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83화 (83/322)

§ 83화 - 재탄생의 루벤(2)

콰콰콰콰콰쾅!!

끔찍한 폭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둠의 숲 전체가 크게 떨려왔다.

“이, 이게 뭐야!”

“우와아아악!”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땅이 거세게 흔들려왔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진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정확히는 그 거대한 폭풍이 루벤 전역을 휩쓸어버렸다.

콰라라라라─!

폭풍에 휩쓸린 모든 자재와 건축물들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영지 밖의 방어 설비. 철책, 해자, 경비탑은 물론이고.

영지 안의 각종 시설들. 농지, 창고, 과수원, 대장간, 도로 등등등.

시안이 골드를 쏟아부어버린 현질.

그 현질로 건설되고 있던 모든 건물들의 자재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저게··· 정녕 현실인 것일까.

웅장하다못해 장엄한 저 모습은 현실이라 믿기 힘들었다.

솜털이 곧두서며 전율이 일 정도의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저, 저, 저, 저게!!”

“말도··· 말도 안돼···!”

가시지 않는 충격에 사람들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사실상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되려 그렇기에 이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었다.

이게 마법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닿은 마법사가 시전한 것일까.

현존하는 최강의 마법사.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 에그리트 로르실트.

그라 할지라도 과연 이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글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천 년전.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인 엘로디.

10위계(位界)에 닿았던 대마도사이자.

엑시드(Exceed) 경지의 그녀라면 또 모를까.

현존하는 그 어떠한 마법사도 지금 이 풍경을 재현할 수 없으리라.

아니, 그나마 가능한 존재가 있기는 했었다.

“악마다! 악마가 습격해왔다!”

아르나이즈와 대적한 악마.

천 년전에 사라졌다 알려진 악마였건만.

루벤의 사람들은 악마의 부활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악마 7군주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와도 마주했으니.

지금 이 소행은 7군주 중 한 명이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정말 악마의 소행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풍경은 도무지 그렇게밖에 설명이 불가했다.

“이 무슨···.”

그리고 그건 시안이라고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물론 시안은 저 폭풍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긴급 점검의 보상.

시안이 쏟아부어버린 모든 현질에 대한 즉시 완료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들이 일시에 행해지니 저런 폭풍이 일어난 것이리라.

시안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휘몰아치는 폭풍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휘몰아치던 폭풍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땅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친 풍경.

두둥!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 태어난 루벤이 있었다!!!

“어, 어억···!”

“저, 저게 무슨···!”

시안을 비롯한 영지민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이 정신을 강타했다.

일단 루벤 전역을 둘러싼 ‘정신 나간 강철책 Lv.4’.

말 그대로 철통과도 같은 강철책은 저걸 뚫을 수나 있을까 의문마저 들었다.

게다가 그 주위를 둘러싼 ‘구렁텅이 해자 Lv.4’는 물론이요.

경비탑을 비롯한 각종 방어 시설들.

또 그뿐이랴.

영지 안에 각종 생활 시설 및 생산 시설들.

그것들이 세미르의 청사진에 맞춰 전부 경이로운 모습으로 완성되어있었다!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버젓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

“······”

“······”

“······”

루벤의 모든 영지민들의 어이가 하늘 높이 승천했다.

수많은 어이가 얽히고 설켜 어둠의 숲 하늘로 높이 승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미친···.”

시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

현질한 모든 시설들이 즉시 완료된 루벤.

루벤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버렸다.

일단 영지의 드워프들.

드워프들은 루벤을 탈바꿈시킨 건축물에 대해 전율했다.

즉시 완료권도 즉시 완료권이었지만.

건물의 정교함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정신 나간 강철책 Lv.4’.

강철책에 대하여 드워프들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성벽 전체를 철로 뒤덮었다고···?”

“마, 맙소사··· 이게 가능한 일이야?”

“이 정교한 구조는 대체···!”

초월자 장인들이 한데 모여 구상하고 또 만들어낸 건축물.

초월자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드워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건 족장님도 불가능해···..”

“족장님의 선조님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인 신장(神匠) 모르크루.

그 정도는 되어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세미르의 반응.

“나의 선조께서도 이 정도는···.”

어째 모르크루보다 더 뛰어난 수준인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띠링!

[영지의 드워프들이 초월자 장인들의 건축물을 감상했습니다.]

[초월자 장인들의 노하우를 습득합니다.]

점검인데도 떠오르는 알림창에 시안은 살짝, 놀랐다.

혹시 점검이 벌써 끝난 것인가 싶어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접속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모바일 영주가 아닌 단순한 시스템의 알림인 모양.

그 때문인지 모바일 영주가 갖는 깐족거림.

그리고 그 특유의 유쾌함은 보이지 않았다.

당할 때는 울화통이 터졌거늘.

‘좀··· 밋밋하네.’

막상 이렇게 보니 상당히 밋밋했다.

어쨌거나 초월자 장인들의 노하우를 습득한 드워프들.

“오··· 이런 식으로 구조를 비틀 수가 있었다니.”

“그렇다면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영지의 드워프들이 대장간 Lv(레벨)과 같은 영지의 건물들을 수리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유지 및 보수 관리비가 대폭 줄어들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생활 및 생산 시설들을 모조리 Lv.4로 업그레이드 한 시안.

“응···? 나 방금 씨앗 심지 않았어?”

“그런데 싹이 벌써 나왔다고?”

농지에서는 씨앗을 심자마자 싹이 올라오는 수준이었고.

“어머? 별 다른 것을 안 넣었는데 전보다 어째 맛이 더 풍부해진 것 같은데···?”

“미, 미쳤다···! 이게 바로 천상의 맛인가!”

“아아아아···!! 다나님 최고···!”

다나가 운영하는 ‘황홀한 레스토랑 Lv.4’은 말 그대로 황홀한 맛을 선사했다.

심지어.

“엘리··· 나 아무래도 몸살이 심하게 걸린···? 응? 왜 갑자기 괜찮지?”

“아니, 자네. 어제 광산에서 일하다가 다리 골절로 입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떻게 지금 출근한건가?”

“몰러. 하루만에 붙던디?”

엘리가 운영하는 기적의 치료원 Lv.4은 평범한 감기는 따로 진료가 필요 없었으며.

웬만한 중부상도 순식간에 치료가 되어버렸다.

또 그 뿐이랴.

화르륵!

“오···! 화력이 왜 이렇게 강해”

“그 정도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화력으로 마음대로 조절 가능하다고!”

깡! 깡!

들끓는 대장간 Lv.4의 능률은 미칠 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비켜요 비켜! 대장간에 들어갈 광석들 지나갑니다!”

“이건 양조장으로 들어갈 보리들!”

“레스토랑으로 갈 마수 목장에서 갓 잡은 고기요!”

그 모든 구역과 시설들을 이어주는 ‘달려라 달려! 벽돌길 Lv.4’까지.

게다가.

콰직!

“어라···? 얘네 왜 죽어?”

“응? 오늘 따라 몸이 더 가벼운데?”

병사들의 마수 사냥 속도 또한 월등히 증가했다.

“그러고보니 서부로 갔던 애들말 들어보니. 몬스터가 엄청 약했다고 하던데?”

“우리 어쩌면··· 진짜 천재일지도···?”

훈련소 업그레이드를 통해 미쳐 날뛰는 성장 효율.

병사들은 견습 기사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렇듯 즉시 완료와 더불어 그야말로 한순간에 발전해버렸다.

물론 아직 세미르의 청사진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국에서 루벤에 범접할 영지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하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시안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주관 Lv.1에서 영주성 Lv.2로 업그레이드한 지금.

그 때문인지 전보다 더 널찍해진 집무실의 풍경이었다.

-집이 엄청 넓어졌어!!

그 덕분에 레아가 굉장히 신나했지만··· 뭐, 아무튼.

그런 집무실에서 시안은 루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 (기본 효과) 영지의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영주성의 효과 덕분이었다.

물론 영주관Lv.1 때부터 있던 효과었지만.

영주성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조금 더 면밀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안은 다시 한 번 영지의 상황을 확인했다.

역시나 더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루벤.

그렇기에 시안은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점검만 아니었어도···.”

그도 그럴 것이 점검만 아니었어도 명성 포인트로 특전을 강화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쯤 들끓는 대장간Lv.4 에서는 S등급의 장비가 쏟아져 나오고 있을 것이었고.

병사들은 S등급의 오러와 더불어 S등급의 검술을 배우고 있을 터.

하지만 모바일 영주가 점검 튀를 하는 바람에 특전을 강화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당히 아쉬움이 남았지만···.

뭐, 그래도.

“점검 보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으니까.”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시안이 현질한 모든 것에 대한 즉시 완료권.

골드 가치로만 환산해도 족히 수 백만 골드는 넘었고.

만일 이 보상이 아니었다면 몇 달의 시간을 허비했을 터였다.

가뜩이나 5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안은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점검 튀가 괘씸하긴 하지만···.”

시안은 이번만큼은 곱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다음 번엔 얼마를 질러야 기절하려나.”

아니, 되려 어떻게 또 점검을 이끌어낼지 구상하고 있었다!

시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급속도로 발전한 루벤.

엘란두르와의 전쟁도 착실히 대비하고 있겠다.

시안 또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예전의 시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지만.

카일의 뒤를 쫓아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도 모잘랐다.

시안은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영주 전용 개인 연무장 Lv.1’ 이었다.

이번에 영주성 Lv.2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생긴 영주 편의 시설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만 무려.

- (기본 효과) 성장 버프 +2,000%

- (추가 효과) 광고 시청 시 +1,000%

기본 성장 버프만 2,000%.

거기에 광고 시청을 하면 +1,000%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진즉에 광고 제거를 구매한 상황이지 않은가.

한 마디로 성장 버프가 무려 3,000%였다.

영주 ‘개인’ 연무장이라 그런가.

버프 효율이 미쳐 날뛰었다.

아무래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개념이라 그런 듯 싶었다.

“비싼 값어치는 하네.”

뭐, 언제는 안그랬냐만은.

사실 현질이 과해서 문제였지 막상 그 성능과 값어치는 확실히 했다.

시안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영주 전용 개인 연무장 Lv.1.

연무장은 그냥 연무장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엘란두르 저택에서 봤던 하얀 늑대 기사단의 연무장.

그보다 상당히 깔끔한 대신, 크기는 더 작았다.

뭐, 이곳은 영주 개인 연무장.

시안 혼자서 쓸 연무장이었으니 너무 커도 그리 좋지 않았다.

시안은 연무장 한 가운데 서서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칠흑의 기운이 묻어나오는 SS등급의 검.

그와 동시에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아, 그러고보니 과제를 확인할 수가 없구나.”

생각해보니 모바일 영주의 점검이 끝나질 않았다.

그 때문에 모바일 영주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단순 시스템이 띄워주는 결과의 알림창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시안이 직접 무언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놈의 점검 튀는 진짜···.”

점검 보상이 괜찮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스마트 폰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시안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스마트 폰을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가기도 뭐한 상황.

“음··· 아 그래.”

시안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다름 아닌 부정의 악마, 리치를 소멸시켰던 일격, 수라천살(修羅天殺).

비록 카일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으나.

그럼에도 시안은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그 감각도 되새길 겸.

“한 번 해볼까.”

시안은 가볍게 검을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시안은 쿠슬라 산맥에서 리치와의 결전을 떠올렸다.

그때의 감각을 되뇌었다.

리치는 강했다.

부정의 악마(惡魔).

까마득히 머나먼 세월.

대륙을 혼란에 빠뜨려던 존재들.

그리고 6인의 아르나이즈들은 그런 끔찍한 존재들과 맞서싸웠다.

악마들을 셀 수도 없이 베어내며 끝내 대륙을 지켜냈다.

시안이 고전을 면치 못한 리치를 아르나이즈들은.

카일은.

쉼없이 베어내며 싸웠다.

무구한 대륙의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았던 경지, 엑시드(Exceed).

그 경지조차 지금의 시안에게는 까마득하거늘.

시안이 쫓고자 하는 카일은 그 너머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

그렇기에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경지.

언젠가 그 경지에 닿을 날이 오기는 할까.

글쎄···.

리치와의 결전에서 볼 수 있었던 카일의 모습.

그리고 그 사이로 펼쳐졌던 머나먼 길.

그 길의 끝에서.

시안은 카일과 나란히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노력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이 든다.

시안의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노력.

시안은 노력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처음부터 재능을 타고난 녀석들을 이길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천재.

시안의 주변에는 그런 천재들이 너무 많았다.

듀라크까지 갈 것도 없었다.

네이슨과 로즈웰.

심지어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카이까지.

재능이 처참한 시안과는 달리.

그들의 시작점은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렇다고 저 천재들이 노력을 하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에도 그 누구보다 노력을 열심히 한다.

시작점도 다른 데, 달려가는 속도도 다르다.

그래서 시안은 노력이란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노력한다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살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안된다면.

그땐 내가 정말 못난 것 같았으니까.

그게 너무도 무섭고 또 두려웠으니까.

사실 그것이 노력이란 것의 실체였다.

열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뜨겁지 않다.

냉혹하고 또 차갑다.

그래서 노력을 싫어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력을 동경했다.

그런 이들이 있다.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이 싸우는 이들이 있다.

뻔히 질 것을 알면서도.

노력해도 안되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면서도.

멍청하게 그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처음엔 시안도 정말 멍청하다 비웃었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사실 시안은 동경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의 냉혹하고도 차가운 노력을.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는 단 한 가지 방법을.

그 싸움을 끝내지 않는 그들의 노력을.

시안은 사실 동경했다.

까마득한 카일의 경지.

그 경지에 다가서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길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언젠가.

카일의 옆에 설 수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그의 뒷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시안의 검이 움직인다.

카일이 가르쳐준 베기(斬)는, 찌르기(衝)는.

단순히 검을 휘두르고, 내지르는 것만이 아니다.

시안의 검이 흘러간다.

기억 속으로, 감각 속으로 지난 날의 카일이 보여준 검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

그러나 그건 익숙해지겠다해서 되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안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

시안의 재능은 여전히 처참하다.

남들보다 뒤쳐지다 못해 곤두박질 쳐져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검 또한 상당히 엉성하나.

시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검(劒)이라는 무기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내 몸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었구나.

검을 휘두르는 소리.

몸을 움직이는 소리.

-너··· 너 지금···.

어디선가 레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시안이 무얼 하나 구경이라도 온 것일까.

아무렴.

다만 지금은···.

파삭─.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인지 몸이 가볍다.

시안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보였다.

그렇게 떠진 시야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연무장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콰자자작.

길게 새겨지는 하나의 흉터 또한 볼 수 있었다.

띠링!

일순간 들려오는 알림음.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초급 진행률 83.9%(+15.8%)]

“하하.”

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

시안은 꽤 오랜 수련을 마치고 다시 집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진행률을 더 올렸으나 아쉽게도 초급의 과정을 수료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상당히 많이 올릴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진행률은 약 9%.

성장 버프도 있겠다.

정말 조만간에 초급을 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집무실로 돌아온 시안.

-바, 방금 어떻게 한 거야?

그 옆으로 레아가 호들갑을 떨며 달라붙었다.

-나 진짜로 카일인 줄 알았어!

“설마요.”

시안은 말이 되냐는 듯 말했다.

현재 시안과 카일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데.

진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지만 레아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정말이라니까! 그 이후는 조금 그랬는데. 처음엔. 처음에는 정말 카일인 줄 알았다니까! 역시 너는···.

그러면서 레아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뭐, 정말 비슷하기는 했나보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카일이 아닙니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무실의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노곤해진 몸을 달래고 있던 그때.

-흐응···.

꽤나 심상치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에 레아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탐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흐으으응···.

레아의 콧소리가 집무실로 울려퍼져갔다.

그러면서 레아가 시안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레아가 시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길게 내려앉은 레아의 머리카락이 시안의 목덜미를 훑는다.

주륵.

시안의 볼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갖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똑똑.

-도련님. 한스입니다.

집무실 밖으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칫.

그러자 레아가 잔뜩 아쉬운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시안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와.”

달칵.

시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스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한스는 또 왜 그러는 걸까.

한스의 표정도 꽤나 요상했다.

“무슨 일 있어?”

“그것이···.”

한스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 모습이었다.

시안은 가만히 한스를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가 입을 열었다.

“루벤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응? 손님? 루벤에 찾아올 손님이 어디있다고?”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이라니?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였다.

지금이야 많은 발전을 이룩한 루벤이었지만.

여전히 마수가 들끓는 위험한 곳임은 변함 없었다.

실력 좋은 용병은 물론.

돈에 눈이 먼 모험가들도 진절머리를 치는 곳.

그런 루벤에 손님이 찾아왔다?

“누군데?”

“그것이···.”

한스는 이번에도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누군데 그래?”

시안은 답답한 마음에 한스를 닥달했다.

그리고.

“엘레나··· 황녀님이십니다.”

시안은 왜 한스가 뜸을 들였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뜸을 들인 게 아니라 자기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 황녀?”

시안도 이 말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로 뭔가 싶었다.

진짜 뭔가 싶었다!

갑자기 황녀가 왜 루벤에 온단 말인가!

아니, 왜 황녀나 되는 인물이 루벤에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출타하는 어이.

바로 그 순간.

띠링!

갑자기 품 속에서 경쾌한 스마트 폰이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안은 뭔가 싶어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보인 화면.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다름 아닌 스토리 연계 퀘스트.

악마 7군주, 나태의 누르비아.

부정의 악마, 리치.

그들을 마주했음에도 잠잠했던 스토리 퀘스트.

그것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 뭔데?”

뜬금없는 반응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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