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버그의 루벤(2)
띠링! 띠링! 띠리링!
끊임없이 들려오는 스마트 폰의 알림음과 알림창.
그러나 시안은 그 내용을 확인할 새도 없이 현질을 이어나갔다.
《특급 병사 훈련소 Lv.5》 (60,000G)
《특급 특수 병과 훈련소 Lv.5》 (50,000G)
꾸구구구구구국.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시안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기존에 있던 루벤의 시설을 싸그리 철거하면서 그 자리를 새로이 매꾸었다.
《마천루 마탑 Lv.5》 (1,000,000 G)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다크 엘프들.
뛰어난 마법사인 그들을 위한 마탑도 새로이 신설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와 함께 들려오는 모바일 영주의 절규.
이제는 구매 완료라는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절규 어린 비명만 내지를 뿐이었다.
《은혜의 농지 Lv.5》 (50,000G)
《드넓은 농업용 창고 Lv.5》 (20,000G)
《풍요의 과수원 Lv.5》(30,000G)
심지어 이번엔 무려 Lv.5의 건물들이었다.
기존의 Lv.4 시설들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시설.
이왕 새로 짓는 것, 시안은 업그레이드까지 가미했다.
물론 가격이 Lv.4에 비해 거진 배로 들어갔지만.
꾸구구구구국!
시안은 거침이 없었다.
《그, 그만둬요오오오오!!!!!》
《홍염의 대장간 Lv.5》 (80,000G)
《고대 병기 제작소 Lv.5》 (50,000G)
《불꽃의 제빵소 Lv.5》 (25,000G)
꾸구구구국.
《꾸아아아아아아악!!!》
모바일 영주는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처럼 소리쳐왔다.
그런 모바일 영주와 함께 골드 또한 까무러칠 것처럼 사라져갔다.
밑독이 박살난 항아리처럼 골드가 증발해나갔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면 안된다.
생각해서도 안된다.
신경을 쓰는 순간.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순간.
그리하여 골드가 소모되는 광경을 인지하는 그 순간!
필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깐의 틈을 발생시킬테지.
그 틈은 모바일 영주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
그러면 모바일 영주에게 부담된 인과가 얼추 정리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몰아쳐야한다.
단 한 순간의 휴식기를 가질 수 없도록.
《술술 넘어가! 양조장 Lv.5》 (40,000G)
《광활한 마수 목장 Lv.5》 (40,000G)
《포근한 축사 Lv.5》 (25,000G)
꾸구구구구구구국.
《다시는 깐족거리지 않을게요! 다시는 안 깐족거릴께요!!》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허용하지 않도록.
《경이로운 레스토랑 Lv.5》 (30,000G)
《슝슝! 벽돌길 Lv.5》 (100m당 3,000G)
끊임없이 몰아쳐야한다.
《잘못해써요! 제가 잘못해써요오오오오!!!》
꾸구구구구구구구구국.
시안은 생각과 잡념을 끊어내며 스마트 폰의 화면을 터치했다.
그에 따라 모바일 영주의 비명 또한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정지된 생각과 사고의 흐름.
시안은 정확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가 없었다.
다만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끊어지는 듯한 통증.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얼추 보이는 루벤의 전경.
그것이 새로운 청사진의 모습 대로 갖추어지고 있다는 정도.
《히힛!》
그리고 기이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정도만 인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퍼뜩.
평소와 다른 모바일 영주의 모습에 정신이 들었다.
그와 함께 화면을 터치하던 검지 손가락 또한 우뚝, 멈췄다.
《하핫!》
‘웃···어?’
기절하는 것이 아니라?
시안의 심장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히히힛!》
진짜로 웃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웃음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오류를 일으킨 게 아닐까 싶은 뉘앙스였다.
아니, 이건 오류를 일으켰다기보다는···.
《히히히힛!》
어째, 맛탱이가 가버린 듯 싶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히히히히히히힛!!》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현질에 정신이 나가버린 것일까.
《히힛! 히히힛!》
모바일 영주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웃어대기 시작했다.
《히히히히히히히힛!》
웃음에서는 일종의 광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 화면 너머로 모바일 영주의 광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끝내.
《어디 한 번, 계속 현질해봐요~!》
띠링!
《기절해버리면~ 그만이에요~♪》
깨꼬닥.
스마트 폰에서 웬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픽.
화면이 꺼져버렸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사상 초유의 인과 폭주 감지.]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모바일 영주를 종료합니다.]
검은 화면 위로 시스템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후우···!”
시안은 그때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길래 실패한 건가 싶었다.
기절시킨 것이 아니라 정신을 미치게 만들어버린 것인 줄 알았다.
과도한 정신적 고통은 기절이라는 반응을 유도하지만.
때로는 대상자의 정신을 미치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방금 모바일 영주도 그런 종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긴급 점검이 진행 중 입니다. 점검 동안에는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점검 내용: 인과 안정화 및 정신 치료.]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긴급 점검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뭐, 점검 내용이 심히 의뭉스러웠으나.
“후우···!”
시안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점검을 유도한 것은 확실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멈춰있던 사고의 흐름이 돌아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밀려있던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시안은 황급히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632,300 G.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건 말이 안 되었으니까.
아니, 정말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시안이 가지고 있던 골드는 무려 3,200만에 달했다.
그런데 설마하니 63만 골드밖에 안 남아있으려고.
정확히는 63만 2천 3백 골드.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리고 아마 잘못된 건 시안의 눈일 터.
어쩌면 시안의 머리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 막 돌아온 사고의 흐름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 반대인가? 뭐, 아무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인벤토리의 골드를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632,300 G.
우뚝.
시안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바뀌지 않은 인벤토리의 금액.
63만 2천 3백 골드.
그리하여 사라진 금액 3,118만 7천 7백 골드.
시안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며 그 짧은 순간에 계산을 끝마쳤다.
보아하니 머리는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즉.
“3,118만 7천 7백 골드가 증발했다···?”
무려 4인 가족이 11만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
그 금액이 불과 몇 분만에 증발···해버렸다고···?
“버그··· 걸렸나?”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모바일 영주가 말하던 버그가 이걸 의미하는 건가?
이건 버그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데?
시안은 눈을 한 번 비비적거렸다.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632,300 G.
그럼에도 숫자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찰싹.
시안은 자신의 뺨을 한 번 때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인벤토리의 금액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632,300 G.
털썩.
시안이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시안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집무실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안.
그리고 검은 화면의 스마트 폰.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람들.
세미르, 아스란디즈, 루카스, 아멜리아, 그레이슨, 레아, 켄드릭···.
“······”
“······”
“······”
-······
-······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멍한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꽈르르르르릉!
콰콰콰쾅!
쿠르르르르릉!!
창 밖으로는 루벤 전역이 싸그리 뒤집어 엎어지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경이로운 풍경.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일순간 꺼져버린 스마트 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사상 초유의 인과 폭주로 점검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시간의 점검으로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긴급 점검으로 인한 보상을 안내해드리오니, 이용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점검 전에 구매하신 모든 시설 및 연구에 대한 즉시 완료권.》
.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폭풍이··· 루벤 전역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루벤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버렸다.
아니, 이번엔 발칵, 뒤집혔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이, 이, 이, 이게!!”
“말도··· 말도···!”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영지민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가시지 않는 충격에 사람들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솜털이 곧두서며 전율이 이는 광경.
저게··· 정녕 현실인 것일까?
웅장하다못해 장엄하고 또 황홀한 루벤의 자태는 도무지 현실이라 믿기 힘들었다.
물론 그간 루벤의 영지민들은 이런 비슷한 광경을 경험한 바 있었다.
격동하는 루벤.
몸단장하는 루벤.
진화하는 루벤.
온갖 말도 안되는 루벤의 모습을 지켜봐왔다.
그렇기에 이제는 크게 놀라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어, 어억..!”
“저, 저게 무슨···!”
이번 재개발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루벤의 변화를 처음 목도한 다크 엘프들.
“히이익..!”
“대, 대마법···! 이건 대마법이야!”
“아니, 이건 초월 마법이야!”
다크 엘프들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뛰어난 마법의 종족인 다크 엘프들.
저것이 마법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닿은 마법사가 시전한 것일까.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이자 전 숲지기, 아스란디즈.
아스란디즈가 힘을 잃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스란디즈에게로 향했다.
“무, 무, 무슨···!”
하지만 횡설수설하고 있는 아스란디즈의 모습에 금방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아스란디즈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존하는 그 어떤 마법사도 불가능하다.
아마 천 년전,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인 엘로디.
10위계(位界)에 닿았던 대마도사이자.
엑시드(Exceed) 경지의 그녀 정도는 되어야 가능성을 논할 수 있었다.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 드워프 그리고 다크 엘프까지.
“맙소사···.”
“이런 경이로운 건축물을 단숨에···!”
“이건 신의 마법이야···!”
루벤의 모든 영지민들이 경이로운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오직.
“하아···.”
시안만이 영주성 한 켠, 집무실 의자에 앉아 짙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재개발이 끝난 루벤은 경이로울 정도의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모바일 영주와의 현질 대결.
그 끝에 모바일 영주의 긴급 점검을 이끌어내어 즉시 완료권을 쟁취할 수 있엇다.
“하아···.”
그러나 시안은 새어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 없었다.
증발해린 3,118만 7천 7백 골드.
그리하여 사라져버린 11만 년.
이걸···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그냥 즉시 완료권을 구매한 수준 아닌가?
“······ 젠장.”
시안은 말을 씹듯이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이 한 순간에 증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많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못해 끔찍한 금액이었다!
“뭐, 직접 현질을 한 건 나이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아···.”
시안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마 평소였다면 점검이고, 나발이고, 염병이고.
그대로 스마트 폰을 집어 던졌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숨만 내뱉고 있는 이유.
그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루벤의 풍경 때문이었다.
농지, 창고, 과수원, 대장간 등.
각종 생활 시설 및 생산 시설들.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각종 군사 시설들.
각기 종족의 생활 방식에 맞춘 완벽한 주거 시설까지.
세미르가 밤샘 작업을 통해 재편성한 루벤의 청사진.
그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지금 루벤 안으로 펼쳐져있었다.
“꺄하하! 나 좀 봐봐! 나 여기 매달려있다!”
“신기해! 어떻게 이런 집이 있는거지?”
“구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가 살던 집이랑 똑같애!”
집무실 밖 창문.
그곳엔 다크 엘프들이 새로운 주거 시설 사이를 누비며 뛰놀고 있었다.
“여기 봐! 이쪽에 이끼 농장도 있어!”
“여긴 물푸레 연못까지!”
“나 여기 너무 마음에 들어!”
보아하니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저건 다행이네.”
시안은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존 엘프들의 생활 방식에 맞춘 특별한 주거 시설.
『[포근한 떡갈나무 Lv.5 (10채당 200,000G)』
높디 높은 떡갈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
저 주거 시설 짓는다고 평소의 3배의 골드를 쏟아부었다.
거기에 루벤 전체를 완전히 드러내면서 인간과 드워프.
그들의 생활 방식에도 피해가 가지 않게 잘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이로써 엘프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간과 드워프들 또한 그런 엘프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3종족이 각자의 개성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영지.
“여기 너무너무 좋아!”
“우리 이사 잘한 거 같아!”
띠링!
〈다크 엘프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급상승합니다.〉
〈다크 엘프들의 만족도가 Max에 도달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크 엘프들의 만족도가 순식간에 증가해버렸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들은 매번 우리를 경멸하기만 했는데···.”
게다가 다크 엘프들은 이 환경을 만들어준 시안에 대한 감사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숲지기님 최고!”
“나도 새로운 숲지기님 좋아!”
띠링!
〈다크 엘프들은 당신을 진정한 숲지기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어떤 명령이라도 수행할 것입니다.〉
〈다크 엘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다크 엘프들은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든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우후죽순 떠오르는 알림창.
헌데, 모바일 영주가 기절했기 때문일까.
떠오른 시스템의 알림창이 조금은 밋밋했다.
아마 모바일 영주였다면···.
《세상에나! 세상에나아아!!!》
이런 알림창을 시작으로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을 모조리 긁어모아 떨어댔을텐데.
그 깐족거림을 볼 때는 그렇게 열받을 수가 없었거늘.
막상 없으니 기분이 상당히 섭섭했다.
띠링!
〈업적: ‘영지민이··· 말대꾸?’ 달성!〉
〈달성 조건: 3종족 이상의 영지민에 대한 만족도 및 충성도 Max 달성.〉
일순간 업적이 달성되었다는 알림창이 새로이 떠올랐다.
그런데 달성된 업적이 참···.
‘하여간···.’
하루도 제정신인 적이 없었던 모바일 영주.
모바일 영주가 기절했어도 그건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때.
띠링!
〈업적 달성 보상: 【영지 시설】 항목의 전품목 -2% 할인.〉
업적 달성에 대한 보상이 떠올랐다.
“오, 괜찮은데?”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꽤나 좋았다.
요즘 건물들의 레벨이 높아지는 바람에 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끽해야 1천 골드, 2천 골드 하던 건물들이 지금은 기본 수 만골드를 호가했다.
그럼 대충 1만 골드만 계산해도 2%면··· 200골드.
10개만 지어도 무려 2,000골드나 절약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번에 현질한 약 3,100만 골드까지 확장시키면··· 무려 62만 골드.
“······ 빨리 좀 주지.”
그래도 뭐···.
앞으로 현질할 것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준 게 어디냐.”
시안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어쨌든.
루벤 전역을 드러내어 현질을 한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야호! 이거 봐! 떡갈나무 미끄럼틀이다!”
“재밌어보여···.”
“이리 와! 같이 타자!”
“정말? 우리도 타도 돼?”
“그럼!”
다크 엘프들과 영지민들이 저렇게 좋아하니 그걸로 다행이었다.
편견없이, 선입견 없이 잘 동화가 되는 모습.
영주성에서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시안은 증발한 돈에 대한 울화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시설 관리 및 유지 비용 청구서가 도착했습니다.〉
〈청구 금액 - 113,270 G〉
〈청구 금액을 터치하시면 상세 내역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젠장할.”
많이는 아니고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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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보고 영주님을 암살하라는 겁니까?”
커너는 자신이 이해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암흑가, 베네르 출신의 암살자이자.
그림자 달 소속의 특급 암살자 커너.
그러나 지금은 루벤에서 암살 교관을 역임하고 있는 커너였다.
“내 말을 잘못 이해했나 보구나. 그저 너는 이 약을 시안에게 먹이면 된다.”
그게 그 소리 아닙니까?
커너는 내뱉으려던 말을 꾹, 눌러 삼켰다.
특급 암살자로서 수많은 의뢰를 해온 커너.
커너는 저것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좋게 말하면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요.
적나라하게 말하면 꼬리 자르기였다.
그러니까 나중에 걸려도 나몰라라 하기 위해서.
난 그런 의뢰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체로 귀족들이 이런 식으로 의뢰를 많이 해왔다.
그것도 유명한 귀족가 출신들의 귀족들이 그러했다.
하여, 지금 커너 앞에 있는 존재.
“설마하니 내가 자식을 죽이겠느냐.”
이사벨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안주인이자 시안의 명목상의 어머니 되는 존재였다.
한 마디로 지금 상황은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의뢰인 격.
“······”
그러나 커너는 그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시안 엘란두르와 이사벨 엘란두르..
제국에서 이 둘의 관계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으니까.
명목상으로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
그러나 실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앙숙인 관계.
조금 더 정확히는 이사벨이 일방적으로 시안을 물어뜯고자 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탐탁치 않아하는 정도였다.
그저 시안이 이사벨의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 뿐이었다.
그러다 시안이 어디서 객사하면 그걸로 좋을 일.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정도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렇게 직접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아랫것들이 충성심이라는 핑계로 움직인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이사벨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
“얼마 전, 북부의 사건 때문입니까?”
시안이 새로운 제국의 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한 사건.
그동안 시안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내였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그저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의 사건 이후로 시안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제국의 별.
무슨 이야기가 더 필요할까.
“언제부터 암흑가에서 의뢰에 관한 질문을 허용했었지?”
이사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커너의 말을 일축했다.
그리고 그런 이사벨의 모습에서 커너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이사벨은 시안을 경계하고 있다.
자신의 입지를.
또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입지를.
시안이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아하니 엘란두르 가문 내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한 듯 싶었다.
두각을 드러내는 시안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마···.
결정타로 듀라크가 무언가 행동을 보였겠지.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했다.
듀라크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알 수도 없었고.
그러나 이사벨이 이러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렇기에.
“거절합니다.”
커너는 그런 이사벨의 의뢰를 단번에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