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51화 (151/322)

§ 151화 - 고양이에게 생선을(1)

‘사진 촬영···?’

그게 대체 뭔데?

시안은 떠오른 알림창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 촬영이라는 말.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대체 이게 뭔데?’

시안은 호기심에 사진 촬영 기능을 실행시켰다.

꾹.

터치와 함께 일순간 화면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화면 위로 보이는 장면.

그건 지금 시안이 보고 있는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뭐··· 하시는 겁니까?”

저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이톤.

저 고지식한 파이톤의 얼굴이 스마트 폰 화면 위에 담겨있었다.

‘이게 무슨···?’

싶은 것도 잠시.

이윽고 화면 위로 시스템의 알림창이 재차 떠올랐다.

〈촬영 버튼을 누르시면, 해당 장면이 화면에 담깁니다.〉

〈해당 기능은 1회에 1G의 비용이 소모됩니다.〉

아직 모바일 영주가 기절해있기 때문일까.

사뭇 밋밋한 시스템의 알림창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촬영? 이 동그란 버튼이 촬영 버튼인 건가?’

시안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찰칵.

갑작스러운 소리와 함께 스마트 폰의 화면이 일순간 정지했다.

정확히는 방금 전의 장면이 정지된 상태로 화면에 떠올랐다.

마치 그림을 그려낸 듯, 해당 장면이 그대로 스마트 폰 화면 위에 담겨있엇다.

“오.”

시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위의 그림이 거진 실사와 똑같았으니까.

심지어 그 시간도 거진 찰나와도 같았다.

쉽게 말해 찰나의 순간 해당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과 다름 없었─.

‘잠깐.’

그 순간 시안의 머릿속으로 생각 하나가 번뜩이며 스쳐갔다.

찰나의 순간에 해당 장면을 그려낸다···?

‘이러면···?’

시안은 곧장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방금 전 확인했던 장부를 꺼내어 아무 곳이나 펼쳐들었다.

복잡한 숫자들이 어지러히 적힌 장부.

시안이 스마트 폰을 가져다대자 해당 장면이 똑같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시안은 최대한 장부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조절한 뒤, 가볍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찍힌 사진.

역시나 화면 위로는 장부의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거진 실사와도 같은 모습에 내용 확인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니, 시안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깨끗하게 담겨있었다!

그 순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파이톤이 시안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갑자기 장부를 들춰보는 것이 누가봐도 수상해보였으니까.

하지만.

“아, 별 거 아닙니다.”

시안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들고 계신건 뭡니까?”

파이톤은 스마트 폰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하여.

찰칵.

“아잇, 깜짝이야.”

시안이 무얼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비단 파이톤 뿐만이 아니었다.

파이톤 옆으로 즐비한 행정관들.

그들 또한 시안이 뭘 하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마··· 대륙 전체의 사람들을 데려다 놔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스마트 폰도 스마트 폰이었거니와.

이 사진 촬영이라는 것.

이건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었으니까.

애초에 시안부터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어째, 지난 번의 손전등의 기능과 비슷해보였다.

그러니까 이 스마트 폰이 가진 고유한 기능.

즉, 한 마디로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

사진 촬영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찰칵.

시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대륙에 없다봐도 무방했다.

찰칵. 찰칵.

시안은 대놓고 스마트 폰으로 장부를 찍었다.

휙휙, 빠르게 넘어가는 장부.

그리고 거진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화면에 담기는 사진.

시안은 교묘히 스마트 폰을 조작해 화면의 풍경을 가렸다.

그렇기에 파이톤과 행정관들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안이 장부를 필사한다거나.

혹은 장부를 외운다거나.

그런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휙, 찰칵.

휘릭, 찰칵. 찰칵.

저 속도로 장부를 필사하거나 외운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었으니까.

그냥 장부에서 뭔가 확인할 것이 있나보구나.

단순히 그리 여길 뿐이었다.

해서 행정관들은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음에도.

찰칵.

대놓고 장부가 유출되고 있음에도.

찰칵.

파이톤을 비롯한 행정관들은 시안을 전혀 의심할 수가 없었다.

#

시안은 며칠에 걸쳐 장부의 사진을 찍었고.

끝내 장부의 사진을 모두 찍을 수 있었다.

물론 마음만 먹었다면 하루 안에 모두 찍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안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사진 촬영이 의심을 사지 않는다고는 하나.

하루 종일 장부를 붙잡고 있으면 당연히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해서 시안은 며칠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을 진행했다.

의심을 사지 않을 선에서 장부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하여 스마트 폰에 저장된 사진들.

“엄청 많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하나하나, 손수 그 개수를 세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다행히 스마트 폰의 시스템은 자동으로 그 개수를 세어주었다.

[저장된 이미지 - 4,238장]

무려 4,238장.

이것도 사진 찍는 요령을 터득해서 장부 두 장을 겹쳐 찍은 덕분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배는 그 수는 더했을 터였다.

그리고 사진 1장에 1골드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샤를롯 제국 기준 4인 가족의 1달 생활비가 약 30골드 가량이었다.

즉, 30장을 찍으면 1달 생활비가 그대로 날아가는 격이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이미지는 무려 4,238장.

따라서 소모된 골드 또한 4,238골드.

하지만 시안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내 돈도 아닌데 뭘.”

사진 찍는 비용을 전부 엘란두르의 예산에서 끌어썼으니까!

한 마디로 4,238골드를 횡령한 셈이었다.

하지만 뭐, 딱히 걱정 같은 것은 없었다.

엘란두르의 예산에서 4,238골드는 티끌도 되지 않은 금액이니까.

또한 아무리 예산과 장부를 엄중히 관리한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락되는 금액과 손실되는 재고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발생한다.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당연히 절대적인 양도 늘어나고.

이를 대비해 로스율이라 하여 미리 예산을 남겨둔다.

해서 막대한 엘란두르의 예산인 만큼 로스율 또한 어마어마했다.

기본 수 백만 골드에서 많으면 천만 단위까지.

여기에 4,238골드야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그 횡령이 반복적이고 지속된다면 위험하겠지만.

이렇게 한 번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바일 영주가 깨어나면 본격적으로 횡령을 해야했지만···.”

뭐, 어쨌든.

“이제 이 사진들을 아멜리아한테 보여주면 되는데···.”

아멜리아라면 이 장부들을 보고 비자금이 숨겨진 곳을 알아낼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루벤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단 말이지.”

일단 시안은 현재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있었다.

다름 아닌 듀라크가 특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시안을 부행정관으로 임명하는 한편.

듀라크는 시안이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엄명을 내려두었다.

“감시가 너무 심하단 말이지.”

또한 시안에게 감시까지 붙여둔 상태였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하얀 늑대 기사단이 시안을 감시하고 있었다.

당장 느껴지는 기척만 8명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보다 더 많은 감시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마디로 몰래 저택을 탈출하기란 불가능이라 볼 수 있었다.

꼼짝없이 가문에 발이 묶인 상황.

그런데 뭐.

시안은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둔 상황이었다.

“이제 슬슬, 전하께 연락이 올때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구휼도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장부 사진도 전부 찍었겠다.

시안은 마땅히 할 게 없었다.

“······ 수련이나 하자.”

시안은 곧장 엘란두르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모바일 영주가 기절했다고는 하나.

수련의 진행률이 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시안은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었다.

“너 누구야.”

갑자기 누군가 시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직접적으로 시안을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안은 저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였으니까.

시안은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시안의 시야로 한 여성이 비쳐보였다.

긴 금발의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한 여인.

엘란두르 가문의 둘째이자.

명목상으로나마 시안의 누나되는 로즈웰 엘란두르.

로즈웰이 시안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너 진짜 누구야.”

“시안입니다. 명목상으로나마 누님의 동생되는 사람이죠.”

“그건 나도 알아.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럼 뭘 물으시는 겁니까?”

로즈웰이 잠시 시안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시안의 전신을 훑어봤다.

“내가 아는 시안 엘란두르는 이렇지 않았어. 그 놈은 그냥 병신 찌질이였다고. 지금의 너처럼 절대 유능하지 않았어.”

“그거···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리고 그 말. 저번에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

하지만 로즈웰은 시안의 물음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야. 너. 얼마 전에 어머니한테 대들었다며? 네이슨이 아주 벼르고 있던데. 아무튼 적어도 그 병신이었던 시안은 절대 그런 행동을 못 해.”

로즈웰의 말에 시안은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그러자 로즈웰이 확실하다는 듯 시안에게 물었다.

“너 다른 사람이지.”

“얼굴이 역변할 정도의 시간은 흐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껍데기만 같을 순 있잖아. 그러니까─.”

“다른 영혼이 빙의, 환생. 뭐 그런 걸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시안이 말을 가로채듯 로즈웰의 말을 끊었다.

로즈웰은 그런 시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그리고는 곧장 등을 돌렸다.

하지만.

“확실히 말해. 너 다른 사람이지.”

로즈웰은 그런 시안의 앞을 가로막으며 계속 헛소리를 일삼았다.

그리고 그런 로즈웰의 모습에 시안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나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이건 어릴 적, 로즈웰이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지난 번에도 똑같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어쩐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싶더라니.’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하자.”

아니나 다를까 로즈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왔다.

“안 합니다.”

“뭘 하자는 말도 안 꺼냈는데?”

“뭘 말씀하시든 안 합니다.”

시안은 매몰차게 로즈웰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왜!”

“귀찮으니까요.”

“네가 그러고도 사내 새끼야?”

“누가 봐도 사내입니다만··· 대체 뭘 하자는 건데 사내 타령을 하시는 겁니까?”

시안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로즈웰이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대련! 대련하자는 거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의 로즈웰.

‘왜 저래?’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뭐, 아무튼.

“사내면 꼭 대련을 해야합니까? 그럼 사내 안할렵니다.”

시안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로즈웰이 아랑곳 않고 소리쳤다.

“너 지금 연무장 가는 길 아니야? 연무장 가는 김에─.”

시안은 그대로 휙, 발걸음을 돌아섰다.

“그럴려고 했는데 막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쉬어야겠습니다.”

시안은 연무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

턱, 하고 막히는 로즈웰의 말문.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 돼. 대련하기 전까지는 못 가.”

로즈웰은 시안의 앞길을 계속 막아섰다.

“하아···.”

시안은 또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네이슨과 달리 로즈웰은 끈덕지게 달라붙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게 머릿속에 온통 대련 생각밖에 없는 로즈웰이었다.

여자한테 꽤나 실례인 말이나, 뇌가 근육으로 들어찼나 싶을 정도였다.

‘저러니까 저 나이 먹도록 시집을 못 갔지.’

가문도 빵빵하겠다.

얼굴도 반반하겠다.

로즈웰은 결혼을 하더라도 진즉에 했어야 했거늘.

그럼에도 로즈웰은 결혼은 무슨.

시안이 알기로 남자 한 명 사귀어보지 못했다.

시집은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저 정도로 검에 미쳐야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올라서는 건가 싶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는 분명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였거늘.

지금 로즈웰은 분명한 최상급의 경지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심···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내 수준은 어느 정도지.’

사실 시안은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주변에는 죄다 괴물 같은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일단 시안이 배우는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이 마혼수라검은 다름 아닌 카일의 검술이었다.

천 년전, 세상을 구원한 6인의 아르나이즈.

그 중 최강의 아르나이즈라 불리던 카일.

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지, 엑시드(Exceed) 그 너머에 닿은 자.

아무리 시안이 장족의 성장을 했다 해도.

카일의 발끝조차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주변의 인물들도 평범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당장 시안의 대련 상대인 켄드릭.

켄드릭은 천 년의 데스 나이트이자 무려 마스터 상급의 실력자다.

지금 듀라크와 맞붙여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천 년의 원귀, 레아는 물론.

아스란디즈는 8위계(位界)에 닿았던 대마법사.

‘주변에 정상적인 사람이 없어 어떻게 된 게.’

비교 대상군이 이러하니 시안은 성장을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냥 한 번 붙어볼까?’

그렇기에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엑스퍼트 최상급의 로즈웰.

그런 로즈웰과 붙어보면 시안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시안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로즈웰은 엘란두르의 사람이었다.

굳이 시안이 가진 바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대련이 아니라 생사결을 해야할지도 모르는데 뭘.’

정작 로즈웰은 모르고 있었지만.

시안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너 어차피 저택에 박혀 나갈 수 없잖아.”

시안과는 달리 로즈웰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거랑 제가 누님과 대련하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가문에 틀어박혀서 할 거 없잖아.”

“전혀요. 저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이래봬도 부행정관입니다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무장에 가려 했으면서?”

멈칫, 시안은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몸좀 풀려던 것 뿐이었습니다.”

“연무장에 가려던 건 사실이란 뜻이네?”

“······”

“그럼 나랑─.”

“싫습니다.”

시안은 계속 검을을 옮겼다.

“못 가.”

하지만 로즈웰은 다시 한 번 시안의 앞을 가로 막았다.

평소의 로즈웰이 보이는 행동이었으나.

이번엔 어째, 그 정도가 심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정말 뇌가 대련과 근육으로 들어차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저와의 대련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못 믿겠으니까.”

“예? 뭘 말입니까?”

그러자 로즈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시안을 바라봤다.

평소 답지 않은 로즈웰의 모습.

“새로운 제국의 별 말이야.”

로즈웰이 못 믿겠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너같은 병신 새끼가 새로운 제국의 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 넌 진짜 병신 새끼였는데.”

“······”

그런 로즈웰의 답에 시안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로즈웰에게서 보이는 감정.

그건 꽤나 생소한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샤를롯 제국에서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이는 두 명이었다.

엘란두르의 카이 엘란두르.

로르실트의 파나트 로르실트.

로즈웰이 파나트를 만나봤는지는 모르겠다만.

카이는 저택에 있다보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카이는 로즈웰의 오빠이자 엘란두르 가문의 장자였으니까.

그렇기에 로즈웰은 알고 있었다.

카이가 어째서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카이와 자신 사이의 벽이 얼마나 까마득한지 또한 알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근육으로 가득찬 로즈웰.

카이는 어떻게 보면 로즈웰의 우상이라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카이를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터였다.

그런 와중에 시안이 새로운 제국의 별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물론 아직은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 뿐이다만.

그 자체만으로 말이 안 되었다.

그건 시안과 카이가 동급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로즈웰이 알고 있는 시안은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로즈웰의 기억 속에선, 괴롭힘이나 받고 눈물이나 질질 짜던 병신이었다.

“그러니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왜 네가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지.”

로즈웰은 시안에게 명백한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로즈웰의 모습에 시안은 기분이 꽤나 묘했다.

로즈웰에게 질투를 받아볼 줄은 몰랐으니까.

박살난 재능에 항상 뒤쳐져만 있던 시안.

어렸을 적, 로즈웰은 시안이 언제나 우러러만 보던 존재였다.

엘란두르의 핏줄을 제대로 타고난 이.

20 초반에 불과한 나이에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닿은 기사면 말 다한 수준이었다.

천재 중의 천재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헌데, 그런 로즈웰이 지금 시안을 질투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무시하며 괴롭히던 이를 말이다.

피식.

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이럴 줄은 몰랐다만.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자꾸 이러시면 저 누님의 용돈을 깎아버릴겁니다.”

시안은 여전히 로즈웰과 대련할 생각이 없었다.

움찔.

그러자 로즈웰이 크게 몸을 떨어보였다.

“네가 무슨 권한으로···?”

답을 하는 로즈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그런 로즈웰의 반응에 시안은 잠시 의아했다.

용돈이 그렇게 중요한 가?

뭐, 용돈이 중요하긴 하다만···.

“네, 네 까짓게 어떻게···?”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고?

시안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편,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무슨 권한이냐니요. 방금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부행정관입니다만.”

“그러니까 부행정관 따위가 무슨 권한으로?”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로즈웰이 했던 말.

그건 감히 너따위가? 라는 듯한 기색이 담겨있었으니까.

뭐··· 저런 반응을 보일 수는 있었다.

아무리 부행정관이라한들.

엘란두르의 핏줄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로즈웰의 반응은 조금 이상했다.

얼핏 부행정관을 무시하는 발언처럼 보였지만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부행정관이 자신의 용돈에 결코 관여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으니까.

‘그게 말이 되나?’

듀라크나 이사벨도 아니고.

조금 더 쳐줘서 카이도 아니고.

고작 로즈웰의 용돈 따위를?

“이 자리는 다름 아닌 가주께서 직접 임명해주신 자리입니다만.”

“······”

그러자 로즈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가주라는 말에 별 다른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부행정관은 불가하나 가주는 가능한 일.

뭐, 그건 당연한 일이다만.

‘대체 용돈이 얼마길래 저래?’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행정관은 엘란두르를 관리 및 운영하는 직책이다.

당연히 엘란두르의 핏줄에게 할당되는 예산을 건드릴 권한이 있다.

하지만 권한이 있다하더라도 쉽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엘란두르의 ‘핏줄’이었으니까.

그러나 마땅한 명분과 이유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누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후작령 전체가 흉년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럴 때 엘란두르가 검소하게 모범을 보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너··· 너···.”

“생각해보니 누님의 이미지에도 굉장히 좋을 듯 싶네요. 제가 가서 바로 추진 하겠습니다.”

시안은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너 후회할텐데?”

로즈웰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로즈웰이 묘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있다.’

단순히 용돈이라는, 금액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로즈웰의 용돈.

이 별 거 아닌 것 같은 것에 무언가가 숨어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됐어. 대련 안 할래.”

로즈웰이 저렇게 반응하는 무언의 이유가 있었다.

이윽고 로즈웰이 휙, 하니 자리를 떠나갔다.

“음···.”

시안은 로즈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용돈이라는 말에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는 모습.

아무래도 가서 관련 사항을 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시안은 연무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행정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발걸음조차 시안은 다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띠링!

일순간 품 속에서 들려오는 스마트 폰의 경쾌한 알림음.

뭔가 싶은 것도 잠시.

《모바일 영주우우우~!!! 개같이 두둥등자아앙~!!!!!》

화면 위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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