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흉터가 새겨진 자리(1)
사방으로 어둠으로 물든 풍경 속.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가리웠다.
손을 뻗어도 보이지 않는,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달랐다.
아스란디즈가 펼친 마경의 어둠. 그 음습한 느낌과는 달랐다.
사악하지 않았고, 불길하지 않았으며.
또한 두렵거나 공포스럽지도 않았다.
고요한 새벽녘에 바라보는 밤하늘.
지친 하루의 끝 마무리를 장식하는 어둠.
그 포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내려앉은 짙은 적막.
아무런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어둠에 먹힌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올 수가 없는 것인지.
드리운 어둠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사아아아아─!
이윽고 어둠이 흩어지며 앞선 풍경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보랏빛 하늘은 다시 푸른 하늘로.
연두빛 태양은 이글거리는 노란 불길로.
붉디 붉은 대지는 메마른 황야로.
뒤집어진 오감의 현실이 돌아오며 현상 세계의 법칙이 다시 제 역할을 다했다.
그림자의 마물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끓어오르던 모든 부정의 감정들 또한 소멸했다.
펼쳐진 마경이 사라진다.
지상의 색과 하늘의 색. 그것이 본연의 순리를 찾아 돌아간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목소리를 내뱉는 자가 없었다.
정신이, 의식이, 눈앞의 풍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순간.
파직─!
어디선가 균열이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엔 아스란디즈가 인스티즈를 들고 서 있었다.
앞으로 뻗은 아스란디즈의 손에 붉디 붉은 마력이 맺혀있었다.
그러나 붉은 마력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허공이었다.
마치 그곳에 누가 있었던 것처럼, 아스란디즈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파지지직─!
다시 한 번 균열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스란디즈가 들고 있는 인스티즈.
바라본 인스티즈에는 거미줄과 같은 자잘한 균열들이 새겨져있었다.
그 순간.
챙그랑!
끝내 인스티즈가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아아아아─!!!!”】
아스란디즈가 끔찍한 비명을 터트렸다.
아스란디즈의 전신으로 붉은 마력이 뽑아져나왔다.
뽑힌 붉은 마력은 인스티즈로 향했으나, 부서진 인스티즈는 그 마력을 담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아스란디즈의 비명소리는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그러나 전과는 목소리가 달랐다.
기괴한 목소리가 아닌 아스란디즈의 것.
붉은 광채를 발하던 아스란디즈의 두 눈동자는 어느덧 검게 물들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갈 곳을 잃은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마력의 폭풍우가 휘몰아쳐왔다.
“서, 설마···! 또 폭주를···?”
그 광경에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을 꾹,다물었다.
“폭주가 아니야··· 마력이 원래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바라본 그곳.
그곳엔 파나트가 멍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스티즈가 부서지면서 힘의 통제를 잃었네. 저 마력들은 통제를 잃은 마력일 뿐, 폭주와는 달라.”
폭주는 인위적인 힘이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마력과 마나에 폭주는 없었다.
마나는 세상의 물질을 구성하는 근원.
마나는 그저 자유롭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 마나를 인위적인 통제 하에 두어 폭파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마력 폭주의 원리였다.
그러니 지금처럼 통제를 벗어난 마력은 폭주를 일으킬 수 없었다.
그저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나에 지나지 않을 뿐.
다만, 인스티즈가 통제하던 마나가 워낙 거대했다.
따라서 흩어지는 마나 또한 거대했고.
힘으로보나, 육안으로 보나 폭주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이윽고 파나트의 시선이 천천히 한쪽으로 향했다.
“끄으으윽···!”
아스란디즈는 여전히 고통스러워보였다.
그러나 비명 소리가 잠잠해진 것이 아까보다는 괜찮아보였다.
아스란디즈를 지배하던 광기와 악의의 힘.
힘의 통제를 잃은 마력들이 흩어지며 그것 또한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
바닥에 널브러진 인스티즈가, 파나트의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인스티즈 ‘였던’ 잔해들만이 바닥에 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파나트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인스티즈에 깃든 힘은 가히 초월적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아스란디즈 또한 초월적이었다.
아스란디즈는 최악이자 최흉의 악(惡)이었고.
사실 상 그를 막을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북부를 넘어 제국, 대륙에 길이 남을 악(惡).
로르실트와 엘란두르.
제국의 모든 가문들과 황가의 전력.
샤를롯 제국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야 막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인스티즈의 마력이 폭주하여 북부의 절반이 날아가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아스란디즈는 끔찍한 악(惡)이었다.
현상을 이해하고 법칙을 다루는 마법사.
파나트가 정의내린 가능성은 0%였다.
아스란디즈를 대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한없이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0%.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었다.
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가주, 에그리트 로르실트.
8위계(位界)에 닿은 현존하는 최강의 대마법사.
그가 와도 0%의 가능성은 뒤집어지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
0%는 그런 가능성을 의미한다.
절대로 뒤집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법칙.
그런데 지금.
그 가능성이 뒤집어졌다.
0%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이.
지금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파나트는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파나트뿐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았다.”
오슬리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속.
오슬리는 대검에 몸을 지탱한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마스터 중급의 오슬리.
그런 오슬리가 본 것은,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줄기의 묵빛 섬광.
그것만이 오슬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었던 광경의 전부였다.
인지 영역 밖에서 펼쳐진 무엇.
오슬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말도··· 말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경악이라는 감정도 스며들 수가 없었다.
존재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마주한 감정.
그 모순적인 이치의 어긋남이 사람들의 뇌리에 잠식했다.
대체 어떻게.
이 모순을 만들어 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사람들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파나트조차 답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딱 두 가지.
그렇기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나.
누가, 이 모순을 만들어내었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아스란디즈의 뒤쪽.
그곳엔 한 사내가 널브러져있었다.
전신은 피로 낭자하며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뚫린 복부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맞는걸까.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
-주군!!
“영주님!!”
켄드릭과 루벤의 기사단이 시안을 향해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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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단다 시안. 모두 괜찮아질거야.”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시안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포근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시안은 그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이거 꿈이네.
시안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죽었다.
이건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그리운 그때의 꿈.
처음엔 더없이 반가웠다.
그러나 이제는 자각몽임을 단번에 알 정도로 무덤덤하다.
하도 많이 꾸었으니까.
그보다 이 꿈.
꽤나 오랜 만에 꾸는 거 같은데.
아마··· 루벤의 영주가 된 이후로는 꾸지 않았던 것 같았다.
“엄마는 괜찮아. 우리 시안이 있으니까 엄마는 끄덕 없단다.”
세실의 말이 들려왔다.
언제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세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었다.
당시의 어린 시안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전의 꿈 속 시안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안은 알고 있었다.
시안이 엘란두르 저택에 가서 겪은 대우.
듀라크와 독대를 함으로써 느꼈던 감정.
세실이 무슨 대우를 받아왔고.
또 어떤 고통을 참아왔는지.
지금의 시안은 알고 있었다.
“괜찮단다. 모두 괜찮아 질 거란다.”
이어진 세실의 말.
시안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꿈이란 참으로 야속하다.
잊을 만하다 싶으면 그 기억을 끄집어 내니까.
심지어 언제고 같은 내용, 같은 말의 반복이다.
조금은 다른 모습의 어머니를 보고 싶건만.
다른 추억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도 좋으련만.
무슨 이유 때문에 같은 내용의 꿈이 반복되는 것일까.
“시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렴. 이는 시안이 귀족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다.”
엄마는 할 수 없지만···.
세실이 마지막 말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세실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향했다.
지난 꿈 속에서의 시안은 이럴 때마다 세실을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네, 꼭 그럴게요.’라며 답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배시시, 웃는 어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지.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시안은 천천히 세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실을 끌어안아주는 대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머니. 저 있잖아요. 루벤이라는 영지의 영주가 되었어요.”
같은 꿈, 조금은 다른 내용.
세실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처음엔 무슨 그딴 쓰레기 같은 영지가 다 있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참··· 이게 믿기지 않겠지만요···.”
시안의 말에 세실이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실이 보는 시안은 지금의 시안이 아니었다.
꿈 속의 세실은, 꿈 속의 시안은.
여전히 어린 그 시절,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그렇기에 영주가 되었다는 시안의 말.
그걸 믿는다는 건 바보같은 일이리라.
그러나 시안은 계속해서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어머. 엄마 모르게 언제 영주가 된 거니?”
그럼에도 세실은 시안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시안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공감해주며 경청했다.
“그러다 아멜리아라는 상인이 루벤에 찾아왔는데···. 아, 어머니. 브라헤 가문이라고 아시죠? 서부의 대상단, 브라헤 상단이요.”
스쳐지나온 수많은 사건들.
그 속에서 시안이 느끼고 깨달은 일들.
참으로 긴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실은 한 번도 말을 끊지 않고 시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다 북부까지 오게 되었는데. 아, 그러고보니 아스란디즈는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인스티즈를 노리긴 했는데, 설마 다친 건 아니겠죠? 그럼 안 되는데. 세라가··· 많이 아파할지도 몰라요. 가뜩이나 가족들을 다 잃었는데.”
시안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실은 그런 시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 시안. 정말 멋진 영주가 되었구나.”
그리고 들려오는 세실의 목소리.
세실이 다시 한 번 말을 이었다.
“시안, 미안하구나. 이 못난 어미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리고 고맙구나···.”
세실이 손을 들어 시안의 볼을 쓰다듬었다.
꿈 속에 불과하거늘.
따뜻한 기운이 볼 전체로 느껴졌다.
“이렇게 멋진 아들의 어머니로 살게 해주어서, 정말로 고맙단다 시안.”
세실은 아련한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그런 세실을 바라보다 세실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세실이 살짝 놀라 보였다.
이윽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역시나 아름답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
이제 슬슬 깰 때가 되었다.
꿈은 결국 꿈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거다.
“언제 기회가 되면, 루벤의 사람들을 소개시켜줄게요.”
“정말이니?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꿈이 꿈처럼 흐른다.
이윽고 부유하던 정신이 되돌아온다.
“으음···.”
시안은 아찔한 두통을 느끼며 의식을 붙잡을 수 있었다.
멍한 정신.
의식은 돌아왔으나 정신은 아직 몽롱했다.
시안은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몇 번 꿈틀거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되돌아오는 정신에 시안은 천천히 두 눈을 떠보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낯선 천장.
그것도 나무로 천장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온통 나무로 인테리어된 집안의 풍경이 들어왔다.
10평 정도 될 법한 적당한 크기의 방.
보아하니 나무로 인테리어 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크 엘프의 마을인 것 같은데···.
시안은 다시 한 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를 넘어 흘러내려와 있는 흑발.
목덜미로 보이는 희다 못해 순백색의 피부.
솜털은 아이와 같이 뽀송했고, 모공은 작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아 잡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라?”
시안이 중얼거리자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또 작고 코는 바로 섰으며.
검은 눈은 큼지막하여 생기를 띠는 미인.
역시나 세라가었다.
“응. 시안.”
세라가 시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멈칫.
“시··· 안···?”
세라의 검은 두 눈동자가 크게 터졌다.
이윽고 입까지 크게 벌어지더니.
“시안!!!!”
크나큰 외침과 함께 세라가 시안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커헉!”
갑작스러운 세라의 행동에 시안은 격통을 터트렸다.
정신이 되돌아왔다뿐.
몸은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극한의 일순간 속에서 부서져 내린 몸.
전신의 근육은 아직도 부들부들, 떨려왔으며.
갈비 뼈가 몇 군데 아작이 난 것인지 숨을 쉴 때마다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시안. 시안!”
그런 몸 상태에서 세라가 안겨 부비적 거리고 있었으니.
“커허헉!”
시안은 당장이라도 까무칠 것만 같았다!
비켜! 죽을 것 같다고!
시안은 속으로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안. 죽는 줄 알았어.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
세라는 시안의 품 속에 안겨 훌쩍거렸다.
지금 세라, 네가 죽이고 있어!
이러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시안은 끊임없이 소리쳤지만 역시나 목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뇌리를 지배하는 그 순간.
-여기에 시안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문 밖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가벼운 노크 소리 함께 문밖 너머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세라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싶었다.
세라는 시안의 품에 안겨 계속 훌쩍였다.
-아무래도 엘프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싶습니다.
-그럼 잠시 들어가도 되겠군요.
이윽고 달칵, 소리와 함께 방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두 인물.
한 명은 곰과 같은 거대한 덩치의 기사.
북부의 변경백, 오슬리였다.
그리고 그런 오슬리와 함께 한 인물.
그건 정말로 시안의 예상을 벗어난 인물이었다.
정갈한 복장을 한 금발의 미남자.
시안보다 그리 많지 않는 나이였으나, 자연스럽게 위엄과 기품이 흘러나오는 존재.
황태자 전하?
제국의 2인자 황태자, 콘라드.
그가 방문 앞에서 서 있었다.
전하···?
시안이 표정으로 물음표를 찍으며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만 내뱉어질 뿐.
“커헉···!”
정작 소리로 새어나온 것은 격통어린 신음이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콘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음?”
콘라드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세라가 부비적거리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안의 품에 안겨있는 채로 고개만 살짝, 돌려보였다.
그리고는 오슬리와 콘라드를 발견하더니 고개를 갸웃.
세라가 콘라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슬리에게 물었다.
“곰 아저씨. 누구?”
“제국의 황태자 전하시다. 예를 갖추거라.”
“황태자? 그게 뭐야?”
세라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어 오슬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시안은 살짝 놀랐다.
내심 화를 낼 줄 알았건만, 어째 조금은 유해진 오슬리였다.
“너희 다크 엘프의 숲지기처럼···.”
“되었습니다. 엘프에게 인간들의 문화를 강요할 순 없지요.”
그러나 이어진 콘라드의 말에 오슬리가 입을 다물었다.
콘라드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안과 그 품에 안겨있는 세라.
그리고 어째서일까.
“허헉···! 허헉···!”
시안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머리가 젖어있었다.
마치 격한 무언가를 하고 있던 듯한 모습.
콘라드는 방금 전, 노크 소리도 듣지 못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가 방해를 한 건─.”
일순간 콘라드의 말이 뚝, 끊겼다.
힘겹게 돌린 시야로 콘라드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면서도, 어딘가 괘씸한 감정.
그 모순된 감정이 섞여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괘씸한 감정이 섞여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콘라드는 마치 바람 피는 매제··· 를 보는 듯한···?
“자네···!!”
그 알 수 없는 괘씸한 감정의 목소리가 시안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