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쿠슬라 산맥(2)
서부의 쿠슬라 산맥.
해안가와 이어진 이 기다란 산맥은 서부의 허리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몬스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으니.
해안가를 출입하던 배들이 그대로 막혀버렸고.
그와 동시에 서부가 마비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시안이 서부를 정리했기에 어느 정도 안정화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산맥 주변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산맥으로 진입하는 길목.
다름 아닌 쿠슬라 산맥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길목이었다.
정확히는 조사하려는 곳에 가기 위해서.
시안은 잠시 기척을 숨겼다.
그리고 저 멀리.
한데 모여있는 몬스터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고블린 무리들 같았는데···.
그 수만 어림잡아 3천에 이르는 것 같았다.
3천이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또 많은 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하급 중의 최하급 몬스터 분류되는 고블린.
로열 나이츠가 감당하지 못할 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냥 뚫고 지나가면 그만이건만.
그럼에도 이렇게 기척을 숨기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윽고 알렉스가 조심스럽게 시안 옆으로 다가왔다.
“저 길목을 지키는 고블린들에게 발각되면, 곧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가 산맥에서 쏟아져 나오더군.”
“어···.”
시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으니까.
“저 고블린들이 정찰병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알렉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정찰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블린 무리의 고블린 정찰병.
오크 무리의 오크 정찰병.
이런 식으로 몬스터들도 그네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종족일 경우에 한에서였다.
쉽게 말해 고블린 정찰병이 오크 무리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일은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경우.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하나.
누군가가 몬스터들을 통솔하고 있다면 가능했다.
“그래서 쿠슬라 산맥을 조사하려 한 것이오.”
알렉스 또한 그 부분을 눈치챘던 것이고.
“문제는 그렇게 한 번 발각되면, 산맥의 모든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소. 조사를 하는 매 순간순간 계속해서 몬스터가 덮쳐오는데··· 사실상 조사가 불가능했지.”
“음···.”
“해서 제대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길목의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산맥에 진입해야 했소만···.”
문제는 저 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3천의 고블린.
저 정도 수의 이목을 속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길목 또한 그리 넓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발각이 되었다고.
“해서 고블린들을 조용히 처리하려고도 했소만···.”
역시나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
3천의 고블린들을 조용히 처리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한 마라리도 새어나간다면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로열 나이츠는 어디까지나 기사였지.
암살자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너를 데려올 걸 그랬나.’
암흑가 출신의 특급 암살자.
레아에게는 쪽도 못썼으나 그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시안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특급 암살자라도 3천의 고블린을 들키지 않고 암살하기란 불가능했으니까.
“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시안에게 알렉스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오. 이번엔 단원들이 전부 모여있고, 또 자네도 있지 않소. 어렵겠지만 조사는 이어나갈 수 있을거요.”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 곤란한 상황이라 했던 알렉스였다.
해서 시안도 금방 생각을 떨쳐버렸다.
이렇게 고민해봤자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
“아!”
그 순간 시안의 머릿속으로 생각 하나가 스치듯 떠올랐다.
시안은 퍼뜩 떠오른 생각을 차분히 정리한 뒤, 알렉스에게 물었다.
“제게 괜찮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3천의 고블린들을 암살할 수 있는 방법이요.”
“그, 그게 참말이오?”
알렉스가 크게 놀라며 물러왔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렉스 경. 로열 나이츠 분들을 주변으로 넓게 포진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블린들 한테 들키지 않는 선에서요. 행여 새어나가는 고블린들을 틀어막을 수 있게 말입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소만···.”
알렉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의 요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고블린들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는 한계가 있었다.
쉽게 말해 길목 뒤쪽으로는 접근이 불가했다.
만일 그 쪽으로 고블린들이 도망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틀어막는 것 또한 한계가 있었다.
고블린 수 천마리가 새어나간다면.
로열 나이츠라도 전부 틀어막기란 불가능했으니까.
“걱정마세요. 아마 새어나갈 일은 없을건데 혹시나 싶어서요.”
하지만 시안은 걱정말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렉스는 그런 시안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서부의 안정화.
시안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이루어낸 당사자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안이라면 분명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알렉스에게는 있었다.
알렉스는 로열 나이츠 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려 고블린 주위로 넓게 포진시켰다.
들키지 않을 범위에서 은밀히.
전원 엑스퍼트 경지에 이른 이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알렉스는 다시 시안에게 돌아왔다.
“말한 대로 전부 단원들을 배치시켰소.”
알렉스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행여 실수가 있더라도 로열 나이츠 기사들이 막아줄 터.
이로써 변수를 모두 차단한 셈이었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대기 중인 병사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신기전에 전부 화살 장전해.”
“알겠습니다 영주님.”
시안의 말과 함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위장으로 덮어놓은 풀들을 치워보였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내는 도합 10대의 신기전.
알렉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시안이 미리 인벤토리에서 꺼내놓은 신기전이었다.
병사들은 10대의 신기전에 화살을 모조리 장전시켰다.
“저, 저게··· 무엇이오?”
그런 시안에게 알렉스가 물어왔다.
그런 알렉스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없던 신기전이 생겨나있었으니까.
그것도 저 커다란 것이 10대나 말이다.
무엇보다 알렉스는 신기전을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아, 신기전이라는 건데. 성폭행 병기입니다.”
“······ 서, 성폭행 병기?”
알렉스가 눈을 부릅, 뜨며 놀라보였다.
아무래도 두 단어의 매칭이 잘 안되는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했다.
시안도 처음엔 모바일 영주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만.
“영주님.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시작해.”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바로 다음 행동에 나섰다.
이윽고 병사들이 각자 신기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잠시.
키이이이이이이잉─.
주위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최상급 마나석에 증폭된 신기전의 끔찍한 마력.
“이, 이 무슨···!”
그 힘에 알렉스가 눈을 찢어질듯이 떠보였다.
그리고 다시.
슈슈슈슈슈슈슉!!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화살 소나기가 솟아올랐다.
이윽고 화살들이 고블린들이 뭉쳐있는 곳으로 쏟아져내렸다.
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아앙!!!
곧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땅이 크게 떨려왔다.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진동에 대기 중이던 로열 나이츠 기사들도 당황해보였다.
진한 먼지 구름이 일며 시야를 가려왔다.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됐다. 얘들아. 후딱 가서 마무리해.”
그러자 병사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치켜들며 먼지 구름 사이로 달려들었다.
검 사이로 일렁이는 오러.
일개 병사가 오러를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놀라웠지만.
“지, 지금 무얼 하는 거요!”
알렉스는 지금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알렉스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히 지나가도 모자를 판이거늘.
아주 판을 뒤집어 놓고 있었으니까!
비단 알렉스뿐만이 아니었다.
대기 중이던 로열 나이츠 단원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대체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런데 염병.
“암살하고 있습니다만.”
시안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 뭐라고?”
알렉스는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증발할 지경이었다.
저게 대체 어딜 봐서 암살이란 말인가!
저게 암살이면 세상 암살 다 죽었다!
알렉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만간 산맥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터.
알렉스는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아니, 정확히는 소리치려 했었다.
이어진 시안의 말에 알렉스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결국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릴 ‘목격자’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멈칫, 하는 알렉스의 몸.
뭐라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으나.
말이 자꾸만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진짜 말 같지도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알렉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 어라?”
맞는 말이지 않은가.
사실 암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고블린 정찰병들이 침입자가 왔다는 경고를 하는 것.
그것만 못하게 하면 상관없었다.
그것이 가능한 방법이 바로 암살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3천의 고블린들을 ‘암살’하든.
3천의 고블린들을 ‘학살’하든.
어쨌거나 그 결과는 같지 않은가.
그러니 방금 그 폭격에 저 고블린 정찰병들을 모조리 죽는다면?
그러니까 침입자가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모두 죽는다면···?
피어난 먼지 안개가 가라앉았다.
바라본 시야.
“······”
그곳엔 3천의 고블린들이 초전박살이 나 있었다.
정확히는 고블린 이었던 것이 널브러져있었다.
물론 운 좋게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간혹 있었다.
“키, 키에엑···!”
아니, 저걸 살아남았다 할 수 있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고블린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걸 살아?”
콰직.
빠르게 움직인 루벤의 병사들이 바로바로 처리했다.
저것만으로 이미 끝난 상황.
설령 미처 발견 못한 고블린이 있다 한들.
미리 포진시켜둔 로열 나이츠들에 의해 처리될 터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암살··· 아니, 학살.
아니, 암살. 아니, 학살.
······ 에라이.
“······”
알렉스는 진짜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3천의 고블린 정찰병들은 순식간에 처리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3천의 고블린들은 전멸했다.
단 한 마리도 살아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정찰병들을 암살한 시안이었지만.
그래도 시안은 살짝 우려스러운 면이 있었다.
신기전의 어마어마한 화력.
그로써 발생한 천지 간에 울리는 진동.
그 때문에 침입자가 왔다는 것을 알아챌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우려스러웠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고블린과의 전투에서 침입자가 전멸한 것이라 생각한 듯 싶었다.
물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 누군가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몬스터들을 이끄는 누군가가 있다면.
3천의 고블린들이 전멸했다고는 생각못할 터였다.
그것도 단 한 마리도 살아서 도망치지 못할 거라곤.
그 덕분에 산맥의 조사는 정말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침입자가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몬스터들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몬스터들을 아예 마주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산맥에는 몬스터들이 끓어 넘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로열 나이츠 단원들이 전부 모여있을 뿐더러.
“영주님. 이것도 해체작업 합니까?”
“아니. 지금은 시간 없으니까 넘어가.”
루벤의 병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까!
서걱!
콰직!
순식간에 쓰러지는 트롤 무리들.
심지어 트롤들은 더 이상 재생을 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저게 일개 병사라고?”
알렉스를 비롯한 로열 나이츠 기사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게 대체 어딜 봐서 병사란 말인가!
그리고 저번부터 묻고 싶었지만 병사들이 죄다 오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 로열 나이츠의 견습 기사들과 맞붙어도 전혀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몬스터 학살자들이나 다름 없었다.
밥만 먹고 몬스터만 잡지 않는 이상 저럴 수가 없었다.
또한 기가 막히게 몬스터의 약점을 골라 공략하는데···.
서걱.
퍽.
심지어 몬스터들이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처리를 해버렸다.
다름 아닌 특수 병과 훈련소 Lv.1에서 커너에게 배운 기술들이었다.
그 때문에 기척을 숨기는 수준이 로열 나이츠들조차 섬찟할 정도.
무력의 수준은 견습 기사 이상이면서.
또 이럴 땐 수준 높은 암살자나 다름 없었다.
또 그뿐이랴.
“영주님. 여기 트롤의 흔적이 이상합니다.”
“트롤은 그들의 재생력을 믿고 행동하는 터라 이런 나뭇가지들은 무시하곤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심스럽게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쪽 방향으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추적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어둠의 숲에서 수 십년간 살아온 베테랑 사냥꾼, 그레이슨.
그런 그레이슨에게서 훈련을 받아온 병사들에겐 당연한 상식들이었다.
“아니, 뭔···.”
“영지의 병사라며?”
“병사인거야, 기사인거야, 암살자인거야 아니면 레인저인거야?”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로열 나이츠 단원들은 황당할 뿐이었다.
이건 뭐.
로열 나이츠의 조사를 루벤의 병사들이 도와주는 것인지.
루벤의 병사를 로열 나이츠가 도와주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 루벤의 ‘병사’라고··· 하지 않았소?”
“맞습니다.”
알렉스가 혹시나 싶어 물었지만.
시안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뭔 병사가 저따위란 말인가!
로열 나이츠 단원들 또한 그런 알렉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쿠슬라 산맥의 조사는 더없이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그 덕분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지.”
시안은 슬쩍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런 시안의 행동에 루벤의 병사들은 물론.
로열 나이츠의 기사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안은 살짝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저 멀리 보이는 풍경.
산맥의 풍경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있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무들이 죄다 삐적 말라있었다.
불길에 타오르고 남은 잿더미 마냥.
나무들이 모두 검게 그슬려있었다.
누가 봐도 자연적이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져는 끔찍한 기운까지.
“저긴 대체···.”
그 풍경을 확인한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시안은 천천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그 풍경의 경계 안으로 발을 들이는 그 순간.
섬뜩.
목덜미를 훑는 싸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본능의 경종이 강력하게 경고한다.
‘위험!’
시안은 황급히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콰앙!
방금 전까지 시안이 서있던 곳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저 폭발에 휩쓸렸을 터.
시안은 바로 균형을 잡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모두 조심해!”
시안의 외침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알렉스였다.
“전원 전투 준비!”
알렉스가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이윽고 로열 나이츠 단원들과 루벤의 병사들이 모두 검을 뽑아 들었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긴장감.
그 긴장감 속으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가 바람에 펄럭이고,
그 주위로 짙은 칠흑의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피어오르는 진득한 어둠.
그 사이로 느껴지는 무한한 공포.
악몽의 현신.
혹은 악의의 화신.
그 어떠한 말을 들이밀어도 저것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검은 로브는 존재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소매 사이로 비치는 것은 분명 새하얗고도 앙상한 뼈였다.
번뜩.
뻥 뚫린 동공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안광.
그것은 빛이 닿지 않는 저 까마득한 아래.
소용돌이치는 어둠 속에서 심연의 무언가가 눈을 뜬 것만 같았다.
분열하는 무저갱의 차원.
일그러지는 공포.
【쥐새끼들이 기어들어왔다는 보고는 못 들었는데.】
갉아먹는 듯한 굶주림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