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재회(1)
신성 제국, 루테아.
신을 섬기는 자들이 모여 이룩한 국가.
막강한 신성력을 다루는 이들이 모여있는 신성 제국은.
샤를롯 제국과 더불어 대륙의 2강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샤를롯 제국의 로열 나이츠와 비견되는 신성 기사단.
그리고 신의 힘을 사용하는 사제들과 성기사들.
샤를롯 제국 못지 않은 드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샤를롯 제국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국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샤를롯 제국과는 다른 면모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신을 섬기는 국가였고.
그렇기에 신성 제국의 신민들은 신(神) 아래 모두 어리숙한 존재들.
결국 모든 것은 신의 뜻으로 통일되니.
샤를롯 제국처럼 각 귀족들이 영토를 분할하여 통치하는 것이 아닌 모두 교황청의 관할로 통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샤를롯 제국 또한 모든 영토의 소유권이 본디 황가인 것처럼.
신성 제국 또한 형식적으론 교황청의 관할일 뿐.
실질적으로는 각 영토, 그러니까 각 교구를 대주교들이 분할하여 담당했다.
그럼에도 신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
샤를롯 제국보다는 교황청의 힘이 더 강대하다 할 수 있었다.
하여 신성 제국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만한 곳.
샤를롯 제국에서는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요.
신성 제국에서는 다름 아닌 교황이 기거하는 교황청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여느 곳보다 신성하고 또 성스러운 장소.
그러나 지금.
“아니··· 대체 왜 못 들어간다는 겁니까?”
그 교황청에는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교황청의 입구.
그 앞엔 금발의 사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귀족처럼 보이나.
어딘가 어벙한 분위기가 ‘귀족인가···?’ 싶은 의문이 잠시 드는.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시안은 교황청 입구에서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과 실랑이를 벌이는 누군가.
정확히는 시안을 막아서는 누군가.
“여기는 교황청이다. 신원과 목적이 확인되지 않은 이는 들어갈 수 없다.”
다름 아닌 신성 제국의 신성 기사단이었다.
신성 기사단은 교황과 더불어 교황청을 수호하는 기사들이었다.
샤를롯 제국의 로열 나이츠(Royal Knights).
그들과 역할이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샤를롯 제국’의 제 1기사단하면 다들 두 기사단을 말한다.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White Wolf Orders).
황가의 로열 나이츠(Royal Knights).
그러나 ‘대륙’ 제 1의 기사단하면 여기에 추가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성 제국의 신성 기사단.
헨리는 그런 신성 기사단 소속의 신성 기사였으며.
또 지금 시안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신성 기사이기도 했다.
“계속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샤를롯 제국 루벤의 영주, 시안. 아리아를 만나러 왔다고요.”
시안은 그런 헨리에게 신원과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헨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타국의 귀족이 교황청에 올 이유가 무엇이냐.”
시안은 타국의 귀족.
타국의 귀족이 교황청에 올 이유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물론 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성녀님은 뵙고 싶다고 해서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게 성녀를 만나고자 함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랐다.
성녀(聖女) 아리아.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존재이자.
아르나이즈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이.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미모.
단순히 미(美)라는 개념을 들이밀 정도의 예쁘다가 아니라,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예뻤다.
솔직히 뮤리엘의 환생이니 뭐니 해도.
아리아 하면 결국 예쁘다는 말로 귀결될 정도.
하지만 신성 제국의 교원들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신성 기사단의 단원 정도면 알고 있었다.
왜 저런 소문이 나도는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 교황청을 지키다보면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샤를롯 제국은 물론이요.
대륙의 수많은 왕국의 귀족들이 찾아오는 일들이.
성녀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대륙을 횡단하는 이들이 정말이지 수두룩했다.
수두룩하다 뿐인가?
어떻게든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교황청의 담벼락을 넘는다.
오죽하면 신성 기사단의 주된 업무가 성녀를 보기 위해 교황청의 담벼락을 넘는 이를 색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렇게 정문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었다.
“더할 말 없다. 돌아가라.”
헨리는 딱 잘라 시안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제 나라에서 고귀한 귀족들이라 하나.
이곳은 다름 아닌 신성 제국.
또한 신성 기사의 소문을 들어봤으니 말이다.
그런데.
“글쎄··· 저는 약속을 잡았다니까요? 가서 아리아한테 확인이라도 좀 해보십시오.”
어째서인지 눈앞의 놈팽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겁을 먹기는 커녕.
되려 답답하다는 듯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뭐?
아리아?
헨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끔 이런 놈들이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놈들이.
보아하니 샤를롯 제국에서 끗발 좀 있는 귀족인 것 같았다.
제 나라에서는 이름만 대면 모두 굽신굽신거렸겠지.
하지만 여기는 샤를롯 제국이 아니라 신성 제국이었다.
신의 이름 아래 모두가 평등한 존재.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쫓아내겠다.”
“아니, 무력이고 자시고. 가서 한 번만 확인해보시라까요? 그거 한 번 확인한다고 신성력이 닳기를 합니까 뭐합니까?”
헨리의 경고에도 시안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오는 것은 꽤나 드물었거늘.
“분명 마지막 경고라 일렀거늘.”
헨리는 천천히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바로 그때.
“자, 잠시만요!!”
교황청 안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 여사제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의 기억에 있는 여성이었다.
다름 아닌 성녀를 곁에서 보좌라는 사제, 로라였다.
로라는 순식간에 헨리와 시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헐떡거리는 숨을 잠시 고르더니.
“시안··· 시안 공자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로라의 물음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로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쪽으로 오세요.”
시안을 데리고 교황청 안으로 안내했다.
헨리는 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자는 지금···.”
헨리가 로라를 막아세웠다.
아무리 교황청의 사제라고 한들.
외부인을 함부로 교황청에 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녀님께서 애타고 찾고 계시는 분이세요.”
“······!!!!”
일순간 헨리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성녀가 애타고 찾고 있다···?
신께 맹세코.
태어나 처음으로.
헨리는 이 말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평생 들을 수 있을까 생각도 못해본 말이었다.
그간 교황청에 있으면서 성녀를 보겠답시고 찾아온 사내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헨리가 직접 쫓아낸 놈팽이들만 무려 수 천이었다.
아마 다른 신성 기사들이 쫓아낸 수까지 더하면 족히 수 만은 되리라.
그런데 단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성녀가 누군가를 찾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적인 업무로 누군가를 만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교황청에 보고가 되었으며 사전에 지시가 내려왔다.
하지만 헨리는 따로 지시받은 사항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건데.
성녀가 이렇게 개인적인 일로 누군가를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필시 거짓말일 것이었다.
허나, 로라는 성녀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여사제.
설마하니 로라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뜻.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그, 그게 무슨···!”
헨리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헨리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이쪽으로 오세요 시안 공자님.”
로라는 시안을 교황청 안으로 안내했다.
“거 한 번 확인해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안은 그렇게 말한 뒤 로라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져가는 시야.
“무, 무, 무, 무슨···!”
헨리는 여전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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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로라를 따라 교황청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제국의 황궁과 비슷하게 웅장한 내부.
다만, 교황청은 역시 교황청인 것일까.
고딕 건축 양식의 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머리가 좀 아프네.’
마기(魔氣)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뭐, 사실상 교황청은 성역(聖域)이라 다름 없는 곳.
쉽게 말해 대륙에서 가장 신성력이 넘쳐흐르는 장소였다.
마기가 날뛰지 않으면 그것대로 이상했다.
물론 마혼제법(魔魂制法)을 배우기는 했다만.
아직 그 진행률이 그리 높지 않아서 완벽하게 제어가 불가했다.
그나마 마혼제법을 배웠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교황청에 들어오자마자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을 터였다.
그렇게 교황청의 내부로 들어오자니.
“성녀님을 모시고 있는 주교, 로라 제이플이라고 해요.”
앞서 가던 로라가 시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로라의 말에 시안은 살짝 놀란 눈을 떠보였다.
다름 아닌 주교라는 말 때문이었다.
주교는 교구자의 지위로서 한 지역의 교단을 담당하는 책임자였다.
샤를롯 제국으로 따지면 백작의 지위와 비슷할까.
결코 쉬이 얻을 수 있는 지위가 아니었다.
시안보다 조금 윗년배 정도로 보이거늘.
시안은 가만히 로라를 바라봤다.
그런 시안의 의중을 눈치챈 것일까.
“성녀님을 모시고 있으니까요.”
“아.”
시안은 그때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좌하는 사람이 성녀쯤 되면,
그 곁을 지키는 이 또한 적당한 직함이 필요한 법.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샤를롯 제국 루벤의 영주, 시안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말입니까?”
로라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안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꽤나 묘한 표정까지 지어보였는데···.
‘뭔데?’
진짜 뭔가 싶었다.
보아하니 아리아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설마 전당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거야?’
분명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했거늘.
어째, 그 일을 말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아무래도 가서 한 소리 해야할 듯 싶었다.
그렇게 시안은 로라를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쯤 걸었을까.
한 문 앞에서 로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똑똑.
“성녀님. 로라예요. 시안 공자님과 함께 왔어요.”
-들어오세요.
안 쪽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에 로라가 달칵,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시안은 로라의 손짓에 방 문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좋은 향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시야에 보이는 넓직한 방에 전반적으로 깔끔한 방.
정확히는 깔끔해보이는 방이라고 해야할까.
뭔가··· 황급히 치운 듯한 느낌이 났었으니까.
그리고 한 쪽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리아가 보였다.
길게 내려앉은 백금발과 주변으로 풍기는 미(美)의 아우라.
정신이 아찔해지는 미모는 오랜만에 봤어도 여전히 달라져 있지 않았다.
“그럼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세요.”
그 순간 뒤 쪽에서 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응? 로라 어디─.”
“제가 잠시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두 분 대화 나누세요.”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버린 로라.
‘뭔데?’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방에는 시안과 아리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인 뒤. 아리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왜일까.
어째, 아리아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뭐랄까···.
전당에서는 천상 말괄량이 같았다면.
지금은 조숙한 숙녀라고 해야할까.
“뭐야?”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아리아가 답지 않게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어인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며.
풍기는 분위기며.
보이는 초월적인 미모까지.
그야말로 성녀(聖女)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뭐하는 거야?”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얘가 정녕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왜 이래?”
“무슨 말씀이신지···?”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그 역겨운 말투는 또 뭐고.”
“제 원래 말투입니다만.”
“염병하네.”
일순간 아리아의 눈매가 떨렸다.
“너 지금 교황청이라고 내숭떠는 거야? 똥개도 본거지에서는 한 수 먹고 간다. 뭐 그런거냐?”
“똥개라니.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됐고.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아리아가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에라이.”
끝내 아리아가 말을 씹듯이 내뱉었다.
와락, 찌푸려진 인상.
“진즉에 그럴 것이지.”
시안은 그때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넌 어떻게 귀족이라는 애가 그렇게 교양이 없니?”
“교양스러운 사람한테나 교양이 필요하지. 너같이 싹퉁 바가지한테는 전혀 필요 없어.”
“뭐? 싹퉁 바가지?”
“네가 첫 만남에서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그게 싹퉁 바가지지 뭐냐 그럼?”
아리아는 입만 뻥긋 거렸다.
뭐라 말을 내뱉고 싶은데 자꾸만 목구멍에서 막혔다.
“아무튼!”
아리아는 괜시리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여긴 왜 다짜고짜 찾아온 건데? 다시는 보지 말자며? 길가다 마주쳐도 아는 척 하지 말라며?”
“내가 오고 싶어서 왔냐? 네가 하도 닥달하니까 온 거 아니야.”
“뭐? 닥달? 내가 언제 닥달했다고 그래?”
“악마 탐지기를 어떻게 사용하냐느니부터, 이제는 또 고장 났다느니 어쨌느니. 시도 때도없이 편지를 보내는 데 그게 닥달이지 뭐야?”
“그건 당연히─!”
“됐고.”
아리아는 억울한 듯 소리쳤으나.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묻자. 너 나한테 보내는 편지를 왜 황태자 전하께 보낸 거냐? 내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도 그럴 것이 그 때문에 황녀, 엘레나가 루벤에 찾아오지 않았는가.
덕분에 100만 골드를 벌긴 했다만.
그래도 꽤나 골치 아픈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리아가 편지를 황태자에게 보냈기 때문.
대체 왜 그런가 싶었더니.
“너한테 직접 보내면 또 돈 달라고 할 거 였잖아!”
“돈? 무슨 돈?”
“악마 탐지기를 고쳐주는 빌미로 네가 요구하는 돈! 저번에 악마 탐지기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그랬잖아!”
“······ 그래서 황태자 전하를 통해서 보낸거냐? 내가 설마하니 황태자 전하께 돈 달라고 하지는 않을거니까?”
“그래!”
그리고 이번에는 시안이 입만 뻥긋 거렸다
뭐라 말을 내뱉고 싶은데, 자꾸만 목구멍에서 막혔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시안은 이미 황태자에게도 돈 달라고 한 이력이 있었다는 것이었으나.
아리아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시안은 계속 입만 벙긋였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아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진 아리아의 말.
“그건 그렇고.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오면 어쩌자는 거야?”
“다짜고짜라니. 편지 보냈잖아. 내가 직접 간다고.”
받기는 받았었다.
“그거 지금 막 받았다고!”
“아 그래? 어쩐지 입구에서 그렇게 막아서더라.”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는 시안이었다.
아리아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편지랑 같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무슨 파발이랑 같이 달려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멍하니 시안을 보고 있자니.
이윽고 시안이 말해왔다.
“아무튼. 내가 찾아온 이유는 단순해. 너 뮤리엘의 유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했었지?”
“그건 왜 알고 싶은데?”
“가보고 싶으니까.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알아, 몰라.”
“······ 알아.”
“어딘데?”
아리아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흘기며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언가 요구 사항이 있는 듯한 모습.
아니나 다를까 아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야. 악마 탐지기부터 어떻게 해봐.”
그러면서 방 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한 탁자의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나침반처럼 생긴 무언가.
다름 아닌 전당에서 시안이 팔았던 악마 탐지기였다.
“이거 네가 말한 방법대로 사용해봤어. 그런데도 전혀 작동하지 않아.”
아리아가 다시 시안에게 다가와 악마 탐지기를 건넸다.
시안은 아리아에게서 악마 탐자기를 받아들었다.
“음···.”
천 년전에 엘로디가 실험작으로 만든 마도구.
그런 마도구의 고장 여부를 시안이 알리가 만무했다.
제리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안쪽이 텅 비어있는 것이···.
확실히 제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악마 탐지기가 일순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 점에서 시작된 빛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빛이 시안에게 향함과 동시에.
에에에에에엥─!!!!
악마 탐지기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 응?”
“······ 응?”
시안과 아리아의 표정이 동시에 벙쪘다.
에에엥─!!!
에에에에엥─!!!!
그 순간에도 악마 탐지기는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아?”
그 모습에 시안은 퍼뜩,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시안이 악마 탐지기에 관해 레아에게 물었을 당시.
레아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변형된 마기가 아니라 농도가 짙은 마기를 감지해도 울려버렸거든. 그래서 악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접근해도 울렸어.’
‘특히 카일만 보면 진짜 요란하게 울려댔지. 여간 시끄러운게 아니었다니까? 엘로디가 그래서 버리라고 한 거였어.’
그리고 지금의 시안을 보고 반응하는 악마 탐지기.
전당에 있을 적에는 시안을 보고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안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건만.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시안은 아직 마혼제법(魔魂制法)을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의 입문조차 수료하지 못했던 상태.
쉽게 말해 가진 바 마기(魔氣)가 한없이 초라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안은 마혼제법은 물론.
마혼수라검의 초급도 어느덧 수료하기 직전이었다.
한 마디로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장한 시안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을 보고 반응하는 악마 탐자기.
에에엥─!!!
에에에에엥─!!!!
아마 레아가 말했던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았다.
문제는.
“너··· 너···!!!”
아리아는 그런 진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 설마···!!”
아리아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다만은.
“잠깐! 이건 오해가─!”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다 문득.
아니지.
오해는 무슨 개뿔의 오해란 말인가.
“아니, 잠깐. 야 이거 안 고장났잖아. 너 지금 나한테 사기친거냐?”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아리아가 다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