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74화 (174/322)

§ 174화 - 성장(1)

연무장 내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은 점점 더 거세어져갔다.

화르르르륵!

시안의 전신으로 타오르는 열기 또한 그 기운을 더해갔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으며 정신을 붙잡았다.

끊임없이 마혼제법(魔魂制法)의 구결을 되뇌이며 마력을 갈무리 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연무장에 휘몰아치던 마력의 폭풍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전신으로 타오르는 열기 또한 점점 식어갔다.

시안은 가만히 눈을 감아 전신을 관조했다.

그러자 전신으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기운.

그리고.

띠링!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89.72%(+30.1034%)]

무려 30%가 넘게 올라간 마혼제법(魔魂制法)의 진행률.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魔)를 다루는 근원적인 방법인 마혼제법(魔魂制法).

카일의 오러 연공법인 마혼제법은 정말이지 그 진행률이 더디게 올랐었다.

더딘 정도가 아니라 더럽게 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접하고 배운 카일의 유산이었음에도 아직도 수료하지 못했으니 말 다한 수준.

그런 마혼제법의 진행률이 단 한 순간에 무려 30%가 올라가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진행률은 89%.

100%까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격이었다.

막말로 수련을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남아있는 50만 마일리지.

남아있는 마일리지로 엘릭서를 하나 더 구매해 먹으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첫 번째.

-불로초 (500,000 M)

-엘릭서 (매진)

-황금사과 (600,000 M)

-천도(天桃) (620,000 M)

.

.

.

『특수품목』 항목에 있는 것은 한 번만 구매가 가능했다.

똑같은 상품을 다시 구매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엘릭서와 비슷한 효능을 발휘하는 품목들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상품 별로 어떤 성능을 지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온전히··· 흡수를 하지 못했어.”

엘릭서가 가진 힘을 온전히 흡수한 상태가 아니었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

시안은 이 기운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카일의 마혼제법 덕분에 가두어 놓을 수나마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모든 기운들을 질질, 흘려버렸을 터였다.

그리고 직접 엘릭서를 복용해본 바, 솔직히 말하면···.

엘릭서는 역시나 전설과는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전설 속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다.

“전설이 내려치기를 해?”

그러니까 다른 쪽으로 거짓말이었다!

카일의 마혼제법이 아니었으면 기운을 질질 흘리기는 개뿔이 무슨.

농담이 아니라 그대로 죽을 뻔했다!

만일 시안이 배운 것이 카일의 마혼제법이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평범한 오러 연공법이었다면.

아니, 샤를롯의 오러 연공법이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터였다.

엘릭서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주의 사항도 안 써놓고 물건을 팔아?”

그야말로 불친절의 끝판왕이었다.

“후우···.”

뭐, 어쨌든.

또 다른 영약을 구매하는 것은 지금으로서 무리가 있었다.

구매하더라도 남아있는 엘릭서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한 다음에나 해야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마혼제법의 진행률이 100%에 달해있을 터.

“그러면 영약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으려나.”

그때는 영약을 마구잡이로 복용해도 문제가 없을 터였다.

물론 그만한 현질을 해야하는 건 변함 없었지만.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자니.

-이, 이게 대체···.

옆으로 켄드릭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바라본 그곳엔 켄드릭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데스 나이트인 켄드릭에게 표정이란 없었다.

하지만 투구 속, 일렁거리는 검푸른 안광은 경악이라는 분명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켄드릭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다.

엘릭서의 섭취로 확연히 달라진 힘.

비록 그 힘을 온전히 흡수한 것은 아니다만 분명한 성장은 있었다.

그럼 그 성장은 어느 정도일까.

“켄드릭. 괜찮으면 다시 한 수 부탁해도될까.”

-물론입니다.

켄드릭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옆으로 손을 뻗어보였다.

사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켄드릭의 손아귀로 어둠이 뭉쳐졌다.

이윽고 켄드릭의 손에 칠흑의 검이 쥐여져있었다.

시안은 늘어뜨린 검을 바로 잡았다.

잠깐의 대치.

파박!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켄드릭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카─앙!

굉음이 터져나오며 공간이 크게 진동했다.

휘두른 검이 참격을 밀어내며 주변으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카앙─!!

카앙─!! 캉!

검과 검이 얽혀들어가며 진득한 불똥이 튀었다.

검의 충돌과 함께 사방으로 짙은 마기를 흩어져나갔다.

검 위로 찍어누르는 듯한 끔찍한 압박감.

당장이라도 팔이 부서질 것만 같은 충격이 가해온다.

엘릭서를 복용했음에도 이 힘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켄드릭이 서있는 경지는 여전히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검을 잡은 손의 감각이,

콰직!

꽤나 낯설었다.

-······!!

일순간 켄드릭의 검푸른 안광이 크게 일렁거렸다.

그 사이로 보인 감정은 당황.

시안의 검이 흘러간다.

마스터 상급의 데스 나이트, 켄드릭.

켄드릭은 그 경지를, 스스로의 한계라 칭했다.

천재적인 재능이 갖는 한계.

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켄드릭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경지마저 현재 시안에게는 까마득했다.

그 경지까지 닿기에 허물어야만 하는 벽이 너무도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앞을 가로막았던 높은 벽.

그 벽을 허무는 것조차 너무도 버거웠다.

그리고 엘릭서의 힘을 흡수한 지금 이 순간에도 켄드릭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카일의 경지는 여전히 까마득하다.

할 수 없는 건, 따라갈 수 없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조급해하지 말라던 켄드릭의 조언 때문일까.

글쎄···.

일순간 시야 앞으로 카일의 환영이 스쳐지나간다.

환영 속, 카일의 검은 경이로웠다.

그렇기에 시안은 저 카일의 검을 따라할 수가 없었다.

따라하려는 시도조차 굳은 마음을 먹어야만 했다.

방금 전의 시안은 그러했고.

지금의 시안 또한 그러했다.

분명 그러할진대.

카카캉─!

검을 잡은 감각이, 문득 낯설게만 느껴진다.

검을 움켜진 손아귀에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다.

낯설었다.

지금 내딛는 발걸음이.

휘둘러지는 검.

어색했다.

지금 이 감각이.

검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다.

움직이는 몸은, 짊어진 어깨의 무게가 짓눌러왔다.

그 모든 무게를 이겨내며 시안은 검을 휘둘렀다.

카일은 까마득한 너머의 경지에 존재했다.

언젠가 그 경지에 닿을 날이 오기는 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까마득하다.

하루하루 노력하는 지금 이 순간조차 의심이 든다.

그런데도 해야한다.

해야만 한다.

아니.

카앙─!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함께 하고 싶었다.

사람들과, 루벤과.

그들의 웃음을, 꿈을 옆에서 함께 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경지에서.

그들의 웃음과 꿈을 지켜주고 싶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천하의 둔재가 최강을 꿈꾼다니.

오만과 객기.

그 어떤 말을 덧붙이며 비웃어도 할 말이 없었다.

이 노력조차 어쩌면 한낱 발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리석은 행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꽈아앙─!

오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쇄도하는 검.

마음이 하나의 바람이 되어 흘러간다.

확실한 감각이, 분명한 감각이.

손 안에서 느껴진다.

그 감각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조금이라는 말로도 미약하지만.

카일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지만.

‘극(極)에 달하면, 결국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중급 진행률 92.76%(+47.6%)]

무언가, 작게 나마

보인 것 같았다.

#

휘몰아치는 폭풍.

시야를 완전히 뒤덮는 마(魔)의 폭풍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렸다.

이윽고 폭풍은 사라졌고, 연무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있었다.

어디하나 멀쩡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주, 주군···! 대체 어떻게···!!

그 사이로 경악 어린 켄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켄드릭의 얼굴에는 검푸른 안광이 크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켄드릭은 천천히 연무장의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안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방금은··· 전대 주군과 같았··· 습니다.

“설마.”

시안은 말이 되냐는 듯 말했다.

현재 카일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금도 시안의 목 위로 겨누어진 켄드릭의 검을 보라.

결국 시안은 켄드릭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런데 카일과 같았다니.

정말이지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이건··· 이건···!

하지만 켄드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켄드릭의 모습에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그리고는 스마트 폰의 알림창을 확인했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중급 진행률 92.76%(+47.6%)]

무려 47.6%가 오른 마혼수라검의 중급 진행률.

카일과 같았다는 켄드릭의 말은 여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무언가 보였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끝없이 걸어야만 하는 무(武)의 길.

앞으로 시안이 풀어나가야만 하는 숙제였으니까.

시안은 품 속으로 스마트 폰을 집어넣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궁금증 하나.

‘지금 내 경지는 어느 정도이지.’

엘릭서의 힘을 섭취하고 마혼제법은 물론 마혼수라검의 진행률이 급격하게 올랐다.

물론 마스터 상급의 켄드릭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 낮지 않은 수준임은 분명해보였다.

그러나 비교 대상군이 적당한 이가 없으니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그때.

“이, 이, 이게 무슨···!!”

연무장 한쪽으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스와 더불어 한 사내가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다름 아닌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의 단장, 필리프.

황태자와 황녀의 호위로서 루벤에 온 기사였다.

하지만 켄드릭과의 대련에 집중하고 있었던 탓일까.

시안은 다가오는 기색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안은 들고 있던 검을 갈무리하고는 필리프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안의 물음에 필리프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입을 쩌억, 벌린 표정.

부릅, 뜬 시선.

그와 함께 얼이 빠진 얼굴로 시안과 연무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필리프의 모습에 옆에 있던 한스가 대신해 답을 해왔다.

“그것이··· 로열 나이츠분들과 루벤의 기사들 간의 친선 대련을 하고 싶으시다 합니다.”

“친선 대련?”

시안의 물음에 한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필리프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며 시안에게 말했다.

“백작 각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저희 로열 나이츠와 루벤의 기사분들의 친선 대련을 주최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질 않은 필리프의 얼굴.

시안을 바라보는 필리프의 두 눈은 부릅, 떠져 있었다.

“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친선 대련이라면야··· 굳이 허락하지 못할 건 없었다.

실전은 언제나 최고의 훈련.

그 대상이 로열 나이츠라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얀 늑대 기사단과 더불어 대륙 제 1의 기사단으로 꼽히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루벤의 병사들은 대인전에 관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루벤 전역에서 매일매일 들끓는 마수들.

매일같이 마수들을 때려잡는 터라 몬스터에 대해서라면 대륙 최고라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그러니까, 대인전에 관련한 경험은 상당히 적었다.

적다 못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것은 북부에서 야만족들을 상대했던 루벤의 기사단들 정도.

하지만 그것도 부족했다.

앞으로 펼쳐질 엘란두르와의 영지전.

하얀 늑대 기사단들과 대적하려면 마수가 아닌 대인전의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친선 대련은 루벤의 병사들에게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괜찮은데?’

솔직히 괜찮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건 루벤의 기사들 한정이었다.

그러니까 로열 나이츠들에게 딱히 득이 되는 것은 없었다.

루벤의 기사들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개개인의 수준을 따지면 아직 로열 나이츠들에는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기 데스 나이트분과도 대련을 해보고 싶습니다.”

“켄드릭도 말입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필리프의 모습.

시안은 그때서야 이 친선 대련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보다 높은 경지에 닿은 기사와의 대련.

그것은 수많은 기사들이 바라마지 않는 배움이었으니까.

특히나 마스터 상급이라면 어디가서 얻지도 못하는 기회였다.

현재 공식적인 마스터 상급은 딱 1명.

대륙 제 1의 검이라 알려진 듀라크 엘란두르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필리프를 비롯한 로열 나이츠들에겐 세상에 다시 없을 기회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루벤은 로열 나이츠에게.

로열 나이츠는 켄드릭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는 기회.

시안은 시선을 돌려 켄드릭을 바라봤다.

켄드릭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주군께서 허락하신다면야··· 저는 상관 없습니다. 루벤의 기사들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테니 말입니다.

역시나 켄드릭은 시안의 의중을 금방 파악하고 있었다.

시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필리프를 바라봤다.

여러모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친선 대련.

게다가 시안에게도 나쁘지 않은 대련이었다.

‘지금의 내 경지는 어느 정도일까.’

켄드릭과 비교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로열 나이츠와 비교한다면 어떠할까.

전원이 엑스퍼트의 실력자로 이루어진 로열 나이츠.

그들과 대련해본다면.

“좋습니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수치를 알 수 있을테니까.

#

루벤에 위치한 훈련소.

알베르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눈앞의 존재를 바라봤다.

필리프 산하,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 소속의 기사, 알베르.

알베르는 엑스퍼트 중급에 이르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런 알베르 눈앞에 있는 한 금발의 사내.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 소속, 알베르입니다. 백작 각하와 대련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루벤의 영주, 시안.

“아, 음··· 잘 부탁해.”

알베르의 인사에 시안이 어정쩡하게 답을 해보였다.

아무래도 백작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일까.

하대함에 있어 어색한 면모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백작으로서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

알베르는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고 시안 또한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두 분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그리고 들려오는 한 병사의 말.

알베르는 시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천하의 둔재, 후작가의 망나니.

물론 그 소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북부의 사건도 있었거니와.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카이 엘란두르.

시안이 카이와 대적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으니까.

그렇기에 알베르는 시안을 깔보거나 낮잡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시안에게 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안이 예전과 달라졌다고는 하나 그 기간이 너무 짧아도 너무 짧았다.

사람이 변할 수는 있으나 단번에 바뀔 수는 없었다.

하물며 천하의 둔재라 불리던 이였다.

그리고 엑스퍼트라는 경지는 둔재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만 끝내 닿을 수 있는 경지.

한때 오러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시안이 그 짧은 기간에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물론 카이와 대적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웠다.

하지만 조금만 진실을 파고들면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시안은 어쨌거나 카이의 동생.

카이가 동생을 봐주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을 터였다.

게다가 시안은 결국 카이를 넘어설 수 없었다.

황태자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끝내 카이의 승리로 끝났을 승부였다.

여러모로 알베르는 시안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 분 모두 준비되신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진 병사의 말에 알베르는 검을 고쳐잡았다.

이런 대련에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기사와의 대련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으나.

자신보다 낮은 수준의 대련은 딱히 배울 것이 없었으니까.

‘빠르게 끝낸다.’

알베르는 곧장 기세를 터트렸다.

파박!

알베르는 곧장 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

알베르는 달려들던 움직임을 멈춰섰다.

시안의 모습이 알베르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

그 말은 즉.

‘움직임을··· 놓쳤다고?’

아니, 정확히는 놓친 게 아니라 보이지가 않았다.

알베르는 시안이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알베르의 시야에는 시안이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 무슨···?”

알베르는 황급히 고개를 휙휙, 돌려 시안의 모습을 찾았다.

그 순간.

쐐애애액!

오른쪽에서 쇄도해오는 시안의 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험!’

알베르는 황급히 검을 들어 쇄도하는 검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반격을 하려던 찰나.

콰──앙!

시안의 검이 알베르의 검을 때리며 끔찍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알베르의 전신을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충격.

“쿨럭!!”

알베르의 입가로 끔찍한 격통이 터져나왔다.

‘무, 무슨 힘이···!’

마치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아찔한 격통 속에서 알베르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바라본 시야에는 짙은 어둠의 잔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방으로 잠식된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시안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알베르의 기감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가 없었다.

휘─익!

일순간 옆구리를 베어내듯, 시안의 검이 쇄도해왔다.

알베르는 가까스로 검을 들어 쇄도하는 검을 막았다.

콰──앙!

맞닿은 검에서 끔찍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 충격에 알베르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커헉!”

그와 동시에 전신을 강타하는 충격.

잠깐이지만, 알베르의 정신이 끊어진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알베르는 이를 까득, 깨물며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안의 움직임을 쫓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일격 하나하나의 위력이 정신 나간 수준이었다.

가까스로 검으로 막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막은 게 막는 걸까?

검째로 후드려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베르는 그 이상의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일순간 어마어마한 기세가 사방으로 터져나왔다.

드리운 어둠이 응축되고 폭발하며, 검은 빛을 발했다.

주변으로 피어나는 칠흑의 아우라.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참격.

한줄기 빛살처럼 쇄도해오는 검날에 알베르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반항과 저항.

그런 객기어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죽는다!’

그 생각과 동시에 팟!

쇄도하는 검날이 알베르의 눈앞에서 뚝, 하고 멈춰섰다.

후우우우우우우웅!!!

이윽고 엄청난 풍압이 폭풍우처럼 알베르의 얼굴을 몰아치듯 휩쓸어갔다.

털썩.

알베르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뒤쪽.

그곳엔 기나긴 검날의 잔상이 흉터처럼 새겨져있었다.

쿠르르르릉···!

새겨진 흉터를 기점으로 훈련소의 시설들이 와르르르, 무너져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

“······”

“······”

그 말도 안되는 광경에 훈련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움직임을 뚝, 멈춰섰다.

대련을 하던 이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는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내에 내려앉는 기묘한 정적.

“에···?”

그곳엔 오직.

“나 수라천살 안 썼는데···?”

어벙한 시안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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