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위협(1)
이사벨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았으나, 차가운 눈빛은 커너에게 거절의 이유를 묻고 있었다.
“시안님은 현재 저의 영주님이십니다. 저는 영주님을 암살하라는 의뢰는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꽤나 놀라운 일들을 겪는구나.”
이사벨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암흑가의 사냥개에게 충성심이라···.”
암흑가 출신의 특급 암살자.
암흑가의 사냥개에겐 주인이란 개념이 없다.
오직 의뢰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커너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본인 스스로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전 더 이상 암흑가 소속이 아닙니다.”
커너는 더 이상 암흑가 소속의 암살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시안의 노예(?)이자, 루벤의 암살 기술 교관.
“오늘의 대화는 기억에서 지우겠습니다.”
“루벤이 엘란두르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이어진 이사벨의 말에 커너는 잠시 몸을 멈칫거렸다.
현재 루벤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예전의 루벤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루벤을 대적할 자는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엘란두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엘란두르.
루벤이 엘란두르를 대적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림자 달의 길드장이 꽤나 당돌한 짓을 벌였더군.”
우뚝.
그 순간 커너의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바라본 시선.
이사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차분히 말을 이었다.
“엘란두르의 의뢰를 실패한 것도 모자라 잠적을 해버렸더군.”
그 말을 끝으로 이사벨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사벨이 말한 엘란두르의 의뢰.
커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암흑가를 지배하는 그림자 달 길드.
그곳은 예전 커너가 활동했던 길드였다.
그리고 커너는 그곳에서 한 가지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시안을 암살하라는 의뢰.
그 때문에 현재 루벤의 노예로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뭐, 아무튼.
당시의 커너는 별 의문 없이 의뢰를 받아들었다.
암흑가의 사냥개에겐 오직 의뢰만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여, 의뢰인이 누구인지.
또 왜 그런 의뢰를 해온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커너는 그때 받았던 의뢰와 똑같은 의뢰를 제안받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건 한 가지.
그때는 의뢰인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의뢰인이 눈앞에 있다는 것.
하지만 정말··· 달라진 것일까?
“······ 설마 그때 의뢰인도 부인이셨습니까.”
이사벨은 그에 따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커너는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시안을 암살하고자 의뢰를 한 것도 이사벨이다.
그리고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
그녀는 이사벨의 의뢰를 받아 자신에게 위임했던 것이고.
그러나 커너가 의뢰에 실패하고 돌아오지 않자.
그림자 달 또한 그 이후로 잠적을 한 듯 싶었다.
자세한 이유는 커너도 알지 못했다.
커너는 그 이후로 루벤에서 감금되다시피 했었으니까.
다이애나가 상황에 따른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
그러나 결국은 엘란두르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었다.
임무를 실패하고, 잠적까지 한 것이니 말이다.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의 최후는 정해져있는 법. 하물며 그 주인을 물어뜯은 개라면···.”
아무리 암흑가를 휘어잡은 그림자 달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어둠 속에 숨어사는 이들이라고는 하나.
엘란두르 앞에서는 안된다.
이사벨이 마음만 먹으면 그림자 달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이사벨은 찻잔을 가볍게 들어보였다.
“너는 더 이상 암흑가 소속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는 찻잔을 한 번 홀짝거렸다.
“······”
커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사벨의 말마따나 커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커너는 더 이상 암흑가 소속이 아니었으니까.
전에 몸을 담았던 길드라는 명분은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암흑가의 사냥개에겐 주인이란 개념이 없었으니까.
은혜라고는 모르는 개새끼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개새끼라 한들.
“듣자하니 그림자 달의 길드장이 너를 거두어 주었다고 들었는데.”
거두어 준 은혜마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과거 어린 시절.
커너는 뒷골목을 전전하며 하루를 연명하던 때가 있었다.
혼자 살아가기엔 커너는 너무도 어렸고.
그런 어린 커너에게 암흑가는 너무도 험한 지역이었다.
살인은 고사하고 고문, 강간, 납치.
창의적인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놈들의 구역.
그러면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으니.
그야말로 짐승.
심히 개새끼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놈들이 들끓는 곳이었다.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는 그런 개새끼들이 날뛰는 암흑가에 단신의 몸으로 들어왔다.
신분도, 출신도 모를 정체 불명의 여인.
그러나 그녀는 홀로 광기에 미쳐있는 개새끼들을 모조리 짓밟았고.
혼돈으로 가득찬 암흑가에 ‘규칙’ 이라는 것을 부여했으며.
끝내 암흑가의 정점에 올라선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리하여 커너가 암흑가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준 인물이었다.
또한 커너로 하여금 살아갈 힘과 기술들을 알려주었다.
물론 다이애나가 커너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커너가 복귀하지 않은 시점에서 시안을 죽이려 들었겠지.
다이애나는 그냥 커너와 같은 어린 이들을 많이 거두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커너는 그렇게 거두어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중 특출난 재능을 보였던 것 뿐이었고.
아무튼 다이애나는 커너를 그리 특별히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다이애나가 커너를 거두어준 은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커너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커너의 시선으로 정체 모를 독약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그 옆에 놓인 200만 골드의 전표까지도.
커너는 이 의뢰를 받을 수 없었다.
커너에게 루벤은··· 너무도 특별했다.
그리고 루벤에 시안은 반드시 필요했다.
애초에 커너는 그날 결심했다.
지난 날, 황녀의 방문에서 있었던 일.
한낱 개새끼를 위해 나서주었던 루벤의 사람들.
그리고 한낱 개새끼를 위해, 황녀와 로열 나이츠들에게 일침을 가했던 시안.
한평생 루벤을 위해, 시안을 위해 살아가기로 커너는 결심했다.
그렇기에 이대로 자리를 떠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떠나면···.
그림자 달 길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반드시 죽는다.
“선택하거라.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주도록 하마.”
이사벨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입을 열지 않았다.
내려앉는 침묵.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저는···.”
커너가 끝내 입을 열었다.
#
얼추 루벤의 상황이 정리된 지금.
시안은 영주성을 나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도달한 이곳.
시야가 탁, 트이는 넓디 넓은 평원은 루벤의 중심부라 부를 수 있는 장소였다.
이번에 시안이 구역 확장을 통해 확장한 곳이기도 했고.
한 마디로 1백만 골드짜리 땅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안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이 인스티즈만 심으면 되려나.”
다름 아닌 인스티즈(Instiz)때문이었다.
엘로디가 살아생전 쓰던 지팡이이자.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세계수인 인스티즈.
시안은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곧 주먹보다 조금 큰 씨앗이 시안의 손에 딸려 나왔다.
“그냥 심어도 되려나?”
시안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 세계수를 이렇게 막 심어도 되는건가? 싶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지난 날, 모바일 영주의 말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스토리 퀘스트에서 모바일 영주는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인스티즈 안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인스티즈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 시안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음···.”
시안은 고민했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인스티즈가 다름 아닌 퀘스트의 ‘보상’ 이었으니까.
“그래도 엘로디가 남긴 유산인데. 뭔 일 있을라고.”
설마하니 보상으로 위험한 물건을 주지는 않았을테니까.
결심을 굳힌 시안은 곧장 검을 뽑아들었다.
이윽고 SSS등급의 검이 매끄럽게 뽑혀나왔고.
시안은 망설임 없이 검을 바닥으로 내리 꽂았다.
그리고 역시 SSS등급의 검인 걸까.
팍.
마치 두부가 갈리듯, 검이 땅 깊숙히 박혔다.
“암. 여기에 지른 돈이 얼만데.”
현질 내역에 따르면 자그마치 1,300만 골드였다.
그 돈으로 이깟 땅 하나 못 판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물론 그 용도가 다르긴 하다만.
팍. 팍.
금방 인스티즈가 들어갈 정도의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시안은 구덩이 안에 인스티즈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물이라도 뿌려줘야하나?”
에이, 명색의 세계수이니 알아서 자라겠지.
시안은 손으로 주변의 흙을 끌어모아 단단히 덮었다.
그렇게 인스티즈가 흙으로 모두 덮인 바로 그때.
띠링!
스마트 폰으로 경쾌한 알림음이 터져나왔다.
〈세계수, 인스티즈(Instiz)가 영지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화아아아악!
돌연 인스티즈를 묻은 땅 속에서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쑤우욱, 무언가가 땅 속에서 솟아나왔다.
초록 빛깔의 새싹 줄기.
줄기는 순식간에 자라나 시안의 눈높이 만큼 솟아올랐다.
그리고.
〈영지 전역으로 세계수가 갖는 생명의 힘이 퍼져나갑니다.〉
〈지금부터 영지에 ‘세계수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수많은 알림창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세계수의 축복]
〈영지 내, 모든 생명체들의 성장 속도가 +8,000% 상승합니다.〉
〈영지 내, 모든 생명체들의 회복 속도가 +7,000% 상승합니다.〉
〈영지 내, 모든 생명 탄생의 확률이 +150% 상승합니다.〉
〈영지 내, 모든 생명체들의 기대 수명이 +20% 증가합니다.〉
〈영지 내, 병충해들이 사라집니다.〉
〈영지 내, 생명체들이 받는 모든 해로운 효과가 -80% 감소합니다.〉
〈영지 내, 생산 속도가 +1,000% 상승합니다.〉
.
.
.
“미친···!”
시안의 입에서 절로 말이 새어나왔다.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주르륵, 떠오른 알림창.
이건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지 않은가!
영지 내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버프 효과.
말 그대로 생명의 근원에 대한 힘.
시안은 바닥에 놓인 SSS등급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반대편 손바닥에 살짝 내리그었다.
사악, 하는 소름끼치는 느낌과 함께 손바닥이 베였다.
그와 동시에 붉은 선혈이 시안의 손바닥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르륵.
벌어진 상처가 아물며 흐르던 피가 뚝, 하니 그쳤다.
그리고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세계수의 축복, 회복속도 +7,000%의 효과.
“견습 사제의 치유 능력 수준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신설한 ‘신의(神醫) 치료원 Lv.5’.
그리고 엘리의 뛰어난 치료 솜씨까지 더하면···.
정말 죽지만 않는다면 모두 살려낼 수 있었다.
거기에 영지의 모든 병충해는 물론이요.
모든 해로운 효과가 -80%가 감소된다.
말 그대로 모든 해로운 효과.
저주와 독(毒)과 같은 해로운 효과가 -80% 감소되는 것이었다.
“미친···!!”
이건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인스티즈가 새로운 보금자리에 크게 만족합니다.〉
〈최적의 위치에 따른 추가 효과가 부여됩니다.〉
루벤 전체를 갈아 엎으면서까지 선정한 인스티즈의 위치.
그 돈지랄··· 아니, 현질에 따른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띠링!
〈생명과 마나의 근원이 영지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영지 전체의 마나의 농도가 +100% 짙어집니다.〉
띠링!
〈인스티즈가 영지 주변의 마기를 인지하여 정화를 시도합니다.〉
〈마기 속에 깃든 광기에 잠식될 확률이 급감합니다.〉
.
.
.
“와···!”
시안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이걸 어떻게 소리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일단 마나의 농도가 +100% 짙어진다는 효과.
“흐으읍···!”
시안은 크게 호흡을 들이쉬어보았다.
그러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속으로 빨려들어왔다.
어딘가 청명한 기운이 드는 것도 잠시.
시안은 공기 속에서 선명한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약하나 체내에 쌓여갔다.
“마나가 쌓여···?”
쉽게 말해 숨만 들이쉬는 것에 불과할진대.
마력이 쌓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거기에 그 기운 또한 순수한 마(魔)와 비슷했다.
물론 어둠의 숲에서 끌어온 마나이니, 마(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기운이 사뭇 달랐다.
마치 마혼제법의 정화 과정을 조금 진행한 기운.
쉽게 말해 순수한 마(魔)의 기운과 상당히 유사했다.
〈인스티즈가 영지 주변의 마기를 인지하여 정화를 시도합니다.〉
〈마기 속에 깃든 광기에 잠식될 확률이 급감합니다.〉
아무래도 인스티즈가 마(魔)를 정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면··· 다크 엘프들에게도 좋았다.
광기에 빠질 일 없는 순수한 마(魔)를 다룰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심지어.
〈’세계수의 축복’ 효과는 인스티즈의 성장에 따라 증폭됩니다.〉
이 모든 효과가 인스티즈의 성장에 따라 증폭되었다.
“미친!!”
그야말로 미친 효과라 할 수 있었다.
“아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후회했었다.
3,200만에 달하는 끔찍한 돈.
그 돈을 모조리 투자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완전히 갈아엎을 필요가 있었을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만 수정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시안은 방금 전까지도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보이는 이 인스티즈.
루벤 전체를 갈아 엎으면서까지 최적의 위치에 심은 이 인스티즈.
이 인스티즈 하나만으로도 루벤을 재개발한 값어치가 있었다.
“아아아···!”
시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로 그때.
“시안이다.”
한쪽 어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세라가 신기한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춤추는 거야?”
세라는 시안을 보며 배시시, 미소 지어보였다.
“나도 가르쳐줘.”
그러면서 세라가 시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우뚝, 세라의 걸음이 돌연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시안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봤다.
“인스티즈?”
이내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인스티즈는 현재 시안의 키 정도로 자라난 나무의 모습이었다.
한 마디로 겉보기로는 평범한 나무에 지나지 않은 모습.
그런데 세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 때문일까.
“인스티즈다.”
세라는 인스티즈의 존재를 곧바로 알아챘다.
세라는 시안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인스티즈 앞에 서보였다.
그리고는 인스티즈 앞으로 손을 뻗어보였다.
살며시 감은 두 눈.
마치 인스티즈와 교감을 하려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그 순간.
쑤우우욱.
갑자기 인스티즈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거진 1.5배는 커진 듯한 모습.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 폰에서 띠링! 알림음이 들려왔다.
〈다크 엘프의 존재에 인스티즈가 크게 기뻐합니다.〉
〈인스티즈의 성장 속도가 +30% 증가합니다.〉
〈’세계수의 축복’의 모든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엘프는 숲을 키우고, 숲은 엘프를 키운다고 했던가.
다크 엘프의 존재를 인지한 것만으로도 인스티즈가 급성장을 하고 있었다.
‘음··· 다크 엘프가 아니라 세라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세라를 대하는 인스티즈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으니까.
쑤욱.
자라난 인스티즈의 줄기가 세라의 몸을 가볍게 휘감았다.
마치 오랜 벗에게, 익숙한 친우에게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
“꺄하핫! 간지러!”
그런 인스티즈의 장난에 세라가 꺄르르,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안.
“크흠.”
시안은 살며시 시선을 돌렸다.
인스티즈의 줄기에 휘감겨 놀고 있는 세라의 모습.
그 모습이 조금··· 그랬으니까.
그런 시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라는 꺄르르, 거리며 인스티즈와 놀고 있었다.
“음···.”
저게 저렇게 좋은 걸까.
보기엔 그냥 나무인데.
역시 세계수에 대한 사랑은 엘프 종족에 뿌리 박힌 정체성인걸까.
“그렇게 좋아?”
“응! 인스티즈 좋아! 또 새로운 집도 좋아!”
시안의 물음에 세라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해왔다.
“그래, 뭐···.”
좋다니 다행이지.
아니, 저렇게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쏟아부은 돈이 자그마치 3,100만 골드가 넘었으니까!
“하아···.”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그 있지···.”
갑자기 세라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어째서일까.
세라는 왜인지 슬금슬금, 시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시안이 제일 좋아!”
세라가 배시시, 웃으며 소리쳤다.
그런 세라의 모습에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방금 전, 시안이 내뱉은 한숨.
시안만 쏙 빼놓고 인스티즈와 새로운 집만 좋다고 해서 시안이 삐쳐버린 것으로 이해한 듯 싶었다.
“그래. 고맙다.”
시안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때서야 세라가 안심하며 다시금 인스티즈와 놀기 시작했다.
“꺄하핫!”
인스티즈와 함께 꺄르르, 웃는 세라의 모습.
그런 세라의 모습 때문일까.
‘뭐, 현질한 보람은 있네.’
증발한 골드에 대한 증오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엘로디의 탐구> 개방 비용 - 500,000 G』
“골드가 얼마 남아있더라···.”
많이는 아니고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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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재개발 된 루벤.
완전히 탈바꿈한 주거 시설부터.
거리에 보이는 다크 엘프들까지.
영지 자체가 싸그리 뒤엎어지면서 루벤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영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다크 엘프들의 생활 구역이 단연 인기였다.
그들의 특이한 생활 방식은 인간과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숲을 가꾸며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그들.
그들의 생활은 특히나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리 오늘도 엘린네 농장에서 놀자!”
“찬성! 찬성!”
“좋아! 오늘은 무지개 벚꽃을 보여줄게!”
인간과 드워프 그리고 다크 엘프의 아이들은 별 다른 위화감 없이 서로 어우러져갔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인연은 곧 부모들끼리의 인연으로도 이어지는 법.
“저희 아이가 매번 신세만 지네요.”
“아니야. 우리도 엘린이 저리 좋아하니까 좋은걸.”
“이거··· 별 거 아니지만.”
“우와! 이거 푸른 이끼잖아!
“저번에 우리 이이가 상행 호위를 나섰다가 구해왔어요.”
“고마워! 이렇게 된 거 우리 다같이 먹자. 내가 차를 준비해올게!”
“호호···. 저, 저는 차만 마실게요.”
다크 엘프들의 생활 지역은 루벤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루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구역을 꼽으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다름 아닌 ‘경이로운 레스토랑 Lv.5’.
기존에도 다나의 놀라운 요리 솜씨로 기적의 맛을 선사하던 레스토랑이었다.
황녀인 엘레나 마저 다나가 구운 다과를 맛보고는 황궁의 음식을 쓰레기다, 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레스토랑이 이번 재개발로 Lv.5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처, 천국이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야!”
“내 삶의 이유야··· 이 음식이 바로 내 삶의 이유라고···!”
증폭된 그 맛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고.
이는 다크 엘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활 방식과 더불어 인간들과는 식습관도 완전히 다른 다크 엘프들.
“이, 이건··· 은행나무 줄기무침···!”
“맛있어···! 너무 맛있어···!”
그러나 다나는 훌륭히 다크 엘프들의 입맛을 맞춰주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건데,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네요.”
“입에 맞는 정도가 아니야! 이건 정말 최고라고!”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루벤에서 가장 북적이고 뜨거운 곳은, 역시나 다나의 ‘경이로운 레스토랑 Lv.5’라 할 수 있었다.
따스한 온기가 넘치는 식당.
오늘도 어김없이 북적거리는 식당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몸은 고되어도 다나는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따스한 밥을 해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번에 영지민이 된 다크 엘프들 때문이었다.
다나의 아들, 제리는 루벤에서 마도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벤에서 마도학자는 오직 제리 한 명.
때문에 제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소에 틀어박혀있었다.
하루라도 다크 써클이 지워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영주님을 위한다고 쉬지 않던 제리였다.
다나는 그런 제리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영지민이 된 다크 엘프들.
그들이 제리의 조수로 합류하면서 제리도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맛있게들 드시고 우리 제리, 잘 부탁드려요!”
다나는 다크 엘프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뿐이었다.
“물론이징! 걱정 말라공!”
“제리는 대단한 친구인걸! 되려 우리가 배워야 해!”
다나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다크 엘프들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듣자하니 다크 엘프들도 많은 아픔을 갖고 있다 들었었다.
그러나 그런 아픔에도 저리 밝은 웃음을 짓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참··· 고마우신 분이지.”
다나는 자연스레 시안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시안이 아니었다면 다크 엘프들은 어찌 되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자신과 제리는 어찌 되었을까.
병마에 괴로워하던 자신을 위해 성녀의 호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해준 시안.
시안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었을까.
지금의 루벤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다나는 차분히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마시써! 너무 마시써!”
“야이 새끼야! 입에 있는 거 다 쳐먹고 말해! 다 튀잖아!”
사람들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음식이 튀어써?! 어디?! 어디?!?”
“에라, 이 미친 새끼야! 그걸 왜 주워먹어!”
“푸하하하하하!”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풍경.
그렇기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풍경.
루벤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나가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제리가 마도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것도.
모두 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마우신 분이야.’
다나는 시안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다나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다나가 시안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뿐이었으니까.
다나는 차분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때였다.
“혹시, 여유가 있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누군가 다나를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커너 교관님?”
그곳엔 다름 아닌 커너가 서 있었다.
루벤에서 병사들에게 암살 기술을 가르쳐주는 커너.
“부탁이라 하심은···?”
“영주님이 좋아하실 만한 음식을 만들어주실 수 있소?”
“영주님이요?”
커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답했다.
“지금 영주님을 뵈러 가는 길인데, 빈손으로 가기는 뭐한지라···.”
“아.”
다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바쁘시면 괜찮소.”
그리고 이어진 커너의 말에 다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당히 바쁜 건 맞았다.
지금 당장도 식당 밖에 사람들이 줄줄이 줄을 서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니요. 그 정도 시간은 있어요.”
다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시안을 위한 음식이라지 않은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할 일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다나는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다나를 바라보던 커너.
커너는 다나를 기다릴 겸, 잠시 식당 밖으로 나갔다.
“어. 커너 교관님 아니십니까.”
“며칠 전부터 안 보이시던데.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커너의 모습을 알아본 루벤의 병사들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커너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교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병사들이 의아해했으나 커너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커너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영주성의 모습.
“······”
영주성을 바라보는 커너의 표정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