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58화 (158/322)

§ 158화 - 시안 백작(1)

귀족이란 사회적 특권을 인정받는 사람으로서 국가를 통치하는 존귀한 자를 의미했다.

그렇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귀족이란 황족(皇族), 왕족(王族), 공족(公族)을 의미했다.

황족과 왕족 그리고 그 일가 친척들.

군주의 일족들을 귀족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한 군주의 일족이 나라를 전부 통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자신들이 가진 바 권리를 능력있는 측근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

그것이 오늘날 샤를롯 제국을 비롯한 대륙에 만연한 통치 체제, 귀족정(Aristocracy)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샤를롯 제국을 비롯한 대륙의 귀족(貴族)이라 함은 다름 아닌 오등작(五等爵)의 지위를 가진 자들을 지칭했다.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순으로 나뉘어진 제후의 작위.

국가마다 또 지역마다 그 개념은 달리했지만.

주로 공작은 개국 공신 혹은 군주의 일족들에게 주어지는 작위였다.

공왕(公王)이라 하여 한 국가 내, 공국 자치령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군주 바로 아래의 무소불위 작위.

후작은 개국 공신에 준하는 공을 세운 자 혹은 국가의 통치 세력을 의미했다.

공작의 특수함을 생각하면 후작은 사실상 닿을 수 있는 최고 작위라 할 수 있었다.

백작은 한 지역에서의 최고 관리자.

즉, 패업을 이룬 제후를 가리켰다.

자작은 대체적으로 백작의 보좌 직위로서 부백작 혹은 백작령의 총리라고도 불린다.

마지막으로 남작은 자유 영주 혹은 공을 세운 기사들에게 주어지는 작위였다.

물론 제국법상 나뉘어진 기준이 이렇다 뿐.

관련한 모든 것이 정답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오등작의 개념도 편의를 위해 나뉘어놓은 것 뿐.

실상을 따지고 들면 변경백, 준남작과 같은 여러 작위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작 같은 경우도 백작의 보좌관이 아닌 ‘후(侯)자작’ 이라 하여 독립적인 자작 또한 존재했다.

이를 통칭하여 자작이라 칭하는 것일 뿐.

하지만 아무리 형식적인 의미라고는 하나, 실질적인 의미 또한 결국 형식 속에서 파생된 개념이었다.

따라서 제국법에 적힌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귀족의 지위는 주로 가계에 따라 세습이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공적에 의해 새로 귀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평민이 귀족이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어 자작의 경우, 백작이 임의적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자작은 제국법상 백작의 보좌 직위였으니까.

물론 정식으로 자작 작위를 받는 것은 당연 황가나 왕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또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

사실상 백작이 요청하면 승인하는 격이었다.

어쨌거나 세습으로 귀족의 지위가 이어지나.

새로이 귀족의 지위를 받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작위에 따른 권한은 제국법을 따를 것이며···.”

백작은 아니었다.

백작부터는 아니었다.

한 지역에서의 최고 관리자.

패업을 이룬 제후.

자신 밑으로 새로이 귀족을 임명할 수 있는 고위 귀족이자.

오등작에서 진정한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존재.

세습으로 그 지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고귀한 혈통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백작의 작위를 시안에게 봉한다는 것.

그건 여러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으나 가장 대표적으로는 한 가지.

시안은 황제의 허락 아래, 스스로의 세력을 일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셈이었다.

“또한 백작령의 관할령으로 루벤의 영지를 하사한다.”

다시 들려온 서기관의 말.

“······!!”

“······!!”

“······!!”

대전 전체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수 천명을 가득 메운 거대한 대전.

이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충격을 넘어선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 말도···.”

“어찌 이런···!”

가시지 않는 충격에 사람들은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시안의 공로에 대한 보상.

그 보상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시안의 공로가 엄청나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 보상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

보상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아니, 이 정도면 과하다 못해 미쳐버린 수준이었다.

끽해야 관할령 하사와 세금 감면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어찌 그것을 ‘끽’이라 표현할 수 있겠냐만은.

지금 주어진 보상에 비하면 ‘끽’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엘란두르 가(家)에는 15개의 마을과 황실 관할 2개의 영지를 하사한다. 동시에 엘란두르에서 거둬들이는 향후 6개월 간의 세금을 면한다.”

거기서 더 이어진 서기관의 말.

“······!!”

“······!!”

“······!!”

사람들은 가시지 않는 충격에 눈을 부릅, 떠보였다.

시안을 백작위에 봉한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거늘.

엘란두르에게 추가로 보상을 준다?

심지어 그 보상의 수준 또한 충격적이었다.

“이는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확언하는 바이다.”

길고 길었던 서기관의 말이 드디어 끝이 났다.

그리고 대전 전체로 경악 어린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

콘라드만이 묵직한 정적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윽고 콘라드는 시안 앞에 서 보였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제국을 부탁하네. 시안 백작.”

그리고 들려온 콘라드의 말.

그와 동시에.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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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행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황궁은 그야말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황제가 직접 주최한 공로 치하의 행사.

행사는 황제의 배포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지금 딱 이 행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액면가로는 황가의 지출은 상당했다.

그러나 조금만 돌아서 생각하면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일단 보상을 받은 귀족들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깊어졌다.

또한 보상을 받지 못한 귀족들은 앞으로 제국의 충성심을 더 다지게 되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제국을 위한다면.

그에 따른 확실한 보상이 주어진다.

현재 행사를 지켜본 귀족들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정치가들은 이번 행사의 의도를 이렇게 평했다.

아마 마지막만 아니었다면.

마지막에 들려온 그 말만 아니었다면.

역사 또한 그렇게 평했을 터였다.

“백작이라니요!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어찌 이런 일이···!”

시안에게 봉해진 백작의 작위.

물론 백작의 작위가 내려진 것 자체는 이상할 것 없었다.

고위 귀족에 속하며 세습으로 이어지는 백작위라고는 하나.

그에 준하는 공로를 세우면 백작위를 하사할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지난 천 년의 제국 역사를 들춰봐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백작위가 하사된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작위가 하사된 것 자체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엘란두르의 자제에게 백작이라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오.”

“게다가 관할 영지로서 루벤을 하사한다니···.”

“루벤이라면 엘란두르 후작령이 아니오?”

그 대상과 명분이 문제였다.

시안의 공로가 대단하기는 하나 백작위를 받을 정도는 아니였고.

가장 큰 것은 역시나 백작령으로 루벤을 하사했다는 점이었다.

루벤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었다.

무려 엘란두르 후작령에 속한 영지였다.

헌데 그런 루벤을 시안에게 하사했다.

백작위와 함께 백작령의 관할로서 시안에게 쥐어주었다.

그 말은 즉, 시안을 엘란두르에게서 독립시킴과 동시에 엘란두르에게서 루벤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허어···.”

“어찌 이런···.”

아무리 황가라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이는 엘란두르에서 반드시라고 할 만큼 소리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보상 책정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엘란두르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아무리 다른 귀족들의 충성심을 복돋았다고는 하나.

엘란두르와 척을 지는 것만큼의 값어치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설마하니 폐하께서 이런 결정을 내리셨을라고.”

“후작 각하와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이겠지.”

사람들은 이부분은 이렇게 넘어갈 뿐이었다.

이건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남작이나 자작도 아니고 백작이라니.”

“아무리 최고 공로자라 해도 백작위는 과한 것 아니겠소?”

백작의 작위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아무리 최고 공로자라고는 하나 백작위 작위를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논공행상은 언제나 공명정대해야하는 법.

이건 형평성 부분에서 심히 어긋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말이 안되는 보상은 아니지 않소이까.”

모든 이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소. 듣자하니 제때 막지 못했더라면 제국 전체가 위험에 빠졌을 거라 하던데.”

“나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오.”

다름 아닌 앞서 보상을 받은 여러 귀족들.

그들이 앞장 서서 시안을 비호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시안을 정말로 비호할 생각이 아니었다.

시안을 비호할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그들이 시안을 비호하고 나선 이유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트리엘 백작. 설마 지금 영토를 하사받았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어허, 데린 백작. 내 말이 어떻게 그렇게 해석이나 되나.”

자기들도 받은 것이 있으니까.

시안에게 봉해진 백작위.

누가 봐도 과한 보상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한 보상을 받은 것은 비단 시안 뿐만이 아니었다.

만일 시안의 보상이 과하다, 라고 말하며 철회시키고자 한다면 그건 자신들 또한 받은 것을 토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도 공로에 비해 과한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허나,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보상은 이미 받았고, 그것은 제 손에 들어온 것.

“크흠, 제국을 위해 봉사하면 그만큼의 보답을 주는 폐하의 배포인 것이지.”

“생각해보면 시안. 그자의 공로가 그리 간단한 것은 또 아니지 않은가.”

제 손에 들어온 것을 순순히 놓아줄 귀족들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사람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귀족들에게 과하다 싶은 보상을 책정한 것.

그것은 시안에게 백작위를 하사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황가를 대신하여 말을 꺼낼 귀족들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이 행사의 숨겨진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답을 할 황가는 침묵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해서 그렇게 양쪽으로 의견이 나뉘어 갑론을박하고 있을 시점.

정작 엘란두르의 반응은 아직 없었다.

아직 이 소식을 전해받지 못했다 함이 정확했다.

행사는 지금 막 마무리가 되었고.

관련한 소식들은 아직 황궁에 머물고 있었으니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파발은 출발했고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폭풍전야.

그렇게 곧 다가올 난리에 적막만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황궁에 위치한 콘라드의 집무실.

“뭡니까 대체?”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콘라드에게 물었다.

“무얼 말인가?”

그러자 콘라드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아니, 지금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네만. 난 자네의 부탁을 들어준 것밖에 없네.”

시안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콘라드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북부의 일을 핑계로 저를 불러달라고만 했었습니다만?”

“그리고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도 했었지.”

그러면서 콘라드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시안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쩔 수 없었네. 자네가 단순히 엘란두르의 이름만 버린다면 모를까. 루벤까지 엮어 자네의 영지로 하사하려면 백작위 만한 명분이 없었으니.”

그리고 이어진 콘라드의 한 마디.

“사실··· 폐하께서 개입하신 것이 가장 큰 이유였네.”

“폐하께서 말입니까?”

콘라드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백작위는 아무리 나라도 쉽사리 줄 수 없는 작위이네.”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위는 말 그대로 한 지역의 제후를 의미했다.

아무리 황태자라 하더라도 그런 제후의 자리를 손쉽게 줄 수 없었다.

아니, 황태자의 권한으로는 줄 수 없는 작위라고 할 수 있었다.

설령 황태자의 이름으로 주어지더라도 그건 반드시라고 할 만큼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했다.

즉, 시안의 백작위는 콘라드가 아니라 황제가 주었다고 봄이 바람직했다.

그런데 황제가 대체 왜···?

“자네의 뜻을 말씀드렸거든.”

“제 뜻이라면···?”

“엘란두르를 돌아서려는 뜻 말이네.”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나 콘라드가 황제에게 그 사실을 말한 듯 싶었다.

하지만 뭐···.

이제 와 황제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정확히는 다른 누군가가 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었으니까.

시안은 다시는 엘란두르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백작위를 하사받음으로써 거진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폐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음···.”

시안의 물음에 콘라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딱히 순화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러니 곡해하여 듣지 말게나.”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콘라드는 말을 툭, 내뱉었다.

“미친 새끼라고 하셨네.”

“······”

“그리고 정신 나간 놈팽이라고도 하셨지.”

“어···.”

“아, 실성한 놈한테 엘레나를 보내는 것이 맞냐고도 말씀하셨다네.”

시안은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린다는 것.

그것도 거하게 뒤통수를 친다는 것.

그건 정말이지 미친 짓임은 맞았으니까.

제국에서 엘란두르를 적으로 둘 존재가 어디 있을까.

말 그대로 미치고도 정신 나간.

그리고 실성한 짓이나 다름 없었다.

시안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만 막상 직접들으니··· 이게 또 기분이 묘했다.

뭐, 아무튼.

“그럼에도 이 미친 짓··· 아니, 제 독립을 도와주셨다는 겁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게지.”

“뭘··· 말씀이십니까?”

“엘란두르 후작을 견제할 누군가가 말일세.”

“아.”

시안은 그때서야 이 행사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째서 황제가 개입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제국은 2개의 가문이 독보적이었다.

엘란두르와 로르실트.

이 둘은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으며 현재까지는 저울추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그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시안의 존재.

망나니에 불과했던 시안은 현재 새로운 제국의 별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엘란두르에만 무려 2명의 제국의 별이 있는 셈이었다.

지금이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20년.

황제와 현 가주들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돌아왔을 때.

이는 상당한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엘란두르가 로르실트를 누르고 제국의 독보적인 가문이 될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황가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세력이었다.

하물며 그때는 황가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이는 황제로서도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안이 엘란두르를 돌아서겠다고 나선 상황이었다.

그 짓거리가 미치고, 제정신이 아닌.

그러니까 실로 실성한 짓거리임은 맞았다.

그러나 황제로서 나쁠 건 없었다.

시안이 엘란두르와 척을 진다면, 황제는 엘란두르를 견제할 새로운 세력을 얻게 되는 셈이니까.

설령 잘못되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시안이 엘란두르에서 축출되면서 기울어진 저울추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훗날 제국을 지탱하는 2개의 기둥에서 3개의 기둥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걸 감안해도 백작위는 내가 생각해도 과하다 생각되다만.”

그럼에도 백작위는 충격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시안을 엘란두르에서 독립시킨 것은 물론.

엘란두르 후작령 관할의 루벤까지 앗아간 셈이었으니까.

엘란두르가, 듀라크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반드시라고 할 만큼 황가를 향해 말을 꺼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무리 황제라도 엘란두르의 의견을 마냥 묵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이 일을 추진했다.

앞서 다른 귀족들에게 과한 보상들을 책정하면서 명분을 만들었고.

빼앗은 루벤을 대신하여 엘란두르에게 많은 보상을 안겨주었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출혈이 있었을 터.

시안이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황제 또한 그 방패막이가 되어준다는 뜻이었다.

도와줄 건 도와주겠다.

그러니 한 번 날뛰어 봐라.

나몰라라 일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황제의 의지였다.

‘황제는 황제인건가.’

제국의 군주, 황제 발루아가.

시안은 새삼 황제의 배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네. 이제부터는 자네 하기에 달려있으니.”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황제는 거하게 판을 깔아주었다.

그러니 이후는 전적으로 시안의 몫에 달려있었다.

본격적인 엘란두르와의 전면전.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이 모든 것들이 유효한 일이 되었다.

“뭐, 어쨌거나 지금은 자네에겐 좋은 일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시안은 말을 흐리며 침묵에 잠겼다.

뭐, 지금 상황이 갑작스럽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바라마지 않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콘라드의 말마따나 엘란두르로부터 독립하고 루벤을 가져오기 위해선 백작의 작위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백작의 작위만한 명분이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이 처음에 압도적인 명분을 쌓겠다 한 것.

그것이 바로 백작의 작위를 얻기 위함이었다.

세습으로 이루어지는 백작의 작위.

허나, 새로이 봉해지지 않는 작위는 또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부족하다 느꼈을 뿐이었다.

서부는 물론 이번 북부에서 많은 공로를 세운 것은 맞았다.

허나, 백작위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명분과 공로를 쌓고자 시간을 벌려고 했었다.

그마저도 안되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대로 들고 일어날 생각을 했었을 뿐이었다.

백작위는 고소원 불감청했던 일.

바라마지 않고 있었으나 감히 청할 수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백작위를 선뜻 안겨주니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다만, 이렇게 갑자기 진행될 줄은 시안도 몰랐던 것 뿐이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설마하니 내가 말만 했다고 생각하는 겐가?”

“그런 뜻은 또 아닙니다만···.”

또 콘라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줄 줄도 몰랐을 뿐이었다.

“작위식은 조금 미룰 예정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니 말이네. 그보다··· 이제 엘란두르라는 성을 못 쓰는데 생각해둔 성은 있는가?”

“어··· 딱히 생각해둔 것은 없습니다만.”

“그럼 가문을 대표하는 문양은?”

“그것도 딱히···.”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갑자기 백작위를 받게 될 줄 몰랐으니까.

“정식 작위식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생각하게.”

콘라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들으니 시안은 백작이 되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괜시리 이상한 기분.

시안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 콘라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안은 콘라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콘라드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완전 박살이 나있었다.

눈 밑으로 내려 앉은 다크 써클은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고.

태양빛을 닮은 금발은 푸석하다못해 까끌해져있었으며.

피부는 트러블이 일어나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생성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나있는 상태.

아무래도 위의 관련한 모든 일들을 처리하느라 밤잠을 못 이룬 것 같았다.

시안이 백작위를 하사 받은 것에는 분명한 황제의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이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는 확고한 콘라드의 도움이 있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콘라드가 황제를 설득하는 무수한 과정이 있었을 터.

만일 콘라드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결과는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 감사합니다 전하.”

시안은 콘라드에게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감사는 되었네. 자네가 제국에 해준 것도 있고. 또 내가 직접 도와주기로 약속했었으니까.”

“그래도 감사한 건 변함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어진 시안의 감사에 콘라드가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 감사하면 나말고 엘레나한테 좀 잘해주게나. 보기엔 강직해보여도 여린 아이니 말이네. 너무 철벽치면 상처받을 것이야.”

그러면서 콘라드는 약간 질책하는 눈빛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안 그래도 이번 행사가 끝나면 같이 루벤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응? 지금 말인가?”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콘라드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로 행사가 끝난 지금.

조만간인 건 맞았으니까.

“난 처음 듣는 이야기네만?”

“행사 전, 연회장에서 황녀님과 만나 드린 말씀이라 전하께 전달이 안된 듯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는 그 길로 곧장 준비에 나섰고.

콘라드는 행사 준비에 한창 바빴으니까.

“헌데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조금 난감하군요.”

다만, 시안이 예상 밖으로 백작위를 받게 되었다.

그로써 듀라크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되었다.

막말로 미친 척하고 검을 뽑아들 수도 있었다.

물론 설마하니 황녀가 있는데 칼을 들이밀겠냐만은.

‘횡령까지하고 왔으니까.’

8,200만 골드의 횡령.

그 사실까지 알게 된 듀라크라면 혹시···? 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당연히 엘레나의 안전은 걱정이 없었다.

듀라크가 아무리 미쳐도 엘레나를 겁박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엘레나의 말은 무시할 수도 있었다.

엘레나가 뭐라해도 듀라크는 시안을 겁박할 수도 있었다.

횡령죄를 빌미로 명분을 내세우면 딱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듀라크는 가문의 역적을 잡으러 온 것이니까.

해서 지금 엘레나와 루벤에 가는 것은 엘레나가 난감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엘레나의 지위를 이용하고자 함은 맞았으나.

아무리 그래도 엘레나를 곤경에 빠뜨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일을 잠시 미루어야하나 싶었지만.

“잘됐군. 이번 기회에 나도 따라가겠네.”

갑작스레 들려온 콘라드의 말.

“예?”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께서도 오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내가 따라가면 엘란두르 후작도 함부로 행동에 나설 수는 없겠지.”

뭐, 그건 당연한 소리였다.

아무리 듀라크가 막나간다고는 하나.

황녀는 물론 황태자가 있는 곳에 깽판을 칠 수는 없었다.

횡령죄를 명분으로 내세워도 황태자와 황녀가 떠나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황녀라면 모를까 황태자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까.

황제 다음의 존재, 제국의 2인자이지 않은가.

사실 황녀만 해도 섣불리 나설 수는 없겠다만.

황태자까지 있으면 무조건이었다.

“혹시 나는 따라가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혹시 또 골드를?”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뭐, 골드를 준다면 좋겠다만 그렇게까지 시안이 양심이 없지 않았다.

2천만 골드와 더불어 백작위까지 하사받은 상황.

여기서 무얼 더 바랄까.

“그럼 나도 지금 바로 준비하겠네. 이제 일도 얼추 마무리 되었겠다. 마침 휴가도 쓰려고 했겠다. 루벤으로 휴가 가는 셈 치면 되겠지.”

콘라드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엘레나가 루벤의 다과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기대되는 군.”

누가 보면 정말로 휴가를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콘라드는 확실히 루벤에 가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바라보다 어깨를 한 번 으쓱 거렸다.

그리고 왜인지 새어나오는 웃음.

‘듀라크의 표정이 어떨지 좀 궁금한데.’

시안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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