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다시 돌아온 루벤(1)
1,200만 골드.
아름답다 못해 황홀한 그 이름.
‘아아아···!’
시안은 전신을 내리쬐는 듯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신의 내림을 받듯 전신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띠링!
《꾸아아아아···!!!》
모바일 영주의 시스템 또한 파르르, 떨려왔다.
그렇게 시안과 모바일 영주.
‘아아아아···!!!’
띠링! 띠링!
둘은 서로 다른 기분으로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아와 로라.
“······”
“······”
아리아와 로라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아아···!!”
저걸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리아와 로라는 멍하니 파르르, 떠는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어떻게 몸을 저렇게 떨어댈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접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남부의 성자(聖子)라더니.
정말로 시안의 몸에 신이 강림한 것이 아닐까···?
아리아와 로라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안은 감전되었던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리아와 로라를 볼 수 있었다.
시안은 괜시리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루, 루슈리아와 싸웠던 상처가 갑자기···.”
“아.”
“아.”
시안의 말에 아리아와 로라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그런 둘의 모습에 시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리아는 그런 시안을 빤히 바라봤다.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
옷을 갈아입은 터라 겉모습은 꽤나 깔끔했다.
하지만 옷 사이사이 비치는 셀 수도 없는 흉터는 감출 수가 없었다.
전신이 갈가리 찢겨지다시피한 상처들.
모두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와의 전투에서 얻은 상처들이었다.
그리고 저 수많은 상처들 중에는 아리아를 지키느라 생긴 상처도 있었다.
별 다른 내색을 안 하길래 이제는 좀 괜찮은 줄 알았건만.
방금 시안이 파르르, 떨어댄 움직임.
아마··· 끔찍한 통증에 그러했던 것이리라.
아리아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아리아의 표정을 본 시안.
“왜 그렇게 빤히 봐?”
“몸은 좀··· 괜찮아?”
아리아가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무 아프면 내가 신성력으로···.”
“아니! 됐어!”
그러자 시안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 모습에 아리아가 멈칫, 했다.
처음, 아리아는 신성력으로 시안을 치료해주려했었다.
그러나 시안이 극구 반대했다.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렇게 기겁을 해보였다.
절대 하지 말라며, 설령 자신이 기절하더라도 절대 신성력을 쓰지 말라면서.
그랬다간 진짜 너랑은 다시는 안 볼거라면서.
아주 지랄 발광을 해댔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아리아였다.
되려 ‘그래라. 네가 아프지. 내가 아프냐.’ 라며 신경도 안 썼을 아리아였다.
그런데 이번엔 대체 왜일까.
“······”
아리아는 괜시리 서운하고 또 마음이 속상했다.
누구는 걱정스러운 마음만 가득인데.
이런 마음도 몰라주니 말이다.
쟤는 내가 그렇게 싫은건가.
내 신성력을 받기도 싫은 만큼?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내가 그렇게 싫어?”
“······?”
뜬금없는 아리아의 말에 시안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지금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갑자기 이상해지는 분위기.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 순간 로라가 살짝, 놀라며 말을 내뱉었다.
로라는 깜빡, 했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제가 엄청 급한 일이 있다는 걸 깜빡한 거 있죠. 저 금방 다녀올테니까. 두 분 이야기 나누세요.”
그러더니 로라가 휙, 방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방 안에는 시안과 아리아만이 남아있었다.
왜인지 분위기가 더 이상해진 것 같았다.
시안은 아리아에게 물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매번 그렇잖아. 내가 다가가기만 하면 짜증난다면서 인상만 찌푸리고, 심지어 내 신성력을 받는 것도 기겁을 하고. 내가 그렇게 싫은거야?”
내리깔리는 아리아의 시선.
아리아가 평소답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시안에게 물어왔다.
“어···.”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엄밀히 따지면 아리아가 싫다기보다는 신성력이 싫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성녀(聖女)로서 그 자체가 신성력 덩어리였다.
너는 괜찮은데 네 존재가 싫어.
아니면 너는 상관없는데 네 몸이 싫어?
이게 뭔.
“어···.”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시안은 조금 오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좀 오래걸렸던 걸까.
“······ 나쁜 놈.”
아리아가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됐어!”
아리아가 몸을 홱, 하니 돌렸다.
씩씩, 거리는 숨소리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화가 난 듯 보였다.
‘왜 저래?’
시안은 정말 왜 저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은 아직 아무런 대답도 안했다.
그런데 아리아가 저 혼자 중얼거리더니, 저 혼자 토라졌다.
그러니 뭐 어쩌란 말인가.
시안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안에게서 등을 돌린 아리아.
아리아는 정말로, 정말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내가 뭐가 그리 못났다고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야.
정말 다른 남자들은 나랑 어떻게든 말 한 번 섞어보려고 안달인데.
쟤는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하는 건데 대체.
그리고 이렇게 싫어하면 대체 왜 구해준건데.
그냥 루슈리아한테 잠식되도록 내버려둘 것이지.
그럼 이렇게 짜증나는 얼굴 마주볼 일도 없었겠네.
그래, 그랬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네!
그런데 왜 굳이 나를 구해줬담?
그래서 왜 싫은 얼굴을 마주해서 이렇게─.
“야.”
그 순간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아리아는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의 눈앞에 보인 것은 시안의 손이었다.
그리고 시안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영롱한 장신구들.
“이게··· 뭐야?”
“선물.”
“선···물?”
아리아의 정신이 멍해지며 다시금 시안의 손으로 향했다.
한쌍의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반지 하나가 시안의 손 위에 놓여져 있었다.
“나한텐 그닥 쓸모가 없어서. 너 필요하면 써라.”
시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시안이 들고 있는 장신구들.
이건 다름 아닌 뮤리엘이 남긴 3가지 유산 중 하나였다.
켄드릭을 담고 있는 팔찌.
200만이 조금 넘는 골드.
그리고 지금, 시안의 손 위에 놓인 뮤리엘이 살아 생전에 쓰던 장신구들.
처음엔 단순한 보물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샤를롯이 남긴 황가의 보물처럼 팔아서 골드로 쓰라는 의미.
하지만.
‘장신구에서 강한 신성력이 느껴진단 말이지.’
그래서일까.
‘가지고 있자니 영 껄끄러워.’
물론 인벤토리에 넣어놓으면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넣어두기만 할거면 뭐하러 가지고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단순히 신성력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건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사용자의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시안에겐 하등 쓸모 없는 물건이었다.
해서 어차피 시안에게 쓸모도 없는 것.
아리아가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어, 얼만데···?”
아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시안은 순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스스로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얼마긴 무슨. 선물이라니까.”
그러자 아리아가 두 눈을 찢어져라 떠보였다.
“도, 돈··· 안받···아?”
“어. 그냥 가져.”
그러자 아리아의 몸이 굳어버렸다.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뭐, 시안도 아리아에게 돈을 받고 팔까 싶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
이번에 아리아도 많은 고생을 했고.
뮤리엘의 유적을 알려준 것도 전부 아리아였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쩌면···.
아리아는 또 다른 악마와 대적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보아하니 황혼 교파를 대대적으로 조사하려는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악마와 마주할지 모를 일.
뮤리엘의 장신구로 힘을 키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돈을 받고 파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뭐.
‘1,200만 골드를 벌어다줬으니까.’
1,200만 골드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기능을 지닌 뮤리엘의 장신구.
단순한 장신구라면 또 모를까.
애먼 사람한테 들어가는 것도 좀 그랬다.
“뭐해. 안 가져가고.”
시안의 재촉에도 아리아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답은 커녕 멍한 채로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시안은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바닥에 있는 장신구들에서 강대한 신성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아리아가 빨리 가졌으면 좋으련만.
고장이라도 나버린 것인지 계속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시안은 결국 참다 못해 아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핫!”
그때서야 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와 동시에 살짝 빨개진 아리아의 얼굴.
시안은 아리아의 손 위로 장신구들을 올려주었다.
아리아는 멍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장신구를 바라봤다.
“지금··· 착용해봐도 돼?”
“그걸 왜 나한테 허락받아?”
아리아가 순간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리아가 곧장 장신구를 착용했다.
뭐,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에 별 다른 일이 있겠냐만은.
귀걸이가 조금 걸렸다.
다름 아닌 귀를 뚫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귀를 뚫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귀를 뚫어도 아리아의 넘쳐나는 신성력이 그걸 곧장 회복시켜버렸다.
어떻게 보면 아리아는 귀걸이를 찰 수 없는 몸이라 할 수 있었다.
해서 그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역시.
살아 생전 뮤리엘이 쓰던 장신구인 것일까.
딱히 귀를 뚫지 않아도 알아서 척, 귀에 알맞게 달라붙었다.
“어때?”
장신구를 다 착용한 아리아가 모습을 보였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확실히···.’
사실 아리아는 딱히 장신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는 장신구를 착용할 수 없다 함이 옳았다.
이미 초월적인 미(美)의 아리아였으니 말이다.
그 자체로도 완벽한 미모이니.
그 미모를 뒷받침할 장신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안이 듣기로 많은 도전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륙 최고라 자부하는 수많은 세공사들.
그리고 세상 귀하디 귀하다는 천혜의 보석들.
그러나 아리아의 미모 앞에서는 모두 빛을 잃고 퇴색해버렸다.
하지만 지금.
“어울려?”
이 역시 살아 생전 뮤리엘이 쓰던 장신구인 것일까.
장신구들이 아리아의 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어떻게 저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
‘모르크루가 만들어 준 건가?’
그럴 가능이 매우 높았다.
뭐, 어쨌든.
“예쁘네.”
예쁘긴 예뻤다.
아니, 예쁘다라는 말로 표현이 안 되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아리아의 신성력까지.
단순 추측에 불과하지만 2배? 가량 강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 2배지.
기존에 아리아의 신성력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
그런 아리아가 2명이 된 것이니 말이다.
“정말?”
그런데 아리아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장신구에 정신이 팔려 신경을 못 쓰고 있던가.
아리아가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안은 그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저런 장신구 같은 게 뭐가 그리 좋은 건지.
하여간, 여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리아가 빙그르르, 한바퀴 돌아보였다.
백금발이 휘날리며 묘한 향기가 방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리아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미모에도 향기가 배어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신성력.
문제는 그것이 뮤리엘의 장신구로 인해 증폭된 신성력이라는 점이었다.
‘우욱···!’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들끓는 마기가 현기증을 넘어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이번 역병으로 마혼제법의 진행률을 많이 올렸건만.
어째, 장신구로 증폭된 아리아의 신성력도 그 이상으로 올라버린 듯 싶었다.
‘뮤리엘의 신성은 이렇지 않았는데··· 우욱!’
아무래도 시안이 카일의 마혼제법을 완벽히 다룰 수 없는 것처럼.
아리아 또한 뮤리엘의 신성을 완벽히 다룰 수 없는 모양이었다.
‘빨리 가야겠다.’
시안은 들끓는 속을 달래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그··· 아윽···! 래서 이제, 내가 할 일은 없지?”
“어, 어?”
그러자 아리아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떠나려는 시안의 기색을 눈치챈 것 같았다.
“벌써 가게···?”
“어. 남아서 할 것도 없잖아 이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퀘스트는 모두 끝냈겠다.
보상도 만족할 만큼 얻었겠다.
뭐, 뒤처리는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건 아리아한테 맡기면 알아서 해주겠지.
그러니 이제는.
‘1,200만 골드!’
현질을 해야할··· 아니, 루벤으로 다시 돌아가야할 때였다.
“꼭··· 가야 돼?”
“그럼. 여기서 살까?”
“정말?”
그러자 아리아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정말은 뭔 정말이야. 됐고. 나 간다.”
시안은 미련 없이 곧장 걸음을 옮겼다.
아까부터 속이 들끓는 것이, 더 있다간 진짜 토할 것 같았다.
어째, 2배가 아니라 2.5배는 강해진 것 같았다.
‘나는 왜 저런 게 없나 몰라.’
마기를 단숨에 증폭시켜주는 마도구 같은 것 말이다.
이쯤 되니 시안은 괜시리 섭섭했다.
뮤리엘은 단번에 2.5배나 강해질 수 있는 것들을 남겨줬는데.
카일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가 별로라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시안.”
그 순간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번엔 ‘야’가 아니라 ‘시안’이라는 이름이었다.
시안은 뭔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아리아를 바라봤다.
아리아는 주저하는 기색으로 몸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꽤나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뭔데?”
“그···.”
시안이 묻자 아리아가 엄청난 용기를 내는 표정으로 말했다.
“연락이랑 아는 척··· 해도 되지···?”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또 무슨 대단한 부탁을 한다고.
하지 말라 해도 어차피 해올 거면서.
“맘대로 해.”
시안은 그렇게 방 문 밖을 나섰다.
#
시안이 떠나가고 난 이후.
“어라, 시안 공자님 벌써 가셨어요?”
로라는 방 안에 홀로 남아있는 아리아의 모습에 의문을 표했다.
한쪽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리아.
그 모습이··· 어째 조금 처량해보였다.
‘시안 공자님이 또 인색하게 대하셨나···.’
로라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로라도 처음에 믿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남부에서 함께한 바.
시안은 정말 아리아에게 이렇다할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었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
로라가 방을 나서기 전의 상황과 지금 아리아의 처량한 모습.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로라는 아리아를 달래주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응? 로라 왔어?”
들려오는 아리아의 목소리가 꽤나 활기찼다···?
아리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보이는 아리아의 모습.
“뭐, 뭐, 뭐, 뭐예요?!?”
로라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아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기존에도 초월적인 미모의 아리아였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저 미모를 뭐라, 뭐라 표현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때, 로라?”
“와아아아아!!!”
로라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성녀님 진짜, 진짜 여신님 같아요!!”
“그래?”
아리아가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보였다.
아찔한 미모에 로라는 순간 넋을 놓았다.
그때서야 눈에 들어온 장신구들.
“그··· 그 장신구들은 대체 뭐예요?”
“시안이 선물로 줬어.”
“시안··· 공자님이요?”
아리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대답 대신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로라는 다시 한 번 넋을 놓았다.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기뻐하는 아리아의 모습.
그간 아리아를 향한 선물 공세는 끝이 없었다.
보석이며, 장신구며 각종 귀중품들을 선물로 보내왔다.
하지만 애초에 아리아에게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리아는 일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돈도 안 받고 선물로 준 거 있지?”
아리아가 이렇게 좋아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리아와 거진 평생을 함께 해온 로라였지만.
로라의 기억으로는 절대 없었다.
아리아는 손을 펴보이며 반지를 자랑했고.
세상 귀한 보물을 대하듯, 귀걸이와 목걸이를 만지작 거렸다.
그 모습에 로라는 눈을 게슴츠레 떠보였다.
그리고 모르는 척, 슬쩍 말을 꺼냈다.
“성녀님. 거기에 화장까지 더하면 진짜 안 넘어올 남자가 없겠는데요?”
“그, 그래···?”
요것 봐라?
로라는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말로는 아니다. 절대 그런 생각 없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 그렇게나 뭐라 하더니.
“어떻게, 제가 화장하는 법 좀 알려드릴까요?”
아리아는 섣불리 답을 하지 않았다.
몸을 꼼지락 거리면서 상당히 주저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그럼 조금만···?”
“푸웁!”
로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정말 알기 쉬운 성녀였다.
#
교황청을 나선 시안은 곧장 루벤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리아가 재빠르게 움직인 것일까.
시안은 루벤으로 가는 도중.
약속했던 금액의 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레이첼의 재산을 몰수해서 주는 것이라 조금은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거늘.
아무래도 아리아가 가장 먼저 일을 처리해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꽤나 큰 금액의 전표였기 때문인지.
여명 교파의 신성 기사가 직접 전해왔다.
그렇게 확인한 전표는 모두 1,310만 골드.
처음 말했던 1,200만 골드보다 110만 골드가 더 많은 금액이었다.
“무슨 추기경이 이런 돈을 가지고 있어.”
대체 얼마를 빼돌린 건지.
아니면 꿍쳐먹은 건지.
그런데 뭐.
그게 무슨 상관이랴.
“아아아···!”
되려 이런 돈을 가지고 있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렇게 시안은 루벤으로 가는 와중에 전표를 모두 골드로 바꾸었다.
그마저도 한 번에 바꾸지 못해 여러 도시를 들러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전표를 골드를 바꾼 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갑자기 스마트 폰이 크게 떨려왔다.
뭔가 싶어 꺼내본 스마트 폰.
번쩍! 번쩍!
화면 위로 뜬금없이 번쩍번쩍, 눈부신 빛이 터져나왔다.
초록색, 파랑색, 빨간색 등.
꽤나 다양한 색들이 번쩍번쩍,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알림창.
《그, 극소수의 사람들은 번쩍이는 빛이나 무늬 같은 시각적 이미지에 노출되면 발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광현질성 간질 발작’이라 불리는 이것은 시,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그, 그러니까··· 정신 착란, 일시적인 이성 상실 등의 심각한 정신병으로···!》
꾹.
시안은 볼 것도 없이 X버튼을 눌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