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횡령튀(2)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이렇다 할 사건이 없었다.
보통 여행길에 있어 산적이나 도적 정도는 만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런 흉년의 시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시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적과 산적은 커녕,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행렬의 가장 앞서 펄럭이고 있는 깃발.
그 깃발 아래 엘란두르 가(家)를 상징하는 하얀 늑대 그림이 그러져있었으니까.
제국을 지탱하는 두 가문 중 하나, 엘란두르.
제국에서 엘란두르의 행렬을 가로막을 정신 나간 도적들은 없었다.
무엇보다 시안을 호위하고 있는 이들은무려 하얀 늑대 기사단의 기사들이었다.
전원이 소드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최강의 기사단.
또 그 뿐이랴.
호위의 책임자로 무려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인 에런이 있었다.
그 경지도 무려 마스터 중급의 기사.
그런데 도적은 뭔놈의 도적이이고 산적은 뭔놈의 산적이란 말인가.
해서 시안의 황궁 여행길은 더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정확히는.
꾸구구구구구구국.
시안이 스마트 폰을 터치하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꾹국꾹국. 꾸구구구국.
《짜란다 짜란다! 마수 목장 Lv.7》(150,000G)
《가호의 축사 Lv.7》(100,000G)
《은총이 내린 농지 Lv.7》 (150,000G)
《은혜의 과수원 Lv.7》 (120,000G)
띠링!
《구매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펄펄 끓는 대장간 Lv.7》 (200,000G)
《원시 고대 병기 제작소 Lv.7》 (250,000G)
《아공간 창고 Lv.7》 (80,000G)
꾸구구구구국!
《완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기적의 제빵소 Lv.7》(150,000G)
《고대 양조장 Lv.7》(180,000G)
꾸구구구국.
《구, 구, 구, 구, 구···!!!》
《날개 달린 콘크리트길 Lv.7》(100m당 8,000G)
꾸우우우욱.
《와아아아안료오오오오오오오오옷!!!!》
농업, 목축, 광업, 임업 등등.
기존 생산 시설에 대한 업그레이드.
그것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도 아니었다.
이전 Lv.5에서 Lv.7로의 업그레이드.
무려 두 단계를 건너 뛴 업그레이드였다.
그 때문인지 시설 가격들이 미쳐날뛰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시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 돈 아니었으니까.
시안은 슬쩍, 눈을 돌려 빼곡하게 글씨가 적힌 종이를 확인했다.
지난 며칠 간 밤새 정리한 현질 목록들.
“다음은··· 아.”
시안은 곧장 업그레이드 시설들을 추가했다.
《신병(神兵) 훈련소 Lv.7》 (300,000G)
《만상(萬狀) 병과 훈련소 Lv.7》 (1,000,000G)
각종 군사 시설들은 물론.
《넌 모찌나간다! 티타늄책 Lv.7》 (8,000,000 G)
《심연의 해자 Lv.7》 (3,500,000 G)
《천상의 감시탑 Lv.7》 (2,800,000 G)
루벤을 에워싼 방벽들의 업그레이드까지.
말 그대로 루벤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들을 업그레이드 했다.
꾸구구구국.
《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덕분인 모바일 영주의 절규에는 발작과 까무러침이 공존하고 있었다.
“후우···.”
시안은 잠시 숨을 돌리며 차분히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지금까지 현질한 금액을 확인했다.
그렇게 지출한 금액은 대략···.
“3천만 골드가 좀 넘네.”
3천만 골드를 조금 넘게 쓴 거 같았다.
뭐, 대충 계산을 때린 터라 정확하진 않았다.
그래도 큰 오차는 없을 터.
한 마디로 시안이 지난 날 루벤을 갈아 엎은 비용이 그대로 지출된 셈이었다.
“어쩐지.”
모바일 영주가 왜 저렇게 발작하나 싶었다.
발작 수준이 아니라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보 직전일 뿐.
모바일 영주는 기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긴급 점검으로 강해진 수준이 상당한 모양.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51,139,500 G
아직도 5,100만 골드가 넘게 남아있었으니까!
“아아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어떻게 보면 3,000만 골드가 한순간에 증발한 셈이었다.
4인 가족이 11만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 몇 번의 터치로 사라진 셈이었다.
그 절망과 실망과 낙망과 비관과 좌절과 체념과 실의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냐만은.
“아아아아!!”
지금의 시안은 환희와 기쁨의 감정이 최고치로 터져올 뿐이었다.
왜?
“내 돈 아니잖으아아아아!!!”
내 돈이 아니었으니까!
띠링!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알림창에서도 시안과 같은 떨림이 전해왔다.
그러나 그 느낌은 시안과 완전히 정반대였다.
3,000만 골드를 버텨냈으나.
그럼에도 5,100만 골드가 남았다는 좌절감.
그렇게 시안과 모바일 영주는 서로 비명 아닌 비명을 터트렸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안은 다시 정리한 현질 목록들을 확인했다.
《다차원 은행 Lv.1》 (2,000,000 G)
《마법 공학 제작소 Lv.1》 (1,000,000 G)
《전문 인력 아카데미 Lv.1》 (300,000 G)
《기계 공학 제작소 Lv.1》 (800,000 G)
이번에 도시 단계로 승격하면서 신설될 시설들.
그 시설들을 모조리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꾸구구구국.
신들린 손가락으로 전부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해당 건물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선행 연구가 완료되어야 한다고욧!》
“아, 맞다.”
떠오른 알림창에 시안은 【연구 목록】 항목에 들어갔다.
[마법 공학 연구] - 10,000,000 G
[기계 공학 연구] - 2,000,000 G
[교육학 연구] - 500,000 G
[은행업 연구] - 500,000 G
.
.
.
“뭔 연구 비용이 이렇게 비싸.”
지난 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비싸도 더럽게 비쌌다.
특히 마법 공학 연구의 비용은 무려 1,000만 골드에 달했다.
뭐, 엘로디가 고안한 지식이라고는 한다지만···.
“그래도 1,000만 골드는 좀···.”
심지어 단순한 연구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식을 가져오는 것에만 무려 1,000골드였다.
모르긴 몰라도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데 드는 노력과 비용은 따로일 터였다.
하지만 뭐.
시안은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마법 공학 연구와 더불어 각종 연구 비용에만 거진 1,800만 골드가 소모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왜?
“내 돈 아니니까!”
시안은 꾸구구국, 거침없이 연구 목록들을 모조리 구매했다.
《연구 진해애애애애애앵!!!!》
《[마법 공학 연구]를 연구 중입니다.》
《[기계 공학 연구]를 연구 중입니다.》
《[교육학 연구]를 연구 중입니다.》
《[은행업 연구]를 연구 중입니다.》
.
.
.
.
모바일 영주의 발작과 함께 진행되는 연구들.
그리고 연구에 진행되는 시간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200일, 30일, 40일··· 음 생각보다 짧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생각보다 짧았다.
아무래도 다크 엘프들이 합류하면서 연구 속도가 크게 증가한 덕분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련 시설들은 연구가 ‘완료’되어야만 지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엘란두르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기다려주지 않았으니까.
시안은 스크롤을 쭈욱, 내려 즉시 완료권을 살폈다.
[진행 중인 연구 즉시 완료권] - 7,500,000 G
“음? 생각보다 싸네?”
그리고 생각보다 금액이 저렴했다.
물론 750만 골드가 싼 금액은 아니었다.
싸기는 개뿔이 무슨.
정신이 나가다 못해 미쳐버린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즉시 완료권의 가격을 생각하면 저렴한 수준이었다.
즉시 완료권은 보통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아르나이즈 특전인 <엘로디의 탐구> 효과 1.
[효과 1] - 연구소의 연구 속도가 +20,000% 상승합니다!
효과 1의 버프와 더불어 다크 엘프들이 합류하면서 연구 속도가 크게 증가한 덕분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지를 수 없는 수준의 금액임은 변함 없었다.
제반 시설들도 아니고 고작 연구의 즉시 완료권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안의 검지 손가락은 거침이 없었다.
왜?
“내 돈 아니니까!”
이 역시 내 돈 아니었으니까!
꾹.
《연구가 모두 즉시 완료 되었습니다아아아악!!!!》
가벼운 터치와 함께 모두 완료된 연구들.
시안은 다시 【영지 시설】에 들어가 ‘다차원 은행 Lv.1’ 을 비롯한 ‘마법 공학 제작소 Lv.1’
이번에 신설된 시설들을 모조리 구매했다.
꾸구구구국.
《꾸매애애애애?!?!?!? 완료오오오오오옷!!??!》
그러자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발작을 넘어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만간 기절할 듯 보였지만 이로써 현질할 시설들을 모두 현질한 셈이었다.
“아, 아직 하나 남아있구나.”
시안은 마지막 부분에 적어놓은 내용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룡거(五龍車) - 1대당 300,000G』
다름 아닌 광고에서 발견한 전투 병기.
오룡거라는 이름의 이것은 신기전과 같은 전투 병기였다.
신기전은 주로 성(城)을 폭행하는. 그러니까, 공성에 특화된 병기였다면.
이 오룡거는 다름 아닌 대인전에 특화된 병기였다.
‘광고에서 뭐라 그랬었더라?’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그 옛날 해모수 선생님께서 타고 다니신 전차!
그 이름도 유명한 오룡거!
다섯 마리의 용이 이끄는 이 전차는 그야말로 천! 하! 무! 적!
모두 비키거라!
지상전의 왕자요, 대인전의 황제가 나가신다!
오룡거를 이끄는 병사 한 명이 능히 1만의 군대를 감당할 수 있을지니!
이 오룡거를 본 손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역시 방장 사기맵이 분명하다.’
이 오룡거 하나만 있으면 적들의 병력은 그야말로 무용지물!
개노답 오합지졸!
······ 예?
해모수의 전차라길래 녹색전차 해모수인 줄 알았다고요?
아저씨 같은 소리 하지마세욧!!
아니, 그럼 이 막강한 병기가 왜 이렇게 가격이 저렴하냐고요?
그야 용은 비매품이니까 그렇죠!
요즘 용 값이 얼마나 비싼데욧!
용은 직접 길러서 매다시기 바랍니닷!
하지만!
용이 없더라도 오룡거의 기능은 여전하다는 거!
뭐··· 1만의 병사까지는 아니더라도 1천명 정도는 대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해모수 선생님께서 타고 다니신 오룡거!
지금 바로 구매하세요!』
.
.
역시나 정신 나간 광고답게 이상한 말만 즐비해있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뭐, 그래도 신기전과 같이 성능은 확실해보였으니까.’
용이 없는 것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뭐.
그건 있으면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용 대신 마수를 매달아도 상관없었다.
그러니 전차 부대도 신설할 겸.
시안은 오룡거를 10대 정도 구입했다.
꾹.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정신이 나가버린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을 끝으로 모든 물품들을 구매한 시안.
“보자 남은 금액이···.”
시안은 슬쩍, 인벤토리에 남은 금액을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한 금액은 약 2,000만 골드 가량이었다.
물 쓰듯이 현질했는데도 2,000만 골드가 남아있었다.
이걸 다시 말하면 약 6,400만 골드 가량을 들이 부은 셈이었다.
평소 같으면 모바일 영주는 물론 시안 또한 기절했을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둘 모두 기절하지 않았다.
“모바일 영주가 상당히 강해졌네.”
솔직히 6,000만 언저리에서 기절할 줄 알았다.
어째, 이번 긴급 점검이 길어진다 싶더니 단단히 준비해온 듯 싶었다.
아무래도 억 단위를 넘어가야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럼 뭐, 바로 진행해야겠네.”
시안은 스마트 폰을 조작했다.
그리고 앞서 구매한 시설들에 대한 즉시 완료권의 가격을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한 바 모든 완료권들이 대략 2,000만 골드 가량이 되었다.
거진 딱 맞아떨어지는 금액.
뭐, 굳이 즉시 완료권을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시안은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예산을 남겨봐야 하등 쓸모 없었으니까.
이건 엘란두르의 부행정관이라는 인과에 걸맞게 시안이 운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산일 뿐.
쉽게 말해 엘란두르의 부행정관에서 박탈되면 사라질 돈이었다.
한 마디로.
“내 돈 아니잖아.”
시안의 돈이 아니었다!
시안은 거침없이 앞선 시설들의 즉시 완료권을 구매했다.
그러자.
《······!??!?!!?!!?!!?》
갑자기 요상한 알림창이 화면 가득히 떠올랐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시안은 스마트 폰을 툭툭, 쳐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귚뚥줵딻묽켛홓앍늙!!》
웬··· 이상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띠링!
[인과 폭주로 인한 과부하 감지.]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모바일 영주를 종료합니다.]
그러면서 모바일 영주가 꺼져버렸다.
멍한 정신.
“잠깐!!! 이럴 줄 알았으면 즉시 완료권 구매 안했지!!”
시안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
루벤에 위치한 한스의 집무실.
한스는 루벤의 행정관으로서 시안이 자리를 비울 때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물론 행정관으로서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일단 한스의 능력도 능력이었거니와.
한스는 어렸을 적부터 시안과 평생을 함께 해왔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이 한스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 루벤의 영지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해서 말이 행정관이었지.
사실상 영주 대리라 봐도 무방했다.
하여 지금, 영주성에 위치한 한스의 집무실.
한스의 집무실에는 루벤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있었다.
루벤의 영지민, 인간을 대표하는 그레이슨.
드워프의 족장, 세미르.
다크 엘프의 전 숲지기, 아스란디즈.
루벤의 경비를 책임지는 루카스.
루벤 브라헤 상단주인 아멜리아.
그리고 레아와 켄드릭까지.
그런 루벤의 핵심 인물들이 한곳에 모인 가운데.
“현재 도련님께서는 엘란두르 저택에 계십니다.”
한스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시안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 어떤 일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한스는 시안의 상황을 사람들에게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현재 루벤으로 엘란두르의 병력들이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름 아닌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들 때문이었다.
이어진 한스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짙은 긴장이 떠올랐다.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대륙에서 그 위명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를 대적할 힘이 루벤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레아와 켄드릭이 있었고.
또 루벤의 기사단들과 병사들도 상당한 수준에 달해있었으니까.
아무리 카이가 제국의 별이라 한들.
하얀 늑대 기사단이 제국 제 1의 기사단이라 한들.
루벤을 점령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루벤으로 향한다는 것.
그건 이제 본격적으로 엘란두르와의 전면전이 시작됨을 의미했다.
“전쟁 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 이어진 한스의 말에 사람들을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란두르와의 전쟁.
제국에서 엘란두르와 척을 진 가문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고 각오한 일이었다.
언젠가 올 것이라 생각한 일이었다.
두렵고, 무서운 일임에는 변함 없었다.
허나 지금 와서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빛은 결연하게 빛났다.
한스는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해서 각자에게 지침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경비대장 루카스···.”
그리고 한스의 말이 이어지려던 찰나.
콰콰콰콰콰쾅!!
갑자기 밖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콰르르르르릉!
쿠구구구궁···!
그리고 이어지는 연이은 폭발.
사람들의 두 눈이 크게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에 폭발이 들려올 일이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설마 벌써 엘란두르의 병력들이···?”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얼굴에 짙은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다들 움직여!”
터져나오는 외침.
사람들이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
밖으로 나간 사람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찍혔다.
다름 아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
그러니까 지금 시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꽈꽈꽈꽝!
뭐··· 루벤 여기저기서 폭발 비스무리한 것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울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엘란두르의 병력들이 습격한 결과가 아니었다.
악마의 침공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언제고 한 번 마주했던 풍경.
촤라라라락.
쿠구구구궁···!
뚝딱뚝딱.
루벤 전체로 펼쳐지는 어떤 장엄한 광경들.
촤라라락!
뚝딱뚝딱.
루벤 전역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났고.
파바바바박!
쿠구궁···!
구역과 영역이 확장되며 그 사이로 멀끔한 도로가 새로 깔렸다.
그러니까···.
쿠르르릉···!!
콰콰콰콰콰쾅!!
루벤 전역이 다시 한 번 뒤집어지고 있었다!
“대, 대체 이게···!”
“어찌 이런···!”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이 광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언제고 한 번 보았던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런데도 이건 아니었다.
꽈꽈꽈꽝!!
뚝딱뚝딱!
쿠구구구궁···!
지금 이건 절대로 익숙하다는 개념을 들이밀 풍경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루벤이 재개발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심지어 지금은 시안도 없는데?
“······”
“······”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루벤에는 한동안 폭발과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어마어마한 폭풍이 루벤 전역으로 휘몰아쳤다.
그 거대한 폭풍에 휩쓸린 모든 자재와 건축물들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영지 밖의 방어 설비. 철책, 해자, 경비탑은 물론이고.
영지 안의 각종 시설들. 농지, 창고, 과수원, 대장간, 도로 등등등.
루벤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과 건물들의 자재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엘로디의 마법이라 해도 믿지 못할 경이로운 풍경.
언제고 봤던 모습이었지만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휘몰아치던 폭풍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땅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친 풍경.
두둥!
그야말로 완전히 탈바꿈 되어있는 루벤이 있었다!!!
“······!!!”
“······!!!”
“······!!!”
시안을 비롯한 영지민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이 정신을 강타했다.
일단 루벤 전역을 둘러싼 철책.
아니, 저게 철책이 맞기는 걸까?
짙은 회색빛의 금속은 생전 처음 보는 금속이었다.
“저게 무슨···?”
이윽고 들려오는 세미르의 중얼거림.
역시나 세미르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시안이 이번에 현질한 ‘넌 모찌나간다! 티타늄책 Lv.7’.
말 그대로 저길 지나갈 수나 있을까 의문마저 들었다.
게다가 그 주위를 둘러싼 ‘심연의 해자 Lv.7’는 물론이요.
천상의 감시탑 Lv.7을 비롯한 각종 방어 시설들.
또 그뿐이랴.
영지 안에 각종 생활 시설 및 생산 시설들.
그것들이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진보한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게다가 처음 보는 건물들도 상당수 비쳐보였다.
척 보기에도 뭔가 수준 높은 기술이 접목된 건물들.
“저, 저게 무슨···?”
아니나 다를까 세미르가 다시 한 번 눈을 부릅, 뜨며 놀라보였다.
보아하니 세미르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기술들인 것 같았다.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버젓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
바로 그때.
“준비를··· 어 음··· 제가 무슨 준비를··· 해야···.”
루카스가 횡설수설 물어왔다.
“······”
그리고 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눈 앞으로 펼쳐진 루벤의 풍경을 보라.
준비는 뭔 놈의 준비란 말인가!
엘란두르? 하얀 늑대 기사단?
웃기는 소리 말라지.
신화 속의 악마 군단이 쳐들어와도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이건 인간 수준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뚫어낼 수가 없었다.
한스는 루카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냥···.”
그리고 이어진 한스의 한 마디.
“가서··· 하던 대로만 합시다···.”
한스는 밤새 준비했던 계획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정지. 이곳부터 황궁입니다. 방문하고자 하셨다면 신원과 방문의 목적을 밝히십시오.
일순간 마차 밖으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시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아하니 황궁을 지키는 로열 나이츠인 모양.
아무래도 황궁에 다 온 듯 싶었다.
-엘란두르 가문 소속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 패이츠다. 시안 엘란두르 공자님과 함께 공로 행사에 참가하고자 찾아왔다.
이윽고 들려오는 에런의 목소리.
-엘란두르···?
그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한 로열 나이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살짝 창문을 열어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러자.
“······!!”
시안의 얼굴을 확인한 로열 나이츠의 기사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예전과는 달리 현재 제국에서 시안의 명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 지금 바로 안쪽에 알리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건만.
“단장님! 로버트 단장님!!”
어째, 로열 나이츠가 신참인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