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04화 (104/322)

§ 104화 - 천 년의 임무(1)

로라를 향해 날아든 개럿의 검은 말 그대로 번개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로라는 이렇다 할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반응을 할 수도 없는 일격이었거니와.

조금 더 정확히는 반응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광기.

로라의 신성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발아한 역병의 씨앗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로라를 집어삼킨다.

“하흑···!”

저항할 수 없는 광기.

바로 그때.

화아악!

새하얀 신성의 방벽이 로라의 전신을 뒤덮었다.

쩌엉─!

터져나오는 굉음.

간발의 차이로 개럿의 검이 신성의 방벽과 충돌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한 쪽에서 아리아가 소리쳤다.

아리아는 양손을 앞으로 뻗어 새하얀 신성력을 터트리고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화아아아악!

터져나오던 신성의 빛이 더욱 거세어졌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빛은 개럿의 검을 밀어내었다.

개럿은 그 힘에 짓눌려 뒤로 밀려났다.

마주치는 시선.

개럿이 눈을 치켜 뜨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개럿이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무슨 짓을 하신 건지는 알고 계신 겁니까.”

서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신성 기사단의 단장, 개럿.

기사와 달리 신성 기사의 경지를 논할 수 있는 건 마땅히 없었다.

그러나 개럿은 무려 마스터(Master)의 기사와 견줄 정도의 실력자이자.

대륙 제 2의 검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존재.

그렇기에 개럿의 살기는 보통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럿의 기세가 조금 이상했으니까.

오직 의지만으로 존재를 짓누를 수 있는 살기.

이건 신성 기사가 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신성 기사는 오로지 신성을 다루는 기사였고.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살기를 내뿜을 수 없었다.

이러한 종류의 살의를 내뿜을 수 있는 건 마스터의 기사들 뿐.

즉, 오러를 다루는 기사뿐이었다.

허나, 개럿은 마스터에 견줄 수 있을 뿐.

마스터의 기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부를 짓누르는 이 살기는 아리아를 압박하고 있었다.

신성과는 다릇 무엇이다.

아리아는 그 기묘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리아는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소리쳤다.

“로라는 단지 역병에 걸린 것 뿐이에요. 병에 걸렸다고 사람을 죽이려 들다니, 대체 무슨 짓이죠? 그리고 시안이 오면 치료할 수 있어요!”

“단순한 역병이 아닙니다. 이 악의(惡意)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들은 사특한 이교도들입니다.”

아리아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로라는 저와 평생을 함께 해온 사제예요. 절대 이교도가 아니라고요!”

“지금까지는 그래왔을테지요. 허나, 지금은 아닙니다. 보이시지 않습니까.”

개럿이 검을 들어 로라를 가리켰다.

아리아의 시선 또한 로라에게 향했다.

우둘투둘한 반점은 벌써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얼굴은 이곳저곳이 부풀어 올라 샛노란 고름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히히···! 히히히히···!”

그리고 로라에게서 느껴지는 광기와 악의.

“지금은 사특한 이교도입니다. 그러니 비키십시오.”

개럿이 살짝, 고개를 뒤돌렸다.

그리고는 뒤로 도열한 신성 기사들에게 나지막히 소리쳤다.

“현 시간 부로 게스탁 마을은 이교도의 소굴로 정의한다. 신성 기사단은 빛의 이름으로 이단들을 정화하라.”

신성 기사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검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개럿 또한 걸음을 옮겨 로라에게 다가갔다.

짓눌리는 살기가 더욱 거세진다.

아리아는 다시 한 번 이를 까득, 깨물었다.

곧장 몸을 움직여 개럿과 더불어 신성 기사들의 앞을 막아서보였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개럿과 신성 기사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개럿이 눈을 치켜뜨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지금··· 이교도들을 비호하시는 겁니까?”

“이교도가 아니라고요!”

화아아악!

아리아의 전신으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전방위로 터져나가며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단 앞을 가로막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신성력.

이 놀라운 힘 앞에 개럿 또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개럿이 마스터와 견줄 정도의 실력자라고는 하나.

아리아는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성녀였다.

그녀가 진심으로 막아선다면 쉽사리 뚫어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신성 제국에서 아리아가 갖는 입지는 확고하다.

아리아가 이렇게까지 나선다면.

아무리 신성 기사라 하더라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비키시지 않는다면 같은 이교도로 간주하겠습니다.”

개럿은 망설이지 않았다.

개럿의 경고에도 역시나 아리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리아도 알고 있었다.

마을 전체에 광기와 악의가 느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스탁 마을의 사람들은 이교도가 아니다

당연히 로라 또한 이교도가 아니었다.

저 역병.

저 역병에 무언가가 있다.

단순히 병이 아닌 사특한 무언가가 역병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병 때문이에요! 시안이 오면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아리아는 소리쳤다.

그러나 개럿은 아리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신성 기사들에게 말할 뿐이었다.

“성녀 또한 이교도에 물들었다. 게스탁 마을과 함께 성녀도 같이 정화한다.”

이윽고 신성 기사들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아리아는 다시 한 번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게스탁 마을 사람들과 로라.

이들에게서 광기와 악의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이 이교도라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척!

하지만 지금 저건 아니었다.

아리아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신성 기사들은 아리아 마저 죽이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집행하라.”

내뱉어지는 개럿의 말과 함께 신성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쩌엉─!

쩌정─!

신성의 방벽이 크게 떨려왔다.

“크흑···!”

아리아의 전신으로 후드려 패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

신성 기사는 제국이 로열 나이츠와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

그들과 더불어 대륙 제 1의 기사단으로 꼽히는 기사단이다.

개럿의 경지가 마스터에 비견된다면.

다른 신성 기사들을 엑스퍼트와 견주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의 공격을 홀로 막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되려 막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리아라고 한들 한계는 있었다.

쩌엉─!

쩌정─!

쩌적─!

신성의 방벽에 균열이 새겨졌다.

아리아의 입가로 주륵, 선혈이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파장창!

신성의 방벽이 깨져버렸다.

“하흑···!”

아리아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개럿이 파고들며 쇄도해왔다.

아리아는 황급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아아아악!

터져나오는 신성의 빛과 함께 아리아 주위로 무수한 신성의 창이 생겨났다.

새하얀 빛을 머금은 성창(聖槍).

적으로부터 아군을 지키는 창이자.

그 어떠한 적들이라도 분쇄시키는 창이었다.

파바바박!

신성의 창이 개럿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아리아 또한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이였다.

샤를롯 제국의 별이라 불리던 카이와 파나트.

그 둘을 제치고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아리아였다.

물론 무력의 수준을 따지고 들면 그에 못 미치겠으나.

쉬이 당할 정도의 수준은 또 아니었다.

그러나.

파삭!

콰지직!

개럿이 놀라운 움직임을 내보이며 성창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아리아는 잠재된 재능은 폭발적이나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반면에 개럿은 이미 완성된 기사였다.

대륙 제 2의 검이라 불릴 정도의 완성된 기사였다.

쩌엉─!

현재의 아리아 수준으로는 개럿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개럿이 성창들을 베어내며 아리아에게 달려들었다.

아리아는 계속해서 신성력을 뿜어내며 성창들을 쏘아보냈다.

하늘을 뒤덮으며 소나기처럼 성창이 내리친다.

개럿의 몸이 주춤 거렸다.

이건 개럿이라도 쉬이 막을 수 없다.

“방벽을 전개하라!”

개럿이 신성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이윽고 기사들이 한데 모여 방패를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잠깐.】

어디선가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어둠에 삼켜지는 빛.

아리아가 쏘아낸 신성의 창이 일시에 소멸했다.

“무슨···.”

아리아의 표정이 멍해진다.

그리고 다시.

【그 년은 놔둬.】

방금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아니, 이건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의지를 뇌리에 때려박는 듯한 느낌.

이윽고 시야 한 켠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

그와 동시에 아리아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건 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무언가.

저건 무언가라 표현할 수 있었다.

썩어문드러진 피부와 떨어진 살점들.

군데군데 비어있는 곳에서는 속의 뼈가 훤히 비쳐보였다.

길게 내려앉은 머리칼만이 저것이 과거, 여인이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여인이 터벅,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살점들이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살점은 바닥으로 스며들어 대지를 병들게 했다.

그 사이로 끔찍한 악의(惡意)가 피어오른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악의가.

“히히히히···!”

“키히히!!”

마을 사람들의 광기가 피어오른다.

로라 또한 희번뜩한 두 눈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아리아의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저건··· 저건···.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 악마···!”

악마(惡魔).

아리아는 악마를 마주한 적이 없다.

천 년전에 사라진 악마를 어찌 마주할 수 있을까.

아리아는 그저 신화 속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것만 들었을 뿐.이었다.

악마의 잔재인 마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기운.

그때 그 기운이다.

다름 아닌 레이첼을 악마로 확신하던 때.

그 광신도들에게서 느껴졌던 끔찍한 악의.

피부 끝으로 스며드는 광기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 광기가 터져나온다.

【꽤나 예쁜 얼굴을 하고 있잖아.】

챙!

그 순간 개럿이 악마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신성 기사들이 전원 악마를 향해 겨누었다.

악마가 개럿과 신성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무심한 듯 말을 내뱉는다.

【시덥잖은 연기는 집어 치워. 어차피 다 죽이면 알아볼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개럿과 신성 기사들이 악마를 향했던 검을 내려놓았다.

“이, 이게 무슨···!!”

아리아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 놀랐니 얘야?】

악마가 히죽, 웃는다.

사아아아악─.

흉측한 악의(惡意)가 퍼져나간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쥐어짜낸 듯한 광기.

그것이 어둠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땅거미 마저 가려진 완전한 어둠의 장막 속.

물결치는 어둠에 덧칠하듯 사념이 새까맣게 몰려온다.

두려움에 정신이 점멸한다.

아리아는 이를 까득, 깨물며 가진 바 모든 신성력을 터트렸다.

악마를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힘.

지난 날, 교황청에서 시안에게 사용했던 그 힘이었다.

화아아아아악!

터져나오는 찬란한 빛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며 뻗어나갔다.

그러나.

【초라하네. 아니, 초라하다 못해 처참해.】

따악─!

이런 소리와 함께 드리운 어둠이 짙어졌다.

그와 함께 신성력이 어둠에 삼켜지며 일시에 소멸해버렸다.

“어, 어떻게···!”

아리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그 힘은 악마라면 절대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저항할 수 없다 못해 그대로 소멸해야만 하는 힘이었다.

그런데 소멸은 커녕.

되려 집어삼켜졌다.

【그 하찮은 신성으로 날 어떻게 하겠다고?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니?】

악마가 웃는다.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아리아에게 다가온다.

아리아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대적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텁.

악마가 아리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아리아의 발이 하늘로 떠오르며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그리고 시야로 보이는 짓이겨진 모습의 악마.

악마가 속삭인다.

【이 년에 비하면··· 정말 한없이 초라하네. 지금 이 년을 차지하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지. 그런데 너는 지금 바로 그릇으로 써도 될 것 같은데?】

“까윽···!”

아리아가 숨을 내쉬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 음··· 좋아. 특별히 내가 누군지 알려줄게.】

끔찍한 악의가 피어오른다.

세상 그 어떤 악의를 들이밀어도 표현할 수 없는 악(惡).

일곱 가지의 대죄(The Seven Sins).

교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탐식, 나태.

그 죄에서 깨어난 일곱의 악마.

【내 이름은 루슈리아.】

악마 7군주.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Luxuria).

루슈리아의 힘은 색욕이라는 죄악에 근간한다.

인간이 갖는 색욕의 감정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 힘은 더욱더 증폭된다.

루슈리아가 끈쩍한 시선으로 아리아를 훑어봤다.

완벽이라 부를 만한 이목구비.

잡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

지금 썩어문드러져있는 루슈리아의 몸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또 그뿐이랴.

유려하게 빠진 아리아의 목덜미를 보라.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백금발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욕망을 자극했다.

루슈리아 마저 들끓는 욕망을 느끼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인간을 넘어 존재를 뛰어넘는 초월의 미모.

그렇기에 루슈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아··· 벌써부터 느껴져. 너를 향한 추악한 욕망들이.】

아리아를 향하는 추악한 색욕들이.

아리아를 바라보는 사내들의 추악한 욕정들이.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루슈리아는 그런 색욕을 품을수록 그 힘이 강대해진다.

【하루에 몇 명과 할 수 있을까, 50명? 60명? 100명?】

루슈리아는 희열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너의 몸을 차지하면··· 그 수많은 사내들이 바라마지 않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거야. 하루에도 수 십번씩···.】

바라보는 시선.

【수많은 남자들이 나의 젖가슴을 움켜쥐면서··· 입술을 핥고, 가랑이 사이를 비집으며··· 나를 탐하겠지?】

루슈리아의 말이 점액처럼 끈적하게 늘어진다.

털어내려해도 고막에 감싸 달라붙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드는 추악함.

지옥의 악마가 악(惡)하다면.

지옥의 7군주, 루슈리아는 추악(醜惡)했다.

허나.

그 추악한 욕망을 품은 이들에게는, 저속한 소원을 들어주는 신(神)과 다름 없으니.

【이런 내가 어떻게 악마라 할 수 있겠어?】

루슈리아가 추악하게 웃는다.

그 욕망을 마주한 아리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오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그걸로 끝임을 알고 있었다.

아리아라는 사람은 죽는다.

루슈리아에 지배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욕정을 받아내는 존재가 될 터.

그렇기에 뭐라도 해야하건만.

아리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벗어날 수 없다.

새까만 절망만이 가득하다.

뮤리엘의 환생.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

그러나 아리아의 잠재력은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 않았고.

느껴지는 악의는 아리아의 수준 또한 아득히 넘어섰다.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앞에서.

아리아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시야가 아른거린다.

아리아의 정신이 흐려진다.

이윽고 루슈리아의 정신이 아리아를 잠식한다.

아리아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악(惡).

시야가 암전되며 정신이 떠나간다.

그리고 그 떠나가는 정신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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