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희생
쩌억, 벌어진 다이슨의 입.
그곳에선 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경악으로 물들어진 표정만이 다이슨의 고통을 대변할 뿐이었다.
다이슨은 악마 7군주가 아니다.
인스티즈가 갖는 광기에 사로잡힌 다크 엘프일 뿐.
그리고 다크 엘프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심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털썩.
다이슨의 몸이 끝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입과 가슴으로 붉은 피가 쏟아지며 대지를 붉게 적신다.
“왜··· 왜···.”
쇳소리와도 같은 다이슨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사이로 터벅, 아스란디즈가 다가왔다.
원망 어린 목소리와 시선이 아스란디즈를 향한다.
“왜··· 저··· 를···.”
아스란디즈는 가만히 다이슨을 바라볼 뿐,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그저 이런 말만을 반복해서 내뱉을 뿐이었다.
다크 엘프의 숲지기, 아스란디즈.
숲지기로서 아스란디즈가 짊어져야했던 운명.
평생토록 사랑했던 아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그 둘을 제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운명.
아스란디즈의 눈가는 더없이 담담해보였다.
눈물 같은 것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정말··· 정말 미안하구나···.”
그러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깊이는, 도무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눈물 따위를 흘릴 자격이 없다는 것일까.
아스란디즈의 목소리는 그 어떤 슬픔보다 깊고 또 어두웠다.
“아··· 아아···.”
다이슨의 쇳소리가 희미해져갔다.
푸확.
시안은 그때서야 꽂혀있던 인스티즈를 뽑아 빼내었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피가 복부 아래로 쏟아져나왔다.
“크학···!”
전신을 휘몰아치는 통증에 시안의 몸이 기울어졌다.
그나마 등 뒤로 관통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랬다면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격한 숨을 몰아쉬며 대검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오슬리.
식은 땀을 뻘뻘, 흘리는 파나트.
탈진한 것인지 주저앉아있는 세라.
그리고 수 만의 야만족들.
수 만의 야만족들은 여전히 광기에 삼켜져 있었다.
다이슨의 힘은 약해졌으나 인스티즈의 힘은 여전했다.
그렇기에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할 수 있었지만 이것도 조만간이었다.
다크 엘프의 파수꾼들, 아르카닉 마법 병단.
그리고 바텐베르크의 병사들.
그들이 야만족들과 충분히 대적하고 있었다.
특히나 켄드릭과 루벤의 기사단들.
켄드릭은 다이슨의 죽음을 확인한 뒤, 곧장 야만족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이 정말 미쳐 날뛰고 있었다.
마스터 상급의 데스 나이트, 켄드릭.
마(魔)를 다루는 루벤의 기사단.
여기에 <뮤리엘의 축복>의 버프.
능력 보정을 +450%로 받고 있으니 야만족들이 추풍낙엽으로 쓸려나가고 있었다.
끝났다.
다이슨의 죽음과 함께 북부의 사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털썩.
시안은 그때서야 주저앉을 수 있었다.
복부에서는 심장 박동에 맞춰 꿀럭이며 피가 쏟아져나왔다.
마기를 끌어 출혈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완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괜찮은가.”
아스란디즈가 천천히 다가와 시안에게 물었다.
그러나 곧 시안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척 보기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괜찮··· 습니다.”
하지만 시안은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괜찮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스란디즈 앞에서는 차마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안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이다.
잘 치료하고, 잘 쉬면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스란디즈는 그렇지 않았다.
숲지기로서 가족을 죽여야만 했던 고통.
잘 치료하고, 잘 쉰다 한들.
예전처럼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금 여기서 가장 괜찮지 않은 이는 다름 아닌 아스란디즈가었다.
아스란디즈가 가만히 시안을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쓰러진 다이슨을 바라봤다.
시뻘건 피가 바닥을 적시다 못해 웅덩이가 만들어져있었다.
부릅, 뜬 두 눈은 감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약한 생명의 신호 또한 서서히 흩어져가고 있었다.
“내가··· 내가 너무 늦었구나.”
아스란디즈가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역시나 다이슨의 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아스란디즈는 그런 다이슨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꿈틀.
다이슨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윽고 다이슨의 손이 뻗어지며 바닥에 널브러진 인스티즈를 붙잡았다.
아스란디즈가 놀라 다이슨을 바라봤고 다이슨의 시선이 아스란디즈를 향했다.
그러나 다이슨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뱉을 힘마저 모두 쥐어짜내 인스티즈를 붙잡았다.
꺼져가는 마지막 생명의 신호.
다이슨의 표정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콰아아아아아아아─!!!!
인스티즈에서 붉은 마력이 폭사한다.
퍼져나간 마력이 순식간에 세상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사방으로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야만족들이 내뱉는 비명이었다.
수 만의 야만족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마다 격통을 참지 못해 무릎을 꿇으며 괴로워했다.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절규와도 같은 비명.
털썩.
철푸덕.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만족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죽··· 었어?”
누군가 내뱉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쓰러진 수 만의 야만족들에게 검붉은 마력이 뿜어져나왔다.
드리웠던 광기의 힘. 그 힘이 하늘로 떠올라 한데 모여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단 야만족들뿐만이 아니었다.
다이슨의 몸 또한 들썩거리며 붉은 마력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와 함께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던 다이슨의 생명이 사라졌다.
그렇게 뭉쳐진 광기의 힘은, 순식간에 인스티즈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콰르르르르릉···!
인스티즈에서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오며 부르르, 떨려왔다.
인스티즈 안에 담긴 엘로디의 힘.
그것이 광기의 힘과 더해지며 끔찍한 힘을 사방으로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아스란디즈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 뒤를 이어 파나트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인스티즈의 마력이··· 폭주하고 있어···.”
폭주하는 인스티즈의 마력.
그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곧··· 인스티즈가 폭발할 거네···.”
인스티즈의 폭발.
다이슨은 마지막 힘을 불사르며 인스티즈의 마력을 폭주시켰다.
인스티즈에 담긴 힘은 단순한 힘이 아니다.
대마도사 엘로디의 힘이 봉인되어있는 초월적인 힘.
“이, 이 정도의 마력이 폭발한다면···.”
그리고 그런 엘로디의 힘이 폭발한다는 것.
“북부의 절반 가량이··· 날아가버릴 거네···.”
파나트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부, 북부의 절반?!”
“그 무슨 말도 안되는!”
파나트의 말에 사람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북부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의 화력.
그것은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는다는 절대적인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뒤이어 오슬리가 파나트에게 말했다.
“폭주를 저지할 방법은 없나?”
“불가합니다. 저 정도의 마력은 아무리 저라도··· 저건 가주께서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폭주하는 엘로디의 힘.
현존하는 대륙 최강의 마법사 에그리트라도 엘로디에는 범접할 수 없다
“젠장!”
오슬리가 거칠게 소리쳤다.
파나트는 결연한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저와 아르카닉 마법사들이 대규모 텔레포트를 준비하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을 텔레포트 시킬 수 있나?”
오슬리의 물음에 파나트가 고개를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제 수준으로는 모든 이들을 데리고 가는 건 불가합니다. 마력의 폭주로 마나가 뒤틀리는 바람에 술식의 완성이 어렵습니다.”
“저기, 저 숲지기가 도와준다면?”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갈 수 있겠지만···.”
파나트는 끝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내뱉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기 모인 이들의 수는 무려 수 만.
이 모든 이들을 텔레포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이슨은 인스티즈의 마력으로 가능했지만 그 인스티즈가 지금 폭주를 일으키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는 희생해야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북부의 절반이 날아가는 대폭발.
그건 폭발 반경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는다는 뜻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북부인들은 물론.
다크 엘프의 마을에 있는 다크 엘프들까지.
그런 이들까지 모조리 대피시키기엔 역량도, 시간도 부족했다.
“어떻게 그런···!”
“잔인하지만 현재로서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지금 저것을 막을 방법 같은 건···.”
바로 그때.
“이건 우리 다크 엘프가 저지른 과오다.”
아스란디즈의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아스란디즈가 인스티즈 앞에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숲지기는 그것을 마땅히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지.”
그리고 들려오는 아스란디즈의 말.
그 의도를 눈치챈 파나트가 소리쳤다.
“불가합니다! 아무리 숲지기님이 가주와 버금가는 수준의 마법사라해도···!”
꽈득.
그러나 아스란디즈는 듣지 않았다.
아스란디즈는 인스티즈를 붙잡으며 폭주하는 마력을 통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폭사하는 힘의 파동이 모두 아스란디즈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아스란디즈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시야가 붉어지며, 파지지직─! 아스란디즈의 전신으로 검붉은 뇌전이 터져나왔다.
“크학···!”
그 힘의 파동에 휘말려 시안이 내동덩이 쳐졌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켄드릭이 다가와 부축해준 덕에 완전히 내동덩이 쳐지는 일만은 면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검붉은 마력의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힘의 파동이 인지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단순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져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스란디즈의 입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아, 아빠···!”
“숲지기님!”
세라와 파수꾼들이 소리치며 뛰어갔다.
“가면 안 됩니다!”
파나트가 그런 이들에게 소리쳤지만 무의미했다.
휘몰아치는 힘의 격류에 다가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폭주하는 엘로디의 힘.
무한한 마력의 폭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아스란디즈의 비명 또한 끊임없이 들려왔다.
극으로 치닫는 상황.
바로 그 순간.
뚝.
일순간 아스란디즈의 비명이 잠잠해졌다.
그와 동시에 휘몰아치던 마력의 폭풍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폭주하던 인스티즈의 마력 또한 점점 안정화되었고.
느껴지던 힘의 파동 또한 같이 안정화되었다.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는다.
“마, 말도 안돼···.”
그 사이로 파나트가 경악으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나트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아스란디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본 아스란디즈의 모습은 격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
어둠의 마나를 다루는 다크 엘프의 숲지기.
그리고 엘로디의 머나먼 후손.
“해, 해내셨군요!”
아스란디즈는 끝내 폭주하는 인스티즈의 마력을 진정시켰다.
파나트가 감탄스러운 얼굴로 재차 소리쳤다.
“정말··· 정말 대단하십니다! 같은 마법사로서 이건 도무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파나트가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우린 살았어···.”
긴장이 풀리며 모두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직.
“모두 다가가지마!”
시안의 외침과.
“아빠가··· 아빠가··· 아니야.”
세라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 시안과 세라에게로 향했다.
시안은 딱딱한 얼굴로 아스란디즈를 바라보고 있었고.
세라는 공포 가득한 얼굴로 아스란디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스란디즈의 목소리.
【무한한··· 어둠···.】
아스란디즈의 두 눈빛이
붉은 광채로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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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아스란디즈의 몸이 휘청거렸다.
격통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일까.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 아스란디즈의 몸은 괴로워보였다.
【“끝없는··· 고통···.”】
기괴한 목소리였다.
이 세상의 존재가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쇠붙이를 긁는 소리. 불이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
이 모든 소리를 합쳐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느껴지는 끔찍한 악의와 광기.
“이, 이게 무슨···.”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과 놀람.
그리고 뚜렷한 당황이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아스란디즈! 악의에 굴복하지 마세요!”
오직 시안만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소리칠 뿐이었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며 아스란디즈를 바라봤다.
인스티즈의 폭주하는 마력을 제어한 아스란디즈.
정확히는 인스티즈의 폭주하는 마력을 받아들인 아스란디즈.
인스티즈에는 엘로디의 힘이 봉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무래도 엘로디는, 단순히 자신의 힘만을 봉인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을 봉인하면서 무언가를 인스티즈에 같이 가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인스티즈에 가두기 위해.
자신의 힘을 봉인시켰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그러나 방금 전의 폭주로 인해 그 무언가가 깨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아스란디즈가 인스티즈의 마력을 받아들이면서 아스란디즈의 몸을 잠식한 것.
【“끄아아···! 끄악···!”】
아스란디즈는 지금 그것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느껴지는 악의는 있었으나, 악마 7군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 확실한 건 한 가지.
이대로 두었다간 세상에 다시 없을 끔찍한 악(惡)이 탄생한다.
아무런 제약도, 방해도 받지 않는 최악의 악(惡)이.
“인스티즈를 없애야합니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 쥐었다.
힘의 사용에 뚫린 복부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전신으로 격통이 휘몰아치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러나 시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시안은 마혼무영보를 밟으며 다이슨이 들고 있는 인스티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쩌어엉─!
붉은 마력의 장막이 시안의 검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텁, 우악스러운 손길이 시안이 목을 움켜쥐었다.
【“아니.”】
기괴한 목소리가 시안의 귓가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