜찮은데요?”
“저, 정말요?”
“네. 진짜 괜찮은데요?”
시안은 다시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입 안으로 만두를 다시 집어 넣었다.
만두피와 속의 고기가 절묘하게 얽히며 혀를 감아왔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꽤나 맛있었다.
물론 다나가 만든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건 다나의 음식이 실로 말이 안되다 뿐.
이 만두가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나와 비교할 바는 못 되었다.
하지만 어릴 적에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만든 것과 비교한다면 충분히 비빌 만 했다.
한 마디로 처음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솜씨였다.
시안은 계속해서 만두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 시안이 맛있게 먹는 모습 때문일까.
“휴우···.”
엘레나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혹시나 맛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거늘.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안심이 되면서도 또 기뻤다.
기쁘다···?
엘레나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요리일 뿐이었다.
자신도 아닌 남을 위해 만들어준 요리였다.
“음. 진짜 괜찮은데요?”
그런데 저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정말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녀로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것도 그 대상이 단순한 남이 아니라···.
“그런데 갑자기 요리는 왜 하신 겁니까?”
갑자기 들려온 시안의 물음.
“네, 네?”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엘레나가 속으로 찔린 것일 뿐.
시안은 만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취미도 아니신데, 갑자기 요리를 하신 것이 궁금해서 말입니다.”
“아, 그, 그게···.”
이어진 시안의 물음에 엘레나의 두 눈이 갈곳을 잃어버렸다.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며 머릿속으로 내뱉을 말을 찾았다.
하지만 마땅히 내뱉을 말이 떠올리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는 엘레나의 모습.
시안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시안! 그게 있지!”
옆에 있던 세라가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쳐왔다.
“세라! 아니예요! 그런 뜻이 아니라고요!”
그러나 엘레나가 기겁을 하며 세라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세라는 겉보기와는 달리 수준 높은 흑마법사.
엘레나가 어찌할 수 있는 여인이 아니었다.
히힛. 미소짓는 세라의 얼굴.
“엘레나가 시안 좋아한대!”
엘레나의 움직임이 덜컥, 하고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엘레나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엘레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며 새하얀 피부가 새빨개졌다.
떨리는 눈빛은 차마 시안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굳어버리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아아··· 그, 그, 그게···.”
횡설수설하는 말만이 입 밖으로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어찌할지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그때.
“그렇군요.”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째··· 시안의 반응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천천히 바라본 시선.
그곳엔 시안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만두를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 세라의 말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다행이면서도 괜시리 서운한 건 무슨 이유일까.
“놀라지··· 않으시네요?”
“음? 놀라야 하는 일이었습니까?”
엘레나의 물음에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어째 세라와 같은 반응이었지만··· 뭐 아무튼.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말씀하시는 분인데. 이런 거에 놀랄 이유가 있습니까.”
말마따나 시안은 세라의 말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엘레나가 시안을 좋아하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반하는 단어가 아니었을 테니까.
시안이 본 엘레나는 황녀로서 그 의무감에 얽매여있는 여인이었다.
얽매이다 못해 그 방향이 살짝 어긋난 여인.
그런 의미로 시안에게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결혼도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인데 그깟 좋아한다는 말이 무슨 대수랴.
애초에 정략 결혼의 당사자로서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러니 딱히 놀랄 이유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그, 그렇죠···? 그런 거죠. 하핫··· 하하핫.”
아니나 다를까 엘레나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식혔다.
시안은 엘레나가 왜 저러나 싶었지만···.
“만두 맛있네요.”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
한바탕 소란 아닌 소란이 있은 직후.
엘레나와 세라는 또 다른 음식을 해보겠다며 집무실을 나섰다.
정확히는 세라가 엘레나를 강제로 끌고 나가다시피 한 것이다만···.
그래도 뭐, 엘레나도 썩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다 둘이 만나게 된 지는 모르겠다만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시안이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행이네.”
시안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를 챙기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으니까.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잠깐 잊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세라와 함께 한다면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 남은 집무실.
“음···.”
시안은 차분히 할 일들을 정리했다.
일단 엘란두르와의 영지전을 준비해야했고.
루벤에 교육 시설을 건설하여 치료사들을 육성해야했다.
또한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해야했고
엘란두르의 장부를 확인하여 비자금의 출처도 밝혀야 했으며.
어째서 소렌의 이름이 엘란두르의 장부에 적혀있는지.
브라헤 가문의 몰락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다.
또한 장막 속에 감춰진 엘란두르의 진실들.
그것들을 더 밝혀내야만 했다.
또 그 뿐이랴.
카일이 마주한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
성물을 찾으라는 스토리 퀘스트는 감조차 잡히지 않지.
게다가 초보자 성장 특급 패키지를 현질하여 마혼수라검의 수련을···.
“젠장.”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할 일도 적당히 많아야지!
정말로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은가!
시안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아···.”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시안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거나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한들.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하면 끝내 다할 수 있을테니까.
“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영지전이야 콘라드와 엘레나가 있는 상황에선 문제 없었고.
루벤에 교육 시설도 골드가 있어야 현질할 수 있었다.
샤를롯의 검술은 말할 건덕지가 없었을 뿐더러.
엘란두르의 장부 확인은 아멜리아가 정신을 차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엘란두르와 얽힌 브라헤 가문의 몰락.
그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만 했다.
지금 당장 골드가 급하고 또 중요하긴 했지만, 아멜리아보다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엘란두르에 관련한 진실은 현재 한스와 그레이슨이 추적 중에 있었고.
카일이 마주한 진실과 스토리 퀘스트는 뭐···.
하나하나 해결해가다 보면 마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안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남은 마일리지를 어디에 쓸지나 생각하자.”
다름 아닌 50만 마일리지의 사용처였다.
엘릭서를 구매하고 남은 마일리지는 50만 마일리지.
그렇기에 150만 마일리지에 달하는 『특수시설』은 제외해야했다.
사용 기한 전까지 100만 마일리지.
골드로 1억 골드에 달하는 돈을 모을 수는 없었으니까.
콘라드가 1억 5,000만 골드를 준다면 또 모를까.
지금 당장은 역시나 무리가 있었다.
“그럼 특수품목에서 골라야하는데···.”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고 【마일리지 샵】에 접속.
곧바로 『특수품목』의 항목을 터치했다.
꾹.
-불로초 (500,000 M)
-엘릭서 (매진)
-황금사과 (600,000 M)
-천도(天桃) (620,000 M)
-도깨비 감투 (600,000 M)
-글레이프니르 (700,000 M)
-메긴기요르드 (500,000 M)
-케스토스 히마스 (300,000 M)
-아이기스의 방패 (650,000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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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터치와 함께 수많은 품목들이 나열되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들.
그리고 엘릭서의 효능을 확인해본 바.
저 품목들은 모두 진짜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야 사든지 말든지 하지.”
도대체가 사용 설명서가 없었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 어떤 효과를 지닌 물건인지.
설명이 전무했다.
말 그대로 네가 재주껏 알아서 사라는 것.
시안은 유심히 마일리지 품목들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나.
“모르겠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관련한 전설 같은 것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기스의 방패 (650,000 M)
다름 아닌 아이기스의 방패.
물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어떤 효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뒤에 방패라는 말을 보아 방패구나··· 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데자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기억 속에 있었다.
시안은 분명 아이기스의 방패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루벤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
오크 부락을 섬멸할 당시였던가?
그러니까 신기전을 구매할 때였던 것 같─.
짝!
“아! 그래! 광고!”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시안은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확실히 기억났다.
광고에서 본 적이 있었다.
시안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곧장 광고 항목에 들어갔다.
광고 제거 이후 잘 보지 않았던 광고.
아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광고.
시안은 무수한 광고 항목에서 해당 기억을 더듬었고.
끝내 기억 속의 광고를 찾을 수 있었다.
꾹.
《당신, 혹시 성기사를 꿈꾸고 있지 않으십니까?》
《탱커, 힐러, 딜러. 그 모든 것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하이브리드 클래스! 그야말로 솔플의 대명사죠!》
《그 때문일까요? 차원 전역으로 성기사 열풍이 불고 있답니다!》
《당신도 혹시 성기사를 꿈꾸고 계신가요?》
《아군을 보호하고, 치유하며, 적을 불태우는 그런 멋진 상상을 하고 계신가요?》
《그런 이들을 위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것을 준비했습니다.》
짜잔!
《아이기스의 방패!》
《일명 이지스의 방패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있답니다!》
《그야말로 무적의 방패!》
《그 뿐이겠습니까! 방패에 달려있는 특수한 효과는 바라보는 대상을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동 박제!》
《놀라우신가요? 벌써부터 구매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신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엄청난 S등급의 방패를 단 돈 1,000,000 G에 드립니다!》
《단, 사용하는 당사자도 돌로 변할 수 있다는 거!》
《사용 시, 방패를 바라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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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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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보는 광고였지만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무엇보다.
“사용하는 당사자도 돌로 변하면 무슨 쓸모야?”
이딴 걸 왜 판단 말인가.
아마 그때도 이래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아이기스의 방패’는 광고에 있었다.
마일리지에서 파는 것과 동일한 이름.
그리고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모조품인 것 같았다.
광고에서 파는 아이기스의 방패는 100만 골드.
하지만 마일리지 샵에서 파는 것은 무려 65만 마일리지.
골드 차기로 6,500만 골드에 달했다.
가격 차이만 무려 65배로 아무래도 가짜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광고에 파는 물품은 모조품.
이 말은 즉.
마일리지 샵에 파는 아이기스의 방패는 광고와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아마··· 당사자가 돌로 변하지는 미친 기능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뭐, 어쨌든.
“다른 물품들도 광고에 있으려나?”
이러면 다른 물품들도 광고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록 하위 호환인 상품이겠지만, 그래도 원본의 성능 힌트를 얻을 수 있을 터.
“어쩐지. 품목들의 설명이 없더라니.”
시안은 그때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질로도 사용 설명서를 팔지 않는 이유.
“이럴 거면 광고 제거를 왜 파는 건데?”
어떻게든 광고를 보게 만들려던 수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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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드와 엘레나가 루벤에 온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주일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1주일의 시간 동안 루벤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콘라드는 레아에게서 샤를롯의 검술을 배웠으며.
엘레나는 요리에 푹 빠진 것인지 다나에게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라가 함께 했지만 뭐, 아무튼.
로열 나이츠는 루벤의 기사들과 대련을 빙자한 훈련을 이어나갔고.
또 각자 틈틈이 켄드릭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루벤에서 각자의 휴가(?)를 보내고 있는 지금.
“개같은···!”
시안은 시뻘개진 두 눈으로 스마트 폰 화면을 향해 소리쳤다.
특수품목에 있는 물품들.
그것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시안은 광고를 수없이 확인했다.
밤낮을 바꿔가며 스마트 폰 화면만 들여다 보았다.
“광고가 대체 몇 개인 거야!”
그런데 광고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수 십만개는 족히 넘었다!
수 십만개?
하! 웃기지 말라지.
거짓말이 아니라 수 백만개는 되어보였다.
모바일 영주식 표현으로 온 차원의 광고란 광고는 모조리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1주일간 눈이 빠져라.
아니, 진짜 눈이 빠진 채로 광고만 확인한 결과.
얻게 된 것은 붉게 충혈된 두 눈.
그리고 별 시덥지도 않은 정보 뿐이었다.
이걸 보라!
[케스토스 히마스] - (300,000 M)
『▶광고 확인 결과, 상대를 매혹시키는 능력이 있는 허리띠임.
착용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매력을 발산시킨다고 함.
이 매력에 빠지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음.
모든 이성들을 매혹시킬 수 있음.
그런데 문제는 동성도 매혹시킴.
그러니까, 남자가 착용해도 남자가 매혹됨.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심지어 종족이 달라도 가능함.
엘프, 드워프, 수인족까지는 그렇다 침.
오크, 트롤, 고블린, 곰, 말, 호랑이 등.
성(姓)의 개념이 존재하는 모든 종족들을 매혹시킴.
그야말로 미친 물건.
함부로 착용했다간 큰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
.
“이딴 걸 대체 왜 파냐고!!”
정신이 나가버린 물품의 정보들이었다!
정신이 나가다 못해 미쳐버린 물건이었다!
추가로 광고에서 첨언하길.
《서큐버스에게 강력 추천한답니다!》 라는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이 있긴 했었다.
뭐, 어디까지나 광고의 물품에 한정이었다.
마일리지 샵에서 파는 것은 진품은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찝찝했다.
다른 종족들은 몰라도 정말 동성까지 매혹시킨다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시안은 정보가 적힌 종이를 찢어버렸다.
아니, 찢어버리다 못해 오러를 끌어 태워버렸다.
저건 그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진짜 목에 칼날이 박혀들어와도.
절대로 구매하지 않을 테니까!
“하아···.”
시안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1주일 간 눈알이 빠지도록 얻은 정보가 저따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니 망정이지.”
모든 물품들이 저러한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물품들도 있었고, 또 그 중에서는 사기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있었다.
물론 모든 광고들을 확인한 건 아니었다.
말마따나 광고의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1주일 안에 그 모든 광고를 확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꽤 많은 물품들의 성능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기적인 성능의 물품을 선별할 수 있었다.
그 중 시안이 이번에 고른 물품은 이것.
[메긴기요르드] - (500,000 M)
다름 아닌 메긴기요르드라는 이름의 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