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다크 엘프(2)
갑자기 들려온 스마트 폰의 알림음.
‘응?’
시안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세라가 준 옷 덕분에 꽝꽝, 얼어있던 스마트 폰도 온기를 되찾았다.
그와 동시에 모바일 영주 또한 정상으로 돌아왔다.
띠링!
《너무 추우면 손상될 수 있다구욧!》
모바일 영주가 정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뭐, 아무튼.
시안은 떠오르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을 꺼버리고는 퀘스트의 알림창을 확인했다.
『[영지 퀘스트] - ‘다크 엘프가 부릅니다. 우리는 악마가 아니얏!’ (클리어!)』
<보상: 다크 엘프의 호의>
.
.
‘클리어 되었다고?’
퀘스트가 클리어 되어있었다.
그와 동시에 보상으로 다크 엘프의 호의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숲지기가 곧장 마을로 안내해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시안이 한 것이라고는 세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데 클리어 된 퀘스트.
“안 들어오고 뭐해?”
그 순간 앞선 시야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라는 일렁이는 공간 사이로 머리만 쏙, 내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허공에 머리만 둥둥, 떠다는 모습이었다.
“빨리 들어와. 결계 닫아야 해.”
이윽고 세라가 다시 일렁이는 공간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 일단은 가보자.’
시안은 다시 걸음을 옮겨 일렁이는 공간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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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종족, 엘프.
기나긴 세월 인간과 단절되어 살아온 종족.
일렁이는 공간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자 일순간 시야가 반전되었다.
약한 현기증이 일며 뒤집힌 시야로 울창한 숲의 풍경이 비쳐보였다.
울창한 숲.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던 눈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살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추위 또한 사라졌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하늘로 높이 치솟아 있었다.
두께는 또 어찌나 두꺼운지.
성인 남성 10명이 손을 붙잡아 이어도, 채 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무들이 시야 가득히 들어서 있으니.
실로 울창하다 못해 장엄한 숲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또 그 뿐이랴.
그런 거대한 나무들의 몸통마다 위 아래로 천막과도 같은 집들이 붙어있었다.
땅에 붙어있다시피 한 집들로부터.
저기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이 올라있는 집들까지.
그런 집들마다 바닥까지 나무 덩굴이 줄줄이 내려져있었는데.
아마 집으로 오르고 내리는, 사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뒤이어 시안의 뒷공간이 일렁이며 오슬리와 파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눈앞의 숲을 마주하더니.
“북부에 어찌 이런 지역이···?”
“북부에 어찌 이런 지역이···?”
오슬리와 파나트가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각자 가진 바 의미는 달랐다.
오슬리는 어째서, 라는 의미가 있었다면.
파나트는 어떻게, 라는 의미가 다분했다.
“세계수의 힘으로 만들어낸 공간이야. 굉장하지?”
세라가 싱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세계수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옆에서 파나트가 감탄 어린 말투로 뭐라 중얼거렸다.
하지만 시안은 그냥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다크 엘프 마을은 보기보다 더 웅장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넓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을이라 부를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을 안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광장에는 어린 엘프들이 흑발을 휘날리며 뛰놀고 있었다.
세라도 그렇고, 지금 다크 엘프들의 모습도 그렇고.
세간에 알려진 다크 엘프의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다크 엘프가··· 맞는 건가?”
오슬리와 파나트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순간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높디 높은 나무위에 걸터 앉은 엘프들의 시선 또한 이쪽을 향했다.
짙고도 짙은 흑발과 검은 눈동자.
시안도 몰랐지만 다크 엘프는 눈동자 또한 검고도 검었다.
다크 엘프들은 옹기종기 모여 시안과 일행들을 바라봤다.
인간들이다. 인간들이 왔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인간들은 처음 봐.
보이는 주된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이윽고 일부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느껴지는 기세가 상당한 것이 경비대? 수호대?
다크 엘프들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그런 부류인 것 같았다.
“마을에 인간들이 온 건 처음인데.”
“안녕 인간들!”
“숲지기님이 데려온 거야?”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숲지기에게 향했다.
숲지기가 세라를 슬쩍, 바라보고는 말했다.
“세라가 초대한 이들이다.”
“세라가?”
“응. 내가 데려왔어.”
세라가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그렇구나.”
“세라가 초대했대.”
다크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거리며 소리쳤다.
“반가워 인간들! 혹시 나랑 놀지 않을래?”
“우리랑 놀자! 재밌는 곳이 많아.”
“반짝이는 호수를 보면 다들 신기해하던데. 가볼래?”
뭔가··· 잔뜩 신이 난 기색들이었다.
인간을 딱히 꺼려하지 않는 모습.
이윽고 세라가 두 손을 펼쳐보이며 시안 앞을 가로막았다.
“안돼! 시안은 숲지기님을 만날거야.”
“숲지기님을?”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숲지기에게 향했다.
그러자 숲지기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다크 엘프들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쳇.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리고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어갔다.
숲지기는 다시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세라는 그런 숲지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자.”
그렇게 다가간 곳은 마을 중앙 어귀의 넓은 광장.
호기심 가득한 다크 엘프들의 시선과 함께.
광장 중앙에 남달라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아마 저것이 세계수이리라.
“세계수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서 믿지 않았건만··· 직접 보니 되려 연구들이 죄다 축소 시킨 것이었군.”
이에 파나트가 감탄을 터트리며 말했다.
세계수는 그 이름에 걸맞는 힘을 지닌 나무였다.
생명의 근원을 품고 있어 생명수라고도 불리며.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뚫고 자라는 나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세계를 지탱하는 나무는 아니었고.
엘프들의 도시 혹은 마을을 지탱하는 나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고.
이에 마법사들이 환장을 하다 못해 발작을 하는 나무였다.
생명의 근원을 품은 나무.
그 나무로 만든 마법 지팡이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으니까.
오죽하면 엘프가 타고난 마법사 불릴 수 있는 이유가 세계수 때문이라 하던가.
과거, 세계수를 얻고자 수많은 인간들이 달려들었고.
그 때문에 멸족된 엘프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것이 엘프들이 인간을 더욱 혐오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욕심에도 세계수로 만든 지팡이나 무기는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쯤은 있을 법 하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망가지거나 소실된 이유가 아닌,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수는 스스로가 의지를 품은 나무.
세계수가 선택하지 않은 존재들은 그 힘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설령 뜯어낸 가지라 한들.
세계수의 의지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힘을 잃어버린다.
“이게 세계수구나.”
시안은 눈앞으로 보이는 세계수를 면밀히 살펴봤다.
세계수는 주변의 나무들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의 나무들이 비정상적으로 큰 것일 뿐.
저것 또한 성인 남성 5명이 손을 붙잡아 이어도 채 잡지 못할 크기였다.
그리고 세계수의 모습 또한 조금 남달랐다.
다른 나무들은 제 키를 뽐내듯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다면.
세계수는 무언가를 품어내듯 안쪽으로 굽어 자라있었다.
그런 세계수가 품고 있는 무엇.
그곳엔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무언가가 있었던 거야?”
“응··· 그런데 지금은 없어.”
시안의 물음에 세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답지 않게 어두운 표정이 무언가 사연이 있어보였다.
시안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이윽고 숲지기가 세계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세계수의 밑둥 부분이 상하좌우로 갈라지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와라.”
숲지기는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 모습을 감추었고.
세라를 비롯한 시안과 오슬리, 파나트 또한 그런 숲지기를 따라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내려가자 널찍한 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은 이렇다할 장식이 없었지만 분위기가 미쳤다고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아우라? 기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아늑하면서도 포근한.
눈만 감으면 그대로 잠들 것만 같은, 세상 편안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숲지기는 안으로 들어오는 시안과 오슬리 그리고 파나트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 세라에게로 시선을 멈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라, 너도 잠시 나가있거라.”
“왜. 나도 여기 있을래.”
그러면서 세라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보였다.
“내가 데려온 친구들이란 말이야.”
숲지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세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있을게. 시끄럽게 굴지 않을게.”
그럼에도 숲지기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담담한 시선과 눈빛만이 세라를 향할 뿐이었다.
“내가 데려온 친구들인데···.”
이윽고 세라가 몸을 축, 늘어뜨리더니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세라의 인기척이 멀어지고 난 뒤.
“아스란디즈다. 다크 엘프의 숲지기지.”
숲지기, 그러니까 아스란디즈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숲지기는 숲지기인 것일까.
세라와는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루벤의 영주, 시안입니다.”
시안은 곧장 입을 열었고.
그 뒤를 이어 오슬리와 파나트 또한 입을 열었다.
“오슬리 바텐베르크. 북부의 변경백이다.”
“파나트 로르실트라고 합니다.”
아스란디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었군.”
인간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일까.
오슬리와 파나트를 바라보는 아스란디르의 시선이 미묘했다.
시안은 그런 아스란디즈에게 물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무얼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저희들을 마을 안으로 들여도 되는 겁니까?”
아스란디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혐오한다.
그건 다크 엘프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혐오하면 혐오했지.
이렇게 마을로 초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스란디즈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마을 안까지 안내했다.
시안의 물음에 오슬리와 파나트도 공감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윽고 아스란디즈가 천천히 답을 해왔다.
“세라가 데려오지 않았나.”
“······?”
시안은 순간 뭔가 싶었다.
세라가 데려왔다는 이유로 의심없이 마을로 들여보내준다고?
사실 확인도 없이?
듣자하니 세라는 아스란디즈의 딸이었다.
그러니까, 팔불출의 딸 바보?
시안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존재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세라는 아무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 마을로 초대하는 것은 더더욱.”
“아.”
시안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쩐지, 듀라크도 눈치채지 못했던 근원의 마(魔)를 느낀다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퀘스트가 클리어 된 이유.
그것도 대충 어찌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다크 엘프답지 않은 아이지.”
“인간도 각자 저마다의 개성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다크 엘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는 건 어디까지나 오해이지 않습니까.”
시안의 말에 아스란디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들에 대해 알고 있나?”
“자세히는 모릅니다. 머나먼 그 분의 후손이라는 것 정도밖에요.”
“······!”
그 순간 아스란디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람과 경악.
그 중간쯤에 위치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머나먼 그분의 후손.
그게 엘로디를 의미함을 모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쉽게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쉬이 알 수 없기는 커녕. 이제는 아는 이가 없다시피한 사실이었다.
다크 엘프들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숲지기들에게 전승처럼 들려오는 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걸 인간이 알고 있으니.
아스란디즈의 쉬이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의 지나.
“단순히··· 오해는 아니다.”
아스란디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아스란디즈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처음 보자마자 북부에 퍼진 흑마법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무언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 오슬리를 바라봤다.
지위로 보나, 뭐로 보나.
시안의 일행 중 책임자는 다름 아닌 오슬리였으니까.
그런 시안의 눈치를 알아챈 것인지 오슬리가 반응을 내보였다.
그런데 담담한 눈빛으로 시안은 바라볼 뿐, 딱히 나서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안, 네가 이야기를 꺼내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슬리는 기사였다.
흑마법은 물론 마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시피했다.
비록 북부와 관련이 있는 일이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흑마법.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슬리는 파나트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파나트 또한 나설 생각이 없었다.
오면서 시안의 마법적 지식을 엿본 바.
상당하다 못해 엄청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둠의 마나에 관해서는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수준을 보였다.
그러니 어찌 나설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다크 엘프의 마을에 오게 된 것도 모두 시안의 덕분이었다.
오슬리와 파나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둘의 모습에 시안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좀 쉬면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건만.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순히 오해가 아니라 하심은··· 북부에 퍼진 흑마법이 다크 엘프와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까?”
“······ 그렇다.”
아스란디즈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다크 엘프는 어둠의 마나를 다룬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광기. 그로써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아야만 하는 것. 그건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들여야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광기를 다스리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크 엘프는 엘로디의 후손들.
엘로디는 어둠의 마나를 통제할 수 있었다.
비록 카일의 마혼제법에는 미치지 못했다고는 하나.
또 오랜 세월 엘로디의 지식들이 소실되었다고는 하나.
이들은 어둠의 마나를 통제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딱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라도 그렇고 지나오면서 본 다크 엘프도 그렇고.
그들에게서 그 어떤 광기의 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지금 아스란디즈까지.
아스란디즈는 에그리트와 버금가는 8위계(位界)의 마법사였다.
쉽게 말해 어둠의 마나로 8위계(位界)에 닿은 마법사.
사실상 대륙 최강의 마법사를 논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광기에 물들어 있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어둠의 마나를 거의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봐도 무방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였다니요?”
아스란디즈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오해. 그리고 억울함. 그것이 그 녀석의 마음을 물들였어.”
“그 말씀은···?”
“그 녀석은 우리 다크 엘프가 받는 대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다크 엘프들.
그것은 순전히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둠의 마나는 언제나 광기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광기의 힘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광기로 물들었다면 모를까.
그것이 순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배척이라면 억울할 법도 했다.
아니, 억울하다 못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억압하는 인간들에게 말이다.
그 말은 즉.
“그래서··· 그 녀석이라는 다크 엘프가 반발심으로 지금 북부의 상황을 뒤집어놓았다는 말씀이십니까?”
“······”
아스란디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긍정도, 부정의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침묵만을 일관했다.
잠시 내려앉는 정적.
조금의 시간이 지나 아스란디즈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랬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오해는 인간들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봄이 정확하겠지. 우린··· 우리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었다.”
아스란디즈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면서 보았겠지. 세계수의 모습을.”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지금 있는 곳이 바로 세계수의 밑둥.
세계수가 품은 공간이었다.
“그럼 세계수가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는 것도 보았겠지.”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방금 확인했던 사항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없다는 세라의 말까지도 들었었다.
다만,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까지는─.
“세계수가 품고 있던 것은 인스티즈였다.”
“인스티즈···?”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 하면서도 생소한 단어.
그러다 문득.
“인스티즈라면 설마?”
퍼뜩, 떠오르는 기억에 시안이 놀라 소리쳤다.
인스티즈(Instiz).
이 단어의 시작은 무려 천 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두 이름.
신장(神匠) 모르크루.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이자.
다른 아르나이즈의 전설적인 무구들을 만들어준 아르나이즈.
인스티즈는 모르크루가 만들어준 무구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무구의 주인이 바로.
“엘로디께서 사용하셨던 지팡이였지.”
대마도사 엘로디.
그녀가 사용하던 지팡이가 바로 인스티즈(Instiz)였다.
그리고.
“인스티즈가 어느 순간부터 어둠에 삼켜지기 시작했다.”
이어진 아스란디즈의 말과 함께.
띠링!
『[스토리 연계 퀘스트] - ‘계속되는 진실을 찾아서’』
일순간 스토리 연계 퀘스트에 변화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