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20화 (120/322)

§ 120화 -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마검사...?(1)

오슬리의 고함과 함께 서슬 퍼런 살기가 터져나왔다.

피부를 짓눌러오는 저릿저릿한 살기.

북부의 변경백이자, 마스터(Master) 중급의 실력자.

오슬리는 대륙 제 2의 검을 논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실력자였다.

“아버님!”

벤딩턴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갔다.

시안도 그런 벤딩턴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일련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한쪽은 정갈한 갑옷과 털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평범한 복장의 사람들이었다.

이 추위를 버틸 수 없을 법한 복장.

그리고 평범한 복장의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로 부둥켜 안으며 두려움에 떠는 건지.

아니면 추위에 떠는 건지 모를.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했다!”

사람들의 위로 크나큰 목소리가 재차 터져나왔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걸맞게 그는 거대한 몸집을 한 사내였다.

2m가 넘는 키와 더불어 전신에 꽉꽉 들어찬 근육.

거기에 갑옷 위로 덮여있는 갈색의 털옷까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곰을 연상케하는 사내였다.

그리고 저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세.

그렇기에 시안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바로 북부의 변경백, 오슬리 바텐베르크 백작이었다.

“너희들 때문에 죽어나간 제국민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거늘!”

오슬리가 날이 선 분노를 내뱉으며 등에 매단 대검을 꺼내들었다.

웬만한 성인 남자의 키는 훌쩍 넘는 대검.

저걸 사람이 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대검이었다.

“변경백 각하, 진정하십시오. 아직 밝혀내야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 오슬리를 한 사내가 막아서보였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에 푸른 머리와 차분하고도 지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사내.

다름 아닌 제국의 별, 파나트 로르실트였다.

파나트는 오슬리 앞을 가로막아 보였다.

하지만.

“비켜라.”

오슬리는 파나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되려 싸늘한 눈빛으로 파나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키지 않으면 파나트, 너조차도 베어버리겠다는 기세가 터져나왔다.

그런 오슬리의 모습에 파나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발 물러서보였다.

파나트는 로르실트 가문의 장남임과 동시에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오슬리는 북부의 변경백.

비록 파나트가 아직 작위가 없다고는 하나 로르실트는 로르실트였다.

그리고 오슬리는 백작위의 귀족.

그러나 같은 백작위가 아닌 무려 변경백이었다.

변경백의 지위는 감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경백이란 국경을 책임지는 귀족.

백작위에 머물고 있는 귀족이었으나.

그 막중한 책임과 권한으로 인해 다른 백작위보다 우위에 있었다.

물론 백작은 백작이었기에 공식적으로는 후작보다는 낮았다.

그러나 가진 바 권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해당 지역에서 행정, 군사, 사법상의 최고 권력자를 넘어, 일종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변경백은 해당 지역에서 사실상 왕이나 다름 없었으며.

심지어 변경백은 필요하다면 황제의 명령 또한 거역할 수 있었다.

사후, 그 행동이 타당하다 판단되면 면책권이 부여된다.

물론 그럼에도 황제의 명을 거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만은.

그 정도의 권한이 주어질 정도로 변경백의 입지와 지위는 대단했다.

그렇기에 파나트가 권위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비단 파나트뿐만 아니라 가주, 에그리트는 물론.

듀라크 또한 오슬리를 가벼이 대할 수는 없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슬리의 서슬 퍼런 기세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하지만 오슬리는 듣지 않았다.

살기가 더해지며 뚜렷한 살의가 터져나왔다.

바로 그 순간.

“아버님!”

익숙한 목소리가 오슬리의 귓가로 들려왔다.

오슬리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얼굴.

“······ 벤딩턴? 네가 어찌 여기에···?”

오슬리의 표정이 일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바텐베르크 가문의 장남이자 대공자, 벤딩턴.

벤딩턴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북부는 야만족들로 인해 점령 당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오슬리의 의문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일순간 벤딩턴의 옆으로 한 금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딘가 맹한 분위기.

허여멀건한 피부와 번질번질한 외모.

중앙 정세에서 입만 나불대는 엉덩이 무거운 귀족들이자.

계집들이 꺅꺅, 거리며 좋아할 법한.

그러나 이 혹독한 북부에서는 하루라도 살아남을 수 없는 애송이 혹은 풋내기.

북부의 오슬리가 보기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자는?”

“엘란두르 가문의 시안 엘란두르 공자님이십니다.”

“엘란두르···?”

오슬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시안은 한 발 나서며 오슬리에게 말했다.

“루벤의 영주, 시안이라고 합니다. 변경백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슬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시선을 내려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오슬리에게서 알 수 없는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썩 좋은 감정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것도 벤딩턴과 함께.”

오슬리의 입에서 북부의 겨울처럼 차디찬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오슬리의 표정 또한 냉혹하기 그지 없었다.

시안이라는 이름을 모르지 않았거니와.

로르실트와는 달리, 엘란두르에서 보낸 전력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주러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사실 도움이 아닌 생색만 내려는 속셈처럼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슬리의 반응은 당연했고.

벤딩턴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버님! 오해입니다!”

벤딩턴이 나서며 시안과 오슬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슬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해?”

“그러니까···.”

벤딩턴은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말을 흐렸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본인부터가 믿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바로 그때.

“혹시··· 성자(聖子)님 아니십니까요?”

한 쪽에서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시안은 순간 뭔가 싶어 고개가 저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자(聖子)라는 말.

마(魔)를 다루는 기사가 웬 성자(聖子)냐 싶지만.

그럼에도 시안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샤를롯 제국에서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시안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

그러니까, 오슬리가 죽이려했던 사람들이었다.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설마 신성 제국 사람들?”

“아이고! 역시 성자님이 맞으셨네!”

“성자님이 오셨어! 성자님이!”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성자?”

“그게 무슨···?”

그와 동시에 오슬리와 벤딩턴 또한 술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자는 뭔 놈의 성자란 말인가.

성녀(聖女)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성자(聖子)는 처음 들어봤다.

오슬리와 벤딩턴이 멍하니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뭔데?’

시안도 진짜 뭔가 싶었다.

시안을 성자라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신성 제국의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시안이 역병을 치료해준 남부의 사람들.

그들이 아니면 시안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했을테고, 성자라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건데?’

그들이 대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그렇게 오슬리와 벤딩턴.

심지어 시안 본인까지.

모두 벙찐 얼굴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안 공자님. 잠시···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벤딩턴이 말을 걸어왔고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슬리에게 상황 설명을 해줘야할 필요도 있었지만···.

“성자님이 오시다니.”

“세상에나, 세상에나.”

시안도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살 길을 찾아 이러저리 떠돌아다니다 이곳에까지 왔다는 뜻···?”

구구절절한 사연의 연속이었으나.

대충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렇습니다요.”

“이곳에서는 살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던 지라···.”

제국의 북부.

그러니까 여기 북부 너머는 야만족들이 살아가는 땅이었다.

그리고 뭉퉁그려서 야만족이라 칭했을 뿐.

야만족이라고 해서 다같은 야만족들이 아니었다.

주로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는 이들.

시안이 이곳까지 오면서 쓸어버린 야만족들을 지칭하는 말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갈 땅이 없이 떠도는 이들도 칭했다.

터전이 없어 부족 사회와도 같은 삶을 이어가는 이들.

이들 또한 야만족이라 뭉퉁그려 표현했다.

이 때문에 제국은 북부 너머를 토벌하지 않았다.

물론 혹독하고 척박한 겨울의 땅인지라 쓸모도 없었거니와.

토벌을 한다면 결국 이런 이들까지 싸그리 내쫓아야했다.

필요하면 죽이기까지 해야했으니, 도의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었다.

굳이 쓸모 없는 땅에 그런 짓을 해야할까.

해서 제국의 영토만 넘보지 않는다면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북부 너머는 야만족들의 땅이라 불리우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많은 부족들이 살아가는 땅이 되어있었다.

‘신성 제국에서도 흘러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물론 시안이 지난 신성 제국의 남부을 다녀온 바.

신민 취급받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레이첼이 사라지고 괜찮아 진 거 아니었나?

아직 아리아가 휘어잡지 못한 건가?

아니면 그게 원래 신성 제국의 방침?

그것도 아니면 레이첼이 사라지기 전에 떠밀려온 이들인가?

그럼 내가 성자임을 몰랐을텐데?

‘······ 에이, 모르겠다.’

복잡한 생각에 시안은 고개를 털어버렸다.

자세한 사정을 물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게 무에 중요하다고.

지금 중요한 건 하나였다.

“이 마을에서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흑마법의 흔적

처음 시안이 이 광경을 마주했을 때.

그러니까, 시안을 보고 사람들이 성자님이라 했을 때.

혹시 역병 때문에···?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로써 오해가 생긴 것이라 생각했었다.

역병은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에서 파생된 악(惡)의 일종.

모르는 이가 본다면 흑마법이라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병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리가 없었다.

역병은 루슈리아가 사라지면서 모두 소멸되었으니까.

이들에게는 역병의 기운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흑마법의 흔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시안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마(魔)의 기운.

분명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 그건···.”

그런데 사람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딱 봐도 무언가 캥기는 것이 있는 모양새였다.

바로 그때.

“소용 없네. 갖은 설득과 협박을 해도 입을 열지 않으니까.”

누군가 시안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바라본 그곳.

“파나트 로르실트라고 하네.”

그곳엔 파나트가 서 있었다.

“시안입니다.”

“우리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걸 구면이라 해야할지 초면이라 해야할지.”

다름 아닌 건국일 행사 당시.

황태자, 콘라드가 초대한 연회장에서였다.

그곳에서 시안은 파나트를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얼굴만 봤을 뿐, 딱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구면인 듯, 구면 아닌 초면.

그 미묘한 관계라 할 수 있었다.

“파나트님은 소문으로 많이 듣던 분이시라 제겐 익숙합니다.”

“나보다는 자네에 대한 소문이 더 떠들썩하지 않나.”

그러면서 파나트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그보다 카이 엘란두르가 올 줄 알았건만. 자네가 오다니···.”

파나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마찬가지로 그건 시안도 의외였으니까.

“거기에 하얀 늑대 기사단이··· 아닌 것 같군.”

파나트는 저 멀리 대기 중인 루벤의 기사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역시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발언이었다.

시안도 슬쩍, 파나트의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누가 봐도 ‘나 마법사요!’라고 외치는 복장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륙에서 최고라 손 꼽히는 아르카닉 마법 병단이었다.

그들은 시안과 루벤의 기사단을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웃음을.

또 누군가는 못 마땅하다는 눈치를.

한 마디로 좋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로르실트와 엘란두르.

두 가문에 얽힌 관계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검과 마법.

두 가문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는 가문이었다.

그리고 검과 마법은 물과 기름이라 할 수 있었다.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관계.

마법사라 함은 현상 세계의 진리를 정론화하여 그를 이해함으로써 그 힘을 다루는 이들이다.

허나, 검을 다루는 이들은 세계의 준엄한 법칙을 무시하며 비트는 자들이었다.

결국은 마나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힘이나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니.

마법사들이 보기에 기사는 몸만 쓸 줄 아는 무식쟁이요.

기사들이 보기에 마법사는 잘난 척, 재기만 하는 샌님이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사와 마법사란 족속들이 본디 이러할 관계일진대.

엘란두르와 로르실트는 제국에서 제일 가는 가문이었다.

그 때문에 세간 사람들의 입방정에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누가 더 강하냐. 누가 이기냐.

그리하여 검이 쎄냐, 마법이 쎄냐.

실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쟁이었으나 사람들에겐 더없는 재밋거리라.

하여 사람들은 안줏거리로 카이와 파나트.

혹은 듀라크와 에그리트.

둘이 맞짱뜨면 누가 이기냐로 열띤 토론마저 벌이곤 했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로 사이가 좋을리가 없었다.

사이가 좋을라해도 사람들이 갈라치기를 해버리니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와 로르실트.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기 바빴다.

지금 파나트 정도면 굉장히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저기 아르카닉 마법 병단처럼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 않은가.

솔직히 무시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시안이 보기엔 파나트는 순수하게 의아해하는 것 같았으니까.

마법사로서의 순수한 호기심.

그냥 그 정도인 것 같았다.

“어쨌든 흑마법을 사용한 흔적이 확실함에도 이들은 입을 꾹, 다물뿐이네. 이에 변경백께서 참다 못해 화가 나신 것이지.”

파나트가 사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오슬리가 이들을 죽이려 했던 것 같았다.

흑마법의 힘을 이용하는 야만족들로 인해 북부가 개판이 되었거늘.

정작 흑마법을 사용한 것이라 확신하는 이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흑마법을 사용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직접 보신 겁니까?”

“보지는 않았다네. 다만···.”

파나트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 것이 있네.”

파나트는 그렇게 말을 일축했다.

어째, 설명해줘봤자 모를 것이라는 생각인 것 같았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보아하니 이런저런 단서들을 기반으로 분석과 연구를 거듭한 모양인데···.

그 복잡한 마법 이론들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시안은 마법사가 아닌 기사다.

마법사들이 이런 법칙이 있어! 라고 정의하면.

그게 뭔데? 라며 깨부숴버리는 것이 기사다.

그렇기에 시안에겐 기사만의 방식이 있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그리고 정말 명료하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저 말이 정말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시안의 물음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부정을 해보였다.

시안은 파나트에게 말했다.

“사용하지 않았다는데요.”

“······”

파나트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입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멍한 표정은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라며 말하고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나?”

“대부분 그렇지는 않죠?”

“지금 저들도─.”

“하지만 고백하는 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

파나트는 ‘진짜 뭐하는 새끼지?’ 싶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 알아서 생각하게.”

파나트는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뒤로 아르카닉 마법사들이 따라붙었다.

스쳐지나가는 눈빛으로 무시와 조롱.

그리고 명백한 경멸의 기색이 담겼다.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물론 시안도 파나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까.

그건 정말 힘만 쓸 줄 아는 무식쟁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시안이 이들의 말을 믿는 것.

그건 이들에게선 전혀 마기(魔氣)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느껴지는 마기(魔氣)는 이 마을 자체에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 어떤 광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이 흑마법을 사용했다면 이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리가 없었다.

시안이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한 야만족들.

그들처럼 광기로 물들어 있어야만 했다.

그 말은 즉.

“누굽니까?”

이 사람들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다.

움찔.

시안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동요해보였다.

정말 누가 봐도 뭔가 있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시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숨길거면 철저히 숨기던가.

왜 오슬리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말씀을 드릴 수가···.”

그러다 한 사내가 고개를 떨구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보게, 성자님이시지 않은가.”

“그래. 성자님에겐 말씀드려도 되지 않나.”

사람들이 그런 사내를 설득했다.

보아하니 이 사내가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 인듯 싶었다.

“성자님은 내 아내며 자식들이며. 우리 가족들을 살려주신 은인일세.”

“우리가 천지무식해도 받은 은혜는 알지 않은가.”

“그래서 말을 못하는 것이지 않나. 우린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겠다고 약속했다고. 여기서 입을 열면 그 분들을 배신하는 일이야.”

사내가 그런 사람들을 역으로 설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성자님이시지 않나. 성자님 아니었으면 우린 여기에 있지도 못했어.”

“자네 두 딸도 성자님 아니었으면 전부 죽었을 거야. 그리고 성자님이면··· 그 분도 이해해주실 걸세.”

“성자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사람들은 또 다시 사내를 설득했다.

그러자 사내의 두 눈이 크게 떨려왔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내가 곧 시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그것이 실은···.”

#

벤딩턴은 오슬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시안과 루벤의 기사단.

그들이 벌인 행적과 공로를 가감없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난 직후.

“그게··· 정말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아버님.

“흐음···.”

오슬리는 생각에 잠기며 잠시 시선을 내렸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북부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야만족들을 소탕했다니.

그것도 이 짧은 시간에.

그게 어찌 말이 된단 말인가.

물론 북부 전역의 야만족들을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려운 일임은 변함 없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오슬리나 벤딩턴이 해냈겠지.

하물며 20명에 불과한 기사단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러니 믿는다면 바보이리라.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정말 사실입니다.”

그러나 벤딩턴이 거짓말을 할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벤딩턴조차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흠···.”

그렇기에 오슬리는 섣불리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보다··· 여긴 어찌된 일입니까.”

이어 벤딩턴이 오슬리에게 물어왔다.

오슬리는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이곳의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이···.”

“파나트가 확신할 정도면 분명 흑마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할 게다. 그리고 그 흑마법으로 인해 야만족들이 그런 힘을 발휘하는 거라 하더군.”

“어쩐지···.”

벤딩턴은 그때서야 야만족들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어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나트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그렇겠지요.”

파나트는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천재.

6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였다.

그런 그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맞는 말일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똑같은 놈들을 알고 있을 터. 그들을 찾아 싸그리 멸족시켜야하거늘. 당최 입을 열지 않구나.”

이어진 오슬리의 말에 벤딩턴은 그때서야 방금 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이제 상관없다. 야만족들은 야만족. 전부 쳐 죽이면 그만이다.”

오슬리의 전신으로 서슬 퍼런 살기가 터져나왔다.

야만족들에게 고통받고 있는 북부인들.

한 마을에서 보였던 끔찍한 장면.

자식들이 도륙당하고, 아내가 눈앞에서 몹쓸 짓을 당하는.

분노와 절망에 물들어 절규하며 부르짖던 한 남자의 비명을.

오슬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걸 벤딩턴이라고 모르지 않았기에.

벤딩턴은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다만.

“혹시··· 시안 공자님께 한 번 맡겨보심이 어떠십니까.”

“그 엘란두르에게 말이냐.”

벤딩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흑마법의 흔적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

오슬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 인상은 애송이와 풋내기나 다름 없었으나.

벤딩턴의 말을 듣자하니 기사는 기사인 모양이었다.

그래,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

그리고 오슬리도 기사였기에 알 수 있었다.

기사는 마법을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파나트가 아니었다면 오슬리는 아무것도 몰랐으리라.

보아하니 시안이 말도 안되는 일을 성공해보이자 벤딩턴이 과한 믿음을 보내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바로 그때.

“각하! 대화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

막사 밖에서 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오슬리가 물었고, 곧 기사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지금··· 시안 공자님께서 흑마법의 배후를 밝혀내셨다고 합니다!”

“뭐라고?!”

오슬리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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