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99화 (99/322)

§ 99화 - 뮤리엘의 유적(1)

갑자기 들려온 스마트 폰의 알림음.

“잠깐만.”

시안은 잠시 아리아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확인했고.

화면 위로 떠오른 퀘스트를 볼 수 있었다.

『[스토리 돌발 퀘스트] - ‘진실 속에 감춰진 진실’』

‘스토리 돌발 퀘스트?’

그간 봐왔던 퀘스트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었다.

시안은 화면을 터치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꾹.

『[스토리 돌발 퀘스트] - ‘진실 속에 감춰진 진실’

▶카일이 마주한 진실을 찾아 뮤리엘의 유적을 찾아온 당신!

숱한 고난과 역경 끝이 있었지만.

당신은 끝내 그 실마리를 잡아냈습니다!

자, 이제 뮤리엘의 유적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비밀을 밝히고 전리품을 얻으면 되는데···.

어라라···?

상황이 조금 묘하게 흘러갑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세상에!! 마상에!!

뮤리엘의 유적에서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고 하네요!!

게다가 역병의 근원이 자리한 곳이 바로 뮤리엘의 유적이라고요?!

이게 무슨 일이얏!!!

천 년전, 모종의 진실을 마주하고 홀연히 떠난 카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은 뮤리엘을 찾아갑니다.

카일은 뮤리엘과 오랜 대화 끝에 다시 떠났고.

뮤리엘은 그 비밀에 관련한 무언가를 유적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뮤리엘은 자신의 죽음이 다가올 때.

유적으로 돌아와 자신의 죽음 또한 같이 묻어두었습니다.

뮤리엘은 대체 무엇을 숨겨야만 했던 걸까요.

그것이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남부에 창궐한 역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카일은 뮤리엘에게 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걸까요.

진실 속에 감춰진 진실.

지금 바로 뮤리엘의 유적에서 확인하세요!』

<보상: ???>

.

.

‘뮤리엘의 유적에서 역병이 발생했다고?’

시안은 속으로 소리쳤다.

뮤리엘은 천 년전의 성녀(聖女).

악마들로부터 세상을 구원한 아르나이즈였다.

비록 지금 아리아가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린다지만.

사실 비교할 수조차 없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었다.

가진 바 신성력도 물론이거니와.

그 신성력의 활용 능력까지.

그 어떤 걸 들이밀어도 뮤리엘에 범접할 수 없었다.

역대 성녀들을 싸그리 모은다면 그나마 비교가 가능하려나.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뮤리엘의 유적이 뮤리엘의 무덤인 것 같았다.

뮤리엘이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 쯤.

유적으로 돌아와 그 생을 마감했다니 말이다.

헌데, 그런 곳에서 역병이 발생했다···?

말이 안 되었다.

애초에 역병 자체가 범접할 수 없어야만 했다.

지금 아리아에게도 역병이 범접할 수 없었거늘.

하물며 뮤리엘이라면야 무얼 더 말할까.

아무리 천 년이 지났어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무슨···.’

시안은 도무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안은 스마트 폰을 다시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어디가?”

뒤쪽에서 아리아가 물어왔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레이첼 추기경한테.”

지금 바로 뮤리엘의 유적에 가봐야할 것 같았다.

#

시안은 그 길로 레이첼을 찾아갔고.

레이첼은 심히 기뻐하며 곧장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게 도착한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 게스탁 마을.

확실히 주변에 역병의 근원이 있기 때문일까.

느껴지는 기운하며 마을 상태 또한 그 여느 마을보다 처참했다.

심지어 역병에 죽어있는 환자들도 제법 있었다.

시안은 뮤리엘의 유적과 역병의 근원을 찾기 전.

게스탁 마을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주었다.

“정말··· 정말 사실이었군요?”

“성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 합니다.”

그 모습에 레이첼을 비롯한 신성 기사들 또한 모두 놀란 눈을 떠보였다.

보통 소문은 과장이 덧붙이기 마련인데.

“다음! 다음! 다음!”

지금은 되려 축소되어 있지 않은가.

시안은 정말 순식간에 게스탁 마을에 있는 역병을 몰아내었다.

시안은 차분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 엄마···!”

“아아아···!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치료되어 눈물 바다가 된 마을 사람들.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났으니 당연한 반응이리라.

많이 봐왔지만 그럼에도 뭉클한 장면들.

시안은 괜히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그리고 옆에서 멀뚱히 서있는 아리아에게 말했다.

“넌 굳이 왜 따라왔냐.”

시안이 레이첼과 함께 뮤리엘의 유적으로 향하겠다고 할 때.

아리아도 시안을 따라 이곳에 왔다.

남부의 대부분의 역병이 잡혔고.

추기경인 레이첼도 있었던 지라.

굳이 아리아가 따라올 필요는 없었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그럼에도 굳이 고집을 피우는 아리아였다.

해서 시안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시안도 조금은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인뒤 말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곳에 마을이 있는거야?”

솔직히 그랬다.

여기 게스탁 마을은 사람이 살 곳이 전혀 못 되었다.

주변에 드리운 숲과 황량한 지역.

듣자하니 몬스터들도 간간히 출몰하는 것 같았다.

과장 조금 섞어서 예전 루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해서 왜 이런 곳에 마을이 있는가 하니.

“이들은 신민들이 아니야.”

게스탈 마을 사람들은 신민들이 아니란다.

그 말에 시안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부를 쏘다니며 이와 같은 상황을 많이 봤었으니까.

한 마디로 화전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숨어 사는 것이리라.

“그깟 성금 좀 안 냈다고 신민이 아니라니. 이것도 다 황혼 교파들이 정한 교리야.”

아리아는 이를 까득, 씹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시안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교황이라는 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교단의 파벌이 갈리고 두 세력이 대립하는데.

교단의 수장이라 불리는 교황은 딱히 뭘 하는 게 없었다.

어찌보면 샤를롯 제국의 황제와도 같은 지위인데.

지금도 보아하니 황혼의 교파들이 마음대로 교리를 정하는데.

딱히 교황이 나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심지어 이번 남부의 지원 또한 마찬가지.

“성하께서는 교단의 일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으셔서 그래..”

교단의 일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다고?

교황이라는 사람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네가 교단 회의를 보면 단번에 이해할텐데. 성하께서는 당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아. 그저 나오는 의견들에 묵묵히 경청할 뿐이지.”

해서 아리아를 비롯한 여명 사제들이 대신 나서서 의견을 피력한단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라.

교황은 그저 조용히 듣기만 할 뿐이란다.

그러니 아래 추기경을 비롯한 대주교등.

고위 사제들만 갑론을박을 펼치니.

그 끝에 조율된 최종 의견에 교황이 승인을 하는 격이란다.

“차라리 너희 황제처럼 단호하게 결정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샤를롯 제국의 황제와 신성 제국의 교황.

가진 바 지위는 비슷하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황제는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는 자요.

교황은 신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자.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면 그것을 신의 뜻이라 생각할거라나 뭐라나.”

“음···.”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 볼 수 있는 발언이나.

실은 교황의 생각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실제로 신성 제국 역사를 뒤적여보면, 저런 방식으로 교황의 독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보면 교황이 의견만 피력하지 않는다 뿐.

결국은 양 세력의 갑론을박으로 결정된 의견이었다.

그러니 모든 이들의 타협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좋게 에둘러 말하면 이렇다는 뜻이지.

직설적으로 말하면.

“교단의 일에 관심이 없구만?”

“솔직히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야. 가끔은 한 대 치고 싶다니까.”

“네가 그런 말 해도 되는거냐?”

“맞는 건 맞는 거니까.”

아리아는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어보였다.

바로 그때.

“이제 슬슬, 출발할까 하는데··· 어떠신가요?”

한 쪽으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레이첼이 서 있었다.

일순간 아리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여과없이 적개심을 드러내는데.

‘얘도 참···.’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로 가시죠.”

시안은 곧장 걸음을 옮겼다.

#

탁 트인 시야로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멋 모르고 하늘로 뻗은 나무는 하늘을 가리웠고.

태양마저 가리워 대낮이었음에도 숲 안 쪽은 초저녁의 풍경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낮은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 또한 무성하니.

시야 어디에도 수풀이 비어있는 곳이 없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바다를 마주한 풍경이라.

마기만 느껴졌다면 어둠의 숲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드는 풍경이었다.

비단 풍경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케퀙륵···?!”

“퀘르륵!”

숲 안 쪽에는 몬스터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숲이라는 생태계는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는 지역이었다.

푸르른 동식물들이 자라고 뛰노는 곳.

자연스레 그것들을 탐하는 포식자들이 모여들고.

또 그들을 탐하는 포식자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다.

그러니 저 숲의 지역에 몬스터가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형태로 보아하니 고블린임은 알겠다.

그런데 얼굴은 물에 불어터진 것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져있었고.

온몸에는 우둘투둘, 동그란 반점같은 것이 나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눈쌀이 찌푸려지는 모습.

“줻늙밯···!”

“퀡줃락웱!”

그 때문인지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발음조차 하기 어려운 괴성들이 이어진다.

몬스터들 또한 역병에 걸린 것이리라.

레이첼의 말에 따르면 이 숲 안 쪽에 역병의 근원이 있고.

아리아의 말에 따르면 이 숲 안 쪽에 뮤리엘의 유적이 있다.

그리고 모바일 영주의 말에 따르면 뮤리엘의 유적에 역병의 근원이 있는 것이고.

그러니 이 숲에 기거하는 몬스터들 또한 역병에 걸린 것이었다.

허나, 인간들과는 달리 골골대지 않았다.

되려 저 포악한 본능만이 더욱 증폭될 뿐이니.

그 모습이 마치.

‘광폭화(Over Drive)···?’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魔獸)와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비록 그 수준은 어둠의 숲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분명 광폭화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전열 정비!”

“대열을 갖춰라!”

그 사이로 신성 기사단의 행렬이 이어졌다.

터져나오는 신성력의 빛이 새하얀 갑옷에 부서져 반짝인다.

착착, 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신성 기사단이 절도 있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방패 전진!”

한 신성 기사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와 함께 방패를 든 신성 기사들이 한몸처럼 앞으로 나갔다.

화아아아악─!

방패 주위로 신성의 빛이 가득채워졌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빛의 방패를 만들어내었다.

카앙─!

퉁─!

고블린들의 공격은 방패를 뚫어내지 못했다.

“착검!”

이어진 외침과 함께 뒤이은 신성 기사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깃드는 신성의 빛.

콰작─!

퍼서석─!

고블린 무리들이 일시에 휘쓸려나간다.

비록 고블린들이라고는 하나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전투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쿵, 쿵.

땅이 크게 울려왔다.

쿵, 쿵, 쿵.

일정 주기를 가지고 울리는 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것이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쪽 어귀의 나무가 쓰러진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무언가.

“오, 오우거다!”

누군가 소리쳤다.

몬스터의 먹이사슬 중 가장 최상위에 서식하는 존재이자.

가히 지상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Ogre).

그리고 오우거의 모습 또한 역시 기괴했다.

허나, 그 크기가 거대하여 보이는 것들이 모두 큼직하니.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마물을 보는 듯 해보였다.

크웨웨웨웨웨웨─!!

일그러진 괴성이 터져나왔다.

오우거는 주변의 고블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그러나 고블린들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크웨─!!!

홍포한 본능이 이쪽을 향한다.

오우거의 거대한 몸이 뛰어온다.

실로 오금이 저리는 풍경.

이윽고 거대한 오우거의 주먹이 빛의 방패와 충돌했다.

꽈앙─!

터져나오는 폭음.

“크윽···!”

“흡···!”

신성 기사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빛의 방패는 깨지지 않았으나 그 충격이 꽤나 있어보였다.

반면에 오우거는 멀쩡했다.

되려 짓뭉개지지 않은 인간의 모습에 짙은 분노만 터트릴 뿐이었다.

오우거가 다시금 주먹을 치켜든다.

방금 전보다 더욱 광포한 힘이 주먹에서 느껴졌다.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그 사이로 한 신성 기사가 검을 쥐고 뛰어올랐다.

검 사이로 찬란한 신성의 빛이 터져나왔다.

기사는 벼락처럼 오우거의 뒤를 잡아 통나무와 같은 종아리를 베어냈다.

콰작─!

베어진 발목 사이로 피와 고름이 튀었다.

크웨에에에─!!!

오우거가 고통에 찬 괴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괴성이 뚝, 하고 끊어졌다.

이윽고 쿠웅! 쿵!, 하며 땅이 두번 떨려왔다.

일격에 양단된 오우거의 하체와 상체가 따로 무너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처리된 오우거.

“어떠신가요?”

“대단하네요.”

옆에서 물어오는 레이첼의 말에 시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거는 가히 지상 최강의 포식자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한 마리만 출몰해도 마을 한 두 개정도는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니.

실로 자연 재해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어둠의 숲에서 광폭화로 잠식된 오우거는 레아의 사념마저 저항하고 도망쳤으니.

더 이상 그 강함에 대해 무얼 말할까.

헌데 그런 오우거를 일격에 양단했다.

심지어 역병으로 광포화 된 오우거를 말이다.

그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 없었다.

시안의 시선이 오우거를 양단한 신성 기사에게로 향했다.

그 뒤로 레이첼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개럿 경은 저희 황혼 교파에서도 최상위를 다투는 신성 기사시죠.”

“저 분이 개럿 경이라는 말씀입니까?”

추기경 단 소속의 신성 기사단의 단장, 개럿.

시안도 그 이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대륙 제 2의 검이 누구냐, 를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이 중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수준을 직접 마주하니.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샤를롯 제국에서는 마스터(Master)라 불리는 기사가 있다고 들었어요. 개럿 경도 그 수준에 버금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레이첼이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성 기사는 일반 기사들의 경지를 논하지 않는다.

그들이 다루는 힘은 오러가 아닌, 신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경지 간의 비교를 하기엔 힘들었으나.

개럿의 수준은 가히 마스터에 버금간다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스터 이상의 수준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안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신성력과 오러.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물과 기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배척 관계라 할 수 있었다.

신성을 부여받은 이는 오러를 깨우칠 수 없었다.

사실 오러를 다루는 기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이들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법칙을 다루는 마법사들.

그들은 도무지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상에 어긋난 것들을 끌고 와.

마치 세계의 법칙인 것 마냥 현실에 강림해내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준엄한 법칙들을 모조리 무시해버리니.

그것이 바로 오러(Auror)였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오러에 대해 연구했다.

이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기사들의 논리는 시종일관 이러했다.

그냥 되던데?

마법사들이 보기엔 가히 미친놈들이라.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없었다.

해서 마검사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마법과 오러.

이 두 가지는 서로 병행될 수가 없었으니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오러란 기사들이 행하는.

세계와 현상의 법칙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힘이었다.

헌데 마법사들은 이미 이해해버렸다.

현상의 준엄한 법칙은 뒤틀 수가 없음을.

그것이 본디 불가능한 일임을.

이미 저 뛰어난 머리로 이해해버렸다.

그러니 오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비슷한 이치로 신성력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날 적부터 거룩한 힘을 보았으며.

그것은 곧 ‘신’이 실존함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행하는 기적의 힘은 신에게서 빌려온 것이요.

그것이 눈앞에 실존하니 그 믿음 또한 확고한지라.

그러나 오러는 현상의 법칙을 비트는.

오직 인간이 부리는 하나의 기적.

허나, 기적을 행하는 신이 이미 실존하거늘.

어찌 인간 따위가 그 기적의 힘을 부릴 수 있으랴.

신성력을 타고난 이들은 오러라는 현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사제들과 신성 기사들은 오러의 힘을 다룰 수가 없었다.

‘······ 라고 엘로디가 말했었지.’

천 년전의 아르나이즈, 대마도사 엘로디.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불과하거늘.

시안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자세히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애초에 기사란 그런 족속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머리만 아픈 지식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이 지금 이 지식을 떠올린 이유는 단순했다.

‘신성이 아닌데?’

신성이 아니었으니까.

신성 기사단의 단장, 개럿.

개럿이 사용하는 힘은 신성이 아니었다.

신성처럼 보이나.

오러의 힘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물론 모든 교단의 모든 일원들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력은 타고나는 것이니 모든 일원들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성기사들 중에서도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들은 많았다.

그러나 신성 기사는 달랐다.

신성 기사는 교단을 대표하는 기사단.

모두가 신성력을 다루는 이들이었다.

헌데 지금 개럿이 사용한 힘은 오러.

그 말은 즉.

개럿은 신을 믿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가시죠.”

그 순간 레이첼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덧 신성 기사들이 몬스터들을 죄다 정리해 놓았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비친 시야로 널브러져있는 오우거의 사체가 보였다.

깔끔하게 양단된 오우거의 사체.

시안은 순간 해체해 갈까···?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고름 덩어리가 팔릴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

시안은 신성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를 나아갔을까.

“정지.”

앞선 신성 기사들이 뚝, 하니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행렬 전체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시안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보인 풍경.

그건 숲이 오염된 풍경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조차 역병에 감염된 것인지 심히 일그러져있었다.

심지어 공기에도 역병의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는지.

진한 녹색의 기운이 피어올라 있었다.

말 그대로 역병의 근원이라.

왜 레이첼이 접근할 수 없었다 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신성 기사가 멈춘 이유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옆에 있던 아리아도 놀란 눈을 떠보였다.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에 적잖은 당황을 보였다.

보아하니 아리아도 쉬이 장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리아가 장담할 수 없다면.

이 대륙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봄이 옳았다.

하지만.

터벅.

시안은 거침 없이 풍경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저기···?”

“아, 아니···.”

“저, 저게 무슨···.”

갑작스러운 시안의 행동에 레이첼은 물론이고 신성 기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야!!”

뒤에서 당황하는 아리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 풍경.

눈으로 보일 정도의 지독한 역병이 퍼져있지 않은가.

세상 누구도 저곳에서 살아돌아올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진행률 개꿀!’

시안의 눈엔 그저 꿀단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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