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폭풍의 루벤(2)
제국 중심부의 게른 영지.
케플 마을에서 게른 영지로 돌아온 알렉스는 허탈하게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자 휑한 게른 영지의 풍경이 들어왔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여느 영지보다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창궐하여 위기가 닥쳐온 직후.
가장 먼저 사람들을 위해 나섰고.
그렇기에 가장 먼저 희생되어 사라졌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귀족의 의무를 다한 게른의 영주였거늘.
그 때문에 가장 먼저 스러져간 이였다.
그리고 세상이 또 그러했다.
영악한 이들은 이득을 보며 승승장구하나.
정직한 이들은 손해를 보며 몰락한다.
그런 의미로 서부 귀족들은 현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시안이라는 영주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렉스는 시안과의 대화를 잠시 떠올렸다.
알렉스는 시안에게 도움을 청했다.
로열 나이츠의 자존심이고 뭐고 챙길 것도 없었다.
그런 것을 챙겼다가 희생되는 건 힘없는 백성들 뿐.
알렉스는 시안에게 고개 숙여 도움을 요청했다.
케플 마을을 지켜달라.
현재 서부는 들끓는 몬스터들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로열 나이츠들이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으나.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한 상황.
그 때문에 이렇게 외곽 지역의 마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시안이 외곽 지역의 마을만이라도 지켜준다면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사람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시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로열 나이츠의 단장이라는 자존심도 내려놓은 채.
그러나.
‘거절하겠습니다.’
시안은 딱 잘라 답했다.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꽈득, 쥐었다.
결국.
결국 시안도 귀족이었다.
그 이름도 고귀한 엘란두르.
그에게 있어 백성들은 그냥 도구들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거늘.
결국 시안도 제 안위만 챙기는 귀족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구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밀고 올라가겠습니다.’
들려온 시안의 말이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알렉스는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밀고 올라가겠다니?
그 말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된 지역을 탈환하겠다는 뜻?
그건 불가능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는 말 그대로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 때문에 서부 지역의 1/4이 몬스터들에게 점령되다시피한 지금.
탈환은 커녕, 더 이상 밀리지 않게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그런 시안을 말리고자 했으나.
‘다만, 탈환한 지역을 방어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간이 끌리면 또 쏟아져 나올테니 속도를 붙여야 하거든요. 그러니 뒤는 로열 나이츠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시안은 그렇게 자리를 떠나갔다.
알렉스는 떠나가는 시안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케플 마을에서 게른 영지로 돌아온 지금.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시안이 행한 행동의 결과는 금방 들려왔다.
“단장님!!! 단장님!!! 그론 마을을 점령했던 트롤 무리들이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론 마을은 케플 마을에서 꽤 떨어진 대형 마을이었다.
정확히는 트롤들이 점령한 마을.
그런데 그런 트롤들이 궤멸되었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시안과 루벤의 병사들.
하지만 그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게 무슨···.”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레도리 마을을 점령했던 라이칸슬로프들도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메이스지 마을도···.”
“수든 영지를 점령했던 몬스터들이 모조리 궤멸되었습니다!!!”
기사들이 막사 안으로 줄지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마, 말도 안돼···.”
알렉스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말이··· 말이 안되는 속도였다.
정녕··· 정녕 그 병사들이 기사라도 된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은 말이 되질 않았다.
이게 가능했다면 로열 나이츠가 진즉에 해냈을 터였다.
로열 나이츠는 전원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기사단.
물론 절대적인 인력의 차이는 있었다.
제 7기사단이라고 해봤자 100명을 채 넘기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찌···!”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이 속도는 말이 안되었다.
“전선이 바뀌고 있습니다! 루벤의 병사들이 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알렉스는 꽈득,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날려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단원들을 소집해라! 막사도 옮긴다! 탈환한 마을들을 기점으로 전선을 확고히 한다!”
서부 전역으로 반격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
슈슈슈슈슈슈슉!!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화살 소나기.
이윽고 화살들이 몬스터들이 뭉쳐있는 곳으로 쏟아져내렸다.
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대지가 크게 떨려왔다.
진한 먼지 구름이 일며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 피어난 먼지 구름은 한참의 시간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 풍경.
“영주님! 소그린 마을을 점령한 아울베어 무리들을 궤멸시켰습니다.”
“좋아. 바로 움직이자.”
이어지는 보고에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까지 탈환한 마을만 15여개.
영지는 3개 정도 탈환할 수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나 신기전(神機箭)이었다.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들을 초토화 시켰던 성(城)폭행 병기.
심지어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마저 신기전의 화력에 타격을 입었다.
고작 몬스터 따위가 신기전의 화력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별로 걸리지도 않았다.
신기전의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만, 신기전을 끌고 다니기가 조금 버거웠다.
그 때문에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시안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샤를롯의 유산, 인벤토리(Inventory)에 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공간 부족과 더불어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오로지 시안이 감당해야만 했지만···.
[공간 5칸 확장 업그레이드] - 5,000 G
[수납 무게 1% 감소 업그레이드] - 5,000 G
띠링!
《들고 다니기 힘드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
.
이 역시 큰 문제는 없었다.
현질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해서 시안은 신기전(神機箭) 10대와 인벤토리 강화.
도합 40만 골드에 달하는 지출해버렸다.
그리하여 현재 남은 골드는 77만 골드.
적지 않은 돈이었으나 모바일 영주에겐 많지 않은 돈이었다.
“아무래도 물품 가격을 2배로 받아야할 것 같은데.”
“네? 2배요?”
시안의 중얼거림에 아멜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말하길.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4배로 받아도 될 것 같은데요?”
아멜리아가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어째, 귀족들에게 뜯어낸다고 한 순간부터 눈이 희번뜩해진 아멜리아였다.
뭐, 아무튼.
“바로 다음 지역으로 출발하자.”
시안과 루벤의 병사들은 파죽지세로 전선을 밀고 올라갔다.
#
서부 지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이유를 모른 채 끝도 없이 창궐하는 몬스터들.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에게 점령되어버린 서부의 지역.
지금이야 어떻게든 막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귀족들은 제 안위만 챙기기에 급급했고.
사람들은 그런 이기적인 귀족들의 행태에 하나 둘씩 희생되어갔다.
상업의 요충지라 불리는 서부도 이제 옛말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언제고 들이닥칠 몬스터들에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어아먄 했다.
그야말로 패닉 상태.
그렇기에.
“자,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지금 몬스터들에게 점령된 지역을 하나 둘씩 탈환하고 있다는 소식 말이네!”
지금 들려오는 소문을 사람들은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점령된 지역을 탈환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게 말이 되나?”
“그래! 듣자하니 벌써 몇몇 영지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더군!”
영지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탈환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전부 궤멸시키고.
또 전선을 밀고 올라가야만 가능한 일.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이 집어 삼켜지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말게나. 어딜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는 건가?”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그건 로열 나이츠 기사분들도 불가하네.”
말 그대로 불가능.
그건 제국 제 1기사단이라 불리는 로열 나이츠도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전선을 밀고 올라갔겠지.
하지만 로열 나이츠들조차 현재의 전선을 틀어막는 것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저 소문은 당연 헛소문이라 치부해도 되었건만.
“아니, 글쎄 진짜라니까! 시안님과 루벤의 병사들이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어째 마냥 헛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시안···?”
“시안이라면···? 엘란두르 가문의 시안 엘란두르님을 말하는 건가?”
시안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막내이자 지난 건국일 행사에서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인재.
그러나 세상에 알려진 시안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심지어 후작 부인에게 검을 들이민 패륜아까지.
비록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그간 쌓여온 이미지가 단번에 바뀌는 않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시안’이라는 이름이 들렸을 때.
그리고 웬 듣도 보도 못한 ‘루벤’이라는 이름이 들렸을 때.
“역시 헛소문이었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헛소문이 아니네. 내가 직접 봤거든.”
“나도.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
소문의 당사자들이 그 일을 입증해주기 시작했다.
“직접 봤다고?”
“우리 마을을 점령한 트롤 무리들을 퇴치해주셨지.”
“무슨 마차 같은 것에서 화살 소나기가 빗발치는데··· 일시에 트롤 무리들이 싸악! 정리가 되더라니까?”
여기저기서 증언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게다가 루벤의 병사들도 대단했어. 몬스터들을 그야말로 쥐잡듯이 때려잡는데. 농담이 아니라 웬만한 기사단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니까?”
“예끼 이 사람! 아무리 그래도 일개 병사들을 기사단이랑 비교하는게 말이 되나!”
“어허이! 이 양반이 사람 말을 못 믿어! 내가 솔직히 조심스럽게 말한 거지 솔직히 말하면 기사단보다 더 뛰어났어!”
“그, 그게 참말이라고?”
“그렇다니까 글쎄! 또 그뿐이야? 물품들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시는데··· 자! 이거 보게! 이게 비누라는 거야.”
손에 들린 작고 하얀 무엇.
“비누? 이게 뭔가?”
“자, 잘 봐. 이렇게 얼룩진 것이 있으면 이렇게 슥슥, 봐. 깔끔하게 지워지지?”
“세, 세상에!”
“게다가 이 향기는 대체···?”
“이 비누가 무려 10실버 짜리인데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계시다니까!”
“말도 안돼···.”
물론 나중에 귀족들에게 바가지로 뜯어낼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안과 루벤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그야말로 서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띠링!
《서부 지역에 당신과 루벤의 이름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혹시 들리십니까! 당신을 향한 이 함성 소리가요!》
《명성 수치가 기준 치를 초과했습니다!》
띠링!
『[영지 연계 퀘스트] - ‘어라···? 우리 어쩌면 조금 강할지도···?’ (클리어!)』
갑자기 스마트 폰 알림음이 들려오더니.
연계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엥? 갑자기 뭐야?”
시안은 뭔가 싶었다.
진짜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서부 지역의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빼앗긴 지역을 거의 탈환하긴 했다만.
그럼에도 모든 몬스터를 몰아낸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일 뿐인 상황.
그런데도 연계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다?
“뭐지?”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다시.
띠링!
《명성 포인트 및 명성 포인트 상점이 개방 됩니다!》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