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장막 속의 진실(3)
시안은 그 자리에 멈춰 서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아멜리아와 엘레나.
아멜리아야 뭐, 상업 지구에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엘레나도 상업 지구에 있지 못할 것은 없었다.
루벤의 손님으로 온 상황이었고, 루벤을 구경하다 상업 지구에 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둘의 만남은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 조합이 독특하다고 해야할까.
아멜리아와 엘레나.
이 둘의 조합이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둘이 오순도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니···.
지금 막 마주친 것 같지도 않아보였다.
시안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둘에게 다가갔다.
“여긴 루벤의 각종 물자들이 보관되고 출자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쪽은 생산 시설에서 만든 것들을 들여와 상품성을 판별하는 곳이죠.”
“이게 전부 루벤에서 나오는 물건들이라고요?”
“제가 여길 관리하고 있는데··· 솔직히 저도 매일 놀라고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자 둘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대화를 듣자하니.
아멜리아가 엘레나에게 상업 지구를 소개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걸 브라헤 영애께서 총괄하신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저야 뭐, 원래 하던 일인걸요. 무엇보다 전부 영주님이 해놓으신 걸 관리하는 것 뿐이에요.”
“이걸··· 전부 시안 공자님이 만드셨다고요?”
“네. 여기 상업 지구뿐만 아니라 저쪽 생산 지구에 가시면··· 어? 영주님?”
시안을 발견한 아멜리아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엘레나 또한 고개를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안을 바라보는 엘레나의 표정.
어째서인지 엘레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엘레나와 아멜리아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말했다.
“뭐하고··· 계셨습니까?”
“황녀님께서 상업 지구를 보고 싶으시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소개해주고 있었어요.”
시안의 물음에 아멜리아가 답을 해왔다.
그리고 역시나.
방금 전 대화에서 예상한 대로 였다.
“브라헤 영애 덕분에 구석구석,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들려온 엘레나의 말.
그런 엘레나의 말에 시안은 살짝 놀라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엘레나는 아멜리아를 ‘브라헤 영애’라 칭했으니까.
브라헤는 아멜리아의 가문이자, 현재는 몰락한 가문이었다.
과거, 서부의 대상단이라 불리며 서부 전역을 주름 잡던 브라헤 상단.
그러나 몇 년전에 몰락하여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기에 아멜리아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브라헤라는 성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아멜리아라는 이름만 밝힐 뿐.
그런데 엘레나는 아멜리아의 성을 알고 있었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시안의 의문을 알아챈 것일까.
“영애께서 상업 지구 전체를 총괄하는 능력이 비범했으니까요. 그리고 실은··· 어렸을 때 브라헤 자작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뵈었던 브라헤 자작과 영애의 얼굴이 상당히 닮으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먼저 여쭈었어요.”
“아.”
엘레나의 말에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나가 말하는 브라헤 자작은 다름 아닌 브라헤 가문의 가주.
즉, 아멜리아의 아버지를 의미했다.
물론 엘레나가 황녀라고 한들.
모든 귀족의 얼굴을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특정 귀족의 얼굴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국에 존재하는 귀족이 몇 명인데 그 얼굴을 일일이 다 기억한단 말인가.
황녀의 의무라는 명분을 들먹여도 귀족의 얼굴을 모두 외우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귀족이 영향력 있는 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제국에서 이름 난 귀족이라면 알게 모르게 얼굴을 알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황녀인 엘레나가 브라헤 자작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과거, 브라헤 상단이 제국에서 갖는 입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보다 공자님은 어쩐 일로 이곳에···?”
그리고 이어진 엘레나의 물음.
시안은 상념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아멜리아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저요?”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이사는 다 끝냈어?”
“아, 네. 대련 구경한다고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당장 필요한 건 다 옮겼어요. 그런데···.”
아멜리아가 살짝, 엘레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는 현재 엘레나에게 상업 지구를 소개하고 있었던 상황.
지금 당장 시안과 이야기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시안 또한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다음에 다시 오려던 찰나.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마침 상업 지구는 다 구경했으니까요.”
엘레나의 말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엘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리고는 뭐라 대응할 틈도 없이 엘레나가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지는 엘레나.
“괜찮을까요···?”
“음···.”
아멜리아의 물음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보이는 엘레나의 뒷모습.
그 모습이 조금은··· 처량해보였으니까.
물론 보이는 분위기 자체는 그렇지 않았다.
화사하고, 기품있는 뒷모습.
황녀로서의 품격이 갖추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품격 속에서도 어딘가 처량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는 현재 혼자였다.
그러니까, 주변으로 호위를 하는 로열 나이츠가 없었다.
다름 아닌 내기 대련으로 인해 전부 대련장, 훈련소, 기사 양성소에 있었으니까.
레아라도 있으면 좋았을테지만···.
레아는 현재 영주성의 연무장에서 콘라드를 가르치고 있었다.
당연히 콘라드는 레아에게서 샤를롯의 검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해서 엘레나는 혼자서 루벤을 구경하고 있었다.
물론 루벤에서야 그 안전에 문제는 없었다.
철통 같은 루벤의 방벽을 뚫을 존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녀를 혼자 내버려둔다니.
이건 좀 문제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챙길 사람이 현재로서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시안밖에 없었다.
‘너무 신경을 못 썼나.’
그래도 직접 초대한 손님인데.
아무래도 너무 무심했던 모양이었다.
“조금 이따가 내가 찾아가볼게.”
“네.”
시안은 아멜리아를 데리고 ‘쓸어담아 상단 Lv.1’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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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지구 중앙에 위치한 ‘쓸어담아 상단 Lv.1’.
확실히 아까와는 달리 건물 내부가 얼추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법 상단 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말씀하신 비자금 때문이신가요?”
그 때문인지 아멜리아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시안에게 물어왔다.
그 모습이 꼭 고양이가 올려다보는 것만 같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있긴 한데··· 그 전에 아멜리아. 혹시 빠른 시일내에 150만 골드 정도 벌 수 있을까?”
“150만 골드요?”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 아닌 초보자 성장 특급 패키지를 현질하기 위한 골드.
물론 시안이 현재 가진 87만 골드가 있었기에 사실 70만 골드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 자금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다름 아닌 어마어마한 현질을 통해 탈바꿈 된 루벤.
거진 모든 제반 시설이 Lv.7로 업그레이드된 지금.
빠져나가는 유지 및 보수 비용이 그야말로 미쳤으니까.
정확히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추 계산해본 바, 달에 20만 골드가 넘어가고 있었다.
쉽게 말해 87만 골드는 4개월도 못 되어 사라질 금액.
그리고 가진 바 골드가 없으면, 시설들은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반 시설을 유지함으로써 벌어들이는 수익을 따지면 20만 골드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만 골드를 투자해서 수 백만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음, 잠시만요···.”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곳저곳, 서류들을 가져와 들춰보고 확인했다.
시안은 그런 아멜리아를 기다렸고.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상행을 바로 출발시키면··· 빠르면 1주. 못해도 2주면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시안은 반색하며 소리쳤다.
역시나 유지 비용인 20만 골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상행으로 그것도 2주만에 150만 골드라니?
세상 어떤 상단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시안은 조금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못해도 2주면 150만 골드가 준비된다는 거지?”
“네? 아뇨.”
그러나 들려온 아멜리아의 말이 바뀌어있었다.
시안은 뭔가 싶어 아멜리아를 바라봤고.
아멜리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770만 골드 정도 나올 것 같은데요.”
“······?”
그리고 시안의 정신이 멍해졌다.
770만 골드라니?
77만 골드가 아니라?
그것도 2주만에 770만?
2달이 아니라?
아니, 2달이어도 770만 골드는 아니었다.
이건 확실했다.
대륙 어떤 상단을 가져와도 불가능하다.
과거, 브라헤 상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770만 골드···?”
“네. 현재 준비된 최상급, 상급 마정석이랑, 드워프 분들이 만드신 특제 맥주. 그리고 이번에 다크 엘프분들이 제리랑 연구 발명한 마법 물품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아멜리아의 말.
“거기에 마수들의 부산물들도 많이 쌓여있고, 또··· 곡식을 비롯한 식자재들도 많이 있어요. 이게 아직 제국에 흉년의 여파가 남아있어서 식자재 시세가 상당히 높거든요. 게다가···”
아멜리아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 십장의 서류를 넘기면서 보고를 이어가고 있었다.
“······”
시안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Lv.7로 업그레이드 된 제반 시설.
그리고 세계수, 인스티즈의 축복.
이 부과 효과들로 인해 현재 루벤의 생산력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다.
“··· 해서 얼추 770만 골드가 나올 것 같아요. 어쩌면 더 벌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2주만에 770만 골드라니.
대륙의 어떤 상단이, 영지가 이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그, 그래. 그럼 부탁할게 아멜리아.”
“네! 맡겨만 주세요!”
아멜리아는 정말 맡겨만 달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뭐, 어쨌든.
이로써 초보자 성장 특급 패키지를 현질할 돈은 마련된 상황.
아니,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럼 그건 해결됐고···.”
하지만 시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물론 770만 골드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상행으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770만 골드였다.
앞으로 계속 벌어들일 골드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골드 걱정은 없다고 봄이 옳았다.
띠링!
《킹바일 영주는 어떤 인과든 두렵지 않닷!》
《덤벼라! 아뵷!!》
이 망할 모바일 영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만일 루벤이 평범한 영지였다면 770만 골드면 충분했다.
웬만한 백작령만 되어도 770만 골드면 충분하다 못해 남앗다.
그런데 루벤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할까?
770만 골드는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초보자 성장 패키지와 더불어 시설 몇 개 지으면 끝이었다.
물론 각종 제반 시설을 Lv.7까지 업그레이드한 지금.
루벤에 무슨 현질을 더 하겠냐만은.
그건 어디까지나 군사 관련 시설과 생산 관련 시설에 관련한 시설들이었다.
다른 시설들은 아직 뒤쳐져있었다.
지금 당장 이 건물.
이 건물만 해도 ‘쓸어담아 상단 Lv.1’ 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는 다른 시설들을 발전시킬 차례였다.
그리고 시안이 첫번째로 생각한 건, 역시나 교육 시설.
‘엘리한테 미리 말을 해둬야겠는데.’
다름 아닌 치료사들을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엘란두르와의 영지전이 거진 확정된 지금.
수많은 부상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많은 부상자들을 엘리 혼자 담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또한 비단 교육 시설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및 유흥, 행정 청사, 운수, 폐기물 처리장 등등.
이번에 새로이 개방된 시설들과 더불어 발전시키고 건설할 시설들이 즐비해있었다.
그걸 위해서라도 골드를 더 벌 필요가 있었다.
770만 골드는 커녕 7,700만 골드가 있어도 모자랐다.
거기에 마일리지까지 생각하면···.
‘7억 골드는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니, 그것도 부족하려나.
그야말로 밑이 박살난 독.
아니, 박살이 나다 못해 아작이 나버린 독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비자금의 출처를 계속 확인해줄 수 있어?”
“아, 네. 물론이죠. 한 번 줘 보시겠어요?”
시안은 스마트 폰을 꺼내 엘란두르의 장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멜리아는 스마트 폰의 사진을 보며 빈 종이에 이것저것 적기 시작했다.
“다음 것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들려온 아멜리아의 말.
시안은 스마트 폰의 화면으로 손가락으로 밀며 다음 장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쳤을까.
“그런데 아멜리아. 이렇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장부를 필사하는게 낫지 않을까?”
“음··· 확실히 그게 저도 편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비교 대조를 많이 해야돼서, 확인했던 장부도 계속 확인해야할 것 같아요.”
아멜리아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 지금 바로 상단원들을 불러올까요?”
“그래 줄래?”
시안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아멜리아한테 스마트 폰을 맡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스마트 폰은 시안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잠시만요.”
그렇게 아멜리아가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 어?”
갑자기 아멜리아의 움직임이 덜컥, 굳어버렸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아멜리아의 시선이 스마트 폰에 고정된 채, 어떤 움직임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라본 아멜리아의 얼굴.
어째서인지 아멜리아의 두 눈은 심히 떨리고 있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본 듯한 눈빛이었다.
“왜 그래?”
시안은 물었으나 아멜리아는 답이 없었다.
되려 두 눈이 점점 더 심하게 떨리며, 스마트 폰 속의 장부를 바라볼 뿐이었다.
“뭔데 그러는데?”
시안은 아멜리아의 시선을 따라 스마트 폰의 화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