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공로 행사(2)
“네? 같이 루벤으로요?”
엘레나의 고개가 다시 우측으로 기울어졌다.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루벤에 놀러오셔도 된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뭐, 시안의 말마따나 루벤에 놀러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놀러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었다.
그 과정에서 2천만 골드가 지출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엘레나가 루벤으로 가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요?”
그게 이렇게 갑자기 간다는 의미는 또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시안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
‘에런을 떨쳐내기엔 이것만한 것이 없지.’
다름 아닌 에런의 감시를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행사가 끝난 이후.
엘란두르가 아닌 루벤으로 향할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시안은 행사라는 이유로 엘란두르 저택을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면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 감금되어야했다.
뭐, 도망치면 어쩔 수 있겠냐만은.
그것을 우려한 듀라크가 에런을 호위로 붙여두었다.
에런은 마스터 중급의 절대적인 실력자.
현재의 시안은 에런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엘레나가 그 사이에 끼어든다면 이야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생각해보라 그 누구도 아닌 황녀가 루벤으로 놀러오겠단다.
그런데 영주라는 자가 자리를 비워서 쓰나.
당연히 만사 제쳐놓고 루벤으로 달려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했다.
듀라크의 명?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에런은 뭐라 할 수가 없을 터였다.
한낱 기사 따위가 뭘 어쩐단 말인가.
물론 마스터 중급의 기사가 어찌 ‘따위’이겠냐만은.
마스터 중급의 기사고 나발이고.
황녀의 말 한 마디에선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황녀님이 루벤에 있는 동안 듀라크가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할테고.’
엘레나가 루벤에 있으면 듀라크는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그러니까 섣불리 시안과 루벤을 억압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안의 횡령죄는 발각될 것이다.
그리고 시안이 도주한 것 또한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그럼 듀라크는 분노하며 시안을 죽이려 들 것이 뻔했다.
어쩌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직접 군사를 이끌어 루벤으로 올지 몰랐다.
말 그대로 전쟁의 서막.
하지만 루벤에 황녀가 있다면?
그건 반역죄였다.
황녀가 있는데 어딜 무력을 행사한단 말인가.
그대로 끌려가 참형을 면치 못할 반역죄였다.
엘란두르든, 듀라크든 나발이든.
제국에서 황녀를 건드릴 존재는 없었다.
해서 듀라크는 이도 저도 못한 채 속만 부글부글 끓을 터.
그 시간 동안 시안은 루벤에서 차분히 준비를 하면 되었다.
처음 엘레나가 놀러온다고 했을 땐 골치가 그렇게 아팠건만.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시안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엘레나에게 말했다.
“안되십니까?”
“그런 뜻은 아닌데···.”
엘레나는 말을 흐리며 답을 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안이 갑자기 제안을 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그간 엘레나가 봐온 시안은 절대 먼저 놀러오라고 제안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좋아요. 공자님께서 먼저 제안을 주실 줄은 몰랐지만, 잘 되었네요.”
“황녀님이라면야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철벽을 치셨나요?”
시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엘레나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서 준비할게요.”
엘레나는 곧장 걸음을 돌렸다.
곧 있으면 시작되는 공로 행사.
공로 행사가 끝나고 루벤으로 향하려면 지금 준비해도 빠듯했으니까.
시안은 떠나는 엘레나를 지켜보다 문득.
‘아 맞다.’
떠오른 생각에 떠나는 엘레나를 붙잡았다.
“그러고보니 전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아까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다만.”
“오라버니는···.”
그러자 엘레나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사뭇 당황하는 기색마저 보이는 것이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듯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곧 행사가 시작됩니다! 귀빈 분들은 모두 행사장으로 이동해주시 바랍니다!”
연회장 전체로 쩌렁쩌렁, 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어진 엘레나 한 마디.
“지금 가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엘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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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 행사는 다름 아닌 황궁의 대전에서 행해졌다.
족히 수 천 명을 수용할 정도의 커다란 대전.
시안은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자리는 다름 아닌 대전의 앞자리.
아무래도 최고의 공로자를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둔 듯 싶었다.
그리고.
“역시, 자네도 왔군.”
그곳엔 파나트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시안과 함께 북부로 지원을 갔던 파나트 로르실트.
연회장에서 보이지 않길래 안 온 건가 싶었건만.
역시 황제가 주최하는 행사에 안 왔을리가 만무했다.
물론 엘란두르와 로르실트의 사이가 좋지는 않다만.
시안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
“파나트님도 오셨었습니까?”
시안이 반가운 마음에 파나트에게 말했다.
그러자 파나트가 서운한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이래봬도 나 또한 북부의 공로자이네. 물론 자네가 전부 해결했지만··· 그래도 자네 다음으로 공로가 많다네. 설마 나는 공로자가 아니라는 뜻인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연회장에서 보이시지 않길래 여쭌 것 뿐이었습니다.”
“하하하. 농담이었네. 자네는 여전하구만.”
파나트가 작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저어보였고.
시안은 그런 파나트의 옆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런 시안과 마찬가지로 여러 귀족들이 대전으로 하나 둘씩 자리했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자니.
“혹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문득 파나트가 시안에게 물어왔다.
바라본 시선.
그곳엔 파나트가 진중한 눈빛으로 시안을 보고 있었다.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곧바로 파나트가 물었다.
“그때 그 어둠의 기사 말이네.”
“어둠의 기사라면···?”
“북부에서 숲지기와 대적했던 데스 나이트 말이네.”
“아.”
시안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에서 인스티즈에 잠식된 아스란디즈와 대적했던 데스 나이트.
그건 다름 아닌 켄드릭이었다.
“자네가 소환한 존재인 것 같던데···.”
이어진 파나트의 물음에 시안은 이걸 뭐라 답할지 난감했다.
켄드릭의 존재는 밝혀져서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일단 마스터 상급의 존재가 드러나서 좋을 것도 없었고.
데스 나이트는 무엇보다 마(魔)의 존재였다.
단순히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다크 엘프들도 그런 배척을 받았을 진대.
하물며 진짜 마(魔)의 존재인 데스 나이트라면야,
그렇기에 시안은 북부에서 켄드릭의 존재를 숨겼었다.
북부의 야만족들을 소탕하는데 켄드릭의 도움이 컸지만.
루벤의 기사단을 앞세워 켄드릭의 존재를 숨겼었다.
하지만 인스티즈에 잠식된 아스란디즈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땐 뒷일을 생각하고 자시고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시안은 켄드릭을 소환했고 파나트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켄드릭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이후로 별 말 없길래 그냥 넘어가나 싶었더니.
시안은 파나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데스 나이트를 소환한다 함은 곧 어둠의 마나를 다루는 것을 의미했다.
사령술사(死靈術師).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힘의 원천으로 삼는 악(惡).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쉬운 길을 선택한 존재들.
하지만 바라본 파나트의 표정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시안이 사령술사임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아직도 어둠의 마나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겁니까?”
어떻게 시안이 데스 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었는지.
그 자체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파나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자네가 내게 해준 말이 잊혀지질 않아.”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북부에서 지켜본 바, 파나트는 어둠의 마나에 관심이 있었다.
관심이 있다 못해 직접 사용해보기까지 했었다.
해서 시안은 어둠의 마나에 대해 엘로디의 지식을 넌지시 말해준 적이 있었다.
대마도사라 불리던 엘로디의 지식.
그 덕분에 시안을 마검사라 오해하기까지 했지만···.
뭐, 아무튼.
파나트는 그때 시안이 해준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둠의 마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사는 마법사인건가.’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
그 진실을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모든 섭리를 법칙으로서 정의하고 모든 진리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리고 어둠의 마나는 아직 미개척된 영역이었다.
그 힘을 다룰 수 없다 알려진 종류였다.
오직 천 년전.
아르나이즈였던 엘로디만이 그 힘을 사용했다.
그 말은 즉.
다루지 못하는 힘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마법사들이 밝혀내야 할 오랜 숙원과도 같은 일.
파나트는 그 숙원을 풀어내고자 불철주야 연구 중인 것 같았다.
지금도 훌륭한 수준의 마법사이거늘.
제국의 별은 괜히 제국의 별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서 말고 언제 한 번 제 영지, 루벤에 오시죠. 오셔서 아스란디즈님과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나눠보세요. 저도 그때 아는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가?”
시안의 말에 파나트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그런 파나트의 모습에 시안은 실소를 흘렸다.
마법사가 기사한테 자문을 구하다니.
이게 뭔 상황이란 말인가.
‘그래도 뭐···.’
적의 적은 친구라 했던가.
파나트와 연을 맺어서 나쁠 건 없었다.
엘란두르와 로르실트.
두 가문의 라이벌 구도는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시안이 엘란두르와 척을 지게 된 지금.
로르실트와 손을 잡아서 나쁠 건 하등 없었다.
그렇게 파나트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수 천명을 수용하는 대전의 자리가 가득 메워졌다.
그리고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 드십니다!!”
대전 전체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대전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전의 가장 앞쪽.
크나큰 정문이 열리며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존재만으로도 위엄과 기품이 느껴지는 아우라.
별 다른 기세가 없음에도 괜히 위축이 되는 존재.
황제, 발루아가 폰 샤를롯.
그리고 황태자, 콘라드 폰 샤를롯.
황제와 황태자의 등장과 함께 대전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안과 파나트 또한 대화를 멈추고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행사장의 모든 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모두 고개를 들게.”
이윽고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오늘 이 자리는 제국을 위해 힘을 써준 이들을 위해 짐이 직접 주최한 자리이네. 비록 흉년으로 제국 상황이 좋지 않으나 그럴 때 일수록···.”
그리고 이어진 황제의 일장 연설.
시안은 연설의 내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뭐, 그래도 대충 간단히 요약하자면.
많이 사람들이 도와줘서 고맙고. 또 반갑고.
그 고마움을 치하하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내용에 각종 미사여구를 붙인 연설이었다.
“그럼 뜸 들일 것 없이 바로 행사를 시작하도록 하지.”
발루아가의 말과 동시에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복장을 보아하니 황궁의 서기관인 모양.
서기관은 기나긴 양피지를 펼치며 크게 소리쳤다.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북부의 공로자를 호명하겠습니다. 호명되신 귀빈께서는 자리에서 나와 단상에 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트리엘 백작가의 트리엘 백작.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서기관의 말에 시안의 뒤쪽에서 한 사내가 걸어나와 단상 앞에 서보였다.
“트리엘 백작은 흉년으로 힘든 와중에도 물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리고 이어진 기나긴 서기관의 설명.
그건 트리엘 백작이 어떤 공로를 세웠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물자 지원이었다.
그 내용을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포장하다보니 말이 좀 길어졌을 뿐.
그렇게 긴 설명이 끝이 나고.
“하여, 이 공로를 치하하고자 트리엘 백작에게 2개의 마을을 하사한다.”
“······!”
“······!”
“······!”
일순간 대전 전체로 충격이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트리엘 백작에게 내려진 보상.
그 보상이 생각보다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2개의 마을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포함된 인력 그리고 세금.
그 모든 것들을 전부 하사하는 격이으니까.
거기에 관할 마을이 늘어나는 건 세력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
물론 공로를 세우면 그만큼의 보상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트리엘 백작의 공로는 그렇지 않았다.
기껏해야 물자 몇 개 지원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공로에 비해 과하다 못해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대전 전체로 내려앉은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콘라드가 트리엘 백작에게 다가갔다.
“그대가 보여준 노고에 폐하와 황가를 대표해서 감사를 전하네.”
“가, 감사합니다! 이 한 몸 분골이 쇄신하도록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트리엘 백작은 감읍한 표정으로 세상 떠나가라 소리쳤다.
“다음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꽤나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북부를 도와줬고.
그리고 그들 모두가 공로에 비해 지나친 보상을 받아갔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지원을 하는 건데.”
“생각을 잘못했어.”
이쯤되자 나몰라라 발뺌했던 귀족들의 탄성이 자연스레 새어나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
그렇게 자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제 슬슬 지루하다 못해 엉덩이가 배겨갈 때 쯤.
“로르실트 가(家)의 파나트 로르실트.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시안 옆에 자리한 파나트의 이름이 불렸다.
파나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어진 서기관의 말.
“로르실트 가(家)는 북부의 위기에 가장 먼저 나서주었다. 또한 파나트와 더불어 아르카닉 마법 병단까지 동원한 바···.”
이번엔 그 말이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파나트는 직접 북부의 사건에 뛰어든 공로자였으니까.
그 때문인지 서기관의 말은 끝을 모르듯 이어졌다.
거진 양피지 2장 정도의 분량이 다 되고 나서야 말이 끝이 났다.
“하여, 이 공로를 치하하고자 후작령 관할의 10개 마을을 하사한다. 또한 향후 3개월 간 로르실트 가(家)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면제한다.”
“와···!”
“세상에나!”
그리고 대전 전체로 커다란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
이번엔 시안 또한 작게나마 탄성을 터트렸다.
일단 10개 마을도 마을이었거니와.
3개월 간의 세금 면제가 정말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엘란두르의 부행정관으로 직임한 바.
저 세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 천만 단위는 가볍게 넘나들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로르실트가 마법사 가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마법사들은 연구다 뭐다, 돈을 물쓰듯이 써댔지만.
그만큼 벌어들이는 것도 어마어마했으니까.
아무리 못해도 1개월에 1천만 골드는 세금으로 나온다.
그러니 최소 3천만 골드에 달하는 세금이 감면된 셈이었다.
“항상 제국을 위해 힘 써주어 고맙네.”
“맡은 바 책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콘라드의 덕담과 더불어 파나트는 천천히 단상에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시안. 앞으로 나오시오.”
그리고 들려온 서기관의 말.
대전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다.
앞선 이들의 보상을 지켜본 바.
그들은 전부 공로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시안은 이 사건의 최고 공로자였다.
사실상 시안 혼자서 북부의 사건을 해결한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 시안에게는, 엘란두르에게는 어느 정도의 보상이 책정될까.
그렇게 모두의 기대 속에서 시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자리했다.
“드리운 제국의 위기 속에서 시안의 기지는 빛을 발했다. 용맹과 정의로 명예와 영광을 지켰으며 약자를 존중하고···.”
그리고 이어진 서기관의 말은 시작부터가 달랐다.
“불공정함과 비열함 그리고 기만을 경멸했으며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제국을 위하는 그의 행동은···.”
온갖 미사여구에 금칠이란 금칠은 치덕치덕 바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만큼 시안의 공로가 대단한 건 맞았으니 말이다.
되려 시안이 받게 될 그 보상이 궁금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서기관의 말은 끝도 모를 듯이 이어졌다.
반면에 그런 말을 듣고 있는 시안.
‘언제 끝나?’
솔직히 시안은 전혀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보상으로 무엇을 줄지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황제에게서 2천만 골드.
황실에게서 1천 2백만 골드.
도합 3,200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말이다.
어떻게 보면 파나트의 보상과 비슷하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파나트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얻는 기대 수익일 뿐.
게다가 파나트가 아니라 로르실트에 주는 보상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개인에게 하사된 돈이었다.
심지어 기대 수익이 아니라, 직접 현물로 그 골드를 받았다.
여기에 굳이 무슨 보상이 더 주어질까.
되려 시안은 의뭉스러울 뿐이었다.
왜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를 말이다.
‘그냥 슬그머니 부르기만 하셔도 되었는데.’
엘란두르를 벗어날 명분만 만들어주기만 그 뿐.
이런 자리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황제의 이름까지 빌려서 말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건지···.’
시안은 서기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여, 이 모든 공로를 인정한 바.”
끝도 모를 듯이 들려오던 서기관의 말이 드디어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진 서기관의 한 마디.
“시안을 백작(伯爵) 위에 봉한다.”
뚝.
대전 전체로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수 천명이 자리한 대전에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낼 수가 없었다.
눈 하나 깜빡거릴 새도 없이 사람들은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충격으로 물들어버린 대전.
마치 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지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오직.
“······ 예?”
벙찐 시안의 목소리만이 나지막히 울려퍼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