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신녀[神女], 뮤리엘
하늘로 솟구치는 루슈리아의 목.
그와 함께 드리운 마력의 세계가 일시에 소멸했다.
“하악···! 하악···!”
아리아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방금 전의 긴장이 가시지 않아 온몸이 계속해서 떨려왔다.
끔찍한 격통에 정신이 깜빡인다.
그 어지러운 정신 사이로 방금 전의 공포만은 뚜렷하게 남아 느껴졌다.
실로··· 실로 끔찍한 힘이었다.
사실 아리아는 성녀(聖女)로서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신성은 악(惡)과 상반되는 힘.
악을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힘이니 말이다.
심지어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였으니.
솔직한 말로 아리아는 악마와 맞서도 꽤나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이건 감히 인간이 대적할 수 있는 악(惡)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허억···! 괜··· 찮아?”
자신을 걱정해주는 시안을 아리아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리아는 루슈리아보다 시안이 더 놀라웠다.
루슈리아의 끔찍한 악의도 놀라웠지만.
그에 대적한 시안이 더욱 놀라왔다.
게다가 지금 저 데스 나이트들.
아리아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성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멀쩡히 서있는 신성 기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임이 없었다.
개럿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시뻘건 선혈을 흘린 채 바닥에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신성 기사단 중에서도 정상급의 실력자이자.
대륙 제 2의 검을 논할 정도의 최상위 실력자.
그리고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신성 기사단들.
그들이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는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이다 못해 경이로운 무력.
다행히 데스 나이트들이 시안의 명을 따르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루슈리아보다 더 끔찍한 악이 되었으리라.
그래도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준비해.”
일순간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전신에 낭자한 피.
시안은 다시 검을 움켜쥐며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시안이 투지를 끌어올리며 정면을 바라봤다.
아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레 정면으로 향했다.
그곳엔 31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도열해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짙푸른 안광을 태우며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목이 잘린 루슈리아.
하늘로 솟구쳤던 목은 어느덧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경악과 충격으로 물든 표정에 두 눈은 부릅, 떠져있었다.
인간이었다면 마땅한 죽음을 맞이했을 모습이었다.
그런데.
들썩.
일순간 루슈리아의 입이 들썩였다.
【죽여··· 버리겠어···!!!】
그 사이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대가 존재하지 않는 목뿐이었건만.
입에서는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잘린 목의 입에서 저주와도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저, 저게 무슨···!”
아리아는 충격에 놀라 소리쳤다.
“저 육체는 그릇일 뿐이야. 본체에 타격을 입히진 못했어.”
옆으로 시안의 말이 들려왔다.
그릇? 본체?
아리아는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관없어··· 이제 아무렴 상관없어···.】
이윽고 목이 없는 육체가 터벅, 움직였다.
“켄드릭!”
그 모습에 시안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켄드릭을 비롯한 데스 나이트들이 일제히 루슈리아에게 달려들었다.
【모두 죽여버리겠어!!!!!!!!】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끔찍한 마력의 폭풍이 루슈리아의 전신에서 터져나왔다.
그로 인해 데스 나이트들이 몸을 주춤,거렸다.
루슈리아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목으로 향했다.
켄드릭을 비롯한 데스 나이트들이 막아서려했으나.
터져나오는 마력의 격류에 휘말려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루슈리아는 떨어진 목을 집어 들어 잘린 어깨 위로 얹었다.
까륵, 까드득. 하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목이 달라붙는다.
【감히··· 감히 나를···!!!】
붉고도 붉은 마력이 터져나오며 루슈리아의 전신을 휘감는다.
밀도가 다르다.
시안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시안이 지난 날 마주했던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그리고 방금, 시안이 루슈리아와 대적할 때만해도.
시안은 누르비아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누르비아는 헬렌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었다.
루슈리아는 붕괴되는 뮤리엘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둘다 대륙 어딘가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인해 현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악마 7군주 간에도 힘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시안이 느낀 루슈리아와 누르비아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다르다.
가히 무한에 가까운 마력.
그것이 명백한 살의를 띠고 악독하게 움직인다.
존재를 짓눌러 죽이는 살의.
시안이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떠한 것보다 끔찍하다.
그렇기에 시안은 알 수 있었다.
루슈리아는 지금··· 본체의 힘을 끌어내었다.
온전하지 않은 현신에서 본체의 힘을 끌어내는 것은 상당한 타격을 감수하는 것일 터였다.
어쩌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었다.
그로써 본연의 힘을 크게 잃게 되겠지.
그럼에도 루슈리아는 그 모든 출혈을 감수하고 가진 바 모든 역량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붉게 일렁이는 두 눈에는 이성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죽음만을 갈망하는 악(惡).
그것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천 년전.
아르나이즈들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었던 진정한 루슈리아의 힘.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절대적인 악(惡).
【끄아아아아아아아아─!!!】
끝도 없는 무한의 마력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안에서 시안의 마(魔)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근원의 마(魔)는지금 드리운 광기와 어둠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근원의 마(魔)라고는 한들, 아직 시안이 완벽히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원의 마(魔)였기에, 버틸 수 있었으리라.
“하흐흑···!”
아리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정신이 붕괴되는지 아리아의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성녀인 아리아조차 이 악의에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켄드릭!!”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시안의 외침과 함께 켄드릭이 루슈리아에게 달려든다.
그와 동시에 30의 데스 나이트들이 일제히 루슈리아에게로 쏟아진다.
감당할 수 없는 마기가 드리운다.
루슈리아는 피하지 않고 손을 양옆으로 펼쳐보였다.
【죽어!!】
콰르르르르!!
휘몰아치는 붉은 마력이 드리운 마기를 모조리 찢었다.
찢겨진 공간 사이로 켄드릭이 검을 휘둘렀다.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가 붉은 마력을 가르며 쇄도···하지 못했다.
휘몰아친 마력이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를 흩뜨려버렸다.
30의 데스 나이트들의 오러 블레이드가 쏟아져내린다.
그러나 이 역시 닿지 못해 사라진다.
【이제 아무렴 상관없어···! 상관 없어!】
루슈리아가 광기에 들어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존재의 격이 다르다.
힘의 농도가 다르다.
그럼에도 켄드릭과 데스 나이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광기와 마기.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힘이 충돌한다.
마치 이 힘이 익숙하다는 듯.
언젠가 한 번 상대해봤다는 듯.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루슈리아를 대적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시안은 끝내 루슈리아를 꺾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켄드릭과 검은 사자 기사단.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데스 나이트들이 루슈리아를 압박하고 있었다.
마스터에 달하는 도합 31명의 데스 나이트들.
아무리 온전한 힘을 개방한 루슈리아라 하더라도 쉬이 제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루슈리아는 아르나이즈들조차 쉬이 상대할 수 없었던 악마다.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그들조차 쉽게 대적할 수 없었다.
비록 루슈리아 또한 완벽한 본연의 힘은 아니라할지라도.
루슈리아는 절대적인 악마다.
대적할 방법이 없다.
켄드릭과 검은 사자 기사단들이 합세하면 가능할 줄 알았건만.
그건 명백한 시안의 착각이었다.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
그것만이 이곳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
시안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
상황은 절망만이 가득차 있었건만.
시안은 이상하게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시안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 루슈리아를 바라봤다.
루슈리아는 끔찍한 마력을 터트리며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살점은 대부분 떨어져 나가있었고.
뼈는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슈리아는 어째서인지 그런 뮤리엘의 육체를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 뮤리엘의 미모 때문이리라
아리아의 몸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와 같은 그것.
그런데 뮤리엘이 그걸 몰랐을까.
뮤리엘은 악마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가 갖는 힘의 근원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죽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까지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확신은 못했더라도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 증거가 바로 썩어 문드러진 육체.
악마에 잠식된 육체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건 지난 날의 헬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뮤리엘의 육체는 썩어 문드러졌다.
즉, 뮤리엘은 죽기 전에 자신의 육체에 무언가를 했다는 뜻이다.
마치 루슈리아가 자신을 탐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가두어둔 것.
처음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안은 왜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뮤리엘은 이 상황을 예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성녀의 예언? 예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뮤리엘은 엑시드의 경지에 닿은 아르나이즈.
성녀를 넘어 신녀(神女)라 불리는 이였으니 말이다.
확실하지는 않다.
확실하기는 커녕 추측도 되지 못하는 망상일 뿐이다.
그러나 시안은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안이 뮤리엘의 무덤에서 얻은 뮤리엘의 유산은 모두 3가지였다.
살아 생전 뮤리엘이 사용하던 여러 장신구들.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풀어줄 수 있는 팔찌.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금화 - 2,130,000 G]
쌓여있었던 200만이 조금 넘는 골드.
그것은 깊숙한 곳에 숨겨져 팔찌와 함께 백금화로 쌓여있었다.
샤를롯은 유산으로 인벤토리와 함께 황가의 보물들을 남겼다.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시안이 찾은 것은 보물들이었다.
그러나 뮤리엘이 남긴 것은 골드였다.
마치 보물보다는 이 골드가, 누군가에게 필요할 것이라는 듯 말이다.
그렇기에 시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
어둠의 숲에서 시안이 발견한 스마트 폰.
스마트 폰은 아르나이즈가 남긴 유산이다.
그러나 어떤 아르나이즈가 남긴 유산인지는 모른다.
솔직히 시안은 지금까지 카일이 남긴 유산이라 내심 생각했었다.
그런데 퀘스트를 수행해가면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은 한 명의 아르나이즈가 남긴 유산이 아니거나.
아니면 아르나이즈가 남긴 유산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 역시 확실하지 않았다.
추측에 기반한 망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천 년전, 뮤리엘은 스마트 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루슈리아는 현재 뮤리엘의 육체를 그릇으로 쓰고 있었다.
허나, 육신은 오로지 그릇일 뿐. 그 본체는 루슈리아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
그렇기에 루슈리아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뮤리엘이 아닌 루슈리아를 직접적으로 노려야 한다.
뮤리엘의 육체에 깃든 루슈리아의 연결을 끊으며 루슈리아를 노려야 한다.
시안은 가만히 스마트 폰의 화면을 내려다 보았다.
퀘스트를 쫓아 이곳까지 왔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금 눈앞에 루슈리아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시안은 여전히 카일이 마주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뮤리엘이 카일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모른다.
뮤리엘이 검은 사자 기사단을 왜 막아섰는지도 모르고.
검은 사자 기사단을 가둬두면서.
어째서 그들을 풀어줄 수 있는 수단 또한 남겼는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가 뮤리엘의 몸을 그릇으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이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말 만약에. 정말 만약에.
뮤리엘이 이 상황을 예견했고.
이 모든 것들이 뮤리엘의 안배라면.
그리하여 지금.
이것이 뮤리엘, 당신이 선택했던 운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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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사아아아···.
시안의 시야가 일순간 흐려졌다.
풍경이 바뀌며 눈앞으로 새하얀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새하얀 공간 너머.
그곳에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상당히 초췌하고 또 가녀려보였다.
툭, 건들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그녀에게선 아리아를 아득히 뛰어넘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꽤나 거리가 있음에도 그 신성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나 시안은 전혀 역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되려 그 어떤 것보다 포근했고,
또 고귀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 또한 그녀를 바라본다.
사아아아···.
일순간 환각이 흩어진다.
흩어지는 환각 사이로 여인이 작은 미소를 짓는다.
흐릿해지는 환각 사이로 여인과 루슈리아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 누구보다 고귀했던 존재와.
그 누구보다 추악한 악(惡).
상반된 두 존재가 시안의 시야에 겹쳐보였다.
환각이 흩어지며 여인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진다.
이내 여인의 형체는 아득한 너머로 흐려졌고.
썩어문드러진 루슈리아의 형체는 점점 뚜렷해져갔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여인의 모습.
고마워요.
환청과도 같은 목소리만이
희미하게나마 들려올 뿐이다.
그 순간.
화아아아악─!!
썩어 문드러진 루슈리아의 몸에서 신성한 빛이 터져나왔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성.
그것은 아리아가 모든 신성력을 터트린다 하더라도 견줄 수 없는.
더없이 찬란하고.
또 고귀한 빛이었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루슈리아가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이윽고 손을 펼치며 가진 바 악의를 터트렸다.
그러나 삼켜지지 않는다.
그 어떤 악의도 저 빛에 범접할 수가 없었다.
되려 사라져 소멸할 뿐.
모든 악(惡)을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힘.
【이, 이게 무슨···!】
터져나온 빛이 허공을 가로질러 시안에게로 날아들었다.
이윽고 시안의 몸에 스며들며 찬란한 빛을 발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태양보다 찬란한 빛이 시안의 전신에서 터져나왔다.
감히 눈을 뜨고 마주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은 주변의 모든 악을 몰아내었다.
그리고 시안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어떤 힘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건 인간의 인지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은.
시안이 평생을 추구한다해도 발끝에도 닿을 수 없는.
초월(超越)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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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슈리아의 두 눈이 찢어질듯 떠졌다.
켄드릭을 비롯한 데스 나이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 짙푸른 안광을 크게 일렁이며 시안을 바라봤다.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시안을 바라봤다.
지금, 지금 시안에게서 느껴지는 힘.
이건··· 이건··· 마치···!
【아니야···! 아니야!!!】
루슈리아가 떠오르는 생각을 격하게 부정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떼어내지지 않는 생각에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떨쳐지지 않는다.
죽음을 강요하는 명백한 공포가 떠오른다.
콰콰콰콰콰콰콰─!!!
시안의 전신으로 감히 정의내릴 수 없는 힘이 터져나온다.
찢어질 듯 부릅, 떠진 루슈리아의 두 눈이 다시 시안을 향한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며.
주춤주춤, 루슈리아가 뒷걸음질 쳤다.
지금 느껴지는 저 힘.
감각 사이를 파고 들며, 죽음을 윽박지르는 공포.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루슈리아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이 힘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가짜가 아니다. 흉내가 아니다.
모방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위조 또한 아니다.
이건··· 이건 그때의···!!
사아아아···.
루슈리아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환각이 비쳐보였다.
까마득히 머나먼 길.
그 길의 끝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칠흑의 검을 든 채.
세상 전체를 오시하는 은발의 미남자.
천 년전.
그 어떤 악마들조차 범접할 수 없었던 악마들의 공포이자 악몽.
루슈리아의 사고가 정지한다.
온몸이 끊임없이 떨려온다.
【주, 죽었잖아···! 너는 죽었잖아···!! 죽어야만 했잖아···! 죽어 사라져야만 했잖아!!!】
그 어떠한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
루슈리아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같은 소리만 반복해서 외칠 뿐이었다.
은발의 미남자가 터벅,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루슈리아에게로 다가온다.
루슈리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미친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반항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항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경이로운 힘에, 저 아득한 너머에.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은발의 미남자가 루슈리아 앞에 서보였다.
칠흑의 검을 늘어뜨린 채, 차가운 눈빛으로 루슈리아를 내려다본다.
루슈리아는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이윽고 터벅.
은발의 미남자가 루슈리아를 지나쳐 걸어간다.
그 사이로.
우리는 실패했지만.
아득한 환청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아아아아···.
환각이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은발의 미남자의 모습 또한 흐릿해졌고.
흐릿해져버린 시야엔 은발의 미남자가 아닌.
금발의 사내, 시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안이 천천히 검을 들어보였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아득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끔찍한 힘을 마주하며 루슈리아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초월적인 마(魔).
그것은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켄드릭과 검은 사자 기사들이 모두 무릎을 꿇는다.
참된 주군을 맞이하며, 드리우는 힘에 경배한다.
“제 1식(第 一式).”
시안의 몸이 일순간 어둠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찰나.
시안의 몸이 루슈리아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루슈리아를 담고 있는 세상의 풍경이 사선으로 길게 베어졌다.
────!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정의내리는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그 어떠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엔 그저 짙고도 짙은 이명만이.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
들려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