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의문(2)
아리아는 들것에 실려있는 역병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아직 앳된 기운이 서려있는 모습들.
아이라 부름직한 소년과 소녀들이 한데 모여 누워있었다.
아리아는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아니, 솔직히 살필 것도 없었다.
척 보기에도 심각해보였으니까.
아이들의 얼굴에는 습진 같은 것이 여기저기 피어나 있었다.
간간히 곪아 터져버린 곳에서는 고름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군데군데 피부는 괴사해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앓아 누운 아이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듯 해보였다.
“하흐흑···!”
“으윽···!”
그럼에도 고통에 찬 신음들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니.
무의식 상태에서도 고통을 느끼는 것이리라.
“어떻게 이런···.”
이 얼마나 독하디 독한 역병인지.
아리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갖은 방도를 써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몇 주동안 계속 이 상태에서 굉장히 괴로워만 하는데···.”
아무리 지독한 역병이라 한들.
숙주의 삶을 쉬이 끊지 않는다.
숙주의 삶을 쉬이 끊어버리면 그 안에 기생한 역병도 같이 끊어지니 말이다.
그러니 최대한 연명시켜 그네들의 역병을 새로운 숙주로 옮겨갈 기회를 만들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어만 가니.
그것이 역병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였다.
해서 역병을 잠재우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역병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요.
“내일이면 불에 태워질 아이들입니다···.”
둘째는 역병의 환자를 산 채로 불에 태워 정화하는 것이었다.
그 안의 역병이 다른 이에게 옮겨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아, 아이들을 산 채로 불에 태운다고요?”
아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아무리 역병에 걸렸다 한들 사람을 산 채로 태운다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리라.
성녀의 타고난 심성이 이러했다.
아무리 천성이 말괄량이라고는 하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람들을 연민할 줄 알았다.
선(善)과 악(惡)을 재단하는 막대가 있다면.
한없이 선(善)에 가까운 이가 성녀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이 아이들의 쉬이 끊어지지 않는 목숨은, 살아 역병을 퍼트린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고통을 선사한다.
사람의 목숨에 경중이 있겠냐만은.
한 사람의 목숨과 수 만명의 목숨.
이 둘을 저울에 놓아야만 한다면 필히 수 만명으로 기울어질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게다가 마땅한 치료가 되지 않아 이렇게 괴로워만하니.
사실 이 아이들에게도 안식을 주는 것이라.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그러나 아리아에겐 아니었다.
아리아가 천천히 손을 뻗어보였다.
고통에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을 매만졌다.
습진으로 변형된 기괴함과 불어터진 피부 사이로 고름이 새어나온다.
“성녀님!”
“지, 지금 무슨···!”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행동에 로라와 사제가 화들짝 놀라보였다.
그러나 아리아는 거침이 없었다.
백옥 같은 아리아의 손 위로 찐득하니, 고름이 묻어나온다.
그리고 느껴지는 부정한 기운.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기운이 아리아의 손끝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역병의 씨앗이었다.
아리아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역병의 씨앗은 새로운 숙주의 몸에 신이 난 듯 깨어났다.
피부 끝으로 스며든 역병의 씨앗은 순식간에 피를 오염시켜 신체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감염 속도였다.
허나, 아리아가 누구인가.
신성력으로 사람을 빚은 것이 아닐까 싶은 강대한 성녀(聖女)
역병의 씨앗은 아리아의 몸에 가득찬 신성력에 집어삼켜졌다.
그리고 이내 힘을 뻗지 못하고 그대로 정화되어 사라졌다.
아리아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보였다.
어떤 역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신성력이 통하는 역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아는 다시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가진 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화아아아악─!
아리아의 손 끝으로 신성력이 뿜어져나오며 아이를 감싸안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점점 빛이 사그라들더니.
“오오오오···!!”
갑자기 사제가 탄성을 터트렸다.
사제들이 몇 날 며칠을 달라붙어도 호전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라.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이의 표정이 어느덧 편안해져있지 않은가.
심지어 습진으로 괴기하게 변형된 얼굴 또한 조금씩 가라앉고 있으니.
이는 분명한 상태의 호전이었다.
과연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자.
그야말로 뮤리엘의 환생이나 다름 없었다.
화아아아악─!
아리아는 계속해서 신성력을 터트렸다.
그렇게 하나, 둘, 셋.
그리고 네번째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하윽···.”
아리아가 잠시 비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보다 역병이 지독했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가진 바 신성력을 과하게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 모습에 가만히 지켜보던 로라가 나서보였다.
“아니야. 로라.”
그러나 아리아가 그런 로라를 막았다.
이건 로라가 감당할 수 없는 역병이었으니까.
아리아의 보디가드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일반 사제들 중에서 특출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성녀인 아리아마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역병이었다.
되려 로라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괜히 유례가 없던 역병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이 역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수준 높은 신성력을 필요로 했다.
사제들이 투입되었음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대주교 라히르 정도라면 가능할 터.
그런데 저 빌어먹을 노친네는 멀찍이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리아는 이를 까득, 깨물며 계속해서 치료를 거듭했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을 치료하고 난 이후.
아리아는 지켜보던 사제에게 물었다.
“마을 안에 환자가 더 있나요?”
“그렇습니다. 이 아이들이 가장 심각하긴 했습니다만···.”
“모두 데려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한 번에 모여서 치료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 알겠습니다.”
저 말과 함께 사제가 주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수히 많은 행렬과 함께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림잡아 보이는 것만 수 백.
줄줄이 지어져 오는 것이 족히 수 천은 되어보였다.
말 그대로 주렌 마을 사람 모두가 역병에 걸린 것 같았다.
아리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러나 아리아는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통받는 이가 눈앞에 있을 진대.
이깟 힘듦이 대수랴.
“여기 상태가 심각한 이들부터 차례로 눕혀주세요.”
아리아는 다시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또 몇 명의 환자를 치료했을까.
100명을 넘어선 이후부터 세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성녀님···.”
걱정하는 로라의 말조차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미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한계에 치달았다.
백옥 같은 손이 덜덜, 떨려온다.
아니, 손이 아니라 전신이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하으윽···!”
“성녀님. 이 환자는 며칠 전부터···.”
하지만 환자는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었다.
“여기··· 여기에 눕히세요···.”
아리아는 힘없이 말했다.
이윽고 신성력을 다시 끌어올리려던 찰나.
휘청.
심각한 현기증이 일며 아리아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지라 뭐라 반응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아리아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려던 그때.
탁.
일순간 아리아는 어깨를 붙잡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단단한.
그러나 묘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손길.
이대로 기대어 잠들고 싶은 포근함마저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아리아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리아를 향하는 커다란 부리를 볼 수 있었다.
까마귀 형상의 가면을 쓴 누군가.
그리고 그 안에 비쳐보이는 금발의 사내.
“괜찮냐?”
익숙한 목소리.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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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으로 보이는 아리아의 얼굴.
순간 마기가 날뛰었으나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직접적으로 신성력을 내뿜지만 않는다면야 뭐.
시안은 비틀거리는 아리아를 바로 잡아주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아리아의 몸은 가녀리기 그지 없었다.
역사상 가장 강대한 성녀니.
뮤리엘의 환생이니 뭐니 하더니만.
결국은 한 명의 인간이었고.
여리고 여린 여인이었다.
시안은 아리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아리아가 움찔, 거렸으나 시안은 거침 없었다.
그리고 환자들과 떨어진 적당한 곳에 앉혔다.
“여기서 좀 쉬어라.”
“하지만···.”
그러나 아리아는 다시 일어나려 했다.
고통 받는 환자들이 눈에 밟히는 것 같았다.
“쉬어.”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강제로 앉혔다.
신성력이란 실로 놀랍기 그지 없는 힘이다.
찢어진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골절된 뼈는 곧바로 붙는다.
아리아처럼 강대한 신성력을 가진 존재는 다 죽어가던 환자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일으켜세우니.
누가 보더라도 신의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성력에도 명백한 한계는 존재했다.
가장 큰 한계는 무한하지 않은 힘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신의 힘은 무한하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하는 자는 인간인지라.
그 거룩한 힘을 사용하는 일에 체력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가진 것을 비웠으면.
다시 채워야하는 시간 또한 존재하는 법이었다.
“네가 쓰러지면 저 많은 이들은 어떻게 하려고?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쉬어.”
“그래요 성녀님. 방금 정말 큰일날 뻔하셨다고요.”
시안의 말에 로라가 거들었다.
둘 모두의 설득도 있었거니와.
시안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그것대로 곤란한 상황은 없었다.
“······ 알았어.”
아리아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그때서야 아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러자 아리아가 물어왔다.
“어디가?”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시안은 적당히 대답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더 캐물어오지 않았다.
시안은 역병의 환자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끝도 없이 이어져있는 환자들의 행렬.
심지어 치료해줄 성녀가 쓰러져버렸으니.
행렬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하고 있었다.
시안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닥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지 않는 곳.
그곳에 누워있는 역병의 환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얼굴에 곰팡이라도 핀 듯한 괴기한 형태.
뭉개진 입술 사이로 ‘끄윽···!’ 하는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환자가 받는 고통이 어떠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아리아가 신성력으로 역병을 치료할 당시.
시안은 신성력에 맥을 못추는 역병의 씨앗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정화가 아니라 소멸이었다.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악(惡)한 무언가를 소멸시킨 것이었다.
한 마디로 역병의 원인은 질병이라 부르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환자.
어쩐지 느껴지는 기운이 꽤나 친숙하다.
그러니 마(魔)에 기반한 무엇임은 알겠다.
뭐, 역병은 부정과 오염에 뿌리를 둔 질병.
부정 또한 결국 마(魔)에 기반한 것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마(魔)에 기반할 뿐.
이또한 명백한 생명의 활동이거늘.
그럼에도 선명하게 악(惡)의 기운이 느껴진다.
‘음···.’
시안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하려는 이 행동이 맞는 건가 쉼없이 의문이 들었다.
‘에이, 아리아가 어찌 해주겠지.’
하지만 끝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역병에 걸린다한들 아리아가 있으니 죽지는 않을 터.
정신이 끊어지다못해 발작을 하겠지만은.
그래도 죽는 일은 없으니 행동 자체가 대범해졌다.
시안은 보호 장갑을 살며시 벗었다.
그리고 환자 얼굴에 흘러내리는 고름에 살짝,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찐득하니 손가락에 묻어나는 고름.
그 사이로 역병의 씨앗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숙주에 역병의 씨앗이 날뛰었다.
손가락 끝으로 스며든 부정한 힘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오염된 피가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신체 곳곳, 역병에 굴복하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어마어마한 감염의 속도였고.
지독하디 지독한 역병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꿈틀.
시안의 몸에 내재된 마기가 잠식된 역병에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감히’ 였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한낱 역병 따위가 어딜 싸가지 없이!’ 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시안의 몸에 침투한 것은 역병이 아니었다.
역병처럼 보이나 역병이 아닌.
마(魔)에 기반한 정체불명의 무엇.
그리고 시안이 다루는 마(魔)는 근원의 마(魔).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 다루던 마(魔)이자.
대마도사 엘로디 조차 감히 어찌하지 못했던 영역.
피어나는 마기가 시안의 전신에 들어찬다.
그리하여 그것은 역병의 씨앗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역병의 씨앗은 맥을 못추고 시안의 마기에 굴복했다.
근원에 잠식된 역병의 씨앗이 힘을 뻗지 못하니.
되려 본질로 환원될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14.003% (+0.003%)]
스마트 폰의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마혼제법의 진행률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멍한 정신.
“······ 뭔데?”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
아리아는 기나긴 한숨을 내뱉었다.
전신을 지배하는 탈력감.
과도한 신성력을 사용한 탓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만일 시안이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을 터.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왼쪽 어깨를 쓰다듬었다.
다름 아닌 방금 전, 시안이 잡아준 어깨였다.
맨날 돈 달라느니, 역겹다느니.
티격태격만 하던 시안이었거늘.
왜인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아리아였다.
그리고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시안 공자님이 아니셨으면 정말 큰일날 뻔 하셨어요.”
갑자기 로라가 아리아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리아는 괜히 화들짝 놀라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 아니 그냥···.”
아리아는 괜시리 어깨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로라는 아리아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보다 시안 공자님은 신성력도 없으신 분이신데··· 남부로 선뜻 오시겠다는 것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고. 저기 멀뚱히 서있는 라히르 대주교님보다 훨씬 성직자 같으세요.”
로라의 말에 아리아는 백프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물론 시안이 남부로 오게 된 것은 다른 목적이긴 했다만.
그래도 아리아를 도와주기 위함이었고.
역병이 창궐하는 지역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에 저기 저 라히르 대주교와 황혼의 사제들 좀 보라.
남부를 지원하겠다 따라온다더니.
지원은 커녕 아까부터 멀찍이 떨어져있지 않은가.
심지어 역병이 걸릴까 서로가 서로에게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가서 대판 싸우고 싶었지만.
지금 기운도 없는 지라 속으로만 삭힐 뿐이었다.
정말 저럴 거면 왜 따라온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시안 공자님은 거리낌이 없으셨죠.”
그런 아리아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로라가 다시 말을 이어왔다.
다름 아닌 쓰러지던 아리아를 잡아준 시안.
당시 아리아는 역병 환자들에게 둘러싸여있다시피했다.
그런 아리아를 잡아주었다는 건.
역병 환자들을 파고들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아리아의 기절은 갑작스러웠다.
오죽하면 로라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시안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런 아리아를 붙잡아주었다.
그 말은 즉.
아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그것이 걱정이든, 관심이든.
“시안 공자님이 의외로 로맨틱한 면이 있으신데요?”
가슴 설레는 일임은 분명했다.
“게다가 두 분이서 대화하시는 거 보니까, 성녀님의 개차반 성격도 전부 다 받아주시던데···.”
“뭐라고?”
아리아가 눈을 치켜뜨자 로라가 이크, 몸을 떨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능글 맞은 웃음을 짓는 로라였다.
아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천성이 타고난 말괄량이인 아리아였다.
그런데 성녀랍시고 내숭이란 내숭은 다 떨어야하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 화가 되었고.
또 그것이 쌓이고 쌓여 울분이 되었다.
그나마 로라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로라도 없었다면 아리아는 답답함에 진즉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안 앞에서는 아니었다.
내숭은 커녕 본색을 드러내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되려 그것에 맞받아치며 성질을 슬슬, 긁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리아는 시안이 편하기는 했다.
왜인지 시안 앞에서는 성녀가 아니라.
아리아라는 인간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아리아는 밀려오는 상념을 털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얘는 어디 간거야.’
아리아는 시안을 찾기 위해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세상 천지 까마귀 가면만 가득하니.
커다란 부리만 보이는 곳에서 누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리아는 시안을 찾기 위해 연신 고개를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 이, 이 무슨···!!!!!”
갑자기 어느 한 쪽에서 경악스러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뭔가 싶어 바라본 그곳.
그곳은 역병의 환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소리를 내뱉은 건 다름 아닌 커다란 부리의 사제였다.
얼굴 전체를 가린 터라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사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사제임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제의 부리가 향한 곳.
그곳엔 똑같이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다만, 그의 부리가 향한 곳엔 역병의 환자가 누워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환자의 얼굴이 편안해져있었으며.
또 정말로 어찌된 일인 것인지.
“오, 이거 개꿀이잖아.”
커다란 부리 안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