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격전
칠흑의 마기가 사방으로 드리운다.
그어어어어어어─!
들려오는 지옥의 이명.
끔찍한 해방을 맞이한 마기가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
다이슨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힘.
이것은 다이슨의 인지로도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었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지만, 밀린다.
엘로디의 힘으로 끌어올린 광기가 밀리고 있었다.
힘의 차이는 명백하다.
엑시드의 경지에 닿은 엘로디의 힘.
힘의 차이는 이쪽이 명백히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격의 차이에서 억눌리고 있었다.
본질 혹은 근원의 힘.
터져나오는 마기는 무차별적으로 광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니.’
다이슨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힘의 차이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다이슨은 혼동스러웠다.
이게 정말 격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격이 높다 한들 한계는 있었다.
명백한 힘의 차이 앞에선 그 한계를 드러낸다.
헌데 지금은 그 한계는 커녕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이슨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무엇보다 저기 저 갑자기 튀어나온 데스 나이트.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는 살아 생전 기사가 원한에 사무쳐 태어난 마(魔)의 존재.
그래, 말 그대로 마(魔)의 존재였다.
오해로 빚어낸 다크 엘프들과는 달랐다.
데스 나이트는 존재 자체가 사악하고 사이한 존재다.
그렇기에 다이슨은 데스 나이트를 부릴 수 있었다.
인스티즈의 힘을 빌어 데스 나이트를 조종할 수 있었다.
현재 다이슨은 군림하는 마왕.
지금 광기에 물든 야만족들 또한 그러한 원리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 데스 나이트는 불가했다.
마력을 끌어 광기를 터트려도 저항했다.
아니, 저항은 커녕 역으로 삼켜졌다.
오로지 저 금발 머리의 인간, 시안을 따르고 있었고.
그렇기에 다이슨은 느낄 수 있었다.
타오를듯 일렁이는 검푸른 안광 속.
그 안에 담긴 포악한 힘을.
그건 다크 엘프의 숲지기, 아스란디즈와 견줄 정도의 수준이었다.
마법사가 아닌 기사.
방법과 방향은 다르나 저 데스 나이트는 아스란디즈와 견줄 만한 존재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
다이슨은 가만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그 사이로 터벅.
시안이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걸음을 내딛는 시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폭사시켰던 엘로디의 힘을 버텨냈으니 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까보다 불안정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난폭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한계까지 억눌린 힘이 보인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그것은 마치 어떠한 촉발제만 있다면, 억눌린 광포함이 터져나올 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 아스란디즈.
다이슨을 위협하는 존재는 여럿이나, 가장 신경쓰이는 건 역시나.
저 금발의 인간, 시안이다.
다이슨은 천천히 인스티즈를 들어올렸다.
그런 다이슨의 뒤로 수 만의 야만족들이 드리웠다.
한곳에 모인 야만족들의 군단은, 눈에 보이는 광기나 다름 없었다.
존재만으로 대상의 정신을 갈가리 찢어버린다.
다이슨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고정된다.
다이슨이 시안을 보고 있듯.
시안 또한 다이슨을 보고 있었다.
터벅, 내딛어지는 발걸음.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프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내부는 뒤틀려 마기가 이리저리 꼬여있었다.
인스티즈에 깃든 엘로디의 힘.
카일의 마혼제법이 아니었다면, 아까 전 마력의 격류에 찢겨졌으리라.
캬하륵! 캬학!
캬아아아아─!
다이슨의 등 뒤로 모인 야만족들에게서 심연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꺾는다면, 광기에 삼켜져 정신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그러니.
‘멈추면 안돼.’
멈추지 않는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숨을 크게 삼키며 정신을 집중한다.
사아아아─!
마기가 치솟으며, 시안의 전신으로 어둠이 드리운다.
깨질듯한 두통이 사라지고, 흐릿한 시야가 뚜렷해졌다.
그 맑은 시야 속에서 시안은 다이슨을 바라봤다.
다이슨의 붉은 광채 또한 시안을 향하고 있었다.
철컥! 철컥!
시안의 뒤쪽으로 루벤의 기사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켄드릭을 필두로 한 루벤의 기사단.
쿠르르르릉···!
진군을 거듭한 루벤의 기사단이 시안을 지나쳐 앞으로 뛰쳐나간다.
시안은 계속해서 걸었다.
뒤쪽으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북부의 전사들이다!”
“전력을 다해 시안을 도와라!”
“다크 엘프의 과오는··· 우리 손으로 덮는다.”
오슬리와 파나트.
그리고 아스란디즈의 외침.
와아아아아아아─!
크나큰 함성이 터져나오며 수 만의 병력들이 움직인다.
두두두두두!
대지가 떨려오며 수 만의 병력들이 야만족들을 향해 달려간다.
이어 수만의 군세가 시안을 지나쳐 앞으로 쏟아지려는 순간.
번쩍!
시안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터져나왔다.
시안의 몸은 하나의 어둠이 되어 쏘아져나갔다.
검은 섬광과도 같은 움직임은, 앞선 켄드릭과 루벤의 기사단을 제치며 빠르게 쇄도해갔다.
캬하륵! 캬학!
캬아아아아─!
다이슨의 뒤편으로 도열한 야만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던 야만족들의 군세.
일순간 그 군세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군세 사이로 시안과 다이슨의 모습이 보인다.
다이슨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인스티즈의 끝을 시안에게 겨누어 자리에 서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로브가 사정없이 펄럭거렸고.
새빨간 광채를 빛내는 다이슨은 실로 마왕(魔王)이라 부름직 했다.
시안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마혼무영보를 밟으며 어둠처럼 다이슨에게 쇄도한다.
마주치는 시선.
휘둘러지는 칠흑의 검과 함께, 인스티즈의 마력이 폭사한다.
꽈아아아아앙!
공간이 찢어지는 폭음이 터져나왔다.
충돌한 힘의 여파가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공기가 비산한다.
콰릉!
크나큰 진동과 함께 시안의 몸이 다시 어둠으로 사라진다.
다이슨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인스티즈를 휘둘렀다.
꽈꽝!
다시 한 번 격돌음이 터져나왔다.
시안은 SSS등급의 검이 인스티즈의 마력을 부수지 못했다는 것에 눈을 치켜떠보였다.
‘흩어지지 않는다.’
다이슨이 펼쳐낸 마력의 장막이 흩어지지 않았다.
광기에 기반한 힘임에도 시안의 마(魔)에 굴복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시안은 다시 한 번 자각할 수 있었다.
인스티즈에 깃든 것은 악마 7군주가 아닌 엘로디의 힘.
그 어떠한 제약도, 방해도 없는 엘로디의 힘이다.
장막 너머, 다이슨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다이슨의 두 눈빛이 붉은 광채를 발한다.
“원초의 붕괴. 그 끝없는 갈망···.”
인스티즈의 끝으로 붉은 마력이 터져나간다.
무한의 마력이 사방으로 드리운다.
“내리쳐라.”
콰르르르릉!
사방으로 번져나간 붉은 마력이 셀 수 없는 번개가 되었다.
무수히 많은 번개는, 다시 한 번 한 점을 노리려 쏘아진다.
번개가 노리는 목표는 오직 시안.
번─쩍!
번개가 쏘아지며 쇄도한다.
가감없는 빛의 속도.
일순간 시안 앞쪽의 공간이 일렁인다.
쏘아지던 번개의 방향이 틀어졌다.
꿈틀.
다이슨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다이슨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 쪽으로 향했다.
아스란디즈이 양손을 앞으로 뻗어 공간을 붙잡고 있었다.
아스란디즈이 공간의 축을 붙잡아 비틀어, 왜곡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환계가 아니다. 공간 자체가 비틀리고 있다.
그리고 공간에 간섭한다는 것.
그건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환계와 달리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공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거진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의 준엄한 법칙.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법칙.
그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다루지 않는 이상.
진리의 끝자락을 엿보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과연 8위계(位界)의 대마법사.
꽈아아앙!
공간의 일그러짐으로 번개가 거친 황야에 내리꽂혔다.
대지를 깊게 파고 들어간 번개는, 땅거죽을 갈가리 찢어버리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땅 끝에서 하늘 끝.
비산한 붉은 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세상에 붉은 색이 덧칠해졌다.
시안은 그 비현실적인 현상을 가르지르며 마혼무영보를 밟았다.
사아악─!
시안의 몸이 다시 한 번 어둠으로 화했다.
다이슨의 윤곽이 흐릿해지며 일순간 둘로 나뉘었다.
그리고 다시 넷, 여덟, 수 십, 수 백. 다이슨의 몸이 계속해서 분열한다.
공간을 왜곡하는 환계.
감각을 속이는 현혹.
눈을 현혹하는 환술.
여러 개념들로 표현되는 마법이나 공통점은 하나다.
결국 환(幻)이자 허(虛)였다.
분영은 분영일 뿐, 존재하지 않는 실체다.
그러나 다이슨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수 백으로 분열한 다이슨은 저마다 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분열한 다이슨이 마법을 시전한다면, 그것 또한 실체가 되어 현실이 된다.
화륵, 화르르륵!
콰아아아아!
수 천개의 화염구와 마법 화살이 떠오른다.
마력의 다발들이 하늘과 땅, 공간 전체를 드리웠다.
각기 파이어 볼, 매직 애로우, 매직 미사일.
가장 기본적인 공격 마법이라 부르는 것들이었다.
분영은 저마다의 실체를 가진다.
그러히에 수준 높은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 하는 건 불가하다.
그러나 그 수가 압도적이라면.
그건 더 이상 기본이라 부를 수가 없다.
사각 따위는 없다. 압도적인 물량이 만들어내는 공세가 시안의 전신을 내리누른다.
온다. 시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의 향연이다.
그러나 기본이라 하여, 다 같은 기본이 아니다.
카일의 마혼수라검.
그것 또한 베기(斬)와 찌르기(衝)라는 검의 기본에 기반한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묘리와 위력은 초월적이다.
마법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 술식을 더하고 덧붙이느냐.
어떻게 세계의 법칙을 다루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 만별이다.
화염의 마법의 기본인 파이어.
바람 마법의 기본, 윈드.
여기에 엘로디의 마력을 더 한다면.
화염계 최강의 마법, 헬파이어(Hellfire)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지금, 저기 그 기본 마법이 수 천개에 달한다.
그 말은 즉, 저건 수 천개의 헬파이어나 다름 없었다.
시안은 자세를 낮추어 검을 치켜들었다.
하나하나 상대하는 것은 불가하다.
저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뚫고 피하는 것도, 막는 것도 불가하다.
아스란디즈와 파나트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그러니 부숴야한다.
더 강력하고, 더 강대한 힘으로.
그리하여 펼쳐진 이 공간 자체를 박살내야 한다.
시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거대한 마기가 일렁이며 시안의 몸을 통째로 삼켰다.
<뮤리엘의 축복>으로 상승된 +450%의 신체 능력.
일렁이는 어둠 사이로 거대한 참격이 휘둘러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검격이 세상 전체를 베어버렸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第 一式).
수라천살(修羅天殺).
콰자자자자작─!
빌어먹을.
다이슨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펼쳐진 마력의 세계가 일시에 박살이 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분영된 환술 또한 소멸되었다.
역시.
이게 어딜 봐서 한낱 인간이 구사하는 검술이란 말인가.
꽈아아아앙!
검격이 베고 지나간 자리가 쩌적, 하고 갈라졌다.
대지가 산산히 부서져 하늘로 튀어오른다.
힘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와도 같은 잔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쐐애액!
일순간 섬뜩한 기세가 쏟아져온다.
거대한 대검이 다이슨의 목을 노리고 달려든다.
곰과도 같은 기세를 품은 오러 블레이드.
쌔애애액!
공기가 찢어지며 공간이 둘로 갈라졌다.
오슬리의 대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새로운 공간에 번쩍! 빛이 터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다이슨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법사는 이래서 싫어.”
오슬리가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다이슨은 답하지 않았다.
치켜든 인스티즈의 끝으로 붉은 마력이 넘실거린다.
쿠르르르릉···!
다이슨의 전신으로 힘이 퍼져나간다. 다이슨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며 떠오른다.
꽈앙!
오슬리가 땅을 박찼다. 거대한 덩치가 번개처럼 움직이며 몸이 쭈욱, 늘어지는 듯한 착각이 인다.
생각의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오는 속도.
콰콰쾅!
다이슨과 오슬리 한 가운데서 폭발이 터졌다.
쾅, 콰쾅! 하나의 폭발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다시금 새로운 폭발을 만들어내었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오슬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다이슨이 터벅, 걸음을 내딛는다.
인스티즈의 끝자락이 오슬리에게 향한다.
그 순간 가느다란 흑색의 선이 다이슨의 몸을 휘감았다.
그와 함께 수 십개의 파란색의 마법진이 주위로 새겨진다.
그 사이로 느껴지는 끔찍한 마력의 파동.
다이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 시선으로 아스란디즈와 파나트의 모습이 보인다.
다이슨이 입을 까득, 씹었다.
일순간 다이슨의 두 눈빛이 붉은 광채를 발한다.
강맹한 힘이 요동치며 세상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콰콰쾅! 쾅!
꽈꽝!
소름끼치는 폭발이 터져나왔다.
지면이 통째로 주저앉으며 천지가 요동쳐온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다이슨이 답지 않게 욕설을 내뱉었다.
“쿨럭···!”
입가를 비집으며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온다.
역량을 초월한 힘의 사용에 코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인스티즈에 깃든 엘로디의 힘은 가히 무한하다.
그러나 그 힘을 끌어내는 다이슨의 역량이 제한적이다.
아스란디즈 하나면 모르겠다만.
예상치 못한 실력자가 너무 많다.
또한 무리하게 게이트를 열음으로써 그 한계를 빠르게 맞이했다.
번뜩!
아득한 시야 앞으로 검푸른 안광이 덮쳐온다.
끔찍한 마기를 품은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가 쇄도해온다.
이건 위험하다.
다이슨은 인스티즈를 급하게 휘두르며 블링크를 펼쳤다.
번쩍, 터져나오는 빛과 함께 다이슨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공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는 계속해서 따라왔다.
마력의 파동을 읽는 것일까.
다이슨이 도약한 공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데스 나이트의 검이 덮쳐온다.
꽈지지지직!
공간을 찢고 들어온 일격에 다이슨의 정신이 순간 날아갔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다이슨은 정신을 붙잡았다.
정면 승부는 피해야한다.
특히나 이 정도 수준 높은 기사와의 정면 승부는 더더욱.
다이슨은 빠르게 인스티즈를 휘둘렀다.
키이이이잉─!
인스티즈의 붉은 마력이 빛을 발하며 터져나온다.
영창은 생략한다.
“터져라!”
꽈꽈꽈꽈꽝!
커다란 폭발이 앞선 데스 나이트를 집어삼켰다.
폭발에 휘말린 데스 나이트의 갑옷이 살짝, 우그러진다.
그 모습에 다이슨은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의 위력을 더했다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었을텐데.
시동어를 발동했으나, 앞선 영창을 모두 생략했다.
그 때문에 크나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언령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말 자체에 의지를 싣는 언령 마법.
무영창으로 시전하는 마법이나, 영창 마법의 위력을 발휘하는 마법사들의 꿈.
전설처럼 기록만이 남아있는 마법이나, 엘로디의 힘은 그 꿈을 현실로 가능케 해주었다.
그러나 아직, 다이슨은 그 수준에 닿지 못했다.
가진 바 역량으로 그 힘을 끌어낼 수 없었다.
번쩍!
빛이 터져나오며 다이슨이 빠르게 공간을 도약했다.
그리고 다시 번쩍. 다이슨은 연이어 공간을 도약했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
번쩍! 번쩍! 다이슨은 블링크를 펼치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이어 다시 한 번 번쩍!
블링크로 공간을 연달아 뛰어넘는 그 순간.
‘위험!’
다이슨은 섬뜩한 위화감을 느꼈다.
죽는다.
그 강렬한 죽음의 경고가 다이슨을 덮쳐왔다.
판단을 내리는 짧은 순간.
다이슨은 두 가지 선택을 떠올렸다.
첫 째는 이 위화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아니면 이 위화감에 대적하는 것.
다이슨의 선택은 둘 중 무엇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이슨의 인스티즈가 움직였다.
서걱!
콰직!
섬뜩한 절삭음과 파육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절삭음과 함께 다이슨의 왼팔이 하늘로 솟구쳤고.
파육음과 함께 인스티즈의 끝으로 누군가의 복부가 꿰뚫렸다.
부릅 떠지는 다이슨의 두 눈.
눈앞으로 금발의 인간, 시안이 인스티즈에 꿰뚫린 채 서 있었다.
‘그 속도를··· 따라왔다고?’
생각은 금방 지워진다.
“끄아아악!”
“크학···!”
다이슨과 시안의 격통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입가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아래로 떨어져 대지를 적셨다.
다이슨은 빠르게 마력을 끌어 왼팔의 출혈을 막았다.
아득한 정신이 떠나려했지만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리고 눈앞의 시안을 바라봤다.
인스티즈에 복부가 꿰뚫려 피를 쏟고 있는 시안.
이렇게 된 이상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다이슨의 연속 블링크를 따라붙은 시안.
물론 블링크는 마력의 파동을 남긴다.
일정 수준에 이르는 기사들은 그것을 역추적하여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연속으로 시전하는 것에는 불가능했다.
마력의 파동이 얽히고 설켜 추적이 불가하다.
그건 저기, 데스 나이트도 불가하리라.
그런데 지금···.
“네··· 녀석···!”
역시 이 금발의 인간이 가장 거슬리는 존재다.
다이슨은 이를 까득, 씹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시안을 죽인다.
어째서 그러한지 알지 못했지만 시안만 없으면 된다.
팔 하나 쯤이야 아깝지 않았다.
이로써 시안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면.
다이슨은 인스티즈의 마력을 폭사시켰다.
“끝이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다이슨의 입가가 비죽였다.
그 순간.
“누가··· 할 소릴···!”
꽈악!
시안이 말을 내뱉으며 인스티즈를 움켜쥐었다.
이윽고 시안의 전신에서 끔찍한 마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마력이···?”
인스티즈의 마력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인스티즈에 깃든 광기의 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다이슨은 인스티즈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사라진다.
드리우는 모든 마력과 광기가 굴복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세상 만물로 하여금 복종을 강요한다.
근원의 마(魔).
터져나오는 어둠의 마나도.
드리우는 광기도.
끝내 태어난 본질, 마(魔)로 돌아가 환원된다.
“······!”
치명적인 본능이 경고한다.
다이슨은 그때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아까 전부터 느껴진 섬뜩한 위화감.
강렬한 죽음의 경고.
그것이 아직 본능을 잠식하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다이슨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다이슨은 폭사시키던 마력을 거두었다.
그리고 인스티즈에 힘을 주어 빼내었다.
꽈아아악!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시안의 복부를 꿰뚫은 인스티즈는 시안의 손아귀에 붙잡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스티즈를 버려야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그 순간.
“미안하구나··· 아들아.”
뒤 쪽으로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다이슨이 무얼 대응할 틈도 없이.
푸확!
다이슨의 심장이 터져나가며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허공으로 비산한다.
후두두둑, 땅으로 떨어져내리는 붉은 선혈.
“······!!!!”
다이슨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