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53화 (153/322)

§ 153화 - 고양이에게 생선을(3)

똑똑.

-들어와라.

노크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한없이 낯선 목소리였으나 이제는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

시안은 천천히 방 문을 열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듀라크의 집무실 풍경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집무실 중앙에 서 있는 한 중년의 남자.

“가주님을 뵙습니다.”

시안은 듀라크를 향해 예를 보였다.

듀라크를 마주할 때면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

하지만.

“······”

이번엔 그 패턴이 사뭇 달랐다.

듀라크는 말없이 시안을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이 집무실에 내려앉았다.

그 침묵 사이로 시안은 살짝, 시선을 들어 듀라크를 바라봤다.

듀라크는 별 다른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왜 저래?’

그렇기에 시안은 의아한 심정을 감출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앉거라.”

기나긴 침묵을 깨고 듀라크가 입을 열었다.

시안은 그때서야 적당한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침묵.

하지만 이번엔 침묵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이사벨이 별 다른 말이 없더군.”

역시나 무덤덤한 표정의 말투였지만, 그 안에 내재된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시안이 부행정관으로 직임한 이후.

시안은 듀라크의 낙하산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총괄 행정관을 넘어선 권한을 행사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시안의 권한은 이사벨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사벨은 엘란두르의 안주인으로서 내정 관련한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었으니까.

파이톤이 총괄 행정관이라면 이사벨은 엘란두르의 총괄자.

즉, 이사벨은 파이톤 같은 간부들을 총괄하는 안주인이었다.

따라서 시안 또한 이사벨의 관할 아래 있다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이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면 이사벨에게 보고를 해야함이 옳았다.

그러나 시안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또 행했다.

어떻게 보면 이사벨의 권한을 침범한 셈이었고.

당연히 이사벨 입장에서는 한소리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사벨은 별 다른 말이 없었다.

뭐, 듀라크가 개입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사벨이 엘란두르의 안주이라고는 하나, 엘란두르에서 듀라크의 명은 절대적.

시안의 직책은 듀라크가 직접 임명한 것이고.

그런 권한의 행사를 이사벨이라고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날, 시안이 이사벨을 찾아가 경고한 것도 한몫했다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시안은 듀라크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사벨은 그런 시안을 몰래 암살하려 했었고.

다시 말해 이사벨은 시안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시안이 가문 밖에 있다면 또 모를까.

가문에서 활약하는 시안을 건드리기 모호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시안의 구휼 정책은 보이는 성과가 뚜렷했다.

후작령 전체로 만연한 흉년의 피해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으니.

이사벨은 더더욱 시안에게 별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듀라크가 방금 말한 ‘이사벨이 별 다른 말이 없더군.’ 이라는 것.

이사벨이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

그로써 부행정관의 책무를 훌륭히 해낸 것.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이른 말이었다.

다시 말해 ‘너 잘하고 있다.’ 라는 의미나 다를 바 없었다.

‘나 참.’

그렇기에 시안이 속으로 한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 되지. 왜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건데?’

돌려말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그냥 지만 알고 있는 의미를 지껄이는 격이었다.

저게 칭찬을 하는건지 아니면 시험을 하는 건지.

아니,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다만.

‘정없게 이사벨이 뭐야. 이사벨이.’

시안이야 이사벨과 사이가 썩 좋지 않다만.

듀라크에게 이사벨은 그래도 부인이지 않은가.

애칭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인이라는 말 정도는 덧붙일 수 있지 않은가.

‘하여간···.’

이 놈의 가문은 가족 애(愛)라는 것이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자 듀라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듀라크의 표정 위로 만족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시안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를 부르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곧장 듀라크에게 물었다.

설마하니 듀라크가 고작 칭찬이나 하려고 불렀을리는 없을테니까.

“방금 전, 황가에서 서신이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듀라크가 곧장 입을 열었고 시안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황태자, 콘라드에게서 답장이 온 것 같았으니까.

그로써 엘란두르 저택을 떠날 명분이 생긴 것이니까.

그리고 그 명분은 간단했다.

“조만간 북부 사건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를 만든다더군.”

제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북부의 사건.

그 사건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공식적인 행사.

북부의 사건은 현재 그 마무리까지 잘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마무리 된 것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공로에 대한 보상.

그 절차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물론 시안은 공로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아냈었다.

무려 3,200만 골드라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말이다.

뭐, 지금은 다 써서 사라졌지만.

‘······ 젠장.’

괜시리 쓰리는 속.

뭐, 어쨌든.

시안은 보상을 받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시안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다시피 했다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물자를 지원해준 수많은 가문들은 물론.

로르실트, 그러니까 파나트의 도움도 있었다.

이들에 관한 보상은 현재까지 전무한 상태.

또 시안이 형식상으로나마 속한 엘란두르 또한 관련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시안의 보상 또한 어디까지나 암묵적으로 행해진 일.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셈이었다.

뭐, 어영부영 넘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황가의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렇기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콘라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시안에게 물은 바 있었고.

시안은 그것을 명분으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아무리 시안이 보상을 미리 받았다고는 하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에 최고 공로자가 자리를 비운다?

이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건 황가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아무리 듀라크라 하더라도, 엘란두르라 하더라도 황가의 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즉, 황가의 부름에 따라 시안은 저택을 떠나 황궁으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이후.

시안은 두 번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듀라크가 받은 황가의 서신.

그 모든 일은 전부 시안이 계획하고 꾸민 일이었다.

다만.

“그 자리에 폐하께서 시안, 너를 초대했다.”

“······ 예?”

이어진 듀라크의 말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물음표를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듀라크의 말.

그러니까, 황태자가 아니라 폐하가 시안을 초대했다는 말.

“폐하께서··· 말입니까?”

이건 조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시안은 이와 관련한 계획을 황태자, 콘라드와 상의하고 실행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황제는 언급하지도 않았었다.

굳이 황제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럼 괜히 일만 커질 뿐이었다.

애초에 황제는 시안이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리려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해서 시안은 콘라드에게 현재의 사정을 설명했을 뿐.

나머지는 알아서 할테니, 불러만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니 듀라크는 ‘황태자가 시안, 너를 초대했다.’ 라고 말했어야 했다.

방금처럼 ‘폐하께서 시안, 너를 초대했다.’ 라고 말해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듀라크의 입에서 들려온 건 황태자가 아닌 폐하.

혹시 이름만 황제의 이름을 빌린 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텐데?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시안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사는 2주일 뒤에 시작된다.”

그 순간 다시 들려온 듀라크의 말.

시안은 밀려오는 의문을 떨쳐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계획의 본질은 변함 없었다.

그리고 엘란두르 후작령과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거리를 생각했을때, 2주일이면 3일 정도의 시간이 있는 셈이었다.

‘횡령하려면 빠듯한데···.’

시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준비하겠습니다.”

이윽고 시안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듀라크는 역시나 시안이 떠남에 있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네가 떠나고 곧 카이를 하얀 늑대 기사단과 함께 루벤으로 보낼 것이다.”

듀라크가 불쑥, 루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안은 집무실을 떠나려던 발걸음을 뚝, 하니 멈춰섰다.

천천히 돌아본 시선.

그곳엔 듀라크가 무표정한 얼굴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듀라크의 시선을 마주하며 방금 전 들려온 말을 되뇌였다.

카이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장자이자, 시안의 맏형되는 이.

그리고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천재 중의 천재.

세간에 알려진 바, 카이의 경지는 마스터 초급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시안이 직접 만나본 바 소문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스터 중급의 경지.

카이는 현재 중급의 벽을 허문 상태였다.

불과 30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카이는 마스터 중급의 벽을 허물었다.

이건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눈앞의 듀라크.

듀라크보다도 월등히 빠른 성장이었다.

쉽게 말해 듀라크보다 뛰어난 재능의 카이.

카이는 어쩌면 마스터 최상급,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에 닿을 수 있는 천재였다.

듀라크는 그런 카이를 루벤으로 보내겠다,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원래는 카이가 아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

원래는 에런을 루벤으로 보내기로 듀라크는 말한 바 있었다.

그런데 듀라크는 지금 말을 바꿔 카이를 루벤에 보내고자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미련이 남아 있느냐.”

시안에게서 미련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시안이 돌아갈 장소를 확실히 없애버림으로써 말이다.

듀라크의 물음에 시안은 답을 하지 않았다.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엘란두르의 최정예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고블린 잡는 일에 오우거 잡는 칼을 쓰는 격이라 생각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듀라크는 주저하지 않았다.

오우거 잡는 칼을 꺼내듦에 망설임이 없었다.

루벤을 확실하게 처리하고자하는 듀라크의 의지.

아무래도 듀라크는 확신한 것 같았다.

시안이 부행정관으로서 보인 능력.

그 능력을 지켜본 바, 시안은 엘란두르의 가문을 부흥시킬 능력이 있음을 확신한 것 같았다.

로르실트를 넘어 제국 제1의 가문으로 부흥시킬 능력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결단과 의지를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루벤을 확실하게 없애버리고자 하는 것 같았다.

시안이 돌아갈 곳을 없앰으로써 시안을 가문에 확실히 붙잡아두고자.

그리고 이 결정에서, 지금 보이는 모습에서.

결단코 아들을 대하는 아비의 애정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유능한 장기말을 대하는 태도만이 보일 뿐이었다.

시안은 가만히 듀라크를 바라봤다.

듀라크는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아들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니, 듀라크에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아까 전, 이사벨을 이사벨이라 부르던 듀라크의 모습.

“외람되오나 한 가지, 가주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듀라크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올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듀라크의 눈빛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가주께서는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시안에게 있어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존재는 두 명이었다.

엘란두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렇기에 시안이 말한 어머니가 둘 중 누구인지 듀라크는 모르지 않았다.

“현명한 이였다.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예상 외로 듀라크의 답은 금방 들려왔다.

그리고 그 내용만 본다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듀라크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평소의 듀라크라면 결코 저런 말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안은 듀라크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황궁에 가기 전,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 레이첼의 묘소를 한 번 찾아가봐도 되겠습니까.”

듀라크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라.”

듀라크는 그 정도는 허락할 수 있다는 눈짓을 해보였다.

시안의 요청을 긴 고민없이 허락했다.

그리고 그런 듀라크의 모습에, 시안은 웃음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듀라크는 허락을 했으면 안 되었다.

방금 전, 시안의 어머니가 가끔 생각난다는 말이 정말로 진심이었다면.

시안의 요청을 허락했으면 안 되었다.

시안이 묘소에 들르는 것을 절대 허락했으면 안 되었다.

적어도 고민하는 모습 정도는 보였어야 했다.

이름부터가 틀려먹었으니까.

시안의 어머니는 레이첼이 아니었으니까.

세실.

순수한 사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

레이첼은 누군지도 모를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듀라크는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세실이라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또한 애초에 세실의 묘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다면 저택에 올 때마다 시안이 가장 먼저 들렀겠지.

허나, 세실의 묘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전, 세실이 죽었을 당시.

아무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그저 쉬쉬하며 일을 덮으려했을 뿐이었다.

오직 한스만이 세실의 시신을 수습하여 어린 시안과 함께 강가에 뿌렸다.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부정하고 싶으나 듀라크는 시안의 아버지였음을.

시안이 친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이는 현재 듀라크가 유일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그래도 조금은.

아비로서의 정을 기대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정말 어쩌면.

듀라크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그동안 괄시 받아왔던 가문에서 인정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안은 그때서야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시안은 가슴 속, 미약하게 남아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자리잡았던.

“제게 미련이 남아있냐 물으셨죠.”

미련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미련은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그리고 이곳 엘란두르에.

그러니.

“루벤은 가주의 뜻대로 하십시오.”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시안은 끝말을 삼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가보거라.”

듀라크는 그 말과 함께 시안에게서 등을 돌렸다.

시안 또한 그런 듀라크에게서 등을 돌렸다.

등을 맞댄 채, 서서히 멀어지는 시안과 듀라크.

반면에 루벤과 엘란두르의 전면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듀라크의 집무실에서 나온 시안은 황궁으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3일의 시간.

상당히 여유로운 시간이었지만 시안에게는 아니었다.

“곡식 대여비랑 치료 물품 또··· 각종 인건비들도 때려 넣으면 되려나.”

그도 그럴 것이 횡령을 준비하기엔 빠듯한 시간이었으니까.

“아, 참. 여행 경비도 결재해야지.”

문득 생각난 사실에 시안은 예산 항목을 추가로 작성했다.

“음, 후작령에서 수도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리니까···.”

이것 저것 먹고, 자고 하면···.

“300만 골드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일주일 경비로 300만 골드라는 돈이 지출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일주일의 여행 경비는 약 10골드.

아끼고 아낀다면 5골드 내외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노숙에 익숙한 베테랑 용병들은 1골드도 들지 않았다.

물론 귀족들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굳이 절약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사치를 부려도 결코 1만 골드를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1만 골드는 무슨.

1,000골드만 되어도 사치란 사치는 죄다 부리면서 남길 수 있는 금액이었다!

300만 골드면 수도의 부지를 사서 여행을 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알게 뭐야.”

내 돈도 아닌데.

시안은 거침없이 예산 결재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꾸욱, 엘란두르의 인장을 찍었다.

“좋아.”

시안은 결재서에 300만 골드 예산을 추가 책정했다.

그렇게 하나 둘.

시안은 예산서를 조작하며 만든 골드들을 쌓아올렸다.

그 결과.

[82,124,000 G]

최종적으로 찍힌 금액.

그 순간.

띠링!

《대, 대, 대체 저게 뭐죠오오옷?!?!!?!??》

품 속에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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