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78화 (178/322)

§ 178화 - 승부의 행방

내기 대련의 마지막 5경기, 시안과 예일의 대련.

-뭐··· 승부를 판가름 하기가 조금 그렇긴 하네.

레아는 능청스럽게 답을 해왔다.

“그럼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네 의견? 뭔데?

콘라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좌중의 인원들을 한 번 바라봤다.

로열 나이츠를 비롯한 루벤의 영지민들.

이윽고 콘라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승부로 하심이 어떠하십니까.”

-무승부?

콘라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내기는 서로 간의 수준에 맞는 대표를 선출하여 대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일과 시안은··· 서로 간의 수준이 맞지 않았습니다.”

-음···.

레아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가로젓지도 않았다.

콘라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고.

또 맞는 말도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켄드릭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이 대결은 어디까지나 서로 한 발씩 양보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실을 말하자면··· 예일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로열 나이츠 측의 승리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콘라드가 제안한 결과는 무승부.

뭐, 무승부로 치부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친선 목적으로 진행된 대련이었고.

또 한 쪽의 목숨이 끊어져야 끝나는 생사결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승패가 안 정해지는 걸.

그러나 무승부로 끝낸다면 승패가 나지 않았다.

단순한 친선 대련이라면야 모르겠다만 이건 내기 대련이었다.

진 쪽이 이긴 쪽의 연습 도구··· 아니, 연습 기계···.

아니, 아무튼 그거가 되어주는 내기.

그리고 현재 내기 대련의 스코어는 2:2로서 이 경기는 마지막 5경기였다.

앞선 1~4경기였다면 또 모를까.

무승부로 끝낸다면 내기의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지금.

무승부로 끝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콘라드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무승부라는 결과에 걸맞게, 서로 내기의 내용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서로의 내기 내용을 들어줘?

콘라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내기 대련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루벤이 이긴다면 로열 나이츠들이 원하면 언제든, 루벤의 병사들과 기사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는 것.

로열 나이츠가 이긴다면 원하면 언제든, 켄드릭이 연습 상대가 되어주는 것.

사실 둘 사이에 겹치는 부분은 없었다.

해서 둘 모두 성사되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하오나 전하. 그러하다면 전하와 황녀님을 호위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로열 나이츠는 콘라드와 엘레나를 호위할 수 없게 되었다.

일순간 들려온 예일의 말에 콘라드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만신창이가 된 예일의 모습.

방금 전, 시안과의 대련이 얼마나 접전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예일의 말마따나 이 대련을 무승부로 한다면.

그리하여 서로 간의 내기 조건을 들어준다면.

로열 나이츠는 전원이 나서야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호위 임무는 할 수 없다고 봄이 옳았다.

“괜찮네.”

하지만 콘라드는 괜찮다, 그리 말하고 있었다.

콘라드는 예일을 비롯한 로열 나이츠들에게 말했다.

“루벤에서 굳이 호위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네.”

솔직히··· 루벤에서는 호위가 큰 의미를 갖지 못했으니까.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긴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실제로도 루벤에 마수들이 들이 닥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뿐이었다.

마수가 들이닥친다는 사실만 있을 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되려 오우거가 왔다고, 저 힘줄이 비싸다고 좋아하던 루벤의 병사들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그들조차 루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루벤의 전력을 뚫어내지 못하고 끝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이런 루벤 안에서 무슨 위협을 받을까.

아니, 이런 루벤 안에서 호위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막말로 루벤의 전력이 작정하고 달려든다치자.

로열 나이츠는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레아와 켄드릭.

그리고 예일과 호각을 겨룬 시안.

여기에 루벤의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합세한다?

그럼 뭘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실제로 시안이 반기를 들겠냐만은.

솔직히 호위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고 한들 의무는 어디까지나 의무.

콘라드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확히는.

“예일, 자네도 벽에 막혀있지 않았나.”

로열 나이츠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콘라드라고 모르지 않았다.

샤를롯의 후손으로서 콘라드 또한 기사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비록 황태자로 책봉된 이후, 업무에 치여 지금은 검을 놓았다만 콘라드라고 모르지 않았다.

보다 높은 경지의 기사와 대련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심지어 그 수준이 예일, 마스터 중급에 달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마스터 중급보다 높은 경지의 기사는 찾기 힘들었다.

찾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딱 한 명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 명과의 대련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는 없었다.

더 높은 경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예일은 물론 필리프.

그리고 다른 로열 나이츠들까지.

그런 기회를 호위라는 의무에 속박되어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

콘라드의 말에 예일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었으니까.

예일이라고 욕심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비단 예일 뿐만 아니라 필리프와 다른 로열 나이츠들의 심정 또한 그러했다.

콘라드는 예일의 표정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시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가 시안. 자네의 생각은.”

콘라드의 물음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시안이 내기 대련의 목적을 한 목적은 한 가지였다.

로열 나이츠를 연습 도구. 아니, 연습 기계.

아니 그러니까 그거로 만들기 위한 명분.

그 목적만 달성한다면야 솔직히 지든 말든 상관 없었다.

내기 대련의 승패가 어찌되든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승부만 따지면 내가 지기도 했으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시안의 패배나 다름 없었다.

콘라드는 시안과 예일의 수준이 맞지 않음을 말하며 무승부를 제안했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억지나 다름 없었다.

제안을 한 당사자가 콘라드가 아닌 시안이었다면 그야말로 생떼나 다름 없었다.

수준의 차이가 다르든 말든.

컨디션의 난조가 있든 없든.

한낱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대련이라는 사정을 봐준다한들 역시나 변명.

어떤 말을 늘어놓든 진 건, 진 것이었다.

비록 접전 끝에 판가름난 결과라고는 하나.

시안은 아직 예일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콘라드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콘라드가 이렇게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부터 이러실 생각이셨나.’

콘라드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루벤이 지더라도 로열 나이츠들을 루벤의 연습 상대로 해줄 요량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할까.

사실 시안도 그럴 생각이었다.

루벤이 이기더라도 시안은 시간 날때면 켄드릭과 로열 나이츠들을 대련을 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시안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과 콘라드.

루벤의 영주와 제국의 황태자.

갖은 바 위치의 격은 다르다.

그러나 가장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존재라는 위치는 같았다.

어째, 자신의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던 것일까.

자신에게는 딱히 이득이 없음에도 말이다.

“전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시안의 답에 콘라드가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시안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윽고 콘라드가 다시 레아를 바라봤다.

그런 콘라드의 시선에 레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소리쳤다.

-좋아! 그럼 내기 대련의 결과는···

그리고 이어진 레아의 외침.

-무승부!

그와 동시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대련장 가득 터져나왔다.

#

그렇게 내기 대련이 무숭부로 끝난 직후.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그에 따라 후끈, 달아올랐던 축제의 열기 또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대련장에는 또 다른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캉─!

카캉─!

다름 아닌 대련을 빙자한 수련의 열풍.

루벤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물론.

로열 나이츠 전원이 대련장을 가득 메워 저마다의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각자 보다 높은 경지로 닿을 수 있는 기회.

다만, 켄드릭만은 아니었다.

켄드릭은 사실상 베푸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안은 켄드릭에게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만.

-저는 신경쓰지 마시옵소서.

켄드릭은 의외로 개의치 않아했다.

-주군의 기사들은 저의 단원들이기도 합니다.

켄드릭은 현재 루벤의 기사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동안 루벤의 기사들을 가르치고 있던 것도 모두 켄드릭.

-단원들이 큰 성장을 할 수 있다면, 단장으로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켄드릭의 경지는 마스터 상급으로서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경지의 기사였다.

해서 켄드릭의 입장에서는 낮은 경지의 기사와 대련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낮은 경지의 기사라 한들.

아무런 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분들과 대련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놓쳤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스터 상급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지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바 재능의 한계에 부딪힌 켄드릭.

-어쩌면··· 저는 더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서 되짚어보는 것이 제가 마주한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켄드릭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로열 나이츠와의 대련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루벤 전역으로 수련의 열풍이 부는 가운데.

영주성 Lv.3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흐아···.”

시안은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예일과의 대련을 한 직후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의 반동 때문일까.

아무래도 둘 모두 일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전신으로 형용할 수 없는 탈력감이 쏟아져내렸다.

그래도 세계수의 축복과 더불어 엘릭서의 효능.

그 둘 덕분에 탈력감에서 그칠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카이와의 격돌에서처럼 다시 한 번 내부가 진탕되었을 터였다.

뭐, 어쨌든.

“하으···.”

그렇게 시안은 의자에 몸이 파묻힌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엘릭서의 힘을 흡수함으로써 몇 단계는 진보한 시안의 수준.

그리고 예일과의 대련.

그로써 파악할 수 있었던 시안의 경지.

“애매한데···.”

애매했다.

그러니까 딱 잘라 여기다,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일단, 마스터에 견줄 정도는 확실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예일과 그런 접전을 펼칠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마스터에 근접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스터(Master)의 경지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 역시 예일과 직접 대련해본 바.

무언가 부족함을 시안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예일에게 지기도 했지 않은가.

물론 예일은 마스터 중급에 달했으나 그럼에도 마스터 초급이냐, 라고 부르기엔 뭔가 찝찝했다.

가진 바 마력의 힘 자체는 마스터에 닿아있었다.

그러나 마스터는 힘만 강하다고 하여 마스터라 불리지 않는다.

힘은 마스터에 닿아있으나, 깨달음을 비롯한 경험들이 마스터에는 미치지 못한 것?

그러니까, 마스터(진)?

“진짜 애매하네.”

정말이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시안은 의자에 파묻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시안!

갑자기 불쑥, 시안의 시야 앞으로 여인의 머리가 솟아올랐다.

백은색의 머리와 더불어 고혹적인 외모의 소유자.

다름 아닌 레아였다.

그리고 레아는 시안을 놀래킬 요량이었는지 말 그대로 불쑥, 등장했다.

하지만.

“네.”

시안은 놀라는 기색없이 담담했다.

-뭐야. 안 놀라네.

“그야 뭐···.”

이미 레아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평소였다면··· 아마 놀랐을 터였다.

레아는 기척을 숨기며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성장한 것은 성장한 것일까.

예전보다 더욱 확장된 기감이 레아의 존재를 진즉에 감지할 수 있었다.

-치. 재미없어.

레아가 김이 팍, 샜다는 듯. 입을 한 번 비죽여보였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한 번 흘리고는 레아에게 말했다.

“전하랑 황녀님은 어디 두시고, 여기 계세요?”

-전하랑 황녀? 아, 걔네들? 얘들 쌈박질 하는 거 구경한다고 해서. 난 그냥 왔어.

쌈박질이라 함은 다름 아닌 대련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보아하니 콘라드와 엘레나는 그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걔네···?’

콘라드와 엘레나를 걔네라 칭하는 레아.

누가 들으면 황족 모욕죄로 7족, 8족을 멸할 중죄였다.

그런데 뭐···.

레아가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뭐 어쩐단 말인가.

황제에게도 나부랭이라 부르는 레아였거늘.

걔네 정도면 상당히 순화해서 부른 것이었다.

적어도 인칭 대명사이지는 않은가.

뭐, 어쨌든.

-아니, 그게 아니라. 나 궁금한 거 있어.

“궁금한 거요?”

-그게, 조금 이상했는데 말이야. 걔네들은 왜 오빠의 검술을 안 써?

이어진 레아의 말에 시안은 잠시 멈칫, 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레아가 말한 ‘걔네’가 누구인지 생각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의 오빠의 검술이라는 말을 감안하면.

그러니까 샤를롯의 검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선 콘라드와 엘레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콘라드라면 모를까, 엘레나에게 검술은 맞지 않았으니까.

“로열 나이츠분들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 걔네들을 따라다니는 기사들 말이야.

이번에 말하는 걔네들은 다름 아닌 콘라드와 엘레나였다.

이렇게 보니 참···.

걔네라는 건 마법의 단어인 것 같았다.

뭐, 어쨌든.

레아의 궁금증은 로열 나이츠들이 왜 샤를롯의 검술을 쓰지 않냐는 것이었다.

아마 대련의 장에서 그 부분이 의아했던 모양.

특히나 예일의 검술은 충분히 더욱 그러했다.

예일의 검은 철저한 실전 위주로 만들어진 검이었으니까.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답했다.

“샤를롯의 검술은 황가의 혈족에게만 전수되거든요.”

샤를롯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아르나이즈의 리더, 샤를롯.

그가 사용하던 검술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로서 대대로 황족에게만 전수되어왔다.

로열 나이츠는 황가를 수호하는 기사들이기는 했으나 샤를롯의 검술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 오빠는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에게 가르쳐줬는데. 이제는 아닌가 보구나.

천 년전의 샤를롯은 어땠는지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응? 아니지? 그래도 이상한데?

그 순간 레아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안은 그런 레아의 모습에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뭐, 천 년전의 사실이 어찌되었다 한들.

이제 와 큰 의미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샤를롯의 검술은 소실되었어요.”

-엥? 오빠의 검술이 소실돼?

“네.”

샤를롯의 검술은 소실되었다.

본래는 황족 혈통 대대로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몇 백년 전에 소실되었다.

어째서 소실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시안 또한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래 전, 제국에 크나큰 위기가 닥쳐왔고,

그때 황제가 피살되며 샤를롯의 검술 또한 같이 소실되었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더하여 제국의 존망이 달린 큰 위기가 닥쳤다고 하는데···.

그때 제국을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이 제국의 명문가가 된 시초라는 것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초보자 성장 무공 패키지에서 샤를롯의 검술을 배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엉뚱하게 카일의 무공이 나왔었지.’

시안은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럴리가?

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요. 이건 확실해요.”

시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확실한 내용이었으니까.

설마하니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잘못 알고 있을까.

콘라드는 물론 현 황제도 샤를롯의 검술은 알지 못했다.

물론 샤를롯이 사용한 검인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름만 같은 검일 뿐.

정확히는 샤를롯이 검의 이름을 본따 검술 이름을 지었다.

한 마디로 샤를롯의 검술이 남아있는건 아니었다.

-이상하다··· 그럼 걔는 뭐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레아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레아가 말하는 ‘걔’는 누구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걔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왜. 너랑 싸웠던 애 있잖아. 그 재수없는 놈.

“저랑 싸웠던 사람이라면···.”

시안과 싸웠던 사람은 꽤나 많았다.

그러나 시간대와 더불어 레아가 놈이라 부를 수 있는 이를 생각하면··· 두 명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첫번째는 역시나 예일.

하지만 설마하니 예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테니.

“카이요?”

역시나 카이밖에 없었다.

-늑대 같이 생긴 놈 말이야. 그 놈 이름이 카이야?

“네. 맞아요.”

아무래도 카이를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카이가 왜요?”

그렇기에 시안은 더욱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레아가 카이를 왜 언급한단 말인가.

레아는 바로 답을 해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안에게 재차 물었다.

-분명 오빠의 검술이 소실되었다고 했지?

“네.”

-이상하네···.

레아는 나지막히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레아의 한 마디.

-걔는 분명 오빠의 검술을 썼는데?

“······ 예?”

시안의 표정이 일순간 벙쪄버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