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42화 (142/322)

§ 142화 - 버그의 루벤(1)

띠링! 띠리리링! 띠링! 띠링!

요란한 알림음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스마트 폰이 우우웅···! 끊임없이 진동을 했다.

《미쳐써요! 미쳐써요!!》

《당신 지금 미쳤다고요옷!!!》

마치 발작을 하는 듯한 모바일 영주의 모습.

이윽고 수많은 알림창들이 화면 위로 우후죽순 떠올랐다.

《아니예요! 그거 아니예요!!!》

《곰곰이 생각해봐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모으신 인과인데! 어떤 개고생을 해가며 번 골드신데!!》

《그걸 지금 한 번에 탕진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깟?!》

띠링! 띠리링!

《현질은 모바일 영주에만 있는 거 아니라고요!》

《무엇보다 여기에 현질해봤자 당신에게는 좋을 거 하나 없잖아요?》

《전부 영지민들에게나 돌아갈 뿐이죠!》

《그러니 한 번쯤은 당신 현생에도 현질을 해보세요!》

띠링! 띠리리링!

《현실에서 사치품도 좀 사보고!》

《흥청망청! 네? 방탕하게도 좀 놀아보고!》

《떵떵거리면서 플렉스도 좀 해보고!》

《그렇게 사고 싶은 것, 전부 사보고! 즐길 것, 모두 즐기고!》

《조금은 자신을 위한 선물도 준비해보세요!》

《그 이후에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현질을 해보세요!》

《그래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답─!》

꾹.

시안은 떠오르는 알림창들을 모두 꺼버렸다.

뭐, 모바일 영주가 이러는 게 한 두번이냐만은.

이번에는 정도가 조금은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필사적으로 시안의 현질을 막으려는 모습.

그렇기에 시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3,200만 골드의 현질.

이건 모바일 영주가 감당하기 힘든 인과다.

시안은 결의를 다지며 【영지 시설】 항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띠리리링!!!!

《미쳐써! 정말 미쳐썻!!》

모바일 영주가 다시 한 번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신 겁니꽛?!!?》

《이 정도면 머리가 어떻게 되다 못해 깨져버린 수준이라고요!》

《당신! 지금 제 정신이 아니라고요오오오오!!!!》

터져나오는 듯한 모바일 영주의 절규.

그와 동시에 이상한 알림창이 새로이 떠올랐다

띠링!

《호구같은 당신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

《1회 한정으로 지금까지 현질한 금액을 낱낱히 알려드립니다!》

《이름하야, ‘내가 현질한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금 바로 확인하시고, 깨져버린 머리를 봉합해보세요!》

‘내가 그동안 현질한 돈?’

갑작스러운 알림창의 내용에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현질한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깜빡거리며 재차 떠오르는 알림창.

보아하니, 그동안 현질한 돈을 알려주는 것 같은데.

‘이건 조금 궁금한데?’

꾹.

시안은 이번엔 알림창을 터치했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바뀌며 알 수 없는 코드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치 무언가 계산의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 인과 결제 내역을 알려드립니다.』

모바일 영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패키지 구매 비용】 - 61만 3천 골드.

【영지 구역 확장】 - 100만 골드.

【아르나이즈 특전 구매】 - 150만 골드.

【명성 포인트 전환 비용】 - 700만 골드.

【장비 강화 비용】 - 1,300만 골드.

.

.

“······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많이 질렀다고?”

그도 그럴 것이 생각보다 현질 금액이 상당했으니까!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군사 시설] - 880만 골드.

[생산 시설] - 520만 골드.

[주거 시설] - 140만 골드.

[교통 시설] - 38만 골드.

[기타 시설 및 유지 관리 비용] - 43만 7천 골드.

【영지 시설 건설 비용】 -1,621만 7천 골드.

시안이 영지 시설을 건설하는데 들어간 비용.

하여 시안이 지금까지 모바일 영주에 현질한 모든 금액을 합산하면···.

【총 비용】 - 3,932만 골드.

“···············”

시안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깜빡깜빡, 점멸하며 보이는 글자.

【총 비용】 - 3,932만 골드.

말이··· 말이···.

말이 안되는 금액이었다.

샤를롯 제국 기준, 4인 가족의 한달 생활비는 약 30골드다.

적당히 사치를 부리고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 약 30골드.

그리고 시안이 현질한 3,392만 골드.

정확히는 현질‘해버린’ 3,392만 골드는 4인 가족이 무려··· 11만년을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11년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11 ‘만’년.

시안이 현질 ‘해버린’ 골드로 4인 가족이 11만년을 숨만 쉬고 살아갈 수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면 더 살아갈 수 있겠지.

정말 숨만 쉰다면 아마 12만년쯤 살 수 있지 않을까.

한 마디로 천 년전, 6인의 아르나이즈가 자그마치 120번 까무러칠 시간동안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건··· 천문학적이라는 금액으로도 차마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끔찍하고, 지독하며, 가혹하고, 극심한.

또 굉장하며, 엄숙하고, 기막힌.

언어의 개념으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금액.

그 실로 말도 안되는 금액을!

시안은 여기, 모바일 영주에 모조리 들이박은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이 하려는 짓.

그러니까 영지 전부를 철거하고 다시 지으려는 지금 이 손가락.

그건 지금까지 현질한 돈을 전부 무(無)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저 끔찍하고도 형용할 수 없는 금액을 무로 되돌리고.

새로이 3,200만 골드를 쏟아부으려는 정신 나간 짓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시나요? 당신이 얼마나 호구 같았는지를!》

《하하하하핫!》

띠링, 거리는 알림음과 함께 화면 위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

그리고 이번에는 차마 X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굳이··· 새로운 청사진으로 루벤을 재편성할 필요가 있을까?

다크 엘프들이 불편하긴 하겠다만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텐데?

세계수야 뭐···.

대충 빈 공터에 심으면 되지 않을까?

세계수잖아, 세계를 지탱하는 세계수라며.

그럼 대충 심어도 알아서 자생해야하는 거 아니야?

하물며 인스티즈인데?

엘로디가 사용하던 인스티즈인데?

시안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질끈.

시안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덜덜, 떨려오는 손가락.

시안은 끝내 떠오른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의 X버튼을 눌러버렸다.

띠링!

《뭐, 뭐, 뭐, 뭐, 뭐죠?!》

그러자 당황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시안은 애써 외면하며 다시 한 번 X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영지 시설】 항목에 접속.

한쪽 구석에 자리한 【영지 시설 철거】항목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띠, 띠링!

《지, 지, 지금 뭐하는 짓이죠! 지금 대체 뭐하는─!》

꾹.

《미쳤어요! 당신 정말 미쳤─!》

꾹.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 정도면 봉합 불가능─!!》

꾹.

《아니, 소생 불가능─!》

꾹.

《머리가 깨져도 단단히 깨져버려써어어어!!》

모바일 영주의 절규를 무시하며 시안은 철거 항목에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은 파르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잡이로 떨려왔다.

진정을 하려해도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 버튼 하나면 수 천만 골드가 날아간다.

그 동안 개고생한 모든 것들이 리셋된다.

“제, 젠장!!”

진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시안은 끝내 마음을 다 잡았다.

듀라크와의 약조한 기간은 이제 2개월.

2개월 뒤면 엘란두르와의 전면전을 준비해야한다.

루벤의 사활이 달려있는 운명은 돈으로 잴 것이 아니었다.

3천만 골드고, 3억 골드고, 나발이고.

엘란두르에 패배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돈이란 자고로 쓰라고 있는 것.

쌓아두기만 해서는 그냥 똥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을 위해 쓰고 활용할 때야 진정한 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법.

물론 그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 똥 덩어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4인 가족이 12만년을 숨만 쉬고 살아가도 되는 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이런 똥을 언제 또 쌀 수 있을까 싶은 것이라면 진짜 이야기가 다르지만···!!!

“제기라아알!!!!”

시안은 포효와도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세미르가 화들짝, 놀라보였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생각을 지운다.

잡념을 끊어낸다.

이건 잡념 따위를 할 상대가 아니다.

시안은 정신적 무아지경에 빠지며 끝내 손가락을 내리눌렀다.

꾹.

[지정한 영지 시설을 모두 철거합니다.]

[철거가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한 번 되묻는 시스템의 알림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띠링,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지, 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그, 그만! 그만둬요오옷!!》

모바일 영주가 발광을 하며 뜯어말려왔다.

그러나 시안은 멈추지 않았다.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마굿간을 벗어나 광야를 달리는 말은.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

“입 벌려.”

골드 들어간다.

《그거 아니야아아아아!!!!!!!!!!》

꾹.

#

루벤 인근의 어둠의 숲.

그곳엔 루벤의 영지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기존 루벤의 사람들은 물론.

드워프들과 다크 엘프들까지.

루벤에 거주하는 모든 영지민들이 한데 모여 나와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모든 영지민들이 나와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도련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건지···.”

다름 아닌 시안의 명령.

한스는 아까 전에 있었던 시안과의 대화를 되뇌였다.

‘영지민들을 데리고 루벤 밖으로 나가있으란 말씀이십니까?’

‘어.’

한스의 물음에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한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 별 건 아니고. 루벤을 재개발할 거라서. 괜히 영지에 있다가 사람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시안은 다시 한 번 가볍게 답을 해보였다.

그러나 한스는 전혀 가볍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다 함이 정확했다.

루벤을 재개발한다니?

그러니까 루벤을 뜯어 고친다는 뜻?

‘······?’

한스는 도무지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영지의 재개발은 제국에서도 종종 있는 경우였다.

영지의 시설이 노후화 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된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그럴 때마다 영주들은 영지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그런 낙후된 곳들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새로이 지었다.

그렇기에 루벤 또한 재개발을 한다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벤은 전혀 재개발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설이 노후화 되기는 커녕.

루벤의 시설들은 거진 다른 차원의 문명을 가져다 놓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뭐, 이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대륙이 루벤의 시대상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한 마디로 루벤은 전혀 재개발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재개발을 한다치자.

그런데 영지의 재개발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영지 자체를 싸그리 엎는 과정이 단기간에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시간이 년단위.

규모가 큰 영지의 경우 무려 10년의 세월을 둔다.

그런데 지금 시안은 무슨···.

‘계획대로 된다면 금방 끝날 거야. 계획이 조금 어긋나도··· 뭐, 현질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영지민들 데리고 루벤 밖으로 잠시 나가있어.’

시안은 ‘금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제국의 통념상. 그리고 언어의 개념상.

금방이라는 단어는 보통 1년을 넘지 않는다.

1년은 개뿔.

일반적으로 5분 정도를 의미했다.

아무리 길어야 30분.

한 마디로 ‘분’ 단위에 따른 시간에 ‘금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영지 재개발이 분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게 지금 무슨···?’

한스는 시안의 말이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한스는 어쩔 수 없이 시안의 말을 따랐다.

한스는 시안의 지시에 따라 영지민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지금.

“······”

한스는 여전히 의심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시안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시안이 보여준 모습도 있었고.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시안의 말은 정말이지 말이 되지 않았다.

한스는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저 멀리, 루벤의 전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름이 한스라고 들었습니다만.”

누군가 한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무뚝뚝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머리의 남성.

다크 엘프의 전 숲지기, 아스란디즈가 서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스와는 달리 중년의 모습을 한 아스란디즈.

겉모습으로는 한스의 나이가 윗년배였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의 수명은 인간과는 달랐다.

보기엔 40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아스란디즈가 살아온 세월은 까마득했다.

물론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스는 아스란디즈가 대략 100년의 세월을 넘었다는 것을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 엘프들을 도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인사가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입니다. 신경쓰지 마시지요.”

한스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에도는 아스란디즈는 한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 해야할 일이 엘프들에게 도움이 된 건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고맙지 않은 건 아닙니다.”

루벤의 행정일을 도맡고 있는 한스.

한스는 다크 엘프들이 루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주었다.

종족이 다르다고 하여.

그리고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하여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제 일처럼, 제 가족처럼 한스는 다크 엘프들을 도와주웠다.

아마 한스가 없었다면 루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아스란디즈는 한스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 아스란디즈의 진심에 한스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간의 정적.

이윽고 한스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 적응은 좀 하셨습니까.”

“······”

한스의 물음에 아스란디즈는 답을 하지 않았다.

보통은 괜찮다, 빈말이라도 하기 마련이건만.

아스란디즈는 차마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스란디즈의 심정을 한스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괜찮다, 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종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일이 말이다.

같은 인간들조차 한 지붕 아래 살면 트러블이 생긴다.

하물며 종족까지 다르고, 또 생활 방식 자체가 다르다면야.

그나마 루벤의 근방이 어둠의 숲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억지로 눌러붙어 살 수도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루벤에는 세계수가 없었다.

엘프는 숲을 키우고, 숲은 엘프를 키운다.

이것이 엘프라는 종족에 뿌리 박힌 정체성이다.

그러나 루벤은 그 정체성을 지켜주지 못했고.

그렇기에 루벤은 다크 엘프들이 살아가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금방 적응할 겁니다.”

아스란디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스란디즈 뿐만 아니라 다른 다크 엘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아니면 그들은 살아갈 곳이 없었으니까.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다크 엘프들.

그들을 받아줄 곳은 대륙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버림받은 자들의 마지막 터전.

그러나 루벤은···.

이들을 품을 수가 없었다.

“도련님께서 방도를 마련해주실 겁니다.”

“저희야 숲지기님의 의견에 따를 뿐입니다.”

한스와 아스란디즈는 그렇게 서로의 말을 삼켰다.

그리고 둘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루벤의 전경을 바라봤다.

인간들이 살아가기엔 더없이 환상적인─.

“······ 응?”

“······ 음?”

일순간 한스와 아스란디즈의 고개가 동시에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루벤의 풍경.

“루벤이··· 없어졌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웅장하던 루벤의 자태가 사라져있었다!

“아, 아니···?”

“이, 이게 무슨···?”

한스와 아스란디즈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쿠르르르릉···!!

딛고 있던 땅이 크게 진동해왔다.

그와 동시에 꽈르르르릉!!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한 커다란 폭음이 터져나왔다.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모여있던 영지민들이 크게 당황하며 술렁였다.

그리고 영지민들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저기! 저기 봐봐!”

이윽고 누군가 손가락으로 한쪽 어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손가락을 따라 이동했고.

그곳엔 다름 아닌 루벤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콰콰콰콰콰콰콰쾅!!!

쿠르르르릉!!

루벤이 무너지고 있는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엥?”

“······응?”

일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붕, 떠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콰콰콰콰콰콰콰쾅!!!

쿠르르르릉!!

루벤의 전역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이어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땅 전체가 뒤흔들려왔다.

자욱히 피어나는 먼지 안개.

사람들은 연출되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저게 무슨···!”

“루벤이··· 무너지고 있어?”

그도 그럴 것이 루벤이 무너진다는 것.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루벤이 대체 어떤 곳이라고 무너진단 말인가.

천혜의 요새이자 철옹성.

마수 따위는 루벤의 특산품이 되어버리는 곳.

그런 루벤은 이제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가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아니, 딱 하나가 있기는 했었다.

“악마다! 악마가 습격해왔다!”

“전원 전투 준비!”

터져나오는 외침과 동시에 루벤의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루카스를 중심으로 집결하는 루벤의 병사들.

켄드릭을 중심으로 도열하는 루벤의 기사단.

순식간에 전투 태세를 마친 병력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긴장 어린 얼굴로 먼지 안개가 서서히 가라앉는 루벤을 바라봤다.

그렇게 먼지 안개가 가라앉으며 보이는 루벤의 풍경.

뚝.

대열을 갖추던 루벤의 병력들이 일제히 몸을 멈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루벤의 풍경.

그러니까, 저 먼 시야로 보이는 루벤의 전경.

그곳은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시선이 미치는 곳곳마다.

루벤 전역이, 루벤의 풍경이.

콰콰콰콰콰콰콰쾅!!

쿠콰콰콰콰콰!!

싸그리 뒤집어지며 새로 지어지고 있었으니까!

솜털이 곧두서며 전율이 일 정도의 경이로운 광경.

저게··· 저게 정녕 현실인 것일까.

“······”

“······”

“······”

사람들은 석상처럼 굳어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

영주성 Lv.2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쿠당탕탕!

벌컥!

큰 소란과 함께 시안의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쏟아지듯 들어오는 일련의 사람들,

“도련님!!”

“영주님!!”

“숲지기님!”

-주군!!

-시안!!

한스, 그레이슨, 루카스, 아멜리아, 아스란디즈, 켄드릭, 레아.

그들은 저마다의 호칭으로 시안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금방 볼 수 있었다.

시안의 집무실 한쪽 어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시안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모습을!

우뚝

쏟아지듯 들어오던 사람들의 몸이 뚝,하니 굳어버렸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표정이 하나같이 붕, 하니 떠버렸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

“여, 영주···.”

그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제히 바라본 그곳.

그곳엔 드워프들의 족장, 세미르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끄하하하하하! 끄아하하하하하학!”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시안의 웃음.

사람들은 저마다의 눈빛으로 세미르를 바라봤다.

각기 다른 눈빛이었지만 그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물음.

하지만.

“내, 내게 묻지 마시오···.”

세미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나, 나도 잘 모르니 말이오···.”

세미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도련님과 같이 계셨던 것 아닙니까?”

“그건 맞소만···.”

세미르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농담이 아니라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미르는 시안이 요구한 청사진을 만들어 준 것밖에 없었다.

시안은 그 청사진을 받아들더니 이내 품 속에서 요상한 물건을 꺼내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안의 표정이 굳어버렸고.

다시 시안이 달달달, 몸을 떨어댔다.

그게 전부였다.

세미르가 본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그냥 단지 그 뿐이었는데.

“끄학학학학학학!!!”

갑자기 시안이 저렇게 미쳐버렸다!

아니, 저건 미쳐버린 수준 정도가 아니었다.

“그으래!! 어디 한 번 깐족거려봐!”

광기.

그래, 광기였다.

“지난 번처럼 어디 한 번 깐족거려보라고!!”

저건 분명한 광기였다!

꽈르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그 순간 영주성 밖에서 터져나오는 대폭발.

바라본 창문 밖으로는, 루벤 전체가 싸그리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재개발의 현장.

아니, 저건 재개발이라는 말로도 차마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세계의 법칙이··· 뒤집어지고 있다···?”

아스란디즈의 말이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8위계(位界)의 대마법사였던 아스란디즈.

비록 지금은 힘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 마법적 지식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아스란디즈의 표현대로 저건 현상 세계 법칙에 오류가 난 듯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준엄한 세계의 법칙에 오류가 생긴다?

그게 말이 되나?

사람들은 뭐라···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직.

“어쭈? 깐족거리라고 진짜 깐족거려? 하! 어디 이래도 깐족거릴 수 있나 보자!”

희번뜩한 시안의 두 눈.

“1천만 골드 투척이다···!”

꾸구구구구국.

“제기라아아알!!!!! 내 돈!!!”

그 두 눈만이 붉은 광채를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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