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06화 (106/322)

§ 106화 - 색욕의 악마

짙고도 짙은 마기가 사방으로 드리운다.

먹구름과도 같은 칠흑의 안개가 공간을 잠식한다.

어둠이 대지를 적시며,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아로새겨졌다.

지금 피부로 느껴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투기.

이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다.

그어어어어어어─!

들려오는 지옥의 이명.

끔찍한 해방을 맞이한 포악한 마기가 쏟아져 온다.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이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말도 안되는 힘을 지닌 데스 나이트들이나.

이쪽도 광기로 증폭되어 가진 바 역량을 뛰어넘었다.

쉬이 당하지는 않는다.

쏟아지는 마기가 눈앞까지 다가온다.

마주치는 광기와 마기.

서로 다른 힘이 충돌한다.

꽈아아아앙!

힘과 힘의 충돌과 동시에 사방으로 힘의 파편이 비산한다.

대기가 떨리고, 땅이 뒤흔들리며 갈라진다.

그리고 개럿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밀린 것은, 이쪽이다.

“크하학!”

“커헉!”

앞선 신성 기사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새빨간 선혈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그 사이로 어김없이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가 지나갔다.

애시당초 상대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개럿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하나 하나가 마스터 수준에 이르는 데스 나이트들이다.

실로 압도적인 무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수가 적다. 고작 30.

그러니 한 명, 한 명 쓰러뜨린다면 이쪽에도 승산은 있다.

대륙 제 2의 검을 논할 정도의 개럿.

광기로 그 역량 마저 뛰어넘은 지금.

데스 나이트에게 밀리는 실력이 아니다.

아니, 되려 조금 우위에 있는 실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럿은 금방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번뜩!

눈앞에서 짙은 푸른 안광이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검이 시야 가득히 덮쳐온다.

꽈앙─!

황급히 검을 들어 막자 손끝으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맞닿은 검 너머로 타오르는 푸른 안광이 보인다.

검은 기사단의 단장, 켄드릭.

다른 데스 나이트들과는 차원이 다른 불길함이 느껴진다.

개럿이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켄드릭 또한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충돌은 없었다.

개럿이 검이 맞닿기 직전에 허리를 비틀어 검을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켄드릭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뿌드득,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개럿의 검이 꺾이며 켄드릭을 향했다.

완벽한 빈틈.

그러나.

사아아아악─!

허공을 가른 켄드릭의 검이 어둠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어둠은 다시 켄드릭의 반대쪽 손을 휘감아 칠흑의 방패가 되었다.

콰쾅!

개럿의 검이 칠흑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완벽히 허를 찌른 일격이었으나 통하지 않았다.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그들의 육신은 천 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금 남아 부활한 것은 그들의 혼(魂)이었다.

영혼은 형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데스 나이트들이 들고 있는 검은 혼의 일부가 단지 검의 모양을 한 것 뿐이었다.

하여 그들이 검을 사용하고자 하면 검이 되었고.

방패를 사용하고자 하면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형상화 된 칠흑의 방패.

개럿의 눈에는 파고들 만한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일순간 칠흑의 방패 너머로 검은빛이 번쩍였다.

방패가 다시 어둠으로 흩어지며 켄드릭의 손을 휘감아 검의 모습을 띤다.

날카로운 검격이 쇄도해온다. 베기와 찌르기.

그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일격들이 연달아 쏟아진다.

콰쾅─! 콰콰쾅!

개럿과 켄드릭의 사이로 끔찍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그 힘의 여파에 주변이 크게 진동했다.

켄드릭의 자세가 일변했다.

다시 한 번 거대한 참격이 다가온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개럿은 이어질 검격을 걷어내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충돌 직전의 검이 어둠으로 흩어져사라진다.

그리고 커다란 도끼가 되어 개럿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꽈아아아아앙!

“커허헉!”

끔찍한 폭음과 함께 개럿이 왈칵, 피를 토했다.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지만 이게 막은 건지 의구심이 든다.

내부가 진탕이 되어버린 듯, 끔찍한 격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건··· 이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무기의 변화무쌍함.

그것을 활용하는 이 데스 나이트의 수준.

게다가 타오르는 이 끔찍한 마기(魔氣).

그 어느 것 하나 쉬이 볼 것이 아니다.

아니, 쉬이 보는 정도가 아니다.

최소 마스터 중급 이상의 실력자.

허나, 천 년의 세월 속에서 데스 나이트는 그 힘을 키웠고.

형태의 제약이 없는 변화무쌍함은 그를 상급의 경지로 올려주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기에 농담 또한 아니다.

대륙 제 1의 검, 듀라크 엘란두르.

켄드릭은 그와 견주어도, 쉬이 밀리지 않을 실력자다.

그리고 그런 켄드릭과 견줄만한 데스 나이트가 이곳에 무려 30이다.

그래, ‘고작’ 30이 아니다.

‘무려’ 30이다.

“끄아악!”

“크하하학!”

신성 기사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쓸려나가고 있었다.

최소 엑스퍼트의 경지로 이루어진 신성 기사들이었다.

심지어 광기로 증폭되어 가진 바 역량 또한 뛰어넘었다.

대륙의 그 어떤 기사단을 들이밀어도.

지금의 신성 기사들을 대적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푸화학!

콰직!

휩쓸리고 있었다.

대륙 최강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신성 기사들이···.

“커허헉!”

“크학!”

어찌할 도리가 없이 휩쓸리고 있었다.

사아아악─!

찢어진 대지 사이로 칠흑의 어둠이 솟구친다.

솟구친 어둠 속에서 망자의 비명이 들려온다.

갈라진 틈새에서 치솟는 어둠.

그것은 어둠의 검이 되어 솟구친다.

개럿은.

“끄아아아아악!”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

【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돼···!】

루슈리아는 지금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어서도 안되었다.

허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참상.

충돌하는 대검이 공간을 가른다.

그와 동시에 신성 기사 2명이 반으로 갈라지며 사라진다.

단 일합도 버티지 못하고 기사들이 쓰러진다.

이와 같은 풍경이 사방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전투가 아닌 학살.

그로써 절반에 가까운 신성 기사들이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에 신성 기사들의 절반이 휩쓸려 사라졌다.

실로 압도적인 무력이었으며.

언젠가··· 루슈리아가 한 번 경험했던 무력이기도 했다.

아득히 먼 세월.

그 어떤 악마들조차 범접할 수 없었던 악마들의 악몽이자 공포.

그 악몽이자 공포를 몰고 다니던 마(魔)의 기사단, 검은 사자 기사단.

당시 인간들은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검은 사자 기사단이 도달한 곳에 악마는 없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존재들.

그러나 천 년의 세월에 묻혀 그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너희들이···!!】

그 존재들이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루슈리아 앞에 보이고 있다.

심지어 그 존재들은 천 년의 세월이 지나 더욱 강해져있었다.

죽음 마저 뛰어넘으며 그 격을 상승시켰다.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명백한 현실.

까드드득!

루슈리아의 입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져나간 이빨 몇 개가 입 안에서 나뒹굴었다.

퉤, 루슈리아는 빠져나간 이빨을 내뱉었다.

이대로 라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래서는 안된다.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루슈리아는 양손을 옆으로 뻗어 힘을 끌어내었다.

힘의 사용에 육체가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녹아내린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여기서 틀어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콰아아아─!

드리우는 광기가 짙어진다.

그것은 신성 기사들에게로 스며들어 그 힘을 증폭시켰다.

압도적으로 휩쓸리던 신성 기사들이 조금씩 데스 나이트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루슈리아의 붕괴는 빨라졌으나.

신성 기사들이 휩쓸리는 속도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시적인 방편이다.

잠시 시간을 끌 수 있을 뿐, 저 압도적인 데스 나이트들을 대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직접 나서야한다.

루슈리아는 감추어둔 힘을 개방했다.

바로 그때.

한 쪽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드리운 광기를 삼키며 다가오는 살기.

루슈리아의 손이 앞으로 향하며 악의로 만들어진 붉은 방벽이 떠올랐다.

쩌엉─!

그와 거의 동시에 방벽 위로 검격이 충돌했다.

충돌과 함께 끌어올린 광기가 잠시나마 흩어진다.

광기가··· 흩어져?

루슈리아가 두 눈을 치켜떠보였다.

치켜뜬 두 눈으로 방벽 너머, 금발의 인간이 비쳐보인다.

처음 그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인간이자.

저기 데스 나이트를 부리는 인간, 시안이었다.

【네 녀석···!!】

루슈리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다른 한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내었다.

모인 마력이 넓게 확장되며 끝없는 광기가 치솟는다.

눈앞의 인간, 시안.

시안은 어찌된 일인지 검은 사자 기사단을 부리고 있었다.

또한 예전 악몽과도 같았전 존재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안을 죽이면 저 검은 사자 기사단들은 다시 공허로 돌아간다는 것.

【죽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루슈리아가 마력을 터트렸다.

들썩이던 땅거죽 사이로, 수많은 붉은 송곳이 치솟았다.

그 과정에서 술식도, 영창도 필요 없었다.

단순 의지만으로 구현해낸 광범위 마법.

사르르륵.

일순간 시안의 몸이 어둠으로 흩어졌다.

소리 없는 어둠의 안개가 흘러간다.

치솟는 붉은 송곳은 안개를 쫓아가나, 어둠의 안개는 그 모든 것들을 피하며 흘러갔다.

범위에서 벗어난 어둠의 안개가 뭉쳐진다.

그 위로 시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몸 자체가 어둠의 안개가 된 듯한 기묘하고도 신묘한 움직임.

띠링!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0.5% (+0.5%)》

뮤리엘의 무덤에서 보상으로 얻은, 카일의 유산이었다.

몸을 형체가 없는 어둠처럼 움직일 수 있는 방법.

그림자 조차 따라올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지금 처음 시전해보는 것이었으나.

과연 카일의 유산은 카일의 유산이었다.

【너··· 너는 대체···!】

그 움직임을 알아본 것일까.

루슈리아는 또 다시 경악 어린 표정을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슈리아의 몸이 작게 떨려왔다.

그 떨림에서 시안은 루슈리아가 느끼는 공포를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감과 오만은 확실히 구분해야한다.

한 단계 진보했다고는 하나, 지금의 시안은 절대 루슈리아를 감당할 수 없다.

새로운 카일의 유산을 배웠다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다.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악마 7군주인 루슈리아는 천 년전,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절대적인 악이다.

6인의 아르나이즈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었던 존재.

루슈리아는 시안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악마가 아니다.

그나마 붕괴되는 뮤리엘의 육체.

그리고 온전하지 않은 현신.

이 크나큰 제약이 루슈리아를 얽매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슈리아를 꺾을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시안 혼자서는 안된다.

그러니 버텨야 한다.

검은 사자 기사단들이 신성 기사들을 모두 쓰러뜨릴 때까지.

루슈리아가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어찌할 수 없게끔.

시안이 루슈리아를 붙잡아 두고 있어야 한다.

【한낱 버러지 따위가!】

루슈리아가 마력을 터트렸다.

루슈리아의 짓이겨진 동공이 새빨간 광채를 발했다.

통제에서 풀려난 마력이 전방위로 드리운다.

그것은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시안에게 쇄도해왔다.

거대한 광기의 마력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안의 몸이 한줄기 짙은 어둠이 되어 사라진다.

어둠은 순식간에 마력의 폭풍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 번 속아줄 것 같아!】

형체화 된 시안의 모습 위로 붉은 마력의 다발들이 쏟아져내렸다.

루슈리아는 천 년전의 악마.

카일과 직접 대면한 적이 있는 지옥의 7군주였다.

시안의 마혼무영보가 아닌.

카일의 마혼무영보를 직접 경험해봤다.

그것이 갖는 특징을 이미 알고 있다 할 수 있었다.

파바바박!

다발들이 소나기처럼 시안에게 쏟아져내렸다.

피할 수는 없다.

온전히 막을 수도 없겠지만 출혈은 감내한다.

시안은 SS등급의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화아아아아악!!

일순간 찬란한 빛이 시안의 앞에 터져나왔다.

곧 새하얀 신성의 방벽이 시안의 앞에 드리웠다.

콰콰콰콰쾅!

붉은 마력의 다발이 신성의 방벽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아흑···!”

시안의 뒤쪽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곳엔 아리아가 양손을 뻗어 신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리아의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 년이 감히!!】

루슈리아의 꿈틀거리던 짜증이 폭발했다.

루슈리아의 몸이 마력과 함께 움직였다.

붕괴되는 육체가 후두둑, 떨어졌지만 루슈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뻗은 손으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되며 풍경이 일그러졌다.

시안은 곧장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일그러진 풍경 사이로, 다시 시안의 검이 쇄도해왔다.

쩌정─!

힘과 힘이 충돌하면서 공간이 잠시나마 뒤틀렸다.

뒤틀린 공간 사이로 모였던 마력이 흩어졌고,

그것은 애먹은 육체의 붕괴만 가중된 결과를 초래했다.

【감히··· 감히 나를···!】

끔찍한 악의가 폭사한다.

지면 아래에서 들끓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피어나는 광기의 향연.

루슈리아의 이성이 끊어졌다.

【전부 죽여주마!!!】

뒤틀리던 공간이 파지직, 깨졌다.

시안은 황급히 마혼무영보를 펼쳤다. 그러나 힘의 격류에 휘말려 벗어날 수가 없었다.

루슈리아가 양손을 펼쳐들었다.

손끝에 맺혀있는 마력이 들끓으며, 루슈리아가 앞선 허공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콰자자자자작!

공간을 할퀴는 손톱은 참격이 되어 전방위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커헉!”

격류에 휘말린 시안이 마땅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뒹굴렀다.

아리아가 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신성의 방벽을 전개하며, 시안을 보호했다.

콰콰콰콰쾅!

방벽을 두들기는 루슈리아의 참격.

전신을 후드려패는 충격이 이어진다.

일순간 루슈리아의 몸이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보인 루슈리아는 찢겨진 공간을 넘나들며 손을 휘둘렀다.

붉은 마력이 루슈리아의 손에 맺치며 어둠을 붉은색으로 덧칠했다.

그 끔찍한 마력을 마주하며 시안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갈기갈기 찢겨, 전신에서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시안은 SS등급의 검을 움켜쥐며 루슈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슈리아의 두 눈이 기괴하게 휘어진다.

마력이 미쳐날뛴다. 드리우는 장막. 시안은 모든 힘을 쏟아내며 검을 휘둘렀다.

꽈꽝!

시안이 휘두른 검이 루슈리아의 마력을 깨부쉈다.

그리고 아직 부서지지 않은 마력의 장막 너머.

【발악하는 꼬라지 하고는.】

루슈리아가 빙글, 웃어보였다.

폭발했던 짜증은 이제 온데간데 없었다.

지금은 그저 발악하는 벌레는 보는 감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푸확!

장막이 깨지며 일순간 시안의 전신으로 피가 솟구쳤다.

그 너머에서 루슈리아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공간이 다시 한 번 할퀴어진다.

콰자자자작!

공간이 찢어지며 붉은 광채가 넘실거렸다.

번뜩이는 광기가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마력의 세계가 펼쳐진다.

“아리아!”

시안은 마혼무영보를 펼치며 아리아 앞으로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마력의 참격이 쇄도해왔다.

아리아가 손을 앞으로 뻗어 신성의 방벽을 세웠다.

그러나 저 수많은 끔찍한 힘을 온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만일 그러한다면 그 충격에 아리아가 쓰러질 터였다.

시안은 이를 빠드득, 갈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카캉!

신성의 방벽에 닿기 직전의 일부 참격들이 튕겨져나갔다.

콰콰콰쾅!

다른 일부의 참격들은 아리아의 신성 방벽을 두들겼다.

참격을 튕겨낼때마다.

참격을 막아낼때마다.

전신을 후드려 맞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크하학···!”

“아흑···!”

시안과 아리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입가가 벌어지며 피가 왈칵, 쏟아져나온다.

그 모습에 루슈리아는 기괴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역시.

한낱 착각에 불과했다.

그 악몽과도 같은 힘을 사용한 것은 놀라웠다.

그러나 결국 그 존재는 아니었다.

끝이다.

루슈리아의 마력이 붉게 타올랐다.

시안이 죽음으로써 검은 사자 기사단들도 공허로 돌아간다.

이걸로 끝이다.

루슈리아는 즐겁게 웃으며 마력을 폭사시켰다.

바로 그때.

뚝.

루슈리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공간 전체에 위화감이 스며든다.

전신의 감각이 붕, 떠오르며 전신이 간질거린다.

뭐지?

루슈리아는 이 감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슈리아의 눈이 정면을 향한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시간··· 끝났어!”

미소 지으며 말하는 시안의 모습을.

웃···어?

루슈리아의 짜증이 다시 한 번 폭발했다.

허나, 그것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검은 사자 기사단, 켄드릭 외 30.

마치 사형 선고와도 같은 그 목소리.

-주군께서 하달하신 임무를 모두 완수하였습니다.

루슈리아가 무얼 대응할 틈도 없이.

서걱─!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가, 루슈리아의 목 위로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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