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내기 대련(1)
푹, 고개를 숙인 잭슨의 모습.
“괜찮아. 잘했어.”
시안은 그런 잭슨을 다독였다.
“기 죽지마 잭슨! 잘했어!”
“로열 나이츠를 상대로 그 정도면 엄청 잘한거라고!”
그런 시안의 말에 따라 병사 동료들과 영지민들이 소리쳤다.
그리고 시안 또한 그 말에 충분히 동의했다.
애초에 상대가 로열 나이츠의 수습 기사였다.
아무리 수습 기사라고 한들 기사는 기사.
소속이 로열 나이츠임을 감안하면 웬만한 정식 기사나 다름 없었다.
잭슨이 병사의 수준을 뛰어넘는 준 기사급이라고는 하나, 정식 기사에 비하면 뒤쳐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해볼 만한 승부는 맞았고.
또 대련을 지켜본 바, 잭슨은 정말 아쉽게 졌다.
두끗 내지는 한끗 차이였다.
아쉽기는 했지만 잭슨이 잘 싸워준 것에는 변함 없었다.
“이게 무슨···?”
“저게 일개 병사의 수준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대련을 지켜본 로열 나이츠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병사가 수습 기사를 상대로 그런 접전을 펼쳤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론 보고 겪은 것이 있으니 루벤의 수준을 어느 정도 인정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개 병사가 로열 나이츠의 수습 기사를 상대로 접전을 펼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양측의 승부가 갈리며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지금.
-다음 경기 바로 준비해!
곧바로 2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경기가 병사와 수습 기사와의 대련이었다면.
2경기는 다름 아닌 기사와 기사 간의 대련.
로열 나이츠 쪽에서는 제이든이라는 기사가 출전했다.
듣자하니 로열 나이츠 내에서도 유망주로서 차기 단장급이라 불리는 이였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루벤의 기사.
“두라스! 준비되었지?”
다름 아닌 두라스가 출전했다.
말단 병사부터 시작해 루벤의 기사까지 성장한 두라스.
“맡겨만 주십시오! 영주님! 하얀 늑대든, 로열 나이츠든 전부 부숴버리겠슴다!”
두라스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가슴을 탕탕, 두들겨 보였다.
그에 따라 단단한 칠흑의 갑옷이 둔탁한 소리를 자아냈다.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루벤의 기사 수준은 로열 나이츠에 비하면 부족하다.
심지어 유망주에 차기 단장급이라 불리는 기사라면 아직은 부족했다.
하지만 두라스에겐 시안이 덕지덕지 바른 현질이 있었다.
S등급의 갑옷과 검.
그리고 어마어마한 성장 버프들.
약간 뒤쳐지는 실력이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가라, 두라스! 가서 승리를 쟁취해와라!”
“옙!”
두라스는 자신감 넘치게 대련장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대련장 위로 검은 기사와 황금의 기사가 대치했다.
칠흑의 갑옷을 입은 두라스.
금빛 갑옷을 입은 제이든.
대련장에서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터져나오던 환호성도 사그라드는 팽팽한 긴장감.
-시작해!
그 사이로 레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파박!
팍!
그와 동시에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카앙─!
그리고 맞부딪히는 검과 검.
“와!!”
“오오!!”
주변으로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확실히 1경기와는 그 수준이 남달랐으니까.
오러와 오러와의 격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중상을 입을 일격들이 오고갔다.
캉! 카캉─!
꽈꽝!
두라스와 제이든은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싸웠다.
그 치열한 격돌에 시안을 비롯한 로열 나이츠들.
그리고 영지민들은 손에 땀을 쥐며 그 경기를 지켜봤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가 판 가름 났다.
그 결과는···.
-로열 나이츠 승!
또 다시 루벤의 패배였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함성.
엘레나는 멍하니 주변의 풍경을 바라봤다.
각 진영의 자존심이 걸린 대련의 장이자 축제의 장.
대련장 내에는 축제와도 같은 뜨거운 열기가 달아올라있었다.
물론 엘레나가 축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엘레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황녀의 신분은 수많은 축제와 행사에 초대되었으니까.
지난 날, 건국일 행사도 그렇고.
얼마 전, 공로 행사도 그렇고.
특히나 귀족들 간의 사교회 혹은 무도회.
엘레나는 그러한 곳에 무수히 많이 나가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이곳보다 더 화려하고, 더 품격이 있었다.
축제라는 개념만 본다면 루벤의 축제는 사실상 축제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냥 난잡하게 모여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대체 왜일까.
“두라스 이 새끼야! 그걸 지면 어떡하냐!!”
“에라이, 자신감 넘치게 말할 때부터 알아봤다!”
엘레나는 지금 이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루벤에서 벌이는 축제가 진정한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들의 연회나 무도회는 화려하고 품격이 있었다.
그곳에도 웃음과 열기가 함께 했다.
하지만 진실되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서로의 속내를 감추는 공간.
그들은 웃고 있되, 웃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 있으면 왜인지 답답한 기분이 드는 축제였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이곳, 루벤에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두라스 녀석. 로열 나이츠를 상대로 대단한데?”
“그러게. 난 솔직히 쪽도 못 쓰고 당할 줄 알았더니.”
“심지어 상대 기사분이 로열 나이츠에서도 유망주라면서?”
순수하게 대련의 장을, 축제의 장을 즐기고 있었다.
“아빠! 나도 두라스 기사님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거야?”
“그럼! 우리 아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나는! 나는 아빠?”
이곳엔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존재했다.
가면을 쓴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괜시리 웃음이 지어지는 따뜻한 풍경.
엘레나에게 있어 이런 축제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어쩐지··· 시안이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해오는 게 이상하다 싶었더라니.”
그 순간 옆에서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콘라드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라버니?”
“이 내기 대련 말이다. 시안이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해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싶었다만.”
콘라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그런 콘라드의 시야로 비친 것은 시끌벅적한 축제의 풍경.
그건 엘레나가 방금 전까지 바라보던 풍경과 같은 모습이었다.
콘라드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기 대련도 내기 대련이다만, 이런 축제의 장을 만들 의도도 있었던 것 같구나. 그로써 루벤에 활기를 되찾아 주고자 말이다.”
“그 말씀은···?”
엘레나의 물음에 콘라드가 엘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과의 격돌 말이다. 결과적으로야 잘 끝났다만··· 너도 보았다시피, 루벤의 백성들이 그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느냐.”
엘레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콘라드의 말마따나 루벤의 백성들은 불안해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루벤과 시안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덕분인지 패닉까지 가는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영지민들의 얼굴에는 작은 두려움이 녹아들어있었다.
“아마 그래서 내게 그런 제안했던 것 같구나.”
“아···.”
엘레나는 그때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시안이 내기 대련을 제안한 이유.
그것엔 로열 나이츠와의 대련을 통해 루벤의 병사들이 갖는 강함을 보이고.
이렇게 축제를 열어 감도는 두려움을 환기하고자 함이었을 터였다.
처음엔 단순히 로열 나이츠들을 연습 도구로 삼으려는 줄 알았건만.
참으로···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엘레나는 슬쩍, 콘라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숨겨진 의도.
그건 어떻게 보면 콘라드를, 로열 나이츠를 말없이 이용한 셈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콘라드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신가요?”
“하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만 글쎄···.”
콘라드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면 저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이어진 콘라드의 말에 엘레나는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했으니까.
이번 내기 대련의 의도도.
지금 이 축제를 만든 의도도.
시안, 본인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제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영지민들을 위해서였다.
비단 이번의 일뿐만이 아니었다.
그간 엘레나가 보아온 시안은 항상 그러했다.
시안이 이득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안 본인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모욕 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로써 영지민들이, 다른 이들이 도움받을 수 있다면 시안은 거리낌 없었다.
그 선택이 어리석고 또 멍청해보일 때도 있었다.
또 어떨 때는 왜 저럴까 싶을 때도 있었다.
솔직히 바보··· 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 왜일까.
그게 썩 싫지가 않았다.
묘하게 사람을 이끌리게 한다.
알 수 없는 기세에, 어떤 기대감에.
엘레나는 멍하니 축제의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엘레나의 눈에 들어온 한 금발의 사내.
시안은 방금 전에 출전한 두라스라는 기사를 다독이고 있었다.
#
‘조졌다···!!’
시안은 조졌다는 생각을 도무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괘, 괜찮아. 두라스. 자, 잘했어···.”
말은 두라스를 다독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한 생각만 떠오르고 있었다.
‘진짜 조졌다···!!’
조졌다.
그것도 거하게 조져버렸다!
시안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려왔다.
두라스의 어깨를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딱 2번만 이기면 되었다.
딱 2번만 이기면 나머지는 켄드릭이 해주었을 터였다.
그로써 로열 나이츠를 연습 도와주는 기계.
그러니까, 연도기··· 아니, 연습 도구.
아니, 연습 기계.
아니, 그러니까···
아무튼 그걸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2번을 이기는 커녕 2번 모두 져버렸다!
‘조, 조졌다···!’
실로 조져버린 상황.
하지만 완전히 조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직 기회는 있었다.
남은 2번의 기회. 그 모두를 이긴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1경기, 2경기는 패했지만 3경기를 이기면 되었다.
그리고 1경기는 병사와 수습 기사의 대련이었고.
2경기가 기사와 기사 간의 대련이었다면.
3경기는 다름 아닌 각 진영의 간부급의 인재.
로열 나이츠는 제 3기사단의 부단장, 게인이라는 기사가 출전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루벤의 기사.
“루카스!! 너만 믿는다!”
다름 아닌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였다.
아멜리아를 지켜온 기사, 루카스.
비록 현재는 경비대장을 역임하고 있었지만 루카스는 본디 뛰어난 기사였다.
충분히 루벤의 기사로 발탁될 실력은 충분했지만, 시안의 부탁에 루벤의 병사들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날, S등급의 오러 연공법으로 엑스퍼트 중급에 오른 루카스.
이후에도 켄드릭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해온 루카스였다.
그리고 그런 꾸준한 수련 덕분이었을까.
루카스는 어느덧 엑스퍼트 상급을 넘어 최상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로열 나이츠의 부단장이라도 루카스는 쉽게 볼 존재가 아니었다.
이건 진짜로 해볼 만한 승부였다.
‘이번에도 지면 그대로 끝이다!’
아니,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대장님! 힘내십쇼!”
“루벤의 저력을 보여주십시오!!”
수많은 응원들이 루카스를 향해 쏟아졌다.
루카스는 그 응원들을 한몸에 받으며 천천히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로열 나이츠의 부단장, 게인 또한 천천히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주하는 두 사람.
“루벤의 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루카스라고 합니다.”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의 부단장, 게인입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천천히 서로 간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와 함께 당겨지는 팽팽한 긴장감.
앞선 두라스의 경기를 말할 것이 아니었다.
경지에 닿은 두 기사의 기세.
-시작···.
그리고 레아의 시작하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두 기사의 신형이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련장 중앙.
카앙─!
둔탁한 굉음과 함께 서로의 검이 충돌했다.
카가가각─!
맞닿은 검에서 진득한 불꽃이 튀었다.
첫 격돌은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서로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함이었을까.
루카스가 검을 고쳐잡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에 따라 로열 나이츠 부단장, 게인 또한 검을 갈무리하며 걸음을 뒤로 미루었다.
이윽고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눈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보다 아래가 아니다.
파박! 팍!
루카스와 게인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와 동시에 꽈꽝! 루카스와 게인의 검이 폭발했다.
내지르며 쇄도하는 검 끝은 날카로웠으나, 마주치는 폭발은 절삭의 위력이 아니었다.
루카스가 기세를 끌어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캉─! 카캉─!
루카스의 검에 맞닿을 때마다 게인의 검이 조금씩 흔들렸다.
힘의 차이가 아니었다.
검과 검이 맞닿을 때 터나오는 충격.
그 충격을 흘리는 루카스의 타이밍이 너무도 완벽했다.
흔들린 게인의 검이 일순간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에 루카스의 자세는 낮아져있다.
번뜩이는 루카스의 눈빛.
루카스의 검이 다시 한 번 게인을 향해 쏘아졌다.
그것은 한 마리의 사자가 먹잇감을 탐하는 것만 같았다.
“······”
“······”
그런 루카스의 일격에 장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로열 나이츠들은 물론 루벤의 영지민들 또한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았다.
“제발···! 제발···!!”
시안만이 손에 땀을 쥐며 루카스를 응원할 뿐이었다.
숨막히는 접전.
탄성조차 새어나오지 않는 격돌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판가름 난 결과는···.
-루카스 승!
루벤의 첫 승리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함성이 장내를 뒤덮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카스와 게인이 보인 대련.
그것은 충분히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지를, 그럴 만한 대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함성은 승리한 루카스는 물론.
패배한 게인에게도 보내오는 함성이었다.
“좋았어!!!”
시안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5판 3선승제의 내기 대련.
앞선 2번의 패배에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대련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루카스였던 것일까.
“잘했다 루카스! 정말 잘했어!”
이로써 남은 승리는 2번.
아니, 사실상 1번이라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4경기.
4경기에는 켄드릭이 출전했으니까.
켄드릭의 상대는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의 단장, 필리프였다.
마스터 중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였지만··· 상관 없었다.
켄드릭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켄드릭 승!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
켄드릭의 승리와 함께 2:2로 똑같은 스코어를 기록했다.
그리고 내기 대련의 승부는 5판 3선승제.
하여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대망의 5경기.
로열 나이츠 측에서는 예일이 출전했다.
로열 나이츠 제 2기사단의 단장, 예일.
황태자의 직속 호위 기사이자 마스터 중급에 달하는 실력자.
그리고 그런 예일에 맞서는 루벤 측 기사는···.
“영주님! 화이팅입니다!!”
“꼭 이기십시오 영주님!”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예일 또한 반대편의 계단을 통해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솔직히 말하면 이 대련은 말이 안 되었다.
서로의 수준에 맞는 대표들이 겨루는 내기 대련.
그렇기에 시안은 예일과 맞붙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시안이 성장을 했다고는 하나 마스터급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마스터 중급에 달하는 예일과 매치가 성사되서는 안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전이 성사된 건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켄드릭도 출전하면 안 되었으니까.
마스터 상급의 켄드릭.
로열 나이츠 단장이라고는 하나 그 수준 차이는 명백했다.
그렇기에 서로 간 한 번씩, 승부를 양보한 셈이었다.
‘이래서 2번만 이기라고 한 건데···.’
또 그렇기에 시안이 앞선 2번의 승부에 집착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5경기까지 와버렸고.
시안의 승패에 따라 내기 대련의 승부가 갈리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승패는 정해진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시안이 예일을 이길 수 있을리는 없었으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준비됐어?
레아의 말에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일 또한 마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마주하는 시선.
시안은 검을 뽑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마스터 중급의 예일.
시안은 아직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켄드릭에는 아직 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예일은 어떠할까.
예일은 차분히 검을 들어 가볍게 자세를 취했다.
단순히 자세만 취했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피어오르는 긴장감.
서로가 검을 쥔 채 대치하는 이 순간, 시안은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지해버린 시간 속, 시안의 의식이 쭈욱, 늘어졌다.
가슴 속 심장 소리가 쿵쿵거리며 귓가에 울려왔다.
시야가 좁아지며,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졌다.
다만, 예일의 모습만은 선명해졌다.
-그럼 시작해!
늘어진 의식 속으로 레아의 외침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시안과 예일.
두 사람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기세가 충돌하며 대치가 이어졌다.
그리고 영원할 것처럼 이어지는 대치 속.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끔찍한 마기가 응축되었다.
주변으로 피어나는 칠흑의 아우라가 대련장을 잠식해갔다.
예일은 무려 마스터 중급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예일과의 대련에서 스스로의 경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련에서 이긴다면 언제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대련의 승부.
‘전력으로 간다.’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어둠이 쉼없이 피어올랐다.
그런 시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일 또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시안이 펼치는 검술.
피부를 찌르는 위압감은, 저 검술의 위력이 어떠한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을 카이와의 격돌에서 예일은 한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실로 경이로운 위력의 검술.
그러나 대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또한 승부는 어디까지나 승부였다.
예일은 이 대련에 있어 모든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예일은 곧 다가올 시안의 일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아아─!!
느껴지는 힘이··· 예상과는 달랐다.
기억 속의 힘과는 전혀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예상을 초월해있었다.
이건··· 이건···.
막아서는 안된다.
아니, 막을 수가 없다.
감히 맞닿을 수 없는 아득한 너머의 힘.
“······!!”
예일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리고 찰나.
거대한 참격이, 예일의 몸을 스쳐지나간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第 一式).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