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70화 (70/322)

§ 70화 - 출정(2)

아멜리아의 말에 시안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막한 풍경.

확실히 상업의 요충지라 불리는 지역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는 길목이었고.

아직 서부 외곽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상단의 마차가 끊임없이 지나다녀야 하는데, 지금은 한 대도 안보이네요.”

“아직 서부 중심부에 가려면 멀었는데도?”

그것도 가장 외곽 지역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서부에 진입한 수준으로 서부라 부르기도 애매한 곳이었다.

“네. 적어도 서부를 빠져나가는 상단의 마차를 마주쳐야하는데··· 정말 한 대도 안 보이네요.”

아멜리아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멜리아는 브라헤 가문의 여식.

그리고 브라헤는 과거, 서부를 지배했던 대상단이었다.

비록 지금은 몰락했으나 그래도 서부에 대해서 아멜리아만큼 아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아멜리아가 저런 말을 할 정도면 확실히 서부의 상황이 심각한 듯 싶었다.

“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괜히 콘라드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말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니.

아멜리아가 옆에서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런데 루벤은 괜찮을까요?”

“루벤은 왜?”

아멜리아가 대답 대신 살며시 뒤를 바라봤다.

길게 이어진 루벤 브라헤 상단의 마차.

그리고 그 마차들을 호위하는 루벤의 병사들.

“이번엔 영주님이랑 병사분들도 같이 왔잖아요.”

아무래도 차출된 인원이 많다보니 루벤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일단.

“드워프 병사들은 남아있으니까.”

루벤의 모든 병사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런 드워프 병사들 또한 모두 오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보통 오러 연공법은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애초에 오러 연공법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수련법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바일 영주에서 현질한 A등급 오러 연공법은 종족을 가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드워프들 또한 오러를 배울 수 있었고.

드워프의 타고난 힘과 오러의 힘.

그 둘이 합쳐진 괴력은 저게 드워프인지, 오우거인지 진짜 모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저들이 만든 무구들을 하도 부숴먹어서 대장간의 불이 꺼지는 날이 없을까.

그러면서 제리를 닥달하며 더 좋은 장비를 만들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조만간 A등급 품질의 장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영지 방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레아가 있잖아.”

루벤의 수호령인 레아가 있었다.

역시나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레아 언니가 있으니 걱정 없죠. 최근엔 오우거도 쫓아냈으니까요.”

“응? 영지에 오우거가 왔었어?”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오우거가 왔다니.

오우거는 몬스터의 먹이사슬에서 단연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거대한 덩치와 흉포한 괴력은 엑스퍼트의 기사 정도가 되어야 상대할 수 있었다.

몬스터인 오우거가 이 정도 수준이다.

하물며 어둠의 숲에서 기거하는 오우거는 거진 마스터에 근접한 이 정도가 되어야 대적할 수 있는 끔찍한 괴물이었다.

이건 거의 자연 재해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오우거가 루벤에 왔었다?

“영주님이 떠나계실 때 오긴 했는데, 사실 저도 한참 뒤에 알았어요. 오우거가 나타나자마자 레아 언니가 쫓아냈거든요. 한 10초 정도··· 걸렸다고 하던데요?”

그 순간.

“정확히 4초였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뒤 쪽으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영지의 병사, 두라스가 있었다.

“그리고 쫓아낸 게 아니라 오우거가 도망친 겁니다. 레아님의 사념에 저항하는데 오우거가 왜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어째 입장이 반대가 된 것 같았지만···.

“오우거는 확실히 오우거인가보네.”

“역시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시안과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뭐, 아무튼.

“확실히 사람들이 잘 안 보이기는 하네.”

“그래도 이 근처에 꽤 규모가 큰 마을이 하나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 저기 보이네요.”

아멜리아가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아멜리아의 말처럼 꽤 규모가 큰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응?”

“어라···?”

시안과 아멜리아의 고개가 동시에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정상적이지 않았으니까.

불타오르는 민가와 산산히 부서진 잔해들.

마을이었던 것이 시안의 시야에 보였다.

뭐지 싶던 것도 잠시.

바로 그때.

꺄아아아아아아악!!!

마을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

제국 서부 외곽에 위치한 케플 마을.

“사, 살려줘! 살려줘!!”

“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이 무언가 쫓기듯 숨 가쁘게 도망치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민가들과 부서진 잔해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혼비백산 도망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뒤를 쫓고 있는 몬스터 무리들.

1m 크기의 몸짓과 더불어 우락부락한 근육질.

흉악한 돼지의 얼굴을 한 몬스터.

“취이익!”

“취익 취익!”

다름 아닌 오크들이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흥분한 오크들이 거칠게 콧바람을 내질렀다.

이윽고 가진 바 무기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주변의 사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일격들에 마을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꺄아아아악!!!”

그 모습에 사람들은 차마 어찌할 생각을 못하고 기겁을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여기 아이가 깔렸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으아아아아앙!”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비명소리에 묻혀 사라져 갈 뿐이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

“취이이이익!!”

“취익! 취이익!!”

오크들은 이 상황이 매우 흡족스러운 듯.

계속해서 거친 콧바람을 내뱉었다.

그와 함께 더욱 흥분한 무리들이 사방팔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아앙!

오크들이 마을을 휩쓸어버리다시피하고 있었다.

“안돼··· 안돼···”

치코는 그런 오크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덜덜 떨리는 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 끔찍한 오크들로부터 빨리 도망쳐야했다.

“아··· 아아···.”

털썩.

그러나 치코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전신을 옭아맨다.

“치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내 우악스러운 손길이 치코를 잡아 이끌었다.

하지만 치코는 그 손길을 따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

“부상자들은! 그럼 부상자들은 대체 어쩌라고!”

그도 그럴 것이 치코는 이곳, 케플 마을의 자경단.

당장 치코 뒤로 당장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가 무려 수 십명이다.

이대로 도망친다면 저들은 반드시 죽는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렇다고 네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나몰라라 도망칠 수는 없어! 조금만 기다리면 정규 병사들이···!”

“이런 멍청이가!! 병사들은 오지 않아! 아직도 모르겠어? 귀족들은 우릴 버렸다고!”

“하, 하지만···!”

“제길! 난 분명히 말했다!”

치코를 잡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이 결국 뒷걸음질을 치다가 도망쳐버렸다.

그 모습에 치코는 짙은 망설임이 일었다.

알고 있었다.

마을을 유린하는 오크 무리들.

저 오크 무리들로부터 마을을 지켜줄 정규 병사들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했다.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그런데··· 끝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치코는 까득, 이를 깨물었다.

그리고는 부상자들이 모여있는 집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오크들과 싸우던 이들도 있었으나.

주로 노약자와 어린 아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몸을 벌벌, 떨며 한데 웅크리고 있었다.

치코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힘드시겠지만 움직이셔야합니다! 제가 도와드릴테니 어서!”

치코는 그들을 부축하며 한 명 한 명, 밖으로 옮겼다.

하지만···.

부상자들을 데리고 도망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취익? 취이익!”

부상자들을 발견한 오크가 거친 콧바람을 내뱉었다.

그에 주변의 수많은 오크 무리가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오크 무리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안돼!”

치코는 무기를 움켜쥐며 다가오는 오크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콰직!

치코는 반항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오크는 그리 만만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훈련을 받은 정규 병사들도 진형을 갖추며 상대해야만 하는 몬스터였다.

한낱 마을의 자경단인 치코가 상대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커헉!”

끔찍한 격통과 함께 치코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취이이이익!”

그런 치코의 모습에 오크 무리들이 분노와 기쁨, 갖가지 감정이 담긴 콧바람을 내뱉었다.

콰당탕!

거칠게 쳐박히는 치코의 몸.

“안돼··· 안돼···!”

치코의 얼굴에 짙은 절망이 내려앉았다.

살기 위해선 발악이라도 해야한다.

그러나 치코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두 손 모아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치코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 기도가 얼마나 덧없는지.

치코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끝도 없이 몰아치는 몬스터 군단.

제 안위를 챙기기 급급한 서부의 귀족들.

자신들을 도와줄 이들은 오지 않는다.

그런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발··· 제발···!”

그럼에도 치코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역시나.

“취이이이이익!!”

신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 가득히 드리우며 치코를 덮쳐왔다.

곧 느껴질 끔찍한 고통에 전신이 덜덜 떨려온다.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에 치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암전되는 시야.

그런데.

“······?”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지금쯤이면 오크에 의해 온몸이 짓이겨져 고통에 몸부림 쳐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커녕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은 건가?

하지만 치코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쿠우우웅!

치코의 질끈 감은 시야 앞으로 둔탁한 굉음이 들려왔으니까.

치코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런 치코의 시야에 보인 것.

그건 다름 아닌 깔끔하게 반으로 잘린 오크.

그리고 치코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떤 한 금발의 사내였다.

“뭐, 뭐가 어떻게···?”

치코는 눈앞에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치코는 앞을 가로막은 금발의 사내를 바라봤다.

나이는 어리다는 느낌에서 이제 막 젊다라는 느낌으로 바뀔 시기 정도 인것 같았다.

또한 차림새는 귀족 같았으나.

약간 어벙해보이는 분위기는 또 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처음 보는 사람.

“누, 누구···?”

바로 그때.

“취이이이이익!”

“취이익!”

갑작스러운 동족의 죽음을 목격한 오크 무리들이 거칠게 콧바람을 내질렀다.

포효와도 같은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 질리게 했다.

이윽고 오크 무리들이 달려든다.

“도, 도망치십시오!!”

치코가 소리쳤다.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다.

지금 달려드는 오크들은 무려 수 십 마리.

심지어 지금 당장만 수 십 마리였다.

지금 케플 마을을 습격한 오크들을 더하면 못해도 1천은 넘을 터.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도망쳐야한다.

그런데···.

사내는 도망치지 않았다.

되려 검을 치켜들며,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겨누었다.

우우우우웅···!

떨려오는 대기.

칠흑보다 어두운 기운이 사내의 검에서 일렁였다.

“취이이이익!!”

달려드는 오크 무리들에게서 살기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서걱─.

섬뜩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가장 먼저 달려들던 오크가 쓰러졌다.

뒤이어 두번째, 세번째 오크가 허물어졌다.

“취이이이이익!!”

흉측한 괴음과도 같은 포효가 터져나온다.

주위의 오크들이 사내를 덮쳐갔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서걱─.

어디선가 어둠보다 더 어두운 칠흑의 검이 지나간다.

스쳐가듯 지나간 그곳엔 어김없이 한 놈 혹은 그 이상의 오크들이 쓰러져갔다.

그렇게 수 십의 오크가 바닥으로 널브러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마, 말도 안돼···!”

치코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괜찮아? 움직일 수는 있지?”

이윽고 금발의 사내가 치코에게 물어왔다.

바라본 시야에는 사내가 칠흑의 검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치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덕분에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나? 시안. 루벤의 영주.”

시안···? 루벤···?

치코는 두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한 마디로 처음 듣는 이름.

다만 시안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움직일 수 있다니 다행이네.”

이윽고 시안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치코의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오크들 처리될때까지 저쪽에 가있어.”

“예?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치코는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케플 마을을 습격한 오크는 거진 1천에 달했다.

시안이 수 십의 오크를 썰어버린 건 놀라웠다.

그러나 1천의 오크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그런데 그런 오크를 처리하겠다니?

치코는 도무지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치코는 금방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천히 돌린 시야.

그런 치코의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

“그 쪽으로 3마리 간다.”

“오케이!”

그건 일련의 병사들이 오크들을 도륙하는 풍경이었다.

“꾸이이이이익!”

“조용히 해 이것들아.”

콰직!

말 그대로 도륙하는 풍경이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시야 한켠으로 오크 무리들과 또 다른 병사들이 격돌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오크들의 전력.

누가 봐도 저 수에 먹혀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콰직.

퍼서석!

서걱!

쓸려나가고 있었다.

오크 무리들이 쓸려나가고 있었다!!

오크는 그리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정규 병사들조차 1:1로는 쉬이 장담할 수 없는 몬스터.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들이 있어야만 그나마 수월하게 토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병사들의 차림새는 말 그대로 '병사'였다.

기사가 아니라 병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대체···?

“어라? 이거 오크 맞아?”

“그러게? 오크가 아니라 그냥 난폭한 돼지인데? 루벤에선 이렇지 않았는데?”

꾸이이이이이익!!

“뭐지? 왜 이렇게 약해?”

“영주님! 이것들 너무 약한데요?”

병사들이 시안을 향해 소리쳤다.

시안은 터벅, 걸음을 옮겨 병사들이 처리한 오크 사체들을 살폈다.

거진 짓뭉개져버리다시피한 사체들.

시안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것들아 오러는 쓰지 말라고 했잖아! 걔네들은 마수가 아니라서 이렇게 짓뭉개진다고! 그놈들도 싹다 팔아야 하니까 힘조절 해!”

그러면서 시안이 자리를 떠나갔다.

멍한 정신.

“······”

치코는 정말이지 뭔가 싶었다.

#

제국 서부 중심부에 위치한 게를 영지.

그 안에 위치한 한 막사.

“알렉스 단장님! 케플 마을에 오크 무리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뭐라고?”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기사의 보고에 알렉스가 눈을 치켜떠보였다.

로열 나이츠 제 7기사단의 단장, 알렉스.

알렉스는 엑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이자.

마스터를 앞둔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런 알렉스가 이곳 제국 서부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름 아닌 서부에 창궐한 몬스터 군단.

그를 막고자 황태자의 명령으로 제 7기사단과 함께 파병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했거늘···! 서둘러 병력을 파견하게!”

“그, 그것이···.”

기사는 말을 흐리며 입을 열었다.

“현재 기사단원들 전원이 다른 곳들을 막기 위해 나간 터라···.”

알렉스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끊이질 않는 몬스터 군단들.

로열 나이츠들이 막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로열 나이츠는 전원이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몬스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로써 인력이 너무도 부족한 상황.

어떻게 되먹은 것이 몬스터들이 끊이질 않고 창궐하고 있었다.

“서부의 귀족들은?”

“모두 영지 방어에 힘쓴다고···.”

“젠장!”

쾅!

알렉스는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처음엔 귀족들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끝도 없이 몰아치는 몬스터 군단과 계속되는 출혈 때문일까.

슬금슬금, 뒤로 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영지 방어를 핑계로 병력을 차출하지 않고 있었다.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제 안위만 챙기다니···!”

알렉스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전하께서는?”

“빠르게 대안을 마련하신다 하셨습니다만··· 아직 별 다른 이야기가 없으십니다.”

알렉스는 주먹을 꽈득, 움켜쥐었다.

“막사에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모두 나를 따라와라. 당장 케플 마을로 간다!”

케플 마을은 외곽 지역에 위치한 중소규모의 마을.

지금 출발한다 한들 많이 늦겠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들이라도 구할 수는 있으리라.

알렉스는 무장을 챙겨들었다.

바로 그때.

“단장님! 알렉스 단장님!!!”

막사 밖으로 또 다른 기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알렉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번엔 또 어디서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습격한 것일까.

“그래, 무슨 일인가···.”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침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케플 마을에 습격한 오크 무리들이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어째 들려오는 말이 이상했다.

“뭐, 뭐, 뭐라고?!”

궤멸?

누가? 마을 사람들이?

알렉스는 방금 들려온 말을 몇 번이나 되뇌였다.

그런데 아무리 되뇌여도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오크 무리들이 궤멸되었다는 것이었다.

“오, 오크 무리들이 궤멸되었다고?”

“그렇습니다!!”

“대체···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했단 말인가!”

설마 서부의 귀족들이 나선 것인가.

“그것이···.”

기사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루벤이라는 영지의 병사들입니다.”

“응?”

알렉스가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다.

루벤이라는 이름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 번을 되뇌어봐도.

“루···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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