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38화 (138/322)

§ 138화 - 북부의 영웅(1)

대체 뭘까.

정말 뭐지?

그저 멍한 정신.

아멜리아는 어째서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인지 기억을 차분히 되짚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시안의 편지였다.

루벤에 급하게 도착한 편지.

그리고 그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속히 물자를 꾸려 북부로 상행을 오라.

이 한 문장이 전부였다.

왜 그런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아멜리아는 바로 채비를 갖추었다.

북부를 휩쓸었던 대사건.

이 사건은 이미 제국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당연히 아멜리아 또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시안이 어떤 일을 해내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혹시 무슨 급한 일이 생긴건가?

아멜리아는 물자를 꾸렸다.

각종 생산 버프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재고들.

그 양은 일개 영지에서 산출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아멜리아는 그런 물자를 모두 끌어모아 루벤의 병사들과 함께 북부로 향했다.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척박한 북부의 땅.

가는 길이 상당히 험했지만, 아멜리아는 꿋꿋이 북부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아멜리아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가 가져온 루벤의 물자들.

그 물자들을 북부인들을 위해 풀고 있었으니까.

보아하니 북부를 뒤집어 놓은 사건은 자체는 잘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그 피해까지 잘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먹지 못해 굶주렸고.

제때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병드는 자들이 속출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척박한 북부의 땅은 그 모두를 품지 못했다.

물자가 부족해도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멜리아가 가져온 루벤의 물자들.

“저희 같은 사람들을 위해 물품을 지원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으리들.”

가뭄의 단비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게다가 값을 받지도 않고 나눠주시니···.”

“북부를 도와주신 은혜도 어찌 갚아야할지 모르겠는데···.”

심지어 물자들에 대한 값을 받지 않았다.

한 마디로 공짜.

아니, 공짜 정도가 아니었다.

“어이, 자네! 거기 잠깐.”

일순간 들려온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시안이 한 아낙네를 부르고 있었다.

아낙네는 몸을 움찔, 떨며 자리에 멈춰섰다.

“식량 배급 받고 돌아가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시안의 물음에 아낙네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시안의 시선이 아낙네가 들고 있는 빵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2개의 빵.

그 순간 아낙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집에 어린 아이가 셋이 있는 터라 저도 모르게···!”

아낙네는 몸을 벌벌, 떨며 용서를 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급은 보통 1인 1식이 상식이다.

특히나 이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1인 1식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아낙네는 몰래 빵 2개를 가져왔다.

집에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책임질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남편은···이번 사건으로 떠나버렸다.

그러니 견뎌야 했다.

몇 대 맞는 것으로 빵을 하나 더 구할 수 있다면.

그로써 굶주린 아이들에게 음식을 줄 수 있다면.

“한 번만···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아낙네는 몸을 벌벌, 떨면서 자비를 구했다.

그런데.

“응? 뭐가 죄송해?”

들려온 말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건지···?”

아낙네의 일순간 벙찌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의 귀족, 시안이 되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그거밖에 안 가져가냐고 물으려던건데 뭐가 죄송해? 심지어 아이가 셋이나 있어? 그런데 왜 그거밖에 안 가져가?”

“예···? 예?”

“아이도 있으면서 왜 그거밖에 안 가져가냐고.”

그러면서 시안이 성큼, 어디론가 향했다.

이윽고 빵이 한가득 담겨 있는 봉지를 들고오더니.

“가져가.”

선뜻 아낙네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 이게···.”

당황하는 아낙네.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어린 자식들도 있으면서 그거만 가져가서야 쓰나. 가서 배불리 먹이라고.”

그러면서 시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휘적휘적, 자리를 떠나갔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낙네.

“아··· 아아···.”

아낙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끌썽거렸다.

뭐라, 뭐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뜨겁게 북받쳐 올랐다.

그동안 받았던 온갖 서러움일까.

아니면 자신만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만 남겨두고 홀로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며, 아낙네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로 고맙습니다··· 어흑.”

아낙네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비단 그 아낙네 뿐만이 아니었다.

“자자, 많이들 있으니까 많이들 가져가십시오.”

“괜히 양보한답시고 굶지들 마시고.”

루벤의 기사단들이 나눠주는 루벤의 물자들.

“우, 우리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북부의 사람들은 저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렇기에 아멜리아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 지금 지출되는 물자들. 확실히 장부에 기록하고 있지? 이거 다 황가에 청구해야하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야돼.”

아멜리아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턱, 하고 막혀버리는 말문.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황가를 상대로 삥 뜯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이게 무슨 양아치 같은 짓이란 말인가!

아니, 이건 양아치도 아니었다.

세상 어떤 양아치가 황가를 상대로 삥을 뜯는단 말인가!

“아, 그렇다고 거짓으로 작성하지는 말고.”

그 와중에 또 양심은 챙기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저걸 양심을 챙긴다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부? 그게 뭐야? 움··· 인간들 말은 너무 어려워.”

이 옆의 엘프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

아멜리아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이해하기도 싫었고.

“자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루벤 특산품 특가 세일! 필요한 물품이 전부 공짜!”

“공짜!”

진짜 이러다 반역죄로 참수당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황실 재정을 거덜낸 국가 전복죄로 말이다.

정말 그래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아멜리아 뭐하고 있어? 저기 비누 3포대랑 밀 5포대 나간다.”

그 순간 들려온 시안의 말.

······ 에라, 모르겠다.

“비누 3포대랑 밀 5포대 그리고 또···.”

될대로 되라지.

#

샤를롯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다르칸에 위치한 제국의 심장, 황궁.

그리고 황궁 중에서도 가장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

황제의 알현실.

그곳에 두 금발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금발의 사내 중 황좌에 앉아있는 이.

“네 말은 즉. 보상으로 2천만 골드를 책정하라는 뜻이냐.”

제국의 1인자. 황제, 발루아가.

그리고 그런 발루아가의 말을 받는 이.

“그렇사옵니다 폐하.”

다름 아닌 황태자, 콘라드였다.

고개를 숙이는 콘라드의 모습에 발루아가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답하는 모습.

“······ 제정신인게냐?”

솔직히 이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천만 골드가 뉘집 개이름이란 말인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못해 천문학적인 금액.

결코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아니었다.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콘라드는 일말의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하니 콘라드가 2천만 골드의 값어치를 모르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콘라드를 황태자로 책봉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건 무지한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어떻게 된 수준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저리 당당하게 제안을 한다는 것.

“이유가 무엇이지?”

그것엔 필시 이유가 있으리라.

“폐하께서 시안에게 엘레나와의 만남을 조건으로 골드를 주시기로 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안은 엘레나와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발루아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서 황제의 눈과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과 엘레나가 담소를 나누었다는 것.

발루아가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2천만 골드라고는 약조하지 않았다.”

그게 2천만 골드라는 건 아니었다.

“엘레나는 시안과의 만남 직후,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어진 콘라드의 말.

발루아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콘라드는 살며시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엘레나가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부탁?”

순간 발루아가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가 누구에게 부탁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되려 부탁을 받으면 받았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하지 않던 아이였다.

“제게 폐하를 설득해달라 부탁하더군요.”

“나를 설득해? 알아듣게 설명해라.”

발루아가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콘라드는 그때서야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

발루아가는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방금 콘라드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엘레나가 그 놈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렇습니다.”

“헌데, 그 놈은 엘레나를 철벽치고 있고?”

“예.”

“그래서 그 놈 눈에 들기 위해 2천만 골드를 제안했던 거고.”

“······ 정확히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만.”

“나, 참.”

발루아가는 그만 얼이 빠져버렸다.

뭐, 콘라드가 시안을 총애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만나본 바.

어느 정도 그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시안을 둘러싼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본 시안은 달랐다.

적어도 위의 소문과는 다른 사내였다.

그래서 조금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엘레나를 한 번 만나보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딱 그 뿐이었다.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을 만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엘레나는 황녀였다.

황가의 일원이 대체 뭐가 아쉽다고 달라붙는단 말인가.

달라붙어야하는 건 이쪽이 아니라 그쪽이다.

“너는 엘레나의 오라비라는 자가 뭐가 아쉽다고 그 놈을···.”

“그것이···.”

발루아가의 질책 아닌 질책에 콘라드가 주저하듯 말을 꺼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 또한 시안이 황가의 일원이 된다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루아가는 다시 한 번 얼이 빠져버렸다.

친분을 넘어 가족이 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한다는 뜻아닌가.

이 정도면 엘레나가 아니라 콘라드가 시안, 그놈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수준이었다.

“대체 그 놈의 어떤 면모가 너의 마음에 들었느냐.”

“많은 것들이 있사오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품는 배포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발루아가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이윽고 발루아가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기세가 터져나왔다.

“콘라드. 너는 제국의 황태자이자 군주가 될 존재다. 그리고 네가 방금 말한 것들은 군주의 덕목.”

군주이자 제왕의 위엄.

“헌데, 한낱 귀족에게서 그러한 점을 보고 배웠다?”

콘라드를 바라보는 발루아가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군주는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는 자다. 그렇기에 군주는 스스로가 바로 서야한다. 누구에게 기대는 일 없이 말이다. 무기력하고, 결단력 없는 군주는 곧 경멸당하는 이유일지니.”

“바람직한 군주는 신하들이 충성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놓는 군주다. 그렇기에 백성들을 규합하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혹함을 개의치 말아야한다.”

“깊은 자애심은 군주에게 독이요, 선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리 일렀거늘···.”

발루아가는 끝내 혀를 차보였다.

군주에게 능력 있는 신하는 필수적이나.

그것이 과하여 군주가 의지하는 신하는 되려 독이다.

그런 신하는 없느니만 못하다.

“이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발루아가는 곧장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건.”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콘라드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콘라드의 말.

“폐하께서 걸어가시는 군주의 길입니다.”

콘라드는 발루아가의 눈을 바로 마주했고.

발루아가는 그런 콘라드에게 말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자, 곧 네가 걸어야하는 길이다.”

그것이 군주가, 황태자가 지닌 운명이자 의무다.

싫어도 해야만 하고.

옳지 않아도 끄덕여야한다.

그것이 백성들이 바라고 또 원하는 군주이며.

세상이 콘라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런데 왜일까.

“한 번은 시안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일순간 콘라드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시안에게는 안 좋은 소문들이 있습니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그리고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안은 이런 평가들에,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더군요. 저는 항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억울하지 않은지. 해서 그에게 이리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째서 저 소문들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느냐.

“그러자 그가 답을 하더군요.”

‘굳이요?’

‘억울하지 않은가? 사실이 아닌 일로 모욕을 당하는 것 아닌가.’

‘뭐, 딱히 사실이 아니진 않습니다만···.’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한 마디.

‘세상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꼭 저의 현실이 되어야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제가 주신 가르침은 마음 깊숙히 새겨 배우고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 따른 의무이자, 백성들이 바라는 군주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속에서도 저는 저만이 갈 수 있는 군주의 길을 걷겠습니다.”

콘라드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루아가.

“······”

발루아가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콘라드의 모습.

제법··· 제왕답게 보이지 않는가.

발루아가가 그간 바라본 콘라드는 참된 군주의 표본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줄 알았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볼 줄 알았다.

콘라드는 발루아가가 지니지 못한 군주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허나, 그렇기에 발루아가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선하기만 한 군주는 차라리 악한 군주보다 못하다.

콘라드는 백성들의 마음을 너무 깊이 이해했고.

그렇기에 군주로서 유약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이야 성군의 표본이라 칭송받고 있었다.

허나, 언젠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성정은 되려 독이 되어 콘라드를 얽매이리라.

그래서 다그쳤다.

바른 군주의 길을 가는 덕목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금 콘라드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건 무엇일 때문일까.

정말 그것이 ‘바른’ 군주의 길이었을까.

어쩌면 바른 군주의 길이 아니라, ‘쉬운’ 군주의 길이 아니었을까.

왕과 함께 걸어갈지라도 민중의 마음을 잃지 말라.

군주의 가장 뛰어난 자질이자 가장 어려운 덕목.

콘라드는 지금 발루아가는 갈 수 없는 본인만의 길을 걷고자 하고 있었다.

현명한 군주로서 썩 좋은 행동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군주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창조자는 따라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 뿐.

아직 군주가 되기는 멀었다 생각했거늘.

아직 나의 시대는 저물고 있지 않다 생각했거늘.

‘······ 세월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군.’

발루아가는 끝내 작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동시에 발루아가는 시안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또한 콘라드가 왜 그리 시안을 총애하는지 비로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아닌, 별 볼 일 없는 놈팽이라 여겼거늘.

참된 군주로 만들어주는 신하.

이런 신하는 발목을 붙잡아서라도 곁에 두어야 한다.

“허나, 2천만 골드는 과하다.”

하지만 2천만 골드라면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한다.

발루아가의 말에 콘라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오나, 폐하. 엘레나가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사내이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옵소서.”

“흠···.”

그리고 발루아가는 이번엔 단번에 거절하지 못했다.

솔직히 마음이 조금 기울기도 했고···.

무엇보다 엘레나의 부탁이라는 것이 발루아가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발루아가는 아비된 자로서 엘레나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었다.

황녀로 태어나게 해준 것이 어디냐 싶지만.

엘레나는 되려 그 때문에 과한 의무감에 사로잡혀있지 않은가.

황제이기 전에 한 명의 아비로서.

발루아가는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엘레나가 호감을 갖는 남자다.

동시에 엘레나가 처음으로 부탁해오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엘레나는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지나지 않지 않습니까.”

“음···.”

그리고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물론 엘레나를 정략 결혼으로 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엘레나의 의사와는 달리 애초에 발루아가는 엘레나를 정략 결혼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여, 콘라드가 말한 곁가지.

이건 시안에게 보상을 줌에 있어 곁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엘레나가 아니더라도 발루아가는 시안에게 보상을 줄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북부에서 해준 일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럼에도 2천만 골드는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과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시안이 해준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엘레나를 슬며시 껴넣은 것에 불과했다.

다만, 엘레나가 예상 외로 적극적으로 나온 것 뿐.

‘시안··· 시안이라···.’

그놈이 뭐라고 엘레나가 저렇게까지···.

갑자기 시안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발루아가는 복잡 미묘한 심정을 느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좋다.”

끝내 발루아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2천만 골드가 큰 지출이기는 했다.

하지만 황가의 재산에서 지출 못 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배포를 보일 때는 확실히 보여야 하는 법.

발루아가는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발루아가는 대신 다른 주제로 돌렸다.

“현재 북부의 상황은 어떠하냐.”

다름 아닌 북부의 상황.

사건은 잘 해결되었으나 그 피해 마저 잘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얼핏 듣자하니 황실의 재정은 물론.

보급 물자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움찔.

콘라드가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꽤나 당황하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사태가 심각한 듯 싶었다.

“아, 안 그래도··· 그 안건에 대해서 폐, 폐하께 말씀드릴 것이 이, 있사옵니다···.”

콘라드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어보였다.

방금 전, 2천만 골드를 뜯어낼 때도 당당하던 콘라드였거늘.

대체 얼마나 상황이 심각하길래 콘라드가 저러는 걸까.

“무엇이지?”

발루아가의 물음에 이윽고 콘라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혀, 현재 북부의 상황은 많이 안정을 찾았습니다. 물자를 보급 받은 백성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부상자들 또한 모두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전후처리가 끝났다고 봄이 바람직 하옵니다.”

“뭐라?”

발루아가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처참한 북부의 상황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었건만.

전후처리가 모두 끝이 났다?

“그게 정녕 사실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콘라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콘라드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을 터.

“대체 어떻게? 듣자하니 물자가 부족해 허덕인다고 들었거늘.”

“그것이··· 누군가 북부인들을 위해 서슴없이 물자를 풀어주었습니다.”

북부인들을 위해 물자를 풀어?

“대체 누가? 누가 그런 배포를 보인 것이지?”

“시안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들려오는 시안의 이름.

“허어···!”

발루아가는 끝내 탄성을 터트렸다.

북부의 사태를 홀로 해결한 것도 모자라,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 서슴없이 물자를 풀었다?

제국에 이런 귀족이 있었던가?

순간 발루아가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방금 전까지 2천만 골드를 주네 마네로 고민했던 발루아가.

이러면··· 괜히 고민했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꺼냈다면 바로 주었을 거늘.

어째서 콘라드는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던 걸까.

발루아가는 심히 의뭉스러웠고.

금방 그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실은 시안이 물자를 그냥 푼 것이 아니옵니다.”

“그냥 푼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실은···.”

콘라드는 심히 주저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물자들의 값을 황실에 청구했다?”

“그, 그렇사옵니다.”

“심지어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였고?”

“전시 상황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만···.”

“······”

발루아가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난 번 알현 당시.

당당히 보상으로 골드를 말하는 모습이 당돌하다 생각했건만···.

이건 당돌하다 못해 제정신인지 의심이 가지 않은가.

그런데 뭐···.

그럴 수는 있었다.

애초에 황실에서 북부를 지원을 하려던 찰나였고.

물자 자체가 부족해 골머리를 썩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진 바 물건을 풀었다.

가뜩이나 제국 전체가 흉년인 상황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북부의 상황이 순식간에 안정되었다.

듣자하니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였다고는 하지만···.

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그 정도야 배포를 보여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백성들의 고통을 빠르게 덜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값이 모두 얼마지?”

“그, 그것이···.”

콘라드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회피할 수 없는 일.

콘라드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리고 발루아가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약 1,200만 골드···.”

시안이 왜 후작가의 망나니라 불리는 지를.

와락, 일그러지는 발루아가의 표정.

쾅!

“이 망나니 같은 새끼가!”

발루아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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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이만.”

절도 있는 인사와 함께 예일이 자리를 벗어났다.

로열 나이츠 제 2의 기사단 단장이자, 황태자 콘라드의 직속 호위 기사, 예일.

무려 마스터 중급에 이르는 절대적인 실력자로서.

그가 황궁이 아닌 이곳 북부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시안의 손에 들린 2장의 전표.

이것을 시안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고작 전표를 전달함에 로열 나이츠가 나설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것도 마스터 중급의 단장급의 인사가 말이다.

그러나 이건 그리 단순한 전표가 아니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보증되어있는 전표 1장.

황실의 이름으로 보증되어있는 전표 1장.

그리고 각각 전표에 적혀있는 금액.

각각 2천만. 1,200만.

도합 3,200만.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시안은 전신으로 차오르는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띠링!

《버, 버, 버, 버그 걸렸나봐요오오옷!!!!!!!!!!》

모바일 영주 또한 차오르는 발작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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