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밝혀지는 진실(1)
뭐지···?
라는 물음도 들지 않는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싶은 의문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시안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
그 때문에 방금까지만 해도 시안에게 죽음을 윽박지르던 어둠이 모두 시안 앞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시안의 전신으로 피어나던 근원의 마(魔)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날뛰는 어둠을 복종시키던 근원의 마(魔)였다.
심지어 날뛰던 어둠의 수준이 낮지 않았으니.
근원의 힘이라 할지라도 복종시키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격의 차이를 일깨워주며 차근차근 복종시키고 있었거늘.
갑자기 들끓던 어둠이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죽을 듯이 반항을 하던 어둠이 갑자기 배를 까뒤집으며 복종한다.
상황이 이러니 근원의 마기가 순간적으로 벙쪄버렸다.
마치 ‘뭐여! 이게 대체 뭐시여?!’ 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시안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시안은 두 눈을 끔뻑, 거렸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데스 나이트는 시안에게 ‘주군’이라 소리쳤다.
무려 30의 데스 나이트 또한 같은 말을 했으니 잘못 들은 것은 아닐 터였다.
한 마디로 시안이 저 데스 나이트들의 주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시안에게 주군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있기는 했었다.
다름 아닌 루벤의 병사들.
그런데 눈앞의 데스 나이트가 어딜 봐서 루벤의 병사들이란 말인가.
아, 설마 그새 루벤이 멸망했나?
어둠의 숲에 잡아먹혀 루벤이 망해버렸나?
해서 그 원한에 사무쳐 시안을 따라 이곳에 왔고.
뮤리엘의 유적에서 시안을 기다리다가 마(魔)에 삼켜졌으며.
광기로 번뜩이다 지금에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기는 개뿔!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진짜 뭐지. 정말 뭘까.
시안은 머릿속으로 모든 가능성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아! 이거···?’
그러다 퍼뜩.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번뜩이며 스쳐지나갔다.
시안은 무릎을 꿇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가장 앞선 데스 나이트.
듀라크와 대적할 만한 수준의 데스 나이트에게 말했다.
“주군이라면··· 설마 카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데스 나이트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였다.
파르르, 떨려오는 검푸른 안광.
아무래도.
-역시···.
카일을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이들은 카일을 따르던 이들인 것 같았다.
어쩐지 죄다 마스터 수준이라더니.
그런 정신 나간 기사단은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황가의 로열 나이츠와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
이 두 기사단은 구성원이 모두 엑스퍼트로 구성되어있다.
그럼에도 대륙 최강의 기사단으로 손꼽히거늘.
그런데 구성원이 전부 마스터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정신 나간 기사단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데스 나이트들.
카일은 역시 카일인 것일까.
그를 따르던 이들 또한 말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오해가 아니라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안은 카일이 아니었으니까.
해서 시안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기도 싶었거니와.
보아하니 마(魔)에 잠식되어 있어도 이성을 잃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방금 전 느껴지던 광기는 끔찍했으나.
그래도 완전히 잠식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 마디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카일이 아닙니다.”
-······?
그러자 데스 나이트의 안광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방금 그 힘과 기운은 분명 주군이셨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제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무뎌지지 않은 정확한 감각이었다.
카일을 주군이라 부르며 따르던 이들.
즉, 살아온 세월만 천 년은 기본으로 깔고 간다.
허나 그 아득한 세월에 감각이 무뎌지기는 커녕.
세월이 쌓여 더욱 날카로워진 모양.
시안의 마혼제법과 더불어 마혼수라검의 수라천살까지.
눈앞의 데스 나이트는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봤다.
“오해할 만한 상황인 것은 압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카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안이 부정을 했다.
아닌 건 아닌 것이었으니까.
그러자 데스 나이트가 크게 당황해보였다.
그와 동시에 다른 30의 데스 나이트들이 크게 술렁였다.
-그럼 대체···.
데스 나이트의 안광이 떨려왔다.
시안은 계속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으나.
방금 시안이 보인 것은 분명한 카일의 힘.
그 상반되는 진실에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시안이 으레 하는 소리가 있었다.
“카일의 후계자···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후계···자?
데스 나이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카일의 후계자라는 시안의 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카일은 직접적으로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사실 시안 스스로가 변명처럼 내뱉는 말에 불과했다.
레아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데스 나이트도 그렇고.
카일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터였다.
-주군의 후계자시라니···.
데스 나이트의 안광이 파르르, 떨려왔다.
역시나 쉽사리 믿기 힘든 사실인 듯.
심히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것이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 켄드릭. 주군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고민을 마친 데스 나이트, 켄드릭이 시안을 향해 다시 한 번 예를 표했다.
-주군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주군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주군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그와 동시에 30의 데스 나이트들이 일제히 예를 표했다.
“어···.”
시안은 왠지 모를 멋쩍음이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안을 죽이려 들었던 이들이었다.
그 끔찍한 살기에 물든 공포의 잔재가 아직도 시안의 정신에 남아있었다.
살아남을 수 없는 소름끼치는 살의.
부정의 악마, 리치는 물론이고.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와 조금 견줄만 했을까.
물론 누르비아는 헬렌의 방해를 받고 있었고.
온전한 힘 또한 발휘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누르비아는 압도적이었고.
지금 데스 나이트들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공포가 느껴졌었다.
그런 데스 나이트들이 이제는 모두 시안의 발 아래 조아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뭐.
일이 잘 풀린 것 아니겠는가.
시안은 생각을 정리한 뒤 켄드릭에게 말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주군. 말씀을 부디 편하게 해주십시오.
시안이 묻자 켄드릭이 곧장 답을 해왔다.
-비록 주군의 후계자시라고는 하나, 주군께서 선택하신 분입니다. 그럼 저희에게도 주군이나 다름 없습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카일이 시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
그 때문에 시안은 쉽사리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일단 위의 이유도 있었거니와.
보아하니 이들은 모두 카일을 따르던 기사단.
그 말은 즉.
이들 모두가 최소 천 년전의 존재들이라는 뜻이었다.
반면에 시안은 20년을 넘긴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 말을 놓는다는 것은 시안으로서도 조금 서먹한 일.
-주군께서 말을 높이시면 저희가 불편합니다.
헌데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뭐.
솔직히 카일이 선택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 시안은 카일의 후계자라 불러도 무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뭐··· 그렇다면야.”
시안은 별 고민없이 말을 놓았다.
켄드릭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래서.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거야? 너희들이 왜 뮤리엘의 유적에 있는 건데?”
켄드릭을 비롯한 데스 나이트들.
그러니까 카일을 따르던 기사단들.
이들이 뮤리엘의 유적에 있을 이유가 전혀없었다.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읊조리던 ‘교황청의 사람들을 죽여라.’였다.
데스 나이트들은 살아 생전의 뛰어난 기사가 원한에 사무쳐 부활한 마(魔)의 존재다.
그 말은 즉.
이들은 교황청과 관련된 원한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다름 아닌 뮤리엘의 유적.
또한 퀘스트에서 카일이 뮤리엘을 만났다는 사실까지.
“설마··· 카일이 뮤리엘에게 뒤통수를 맞은 거야?”
뮤리엘이 교황청의 세력과 합세해 카일을 배신했다.
퀘스트에서는 카일이 죽지는 않았다고 했으니.
아마 큰 힘을 잃거나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 여기 카일을 따르던 검은 사자 기사단.
이들이 목숨을 걸고 카일을 탈출시켰고.
그 원한과 복수를 잊지 못해 이렇듯 데스 나이트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얼추 앞뒤가 들어맞았다.
-아닙니다.
말 그대로 얼추 들어 맞는다는 말이었다.
켄드릭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전대 주군께서는 뮤리엘 성녀님이 감히 어찌할 수준이 아니셨습니다.
켄드릭이 말하는 전대 주군은 다름 아닌 카일.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카일이 어떤 존재인데 한낱 교황청 따위가 어찌할 수 있을까.
설령 뮤리엘이 가세했다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물론 교황청의 힘이 무시할 것은 못 되었다.
하물며 아르나이즈였던 뮤리엘까지 더해졌다면 사실상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봄이 옳았다.
하지만 카일만은 예외였다.
시안이 지난 날 엘로디의 기록을 살펴보길.
엘로디는 카일의 강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카일의 강함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카일은 우리들의 동료였으나,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카일에 대해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카일과 대적한다한들, 카일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최강의 아르나이즈이자.
기나긴 대륙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존재.
엑시드(Exceed), 그 너머의 경지에 발을 딛은 자.
그가 바로 카일(Kyle)이었다.
“그럼 왜···?”
-그 반대입니다.
“반대?”
시안의 물음에 켄드릭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민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전대 주군께서는 교황청의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하셨습니다.
“······ 에?”
시안의 정신이 다시 한 번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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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이 교황청의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 했다고?”
-그렇습니다.
시안의 물음에 켄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이유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켄드릭의 검푸른 안광이 난처하게 일렁였다.
-사실 전대 주군께서 저희를 찾으신 것도 갑작스러웠습니다. 그 전에 전대 주군께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신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카일이 모종의 진실을 마주한 이후를 말하는 것 같았다.
모종의 진실을 마주하고 아르나이즈 동료들은 물론.
레아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던 카일.
역시나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같았다.
-갑작스레 저희를 찾아온 전대 주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청의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
켄드릭을 비롯한 검은 사자 기사단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다짜고짜 찾아와 저런 말을 해대니.
아무리 카일의 말이라도 쉽사리 따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주, 주군···!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켄드릭이 물었고.
카일은 이렇게 답을 했다.
‘설명을 해주고 싶으나··· 이 진실은 많은 이들이 알아서는 안된다. 미안하구나.’
카일은 다시 켄드릭에게 말했다.
‘한 가지 알려줄 수 있는 건, 교황청의 세력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것뿐.’
카일은 복잡한 눈빛과 표정으로 켄드릭을 바라봤다고 한다.
‘뮤리엘은 내가 만나보겠다. 너희들은 3일 뒤, 교황청의 사람들을 죽여라.’
그리고 그건 켄드릭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카일의 모습이었다고.
그렇게.
‘너희들에게 과한 짐을 안겨준 것 같지만··· 부탁한다. 현재로서 믿을 만한 이들이 너희들밖에 없구나.’
카일은 떠나갔다고 한다.
켄드릭은 심히 고민했지만 결국 카일의 명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들에게 카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교황청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면 그건 꽤나 심각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켄드릭은 검은 사자 기사단을 이끌어 교황청을 습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뮤리엘 성녀님이 저희들을 막아섰습니다.
뮤리엘이 이들을 막아섰다고 한다.
켄드릭을 비롯한 검은 사자 기사단들.
이들은 모두가 마스터 수준에 있는 기사들이었다.
심지어 켄드릭은 듀라크와 대적해도 쉬이 밀리지 않을 실력자.
그러나 뮤리엘은 다름 아닌 아르나이즈였다.
무려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성녀.
뮤리엘과 검은 사자 기사단은 격돌했고.
끝내 뮤리엘이 이들을 제압했다.
-그 이후 성녀님은 저희를 이곳에 가두셨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고 한다.
이 컴컴한 지하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시안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교황청의 사람들을 죽여라.
방금 전, 데스 나이트들이 부르짖었던 외침.
처음엔 교황청에 대한 원한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카일이 내린 명이자, 수행하지 못했던 임무였었다.
아무래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이 끝내 한(恨)이 되었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남아 있었던 모양.
모든 검은 사자 기사단의 기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허나, 켄드릭을 비롯한 일부 검은 사자의 기사들.
그러니까, 여기 모인 31명의 데스 나이트들.
카일에 대한 충성심이 유독 강했던 이들이 남아, 끝내 데스 나이트가 되어 부활한 것이었다.
바로 그때.
띠링!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클리어!)』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의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