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장막 속의 진실(1)
벙찌는 표정과 함께 시안의 정신이 출타했다.
그렇게 출타한 정신과 함께 어이 또한 같이 승천했다.
얼이 빠져 버린 정신.
사고의 흐름이 좀처럼 이어나가질 않는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출타한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승천한 어이는 돌아오지 않은 걸까.
시안은 여전히 레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이가 오빠의 검술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했다는 뜻?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야. 걔는 오빠의 검술을 사용하는 것 같던데?
이어진 레아의 말에 겨우 돌아온 시안의 정신이 다시 한 번 출타했다.
카이가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했다.
물론 이 말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카이가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 문장이 성립될 수 있는 거지?
“레아야말로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아닐걸?
레아는 그럴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너랑 대치했을 때 기억 나?
“저랑 대치했을 때라면···.”
다름 아닌 마혼수라검 제 2식, 멸천수라.
그것에 대응하여 카이가 던진 승부수를 말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카이가 시전한 엘란두르의 비기.
-그건 분명 오빠의 검술이었어.
“······”
시안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레아의 말은 한 가지 말도 안되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시안은 감히 배울 수 없었던 엘란두르의 비기.
레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설마요. 착각하신 거 아니예요?”
-얘가! 정말이래도!
그러자 레아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레아는 확신하는 것 같았다.
뭐, 레아는 다름 아닌 샤를롯의 여동생.
레아가 저렇게까지 확신한다면 거진 맞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세월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자그마치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 세월이 흘러 레아는 기사가 아닌 사념을 다루는 원귀가 되었다.
그 아득한 세월에서 착각을 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하지만 이대로 착각이라 치부하기엔··· 또 그렇지 않았다.
“레아, 잠깐만 같이 가요.”
시안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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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롯님의 검을 보고 또 견준 적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켄드릭은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다름 아닌 카이가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했냐,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시안과 카이와의 격돌.
그 격돌에는 레아는 물론, 켄드릭도 같이 있었으니까.
해서 시안은 레아와 함께 켄드릭이 있는 대련장으로 찾아왔다.
데스 나이트와 원귀.
그 수준의 차이는 딱 자를 수는 없으나, 검이라는 것만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데스 나이트 쪽이 정확할 테니까.
하지만 켄드릭은 잘 모르겠다, 그리 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아가 착각을 한 것이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오나, 주모님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그러나 켄드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과는 달리, 살아생전 주모님께서는 뛰어난 기사셨습니다.
다름 아닌 레아가 원귀가 되기 전.
그러니까 천 년전, 아르나이즈 전당에 잠들기 전의 레아는 굉장히 뛰어난 기사였다.
그리고 이는 시안도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다.
다름 아닌 황궁의 비밀 서고에서 샤를롯이 작성한 카일의 비망록.
그 기록에 분명 똑같은 사실이 적혀있었으니까.
애초에 샤를롯이 레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샤를롯이 악마와 대적할 세력을 모으던 와중, 홀로 악마들을 쓸어버리던 여기사의 소문을 접했다.
해서 샤를롯은 그 소문을 듣고 여기사를 찾아갔고, 그 여기사가 다름 아닌 레아였던 것.
한 마디로 레아는 악마를 쓸어버릴 정도의 실력자였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 마스터(Master)의 기사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켄드릭과 견줄 정도였을지도.
-무엇보다 주모님은 검을 보는 눈에 있어서는 저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켄드릭은 검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말했다.
그리고 방금 전 켄드릭의 말.
평소라면 레아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켄드릭에게 있어서 레아는 주군의 여자.
즉, 주모(主母)였으니까.
하지만 카일의 비망록을 확인한 지금.
마냥 낮추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잊고 있던 사실이나 레아는 샤를롯의 여동생이었다.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았던 전설의 경지, 엑시드(Exceed)의 기사.
아르나이즈의 리더, 샤를롯.
샤를롯과 같은 핏줄을 타고난 그 재능이 어디갈까.
-들었지? 내가 이런 여자라고!
켄드릭의 말에 레아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시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켄드릭의 말대로라면 레아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건 한 가지 말도 안되는 진실을 가리켰다.
물론 확실한 사실은 아니었다.
여전히 추측이라는 쪽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정말 이 상황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것이 가리키는 진실은 하나.
“정말··· 카이가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한다고?”
엘란두르의 비기는 샤를롯의 검술이다.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엘란두르가 어째서 샤를롯의 검술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추측은 있었다.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이 소실된 경위.
본디 샤를롯의 검술은 황족 혈통 대대로 전해져내려왔다.
그러나 몇 백년전에 제국에 크나큰 위기가 닥쳐왔고,
그때 황제가 피살되며 샤를롯의 검술 또한 같이 소실되었다.
동시에 제국의 존망이 달린 큰 위기가 닥쳤다고 하는데···.
그때 제국을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엘란두르.
이는 엘란두르 가문이 지금의 명문가가 된 사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에 엘란두르의 비기가 샤를롯의 검술임을 끼워맞추면···.
‘묘하게 타이밍이···.’
타이밍이 묘하게 겹쳤다.
물론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억측에 끼워 맞춘 사실에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엘란두르의 비기가 샤를롯의 검술이다.’ 라는 사실을 듣고 이 이야기를 다시 본다면···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만일 이때, 엘란두르가 샤를롯의 검술을 가져온 것이라면?
황제의 피살에 엘란두르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엘란두르가 황제를 피살한 것인지.
아니면 황제를 피살한 건 다른 이였고, 엘란두르는 샤를롯의 검술만 가져온 것인지.
솔직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이는 몇 백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고, 지금 와서 그 일의 진위를 파헤치기는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당시, 엘란두르가 샤를롯의 검술을 얻었다라는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음···.”
시안은 한 가지 고민이 들었다.
엘란두르가 샤를롯의 검술을 사용한다.
이 사실을 콘라드에게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샤를롯의 검술은 본디 샤를롯의 것이다.
그리고 그 명맥은 샤를롯의 후손들이 이어오고 있었다.
즉, 본디 황족의 소유라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역시나 콘라드.
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콘라드는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실’ 이라면이었다.
의심은 가나,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괜히 마음만 복잡하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어디 계셔?”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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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의 기사들과 대련을 펼치고 있는 로열 나이츠들.
콘라드는 대련장에서 로열 나이츠들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안은 콘라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음? 시안 아닌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시안이 다가가자 콘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하, 외람되오나··· 전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할 말이?”
콘라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콘라드였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시안은 잠시 주저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뜸을 들이는 가. 개의치 말고 편히 말하게.”
콘라드는 미소를 지으며 시안을 재촉했고.
시안은 그때서야 관련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렇게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이야기가 끝난 직후.
“······”
콘라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작은 탄성조차 내뱉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조차 없었다.
쉽사리 믿기 힘든 이야기.
그렇기에 시안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반응이라 생각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안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콘라드는 이 이야기를 말을 믿고 있음을.
콘라드가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한다는 방법.
그 방법에 비추어 보면 이 이야기가 시안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없었다.
시안이 뭐하러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낸단 말인가.
무엇보다 레아의 존재가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했다.
레아는 샤를롯의 여동생이었으니까.
그리고 콘라드가 레아를 인정한 지금.
시안의 이야기가 갖는 믿음은 더욱 보장되었다.
사실상 기정 사실이라 받아들여도 무관했다.
그렇기에 콘라드의 시선은 살짝 내려앉아있었다.
표정은 그 여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감정은··· 분노.
시안은 콘라드가 분노하는 걸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제국 서부에서 있었던 일.
백성들이 죽어나갈 때 문을 걸어잠그었던 귀족들.
저 혼자 살겠다고 백성들을 나몰라라 했던 서부의 귀족들.
엘리츠 백작을 필두로 한 서부의 귀족들을 구속할 때 콘라드의 분노를 한 번 본 적 있었다.
그리고 지금.
“······”
콘라드는 다시 한 번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는 사뭇 다른 분노였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시안은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미안하네. 잠시 추태를 보였군.”
콘라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콘라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엘란두르가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훔쳐갔다라···.”
콘라드는 다시 한 번 나지막히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반역이라 볼 수 있었다.
반역은 물론 엘란두르 가문 자체를 멸족시켜버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 사실을 들먹이기란 힘들었다.
엘란두르의 비기가 샤를롯의 검술이다.
엘란두르가 샤를롯의 검술을 훔쳐갔다.
이를 밝히기 위한 증거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없다고 봄이 옳았다.
몇 백년 전에 이미 벌어진 일.
증거가 있다고 한들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으로서는 오직 레아의 증언만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레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레아의 존재를 알린다 한들, 그녀가 샤를롯의 여동생임을 믿어줄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봄이 옳았다.
“이 일은 폐하와 긴히 상의를 해봐야겠군.”
그렇다고 하여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뿐.
관련한 사실을 찾아보면 또 모를 일이었다.
일단 황궁의 비밀 서고.
그곳에서 관련한 이야기를 찾아본다면 증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빼앗긴 것은 여전한 사실.
지금 당장 되찾아 올 방법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하.”
시안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콘라드에게 말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솔직히 시안과는 관계 없는 일이었다.
시안이 한 것도 아니었고, 이미 몇 백년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대 엘란두르가 저지른 일.
하지만 어떻게 보면··· 시안도 엘란두르였다.
부정하고 싶어도, 핏줄은 이어져 있었으니까.
“자네가 왜 사과를 하는가. 자네가 무얼했다고.”
콘라드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시안이 사과를 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은 것일까.
“무엇보다 자네는 이제 엘란두르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고개를 들게. 자네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되려 진실을 알려준 것에 내가 감사해야지.”
콘라드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시안에게 말했다.
이윽고 콘라드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관조께서는··· 아니, 레아님께서 보시기에 엘란두르의 검술이 샤를롯 대제의 검술이라는 말씀이시죠.”
-아마 맞을 거야. 아니, 확실해.
레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레아의 모습에 콘라드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
생각에 잠긴 듯, 콘라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그럼 혹시, 레아님께서는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기억하고 계신 겁니까?”
-음··· 조금은?
레아는 잠깐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레아의 모습에 콘라드가 곧장 말을 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니, 가능하시다면 제게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빠의 검술을?
“예.”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엘란두르의 검술이 샤를롯 대제의 검술이라 한들. 냉정하게 말해서 그 사실을 밝힐 방법은 없습니다.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아 오는 노력은 하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콘라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러나 분노하되, 상황에 대한 판단은 냉철했다.
“허나, 빼앗겼다 한들 그것은 본디 황가의 것. 샤를롯 대제께서 저희들에게 남긴 고귀한 유산입니다. 비록 오랜 세월동안 소실되었으나, 그 명맥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건 마땅히 제가 짊어져야하는 의무입니다.”
콘라드는 그 말을 끝으로 레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니 레아님께서 제게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그건 제국의 황태자가 아닌.
샤를롯의 후손이자, 레아의 후손으로서 하는 부탁이었다.
-그건 어렵지 않아.
그렇기에 레아는 콘라드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역시나 콘라드는 샤를롯의 후손이었고.
동시에 레아의 후손이기도 했으니까.
명분으로나 보나, 뭐로 보나.
콘라드는 충분히 샤를롯의 검술을 배울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 내가 오빠의 검술을 완벽히 알지 못해.
레아는 샤를롯의 검술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옛날이야 오빠한테 배워서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좀··· 많이 가물가물해.
레아가 전당에서 지내온 천 년이란 세월.
그 아득한 세월 앞에 기억은 희미해져 사라져갔다.
켄드릭 또한 천 년의 세월 속, 인간 시절의 검술을 잃어버렸다.
레아 또한 그와 별 반 다르지 않을 터.
심지어 레아는 이제 검이 아닌 사념을 다루는 원귀였다.
-직접 본다면야 얼추 기억이 떠오르긴 하는데··· 당장 네게 가르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그렇기에 콘라드에게 샤를롯의 검술을 가르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정확히는 가르칠 수 없다고 봄이 옳았다.
그러나.
“그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문제는 시안이 해결해줄 수 있었다.
“자네가··· 말인가?”
시안의 말에 콘라드가 살짝 의문을 표했다.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은 샤를롯의 검술을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 이름을 버렸으나, 얼마 전만 하더라도 시안 또한 엘란두르였다.
비록 처참한 재능으로 엘란두르의 비기를 배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깨 너머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깨 너머로 엘란두르의 비기를 본 적은 있었다.
카이가 수련하는 광경을 어깨 너머로 본 적은 있었다.
또한 어깨 너머로 보다 못해 그 비기로 괴롭힘을 당한 적도 있었다.
네이슨과 로즈웰.
과거, 어린 시안은 검술 연습 상대랍시고 그 둘에게 수많은 괴롭힘을 당했었으니까.
그리 썩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만···.
또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겠다만.
그래도 레아가 기억을 떠올리는데는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자네···.”
그러자 콘라드가 멍하니 시안을 바라봤다.
오랜 세월 소실되었던 샤를롯의 명맥.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자신의 대에서 찾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안을 바라보는 콘라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 사실을 알려준 것도.
또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도 그렇고.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을 끄집어내면서까지 시안은 콘라드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있었다.
시안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아니, 되려 숨기고 감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려 샤를롯의 검술이었으니까.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을 수 있었던 전설의 경지, 엑시드(Exceed).
그런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기사이자 세상을 구한 아르나이즈.
샤를롯은 그런 아르나이즈의 리더였으며 그런 샤를롯의 검술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만한 것이었다.
엘란두르 또한 그 검술을 탐내 훔치지 않았는가.
감히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
그렇기에 시안 또한 콘라드에게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
감추고 숨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도 되었다.
하지만 시안은 그렇지 않았다.
“······ 고맙네.”
콘라드는 그저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콘라드는 진심으로 시안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런 콘라드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안.
“아니 뭐···.”
시안은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만.
어디까지나 지난 일이었다.
지금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샤를롯의 검술은···.
솔직히 말하면 시안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샤를롯의 검술이 대단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시안에게는 아니었다.
카일의 검,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마혼수라검은 샤를롯조차 배우지 못했던 검.
굳이 샤를롯의 검을 탐낼 필요가 있을까.
마혼수라검 하나만 배우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샤를롯의 검술을 배울 바에는 모바일 영주를 통해 한 번 더 카일의 검을 배우는 것이 훨씬─.
‘응? 잠깐.’
그 순간 문득 하나의 생각이 시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시안은 현재 모바일 영주를 통해 카일의 검을 배우고 있었다.
성장 패키지를 현질하여 배우고 있었지만 실은 이게 말이 되지 않았다.
카일의 검은 소실되어 사라져있었으니까.
샤를롯의 검술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몇 백년전까지 황가 대대로 전승되어오고 있었다.
물론 진실은 엘란두르에게도 전승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전승되어 오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카일은 아니었다.
카일의 검술은 말 그대로 소실되어 사라졌다.
애초에 카일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시안은 성장 패키지를 현질하여 카일의 검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카일의 검이 모바일 영주에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샤를롯의 검술도 있는 거 아닌가?’
샤를롯의 검술이라고 남아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간 시안이 살펴본 바.
샤를롯의 검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단 샤를롯 뿐만 아니라 다른 아르나이즈들의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내심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하지만.
최근에 ‘혹시···?’ 하는 물음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①<샤를롯의 전당 > (1,500,000 M)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영웅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웅이 남긴 신념과 의지는 흘러간 세월 속에서도 무구한 법.
세상을 구원한 아르나이즈의 리더, 샤를롯.
전당에는 그의 의지와 신념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해당 상품 구매 시, 영지에 <샤를롯의 전당>이 개방됩니다.
[건설 효과] - 영지 내, 훈련소의 훈련을 수료한 병사들은 ‘오러 유저(User)’ 중급의 경지부터 시작합니다.
.
.
다름 아닌 새로이 개방된 【마일리지 샵】
그리고 『특수시설』의 <샤를롯의 전당>.
‘전당에는 그의 의지와 신념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샤를롯의 전당에는 그의 의지와 신념이 남아있었다.
샤를롯의 의지와 신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의지와 신념은 유저(User) 중급부터 시작한다는 사기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의지와 신념으로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효과는 영지 내 훈련소의 훈련을 ‘수료’한 병사들에게 적용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샤를롯의 전당> 안에 샤를롯의 검술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면?
그 검술을 배웠기에 오러 중급부터 시작하는 효과가 적용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건 비단 <샤를롯의 전당>만의 일이 아니었다.
<엘로디의 마탑>, <뮤리엘의 성소>, <모르크루의 단철장>.
모두 사기적인 효과를 지닌 건물들.
이 모두 각각의 아르나이즈들이 남긴 비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라면?
‘음···.’
혹시···? 라는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령 샤를롯의 검술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레아는 분명 샤를롯은 자신을 따르던 기사들에게 검술을 알려주었다고 했었다.
그 검술이어도 상관없었다.
샤를롯이 자신의 기사들에게 알려준 검술이어도 충분했다.
어쨌거나 샤를롯의 검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그것만으로도 레아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확인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시안은 곧장 콘라드에게 말했다.
“전하. 확실하지 않지만 어쩌면··· 제게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완벽히 복원할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뭐라? 그것이 정말인가?”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콘라드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레아 또한 궁금한 지 고개를 갸웃거려왔다.
그리고.
“그런데 저··· 그···.”
시안은 그런 둘에게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막상 설명을 하려니 뭐라 말을 꺼내야할지 막막했으니까.
아니, 설명이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시안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 방법에는 돈이 좀··· 많이,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대체 무슨 방법이길래? 아니, 얼마가 필요하길래 자네가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이어진 콘라드의 물음.
시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샤를롯의 전당>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50만 마일리지.
이를 골드 가치로 환산하면···.
“······”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진짜? 정말로? 이게 맞는 걸까?
샤를롯의 검술이 갖는 가치는 무한하다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황가의 자산이 이 정도는 되려나?
글쎄···.
시안은 심히, 아주 심히 고민했다.
하지만 답을 재촉하는 콘라드의 모습에 시안은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1억 5,000만 골드 정도···.”
우뚝.
일순간 콘라드의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내려앉는 정적.
“········· 뭐, 뭐, 뭐라?”
콘라드의 어이가 하늘 높이 승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