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75화 (75/322)

§ 75화 - 리치

【일에 방해되지 않게 마물들을 보초로 세워뒀거늘. 그 눈을 피해 들어왔을리는 없을테고···.】

본능을 잠식하는 어둠.

단 한 점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칠흑의 어둠 사이로, 새빨간 안광이 번뜩인다.

【설마 아까 전 기이한 진동에 모조리 죽은건가? 하지만 마력 파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 정도 마법을 구사할 위계(位界)의 마법사는 보이지 않거늘···.】

사아아···!

어둠보다 더 어두운 칠흑의 마력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공간을 잠식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알렉스의 볼 위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로열 나이츠 단원들 또한 긴장 어린 표정으로 눈앞의 존재를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뚜렷한 당황이라는 감정이 떠올라있었다.

그러나 시안을 비롯한 루벤의 병사들은 조금 달랐다.

긴장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으나.

로열 나이츠 단원들과는 다르게 당황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마주한 적이 있던 기운이었으니까.

교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탐식, 나태.

일곱 가지의 대죄(The Seven Sins).

그 죄에서 깨어난 일곱의 악마.

루벤을 침공했던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그 끔찍한 악(惡)과 닮아있었다.

시안은 정신을 집중했다.

드리우는 어둠 속에서 똑바로 눈앞의 존재를 바라봤다.

그리고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누르비아에 비하면 한없이 나약하다.

누르비아에 비하면 피어나는 악의(惡意)가 초라하다.

그렇기에 ‘저것’은 악마 7군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초라할지라도 분명한 악의(惡意)가 있으니.

악마(惡魔).

그것도 존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할 죽음을 부정하며 태어난 악(惡).

리치(Lich).

저 존재는 다름 아닌 리치(Lich)였다.

‘악마가 여기에 왜···?’

시안은 저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바라본 시선.

알렉스와 로열 나이츠는 리치가 악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악마들은 천 년전.

6인의 아르나이즈들에 의해 사라졌다.

물론 시안은 그 악마들이 부활했음을 알고 있었으나 저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느껴지는 이 악의를 모르지는 않을 터.

아마 리치를 악마가 아닌, 마족(魔族)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천 년전에 사라진 악마들의 잔재, 마족(魔族).

그들은 악마가 사라진 오늘날까지도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강함은 신화 속의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숲이 아닌 이곳에 어찌 마족이···?”

알렉스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마족은 어둠의 숲에서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어둠의 숲에서 나오는 순간.

그 존재가 부정당한다.

그러나 시안이 지금 있는 이곳.

이곳은 제국 서부에 위치한 쿠슬라 산맥이었다.

어둠의 숲이라면 모를까.

리치는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렉스와 로열 나이츠들이 의문을 떠올렸다.

【알지 말아야할 진실을 알아버렸구나.】

섬뜩!

흉측한 살기에 전신의 솜털이 곤두선다.

리치의 전신으로 어둠보다 더 어두운 칠흑의 기운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마치 짙은 검은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아아악.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가며 대지를 시꺼멓게 물들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지옥의 울음이 길게 퍼진다.

짙게 피어나는 어둠.

공간을 잠식한 어둠 사이로 수많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시야 끝에서 끝까지.

감히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몬스터들이 산맥에 드리웠다.

아무래도.

제국 서부에 창궐하는 몬스터들은 저 리치가 소환한 것 같았다.

리치는 흑마법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언데드 마법사.

그런 리치의 특기 중 하나가 바로 소환 마법이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리치가 소환하는 몬스터들은 리치와 같은 언데드여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리치가 소환한 몬스터들은 언데드가 아니었다.

살아 숨쉬는 존재.

“키에에에에에엑─!”

끔찍한 몬스터들의 포효가 산맥 가득,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듯, 몬스터 무리들이 덮쳐왔다.

여러 의문점은 많았으나 시안은 고개를 털어버렸다.

의문은 나중에.

“모두 대열을 갖춰!”

“기사단 전원 착검!”

시안과 알렉스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루벤의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로열 나이츠 기사단들은 저마다 검을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검은 파도가 그들을 덮쳐갔다.

그리고.

콰지직!

퍼석!

끔찍한 파육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흉측한 검은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러나 루벤의 병사들과 로열 나이츠 기사단들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루벤의 병사들은 마수와의 전투로 몬스터에는 도가 터있었다.

그리고 로열 나이츠들은 모두가 엑스퍼트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비록 소환된 몬스터들의 수가 끊임없다고는 하나.

이 철저한 방벽을 뚫기란 어려웠다.

퍼서석!

서걱!

“키, 키에에엑···!”

되려 쏟아지는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휩쓸려나갔다.

【······ 평범한 쥐새끼들은 아니었군.】

악의로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치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에 휘감긴 섬뜩한 어둠의 마력이 공간을 찢었다.

이윽고 거대한 어둠의 구체가 리치 앞으로 생성되었다.

리치의 전신에서 칠흑의 마력이 터져나온다.

바로 그때.

“어딜!”

콰아아앙!

폭발이 터져나오며 어둠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흩어진 어둠 사이로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로열 나이츠의 단장, 알렉스였다.

알렉스의 검 주위로 일렁이는 선명한 오러 소드(Auror Sword).

엑스퍼트 최상급이자.

마스터를 앞둔 상위의 실력자, 알렉스.

알렉스는 리치가 생성한 어둠의 구체를 양단시켰다.

알렉스는 거침없이 리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제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구나.】

사아아아악···!

지옥의 울음이 길게 퍼져 나간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마력의 안개가 공간을 잠식한다.

영혼에 간섭하여 마음을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흑마법.

이 안개에 닿은 모든 존재들은 정신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끄으윽···!”

알렉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터트렸다.

검 끝에 일렁이는 오러는 알렉스의 상태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비록 엑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라고는 하나.

정신에 기반한 이 끔찍한 어둠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커흑···!”

목이 죄어오며 숨이 내어쉬지질 않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며 정신이 깜빡깜빡, 점멸한다.

그럼에도 알렉스는 검을 꽈득, 움켜쥐며 리치에게 휘둘렀다.

사악─!

드리운 어둠의 장막이 알렉스의 검을 집어 삼켰다.

푸른빛의 오러는 어둠에 먹혀 곧 꺼질 것처럼 바래지고 있었다.

【군주님들의 계획이 머지 않았으니.】

리치의 앙상한 뼈가 알렉스에게 향했다.

그 순간.

쩌─엉!

공간 한 쪽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

칠흑의 안개가 흩어지며 길이 열렸다.

덮쳐오는 어둠이 일시에 소멸된다.

그것은 힘의 구조과 흐름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틈을 만들어내었다.

타닥.

그 사이로 치솟는 하나의 그림자.

시안은 몸을 크게 비틀어, 움켜쥔 검을 휘둘렀다.

【명을 재촉하는 쥐새끼가 하나 더 있었군.】

리치가 반대쪽 손을 휘저었다.

뒤따라온 칠흑의 어둠이 공간을 잠식한다.

영혼에 간섭하는 어둠이 시안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꽈아아앙!

SS등급의 검이 어둠의 공간을 찢는다.

【······!】

크게 일렁이는 리치의 붉은 안광.

틈을 만들어낸 시안이 파고든다.

시안의 몸이 리치에게로 쏘아졌다.

리치는 피하지 않고 짙은 어둠의 장막을 펼쳤다.

꽈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대기가 크게 진동했다.

찰나 간에 이루어지는 공수의 교환.

한치의 실수가 명백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쩌저적!

어둠의 장막에 크나큰 균열이 새겨졌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챙그랑!

어둠의 장막이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이 무슨···!】

리치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산산히 부서지는 장막 사이로 시안의 검이 쇄도한다.

SS등급의 검 끝에 일렁이는 칠흑의 오러.

그 끝에는 붉은 안광을 일렁이는 리치가 있었다.

쐐애액!

대기를 찢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쉽게도.

손 끝으로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리치의 모습.

시안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리 멀지 않은 곳.

리치가 어둠을 가르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단거리 공간 도약 마법, 블링크(Blink).

아무래도 일격이 닿기 직전 리치가 마법을 완성시킨 것 같았다.

【커헉···!】

하지만 급하게 시전했기 때문인지, 리치의 상태도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시안은 알렉스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알렉스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의 어둠에 직격으로 당했으나 알렉스는 엑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

무엇보다 시안이 제때에 나서준 덕에 큰 피해는 없었다.

“그보다 자네···.”

알렉스는 떨리는 시선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방금 시안의 움직임.

그건 알렉스가 알고 있는 시안 엘란두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천하의 둔재라 알려진 시안이었거늘.

저게 어딜 봐서 천하의 둔재란 말인가.

【네 놈···!】

악의로 일렁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리치가 일렁이는 붉은 안광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네놈이···!】

리치는 지금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어리숙한 인간 놈.

저 인간 놈의 일격에 어둠이 흩어졌다.

나약하고 하찮은 인간 놈이거늘.

놈은 어쩐 일인지 자신이 창조한 어둠을 흩어버렸다.

리치는 차분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대열 전진! 한 놈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으아아아아아!”

콰직!

퍼서석!

자신이 소환한 마물들이 휩쓸려나가고 있었다.

지금쯤이라면 모든 상황이 끝났어야했다.

죽음을 재촉하는 두 인간의 목을 움켜쥐고 있어야했고.

저기 인간들은 마물들에게 먹혀 형체도 남아있지 않아야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압도적인 차이임에도 저 인간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모두 죽여주마.】

리치가 양 손을 크게 펼쳐보였다.

사아아···!

어둠보다 더 어두운 칠흑의 마력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공간을 잠식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리치가 영창을 하듯 중얼거렸다.

【잊혀져가는 영혼··· 스러져가는 잿더미···】

갉아먹는 굶주림이 드러난다.

어둠은 그 자체가 공포가 되어 정신을 잠식한다.

정신의 구석을 갉아먹는 무언가.

영원토록 이어지는 무의미한 노력.

번뜩.

【그리고 꺼져가는 희망.】

화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일순간 로열 나이츠의 기사들과 루벤의 병사들 사이로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정신을 잠식하는 공포.

무엇에 당했는지도 알 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커헉···!”

알렉스 또한 이 어둠을 견디기 힘든지 왈칵, 피를 토했다.

그렇게 흐른 피는 땅으로 스며들어, 그 안에 있는 악을 살찌웠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몬스터들의 포효가 산맥 가득히 울려퍼졌다.

새까만 검은 파도가 로열 나이츠와 병사들을 덮쳐간다.

【끝이다.】

리치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바로 그때.

“다들 정신 차려!!”

어둠을 가로지르며 시안의 외침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샤를롯의 긍지가 내려앉습니다!》

《영지의 병사들이 정신을 잠식하는 어둠에 저항합니다!》

화아아아아악!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오며 밀려오는 어둠을 일시에 몰아내었다.

일순간 루벤의 병사들의 정신이 번쩍이며 돌아왔다.

그리고 눈앞으로 쏟아지는 마물들.

“대열 후퇴!”

“기사분들을 보호해!”

콰직!

퍼서석!

루벤의 병사들은 덮쳐오는 몬스터들로부터 끝내 로열 나이츠들을 지켜냈다.

【헛소리!】

리치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자신의 어둠에 저항한 인간들.

이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악(惡)에 기반을 둔 어둠.

이 어둠에 잠식된 이상 존재는 어둠에 먹혔어야했다.

하물며 그 대상이 나약한 인간이라면야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리치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 시선의 끝에는 시안이 칠흑의 검을 들고 서있었다.

자신의 어둠을 흩어낸 저 인간 놈.

저 놈은 어찌된 일인지 처음부터 어둠에 잠식되지도 않았다.

【대체 어떻게···.】

꽈앙!

칠흑의 어둠에 커다란 구멍이 새겨졌다.

그 사이로 시안이 달려들었다.

리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뼈 밖에 안 남은 몸이거늘.

아이러니하게도 리치는 그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아아···!

리치의 전신으로 다시금 어둠이 터져나왔다.

어둠이 살의를 띄고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시안은 그 어둠 사이를 헤집으며 검을 휘둘렀다.

꽈앙!

시안의 공격들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사악─!

리치의 어둠이 공간을 뒤덮는다.

카가가각!

호흡이 끊어지고,

콰쾅!

조금의 실수가 확실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공격을 받고 또 행한다.

그리고 그 끝에.

꽈꽝!

【쿨럭···!】

밀린 것은 리치였다.

시안은 끝내 리치가 만들어낸 어둠의 사슬들을 전부 끊어내었다.

“바, 방금 무슨 일이···!”

“내, 내가 지금···!”

잠식된 어둠에서 벗어난 로열 나이츠 단원들이 소리쳤다.

“허억···! 허억···!”

마찬가지로 잠식된 어둠에서 벗어난 알렉스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바로한 시야.

콰직!

퍼서석!

그곳엔 쏟아지는 몬스터 무리들과 싸우고 있는 루벤의 병사들과.

꽈꽈꽝!

리치와 대적하는 시안의 모습의 보였다.

“이 무슨···!”

“말도 안돼···!”

알렉스를 비롯한 로열 나이츠 기사들의 눈이 부릅,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저 리치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몸소 느꼈으니까.

도무지 마족(魔族)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함.

그렇기에 저 악에 대적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루벤의 병사들은 어둠에 저항하며 몬스터들을 틀어막고 있었고.

심지어 시안은 끊임없이 리치를 압박하고 있었다.

꽈직!

시안의 검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그와 함께 드리운 어둠이 사라진다.

【어찌 이런 일이···!】

리치의 붉은 안광이 크게 일렁였다.

또.

또 어둠이 흩어졌다.

리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둠을 흩어버리는 기묘한 힘.

심지어 단순히 흩어버리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마치 저 인간이 어둠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공격도, 방어도 행할 수가 없었다.

시안의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다.

저기 어둠에 먹혀버린 인간 놈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다.

그러나 공격도, 방어도 통하지 않으니.

감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어둠은 한낱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일단 리치, 본인부터가 불가능했다.

어둠을 다루고는 있으나, 지배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그건 악마 7군주들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꽈아앙!

그런데 저 인간은 어둠을 지배하고 있었다.

쐐액!

시안의 검이 눈앞으로 쇄도해왔다.

이건 대응할 수 없다.

리치는 황급히 손을 휘저어 블링크 마법을 시전했다.

일순간 리치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졌다.

다시금 허공을 가르는 시안의 검.

시안은 눈을 빛냈다.

블링크는 공간 도약 마법이다.

시전하는 마법사의 수준에 따라 도약하는 속도와 거리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도약하는 공간에는 반드시 마력의 파동이 생긴다.

그건 그 어떤 수준의 마법사라도 없앨 수 없다.

엘로디라 할지라도 이건 불가능하다.

시안은 정신을 집중했다.

솟구치는 마기(魔氣)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리고 공간 한 쪽.

자그마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시안은 몸을 틀었다.

빠드득,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끔찍한 통증이 일었지만 이를 까득, 깨물며 참았다.

시안의 입 주변으로 붉은 선혈이 주륵, 흘러내린다.

그러나 견딘다.

살기가 들끓는다.

눈앞으로 리치의 모습이 드러난다.

시안은 온힘을 다해 SS등급의 검을 휘둘렀다.

천 년전.

악마들의 악몽이라 불리던 카일.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의 참(斬)의 묘리가 깃든다.

그 단순하면서도 괴악한 힘은 공간을 찢어발긴다.

그런 시안의 검 사이로 일렁이는 마(魔).

【이, 이 무슨···!】

리치의 안광이 당황으로 물든다.

덮쳐오는 거대한 일격.

이건 피할 수가···!

콰지지직!

리치의 생각이 뚝, 하고 끊어졌다.

“······!”

“······!”

찰나 간의 정적.

와르르르.

리치를 구성하는 뼈들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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