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루벤의 기사단(1)
-기사단 도열!
착! 차착!
켄드릭의 외침과 함께 일련의 무리들이 움직였다.
각이 잡혀있는 절제있는 움직임.
약속이라도 한듯 꼬이지 않는 일사분란함.
“충!”
“충!”
“충!”
터져나오는 군례와 동시에 켄드릭이 가장 앞으로 걸어나왔다.
검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시안에게 한쪽 무릎을 꿇어보였다.
-루벤의 기사단, 켄드릭 외 20인. 출정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
시안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기사단의 모습.
단장인 데스 나이트, 켄드릭과 더불어 기사들 모두가 짙은 검은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군례를 취하며 뽑아든 검은 칠흑의 어둠을 품고 있었다.
영지의 드워프들이 특별 제작한 장비이자.
모두 S등급의 품질을 지닌 장비들이었다.
시안이 개고생을 해가며 현질한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만드는 과정에서 별 다른 재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시안이 즉시 완료한 ‘모르크루의 야금술’.
그 안에는 모르크루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들어있었다.
신장(神匠)이라 불렸던 전설의 대장장이, 모르크루.
그 노하우를 습득한 망치 모루 부족은 장인에서 명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세미르는 명인에서 대가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기존에 S등급 장비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귀하디 귀한 재료들.
그것들은 세미르가 SS등급의 장비로 만들 수 있었다.
시안은 다시 한 번 도열한 기사단을 바라봤다.
비록 인원은 20명밖에 되지 않았다.
애시당초 병사들의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켄드릭이 가르치는 오러 연공법은 아무나 배울 수 없었으니까.
마혼제법의 하위호환이라고는 하나.
이마저도 뛰어난 재능이 필요했다.
지금 모인 이들은 그런 재능을 지닌 이들이자.
켄드릭에게 밤낮을 새가며 훈련을 받은 이들.
그 때문일까.
번뜩이는 눈빛하며.
군기가 딱 잡혀있는 자세하며.
거기에 칠흑 같은 검은색의 장비들까지.
그야말로 마(魔)의 기사단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시안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켄드릭에게 물었다.
“어때? 지금 출정해도 무리가 없겠어?”
-과거, 검은 사자 기사단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그건 당연한 소리였다.
카일을 따르던 검은 사자 기사단.
전원 마스터로 이루어진 정신 나간 기사단이었다.
그 기사단에 어찌 비빌 수 있을까.
아니, 비빌 수 있는 기사단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로열 나이츠도, 하얀 늑대 기사단도.
그 어떤 기사단을 들이밀어도 택도 없었다.
다만.
-허나, 기사들의 성장 속도가 불가사의 할 정도로 빠릅니다. 과거 단원들조차 이러지는 않았습니다만···.
켄드릭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검푸른 안광을 일렁였다.
다름 아닌 루벤에 적용되어있는 성장 버프.
지난 번에 아르나이즈 특전, <샤를롯의 긍지>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그 효과가 더욱 증폭되었다.
무려 2,000%의 성장 효율을 기본으로 깔고 감과 동시에.
눈물을 머금고 현질한 ‘기사 양성소 Lv.5’까지.
추가로 1,000%가 붙었고 여기에 또 한 가지 더.
<모르크루의 불꽃>의 효과 중 영지의 건물 효율을 증가시켜주는 버프까지 중첩되었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성장 속도는 가질 수 없을 터였다.
-이 상태로 몇 년만 지난다면··· 검은 사자 기사단과 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켄드릭이 확신에 가득차며 말했다.
한 마디로 루벤의 기사들 모두가 마스터 수준에 근접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지.
가진 바 재능의 한계 치를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마스터의 경지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했다.
유저와 엑스퍼트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하물며 엑스퍼트와 마스터.
그 차이가 갖는 벽은 한없이 두꺼웠다.
괜히 마스터, 마스터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각자 가진 바 재능.
그곳까지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할 터였다.
그러나 그 한계에 부딪히면 성장은 멈추리라.
시안이 모바일 영주를 통해 성장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시안은 도열한 20인의 기사단을 바라봤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두라스, 너도 있었냐.”
“그렇슴다!”
두라스가 차렷 자세를 해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그와 함께 갑옷이 철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지의 병사, 두라스.
시안이 지켜본 바, 두라스는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평범.
정확히는 평범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라스는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루벤의 병사들이 모두 열심이긴 했으나.
두라스는 그들 중에서도 특히나 열심이었다.
남들이 자고 있을 때에도 홀로 훈련장에 남아 검을 휘두르던 두라스.
그 모습을 시안은 거의 매일같이 봤으니 말이다.
두라스는 가진 바 재능은 평범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스스로 가진 바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리라.
그리고 두라스가 할 수 있다면.
다른 병사들도, 기사들도 할 수 있다.
두라스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시안에게도, 또 다른 이들에게도.
시안은 두라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고생했다.”
“감사함다!!!!”
두라스가 세상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귀청 떨어지겠다. 적당히 크게 말해 이 자식아.”
터엉─!
시안이 두라스의 뒤통수를 때리자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역시 S등급의 장비는 장비인 것일까.
두라스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듯 해보였다.
‘윽···!’
괜히 시안의 손만 아파올 뿐이었다.
시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도열한 기사단의 뒤쪽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루벤의 영지민들이 보였다.
“멋있다! 최고다!”
“크흡···! 난 뽑히지 못했지만 두고 보라고!”
“우리 몫까지 가서 제대로 보여줘야돼!”
루벤의 기사단 창단식이자, 첫 출정식.
“아빠, 나도··· 저기 기사님들처럼 되고 싶어.”
“크하하하하! 그래! 그게 바로 꿈이라는 거다 아들아!”
영지민들은 그것을 구경하고 또 축하해주며.
어둠의 숲에서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꿈을 키워나갔다.
시안은 마중 나온 영지민들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등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국 북부로 향하는 이 발걸음.
작게는 다크 엘프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크게는 지금, 루벤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철컥.
시안의 뒤로 켄드릭과 20인의 기사단이 따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경비탑 위로 한 병사의 크나큰 외침이 터져왔다.
“기사다아아아안!!! 출저어어어엉!!!”
뿌우우우우우─!
들려오는 뿔나팔 소리.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터져나오는 환호성을 받으며 루벤의 기사단이 첫 출정을 나아갔다.
#
샤를롯 제국의 북부.
야만족들과 국경을 맞댄 제국의 끝자락이자.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오는 혹독한 겨울의 땅.
북부에는 사시사철 눈이 쌓여있었고.
작물이 자라기 힘든 척박한 땅이자, 어둠의 숲만큼이나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리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북부의 사람들은 북부의 특성을 닮아 굉장히 드세었다.
게다가 야만족들의 침략에 대비까지 해야하니.
용병들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 한스가 여기서 많이 활동했다고 했었지.’
과거 상당히 실력 있는 용병이었던 한스.
그런 한스의 주 활동 무대가 바로 북부였다.
“그나저나···.”
시안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을 새하얗게 뒤덮은 눈.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불어오는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며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더럽게 춥네···.”
너무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말 ‘살을 엔다.’라는 느낌을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바람은 염병.
누가 윈드 커터 마법을 날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루벤의 기사단들도 매한가지였다.
시안의 앞이라고 애써 아닌 척, 담담하게 서 있었으나.
달달달, 거리는 떨림에 갑옷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혹독한 겨울의 땅.
“켄드릭. 너는 좋겠다. 거기에 있어서 안 추울 거 아니야.”
그러자 시안의 팔찌에서 켄드릭이 말하듯 우웅, 검은빛이 일렁였다.
당연히 뭐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으나.
“어차피 이미 죽은 몸이라 추위를 못 느낀다고?”
대충 이런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그랬던 것인지 우우웅.
팔찌에서 검은빛이 차분하게 일렁였다.
“······”
괜히 물어본 시안만 쓰레기가 된 듯한 기분.
어쨌거나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으···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시안은 불어오는 윈드 커터 마법에 몸을 한껏 여미었다.
“모, 모바일 영주에 따뜻한 아이템 안 파나···.”
시안은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손 끝에 닿은 스마트 폰 또한 차갑다 못해 꽝꽝, 얼어 있었다.
그렇게 모바일 영주를 실행하려던 찰나.
띠링!
《투다다다다다···.! 혀혀혀, 지지지···!》
갑자기 화면 위로 이상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치 발작하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정확히는 달달달, 떠는 듯한 모습이었다.
“뭔데?
시안은 정말 뭔가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 멀리, 새하얀 눈길을 가르며 다가오는 일련의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시안은 궁금증을 흩어버리고는 스마트 폰을 다시 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이 먼 북부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시안 앞으로 훤칠한 인상의 사내가 다가왔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약간 유하게 보이는 인상은 북부의 사람이 맞나 싶었지만.
두꺼운 옷 위로 보이는 탄탄한 근육은 역시 북부인이 맞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벤딩턴 바텐베르크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벤딩턴 바텐베르크.
시안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바텐베르크라는 성을 알고 있었다.
북부의 변경백, 오슬리 바텐베르크 백작.
바텐베르크는 변경백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의 앞에 있는 벤딩턴.
벤딩턴은 그런 바텐베르크의 성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오슬리 백작의 자제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루벤의 영주, 시안입니다다. 화, 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어어··· 북부에 지원 오, 오게 되었습니다다.”
계속해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달달달, 말이 떨려왔다.
괜시리 훌쩍이는 콧물.
벤딩턴은 그런 시안을 말없이 바라봤다.
‘카이 엘란두르가 올 줄 알았건만···.’
벤딩턴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그러나 눈앞의 엘란두르는 카이가 아닌 시안.
같은 엘란두르이나.
너무도 다른 엘란두르.
벤딩턴은 시안을 알고 있었다.
변경백의 가문인지라 딱히 중앙 정세에 관심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벤딩턴은 시안을 알고 있었다.
일단 가진 바 이름이 엘란두르이기도 했거니와.
후작가의 망나니이자 패륜아.
그 소문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천하의 둔재라는 소문까지.
물론 지난 건국일 행사 당시.
시안이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알고 있었다.
또한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국 서부에서 영웅이라 불린다는 소문도 어렴풋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혹시···?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 아으··· 추, 추워어어···!”
벤딩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시안 뒤로 도열한 이들
차림새를 보아하니 기사단인 것 같았은데.
달달, 떨고 움직임과 더불어 들려오는 갑옷 소리.
‘하얀 늑대 기사단이 아니군.’
척 보기에도 하얀 늑대 기사단이 아니었다.
심지어 인원 또한 딸랑 20이었다.
저걸로 뭘 지원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애초에 도와주고자 온 건 맞을까.
로르실트는 파나트와 아르카닉 마법 병단을 파견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엘란두르는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이건 바텐베르크는 물론, 황제의 명도 우습게 본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벤딩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북부의 상황은 너무도 힘들었다.
북부의 혹독한 추위는 물론.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야만족들까지.
벤딩턴은 아쉬운 마음이 끊이질 않았으나, 아무런 내색을 해보이지 않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가면서 사정을 말씀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무, 무, 물론이죠···!”
시안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추위에서 벗어나고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벤딩턴은 다시 한 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간략하게만 먼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때.
“대공자님! 대공자니이이임!!!”
멀리서 크나큰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 병사가 눈길을 헤치며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상당히 다급해보이면서도 절박한 표정.
순식간에 벤딩턴 앞에 서보인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크, 큰일···! 큰일 났습니다! 지금··· 지금 야만족 놈들이 주둔지를···!!”
“이런 젠장!!”
벤딩턴이 이를 까득, 씹었다.
그리고 시안을 내버려둔 채 전속력으로 뛰쳐나갔다.
#
푸확!
새빨간 선혈이 눈밭 위로 흩날렸다.
“끄아아악!”
그와 함께 비명이 터져나오며 한 병사의 몸이 쓰러졌다.
그런 병사의 시체 위로 내리찍히는 거대한 도끼.
콰직!
파육음이 터져나오며 아직 식지 않은 피가 푸확, 튀어올랐다.
쓰러진 병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끊어진 생명이었기에 반응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콰직! 콰직!
도끼는 계속해서 병사의 시체 위로 내리찍혔다.
쓰러진 병사는 뭐라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짓뭉개졌다.
“크하학!”
“커헉!”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새하얀 눈밭은 붉은 피로 물들어졌고.
그 위로 야만족들이 달려들어 사람들을 도륙내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의미도 없는.
오로지 살육만을 탐하는 미치광이들이 보이는 광란.
“아··· 아아···.”
그 잔혹하고도 끔찍한 모습에 병사가 전의를 잃어버렸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꽈득.
한 야만족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병사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진득한 피가 병사의 얼굴로 묻어나온다.
그리고 보이는 번뜩이는 광채.
“사, 살려─!”
콰직.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병사의 목이 잘렸다.
야만인이 씨익, 웃음 짓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외침.
“승리에 과정 같은 것을 두지 마라! 우리는 짐승이다!! 규칙과 도의 따윈 필요 없어! 그저 본능에 충실할 뿐!”
이윽고 잘린 병사의 목을 치켜들었다.
잘린 단면 사이로 뚝뚝, 피가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본능은···.”
야만인은 떨어져내리는 피로 목을 축였다.
시뻘건 피가 입가로 번지며, 진득한 광기가 피어난다.
“아주 잔인하지.”
휙, 들고 있던 목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살려둬라!”
“크헤헤헤!”
“약탈이다!!”
수많은 야만인들이 광기를 피워올리며 주둔지의 병사들을 학살했다.
바로 그때.
“이 개자식들아!!!!”
퍼서석!
크나큰 고함 소리가 들려오며 거대한 대검이 전방위로 휘둘러졌다.
앞선 야만족들이 일시에 쓸려나가며 피가 비산했다.
“대공자님을 보좌해라!”
“야만족들을 몰아내!”
그와 동시에 일련의 기사들이 쏟아지며 야만족들을 베어내었다.
벤딩턴 바텐베르크와 그의 기사들.
그들이 야만족들을 베어내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크헤헤헤!
“다 죽여!”
야만족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되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터져나오는 서늘한 광기.
죽음을 도외시한 저돌적인 돌진이 행해진다.
콰앙─!
콰직!
퍼서석!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며 사방으로 피가 흩뿌려졌다.
그리고 벤딩턴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젠장···!”
이대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임을.
오러 엑스퍼트 중급의 벤딩턴.
벤딩턴은 수준 높은 기사이나, 습격한 야만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니, 비단 수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꽈앙─!
“큭···!”
묵직하게 때리는 충격에 벤딩턴이 격통을 터트렸다.
바라본 그곳엔 거대한 도끼를 든 야만인이 서 있었다.
번뜩이는 광기와 눈빛.
그리고 도끼 사이로 일렁이는 검붉은 무엇.
다름 아닌 오러였다.
어찌된 일인지 야만족들은 오러의 힘을 사용했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오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힘은 분명한 오러였고.
본능에 충실한 야만족들과 어우러져 괴악한 힘을 뿜어냈다.
꽈앙─!
벤딩턴은 이를 까득, 깨물며 뒤쪽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하, 하지만···!”
“이곳은 내가 막겠다! 그러니 어서!”
벤딩턴이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
벤딩턴의 뛰어가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시야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벤딩턴의 눈 앞으로 보이는 장면.
그곳엔 금발의 사내, 시안.
시안이 야만족을 대적하며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야만족들과 대적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벤딩턴과 싸우고 있던 야만족.
쐐액─!
휘둘러지는 거대한 도끼에는 여전히 끔찍한 힘이 느껴졌다.
저 도끼에 담긴 힘을 감당하기란 벤딩턴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일까.
캉! 카캉!
시안은 가볍게 그것을 막아내었다.
터져나오는 도끼의 힘은 시안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기세는 여전히 흉포했다.
휘둘러지는 도끼는 그 무엇도 분쇄해버릴 듯 해보였다.
그런데 시안의 정작 검과 부딪힐 때면.
캉.
그 힘을 일시에 잃어버렸다.
“저, 저게 무슨···!”
벤딩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서걱─!
시안의 검이 야만인의 팔을 훑고 지나갔다.
도끼를 쥔 팔이 하늘로 솟구치며 피가 튀어올랐다.
하지만 아무런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통에 찬 비명은 커녕,
야만인은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되려 눈을 번뜩이며 남은 손으로 시안을 죽이고자 달려들 뿐이었다.
오로지 살육만을 탐하는 지독한 광기.
그것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리는 광기였다.
하지만.
“마의 힘을 사용한다라···.”
시안은 야만족의 손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시안이 야만인의 몸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 순간.
“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팔이 잘렸음에도 소리 하나 내지 않던 놈이건만.
“끄아─! 끄아아아아아─!”
지금은 끔찍한 격통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윽고 야만인이 털썩,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던 광기가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
벤딩턴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시안은 쓰러진 야만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전히 번뜩이는 광기.
“마에 삼켜진 줄 알았는데, 이 놈들은 원래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네.”
시안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윽고 시안이 천천히 손을 떼보였다.
그리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시안의 뒤쪽으로 20명의 기사들이 비쳐보였다.
칠흑의 갑옷을 입은 기사단.
칠흑의 기사단이 도열하며 칠흑의 검을 뽑아들었다.
야만족들과 칠흑의 기사단이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한다.
“사정 봐주지 말고, 전부 쓸어버려.”
그리고 들려오는 시안의 한 마디.
그 말과 동시에.
사아아아아···!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