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60화 (60/322)

§ 60화 - 축제의 루벤

임시 점검.

말 그대로 임시로 점검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무슨 모바일 영주에서는 ‘임시’라는 말이 다른 개념인 것일까.

아리아가 30만 골드를 보내올 때쯤에서야 비로소 정상화가 되었다.

한 마디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점검을 한 것.

그리고.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점검을 마친 모바일 영주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디 한 번 더 해보시든가욧!》

그것도 더한 깐족거림을 지닌 채로!

어째, 안정화가 아니라 강화가 되어온 것 같았다.

아무래도 또 한바탕 해야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지금은 가진 바 골드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얘는 성녀라는 애가 고작 30만 골드?”

뭐··· 엄밀히 말하면 30만 골드가 ‘고작’은 아니었다.

4인 가족이 무려 833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림자 달에서 보내온 300만 골드 때문일까.

30만 골드가 고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다시 [고작?] 이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그래도 30만 골드가 어디냐 싶은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법을 알려준 대가로 30만 골드면 괜찮은 거래였으니까.

그것도 존재하지도 않는 사용법을 말이다.

시안은 정제해둔 최상급 마나석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리아에게 답장을 적어넣었다.

[동봉한 마나석이랑 같이 사용하면 돼. 끼우지 않고 그냥 얹어서 사용하면 되니까 괜히 억지로 끼우지 말고.]

물론 거짓말이었다.

마나석 따위는 필요없고 그냥 알아서 작동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이 곧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30만 골드를 지불했는데 알고보니 별 다른 조작법이 없었다?

만일 시안이었다면 그대로 수라천살을 시전했을 터.

해서 괜히 골치 아파질 바에야,

이런 식으로나마 얼버무리는 게 좋았다.

뭐, 마나석 하나를 30만 골드에 판 셈 치면 되었으니까.

시안은 그렇게 답장을 마저 작성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후우···! 드디어 완성이 되었소.”

시안의 앞으로 세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세미르가 검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

다름 아닌 세미르가 제작한 S등급의 검이었다.

시안은 편지를 대충 접어 넣었다.

“한 번 확인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오.”

세미르가 흔쾌히 검을 넘겼다.

“오···.”

같은 S등급의 검이었지만 시안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생김새가 사뭇 달랐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들어있는 묘한 힘은 큰 차이가 없었다.

“만드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오.”

세미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땀으로 흠뻑 젖은 몸만 봐도, 쉽게 제작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선조의 지식이 담겨있는 이 대장간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거요.”

세미르는 천천히 대장간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모르크루의 대장간 Lv.1.

아르나이즈 특전, <모르크루의 불꽃> 에서 개방된 것으로 무려 10만 골드를 현질해서 지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모르크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평범한 대장간은 아니었다.

웬만한 장인은 커녕.

영지의 드워프들도 감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조께서 이런 대장간을 남기신지 몰랐건만···.”

세미르는 다름 아닌 모르크루의 후손.

세미르는 몇 번 버벅이더니 금방 장비들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보아하니 영지에 엘로디께서 남긴 연구소도 있더구려. 어떻게 천 년전에 소실된 아르나이즈들의 지식들을···.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내 재단으로는 감히 영주를 파악할 수가 없소이다.”

세미르는 그저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안은 괜히 멋쩍은 마음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안은 다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점검이 끝난 모바일 영주를 실행.

곧장 【강화】 항목에 들어갔다.

《현재 보유 중인 장비 - [S등급 검], [S등급 갑옷]》

[강화 비용 50,000G]

[현재 강화 확률 100%]

.

.

그러자 화면 위로 떠오르는 알림창들.

시안은 본래 쓰던 S등급의 검을 꺼내들었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금방 <강화>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강화 확률이 100%였으니까.

꾹.

《강화를 시작합니다!》

가벼운 터치와 함께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강화 비용, 5만 골드가 증발함과 동시에.

화아아아아아악!

일순간 S등급의 검에서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마치 태양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듯한 밝기.

띠링!

《강화 연출을 스킵하시겠습니까?》

그 사이로 연출을 스킵하겠냐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보아하니 자동 연출 스킵도 있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첫 번째 강화이기도 했으니 시안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터져나오던 빛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빰빠라밤!!

《강화 성공!!》

크나큰 팡파레 소리와 함께 강화가 성공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윽고 다시 떠오르는 알림창.

《S등급 → SS등급》

“······ 응?”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S등급 검에서 +1이 되는 게 아니라 바로 윗단계 등급으로 상승하는 거였어?

한 자루에 30만 골드나 하는 S등급의 검.

괜히 미친 강화 방식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첫 강화 인과 할인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강화 비용 100,000G]

[다음 강화 확률 5%]

강화 비용은 2배로.

강화 확률은··· 아작이 나버렸다.

“미친···.”

아니 무슨 100%에서 5%로 변한단 말인가!

시안은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세미르가 제작한 S등급의 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아무래도 강화를 하면 그대로 사라지는 모양.

즉, 실패하면 그대로 30만 골드가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

뭐, 아무튼.

시안은 강화가 끝난 SS등급의 검을 집어들었다.

새하얗던 검신은 이제 거뭇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마치 마기를 품고 있는 듯한 모습.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이건··· 내 역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구려.”

세미르조차 감탄스러운 눈으로 SS등급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가볍게 SS등급의 검을 휘둘러보았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갈라진다.

가볍고 또 예리한 검.

S등급의 검은 그 자체만으로 오러의 힘을 발휘했다.

S등급이 그러할진대 그 윗단계인 SS등급은 어떠할까.

시안은 정신을 집중하여 마기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끌어올린 마기를 그대로 SS등급의 검에 밀어넣었다.

그러자.

스파아아아아앗!!!

짙은 검은빛이 터져나오더니 칠흑의 오러가 깃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 이 무슨···!”

그 광경에 세미르의 눈이 부릅,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풍경.

“오, 오러 소드···?”

저건 마치 오러 소드와도 같지 않은가.

마스터(Master)의 상징이라 불리는 오러 블레이드.

그 바로 밑 단계인 오러 소드(Auror Sword).

즉, 엑스퍼트 경지의 기사들이 사용하는 힘이었다.

이제 막 비기너(Beginner)에 진입한 시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히 시안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건 SS등급 검이 자발적으로 내는 힘.

심지어 자세히 보니 오러 소드와는 사뭇 달랐다.

그보다 조금 더 짙은.

그리고 더 폭발적인···.

바로 그때.

부르르르르···!!

SS등급의 검이 크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힘.

“이 무슨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휘두른 방향으로 검기가 터져나오며 큰 폭발이 일었다.

“거, 검기까지···?”

세미르의 두 눈이 찢어져라 떠졌다.

그리고 이번엔 시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의 시선이 곧 검기가 발산된 곳으로 향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대장간 벽 한 쪽이 와르르, 무너져있었다.

“······”

“······”

출타하는 시안과 세미르의 어이.

아무래도···.

미친 검인 것 같았다.

#

SS등급의 검을 얻은 시안.

이로써 시안은 한층 더 진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단 시안 뿐만 아니라,

루벤 또한 한층 더 진보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정예 병사 훈련소 Lv.2.

“자랑스러운 너희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루벤의 검!”

“목소리가 작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루벤의 방패!!!”

“좋다! 다시 한 바퀴!”

“으아아아아아아!!”

지난 시안과 누르비아의 전투를 지켜본 덕분일까.

루벤의 병사들은 예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의 성과 덕분일까.

《영지의 병사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업적: ‘승급: 폰에서 나이트로!’ 달성!》

《업적 보상 - 기사 사관 학교 Lv.1에서 ‘A등급 오러 연공법’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영지의 기사들이 오러 연공법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정예병을 넘어 입문 기사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A등급의 오러 연공법.

오러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그 수준에 따라 효율도 천차만별이었다.

A등급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모바일 영주의 등급을 보면 필시 평범한 것은 아닐 것은 분명했다.

다만.

[A등급 오러 연공법] - 100,000G.

“······ 또 현질해야겠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특수 병과 훈련소 Lv.1.

“우리라고 가만히 놀고 있을 쏘냐!”

“드워프 전사들을 우습게 보지 마라!!!”

장인들을 제외한 드워프들 또한 루벤의 병사가 되었다.

이들 또한 <샤를롯의 긍지>와 더불어 성장 버프를 적용받아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암살의 기본은 모습을 들키지 않는 것이다. 이에 위장, 변장과 같은···.”

그림자 달 소속이자 특급 암살자 커너.

시안에게 잡혀 거진 노예(?)가 되어버린 커너 또한 특수 병과 훈련소에서 암살자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쉼없이 발전을 거듭하는 루벤.

그런 발전 덕분이었을까.

노랗게 익어 수그린 밀과 보리들.

탱그랗게 익은 알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황금빛 물결이 들이치는 농지.

가히 황홀한 풍경이었다.

“와아아아!!”

“풍년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풍년에 영지민들은 너나 할 것없이 들 뜬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국 남부에 위치한 크라우드 백작가.

제국 최대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으로서.

지난 날 아멜리아를 모욕하다가 시안에게 귓방맹이를 맞은 레민턴의 가문이기도 했다.

뭐, 아무튼.

제국에 유통되는 곡물의 15%를 책임지는 크라우드 가문의 곡창지에서도 이런 풍년은 보기 드물었다.

땅에는 마땅히 가져야할 기운이 한정되어 있었고.

신성 제국의 사제들이 대지의 기운을 지속적으로 회복시키지 않는 한 그 수확량은 정해져있었다.

하물며 마기가 들끓는 이곳, 어둠의 숲이라면야.

풍년은 커녕 작물조차 자라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사아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작물들이 물결치며 황금빛의 파도를 만들어내었다.

첫 농지가 지어진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수확철이 다가온 루벤.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풍족한 농지 Lv.2》 (9,000G)

▶배식소에 들어가는 재료는 무슨 조상님이 주신 답니까?

자급자족이야말로 영지의 기본이라 할 수 있죠!』

- (기본 효과) 농작물 생산량 +600%

- (추가 효과) “아, 아니! 나같은 농작물에게 이런 풍족한 땅이?!” 농작물의 성장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집니다!

- 물론 적절한 농법을 적용했을 경우에요!

.

.

다름 아닌 풍족한 농지 Lv.2의 효과.

여기에 <모르크루의 불꽃> 효과 1, 모든 시설 효과 +500%까지.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잠을 설치며 연구하고 있는 제리의 노력이 가장 컸다.

특히 제리가 연구한 비료 농법.

손실되는 땅의 정기를 사제의 도움 없이 계속해서 보충해주니, 작물들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얼씨구나!!”

“얼쑤 좋다!”

태양빛을 닮은 작물들의 파도에 영지민들 사이에선 흥겨운 노랫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니는 어둠의 숲.

그런데 지금 저 물결치는 황금의 파도를 보라.

고된 노동과 땀 흘린 일상의 결과물.

이제 더 이상 생존을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그로써 마음 편히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으니.

“와하하하!!”

“하하하하하!”

이 어찌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생존은 유일한 가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크하하하핫! 이렇게 질 좋은 보리들이 있는데 참을 수가 있나!”

장인의 종족, 드워프.

그들의 타고난 손재주는 드워프 제 장비라는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이들에겐 드워프 제 장비 말고도 뛰어난 가치가 또 하나 있었으니.

“수확한 보리를 다 가져와! 내 특제 맥주를 만들어 주리다!”

다름 아닌 맥주.

대륙에서 ‘드워프 맥주’하면 명주 중의 명주이자.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술이었다.

무엇보다 드워프들은 본인들부터가 술이라면 환장을 하니.

『《취한다 양조장 Lv.1》

▶상유천당, 하유소항!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쐬주와 향주가 있노라!

네? 그런 뜻이 아니라고요?

그럴 리가 없어욧!』

- (기본 효과) 극락의 즐거움이 내려옵니다! 영지민들의 생활 만족도가 +500% 증가합니다!

- (추가 효과) “아, 아닛?! 이렇게 좋은 양조장이?” 양조장에서 제작하는 모든 술의 숙성 시간이 -1,000% 감소합니다!

-단, 수준 높은 양조사가 있어야겠지만요!

.

.

콰앙!

“먹고! 마시고! 죽어!”

드워프들은 아주 수 십개의 오크통에다 맥주를 만들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드워프 맥주를 받아들었다.

“키야···! 이게 드워프가 만드는 맥주구나!!”

“처, 천상의 술이다! 괜히 드워프 맥주하는 게 아니었어!”

“여기가 천국이야! 천국이라고! 크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벌어진 술판.

그 술판의 소식들이 점점 루벤으로 퍼져나가더니.

“저도! 저도 한 잔만 주십쇼!”

“어이쿠! 우리 루벤의 병사들이 아닌가! 모두 모이게나! 맥주는 많다고!!”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네 둘. 루카스와 그레이슨이라고 했었지?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한 잔 받게! 크하하하핫!”

“어이, 한스 영감! 자네도 이리 와서 받게나! 지난 번에 집 관련해서 도와줘서 고마웠으이.”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

“특급 암살자가 되기 위해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똑바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 봐라.”

꿀꺽, 꿀꺽.

“오오오! 그 오크통을 그대로 원샷한다고?!!”

“크하하하하핫! 정말 터프한 친구로구만!”

심지어.

“여기 안줏거리도 만들어 왔어요!”

“오오오오오!! 급식소에서 안줏거리가 배달왔다!!”

“마셔! 부어!!! 그리고 죽어!!”

그렇게 온 루벤의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와아아아아아!! 축제다!”

“축제를 열자!!!”

저들끼리 멋대로 축제를 열어버렸다.

그야말로 루벤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축제 분위기.

그 소란에 시안은 영주관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주 난리가 나있는 현장.

“······ 뭔데?”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하라는 일들은 안하고 축제나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빨리 돈을 벌어서 현질을 해도 모자랄 판에 축제라니.

그러다 문득.

시야 한켠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비쳐보였다.

“아멜리아?”

다름 아닌 긴 적발의 미녀, 아멜리아였다.

흠칫!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그러더니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해다.

그런 아멜리아 손에 들려있는 맥주.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처리 못한 트롤 사체 처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하··· 하하. 그, 그게요···.”

아멜리아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하, 한 잔만 하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건국일 행사에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잖아요···.”

아멜리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푹, 숙이는 고개.

그 모습이 꼭 고양이가 시무룩해하는 것만 같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영주님! 너무 그러지 마십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야유 아닌 야유를 보내왔다.

시안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뭐야?”

“히익! 영주님께서 화나셨다!”

“다들 해산! 축제는 끝이다!”

그러자 들떴던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사람들이 상당히 아쉬워하며 먹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음···.”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뭐, 솔직히.

그동안 영지민들이 고생도 했고.

얼마 전엔 큰일까지도 치렀기도 했고.

또 이번에 새로 영지민이 된 드워프들.

그들이 루벤에 적응하고 또 기존의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할겸.

오늘 하루 쯤은 뭐···.

풀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쳤다.

“그래! 알았다! 오늘은 축제다!”

그러자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을 띠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영주님 만세!!”

이윽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그와 함께 아주 본격적으로 축제가 벌어졌다.

급식소에서는 음식이 끊이질 않았고,

술판은 물론이고 춤판까지 벌이며 루벤 전체가 떠들썩했다.

이윽고 집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뛰쳐나와 축제를 즐겼다.

다만.

“어, 어어···.”

“어으···.”

드워프들의 아이들은 아직 이 분위기가 어색한 듯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의 아이들은 어둠의 숲에서 태어난 이들이었다.

소리를 내면 안되었기에 숨 죽이는 것만 배워온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오늘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만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축제 분위기는 꽤나 생소한 것.

하지만.

“이리와! 우리랑 같이 놀자!”

“노, 놀아···?”

“그, 그게 뭐야?”

“노는 게 뭔지 몰라?”

“응···.”

“이리 와바!”

루벤의 아이들이 드워프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리고.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

그런 아이들과 놀아주는 레아까지.

문제는 저리 말하면서 진짜 다리를 없애버렸다는 것인데···.

모르는 이가 본다면 상당히 섬뜩한 장면이었다.

“잡히면 안대!”

“다들 도망쳐어어!!”

하지만 아이들은 무서워하기는 커녕.

꺄르르, 웃으며 레아로부터 도망쳤다.

그간 생활 속에서 레아와 친해지기도 했거니와.

특히 누르비아와의 전투에서 레아가 어떤 존재인지, 사람들은 똑똑히 알 수 있었으니까.

루벤의 수호령.

이제 레아를 두려워하는 영지민은 아무도 없었다.

-잡았다!!

“안대!! 얘들아 구해조!!”

“받아라! 영주님 필살 비기! 수라쵼살!”

-끄아아아아악! 당했다!

뭐··· 애들 놀음은 확실히 애들 놀음이긴 했다만.

시안은 괜시리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벤의 병사들이 소리쳤다.

“어허! 수라쵼살이 아니라 수라천살이야 얘들아!”

“크으···! 그때 영주님 엄청나셨지.”

“영주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이 천재 두라스님이 그 광경을 제대로 보여줄테니 잘 봐!”

이윽고 영지의 병사, 두라스가 근처 나무 막대기를 집어들었다.

시안은 그런 두라스의 뒤통수를 때렸다.

“에라이! 적당히 해 이 새끼야!”

“어억!”

시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두라스가 꼴 나삽게 바닥을 나뒹굴렀다.

“푸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웃음.

그렇게 인간과 드워프.

그리고 유령까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서로 얽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루벤의 풍경.

더 이상 생존만을 갈구하던 루벤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상처받은 이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알았고.

그로써 더욱더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영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거두어주셔서.”

“영주님 덕분에 진짜 살 맛이 난다니까. 이게 사는 게 아닌가 싶어!”

“좋아! 다들 잔 들어!”

드워프, 크마루가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탁자 위에 올라섰다.

이윽고 숨을 ‘흐으읍···!’ 크게 들이쉬더니 천둥 같이 소리쳤다.

“시안 영주님을 위하여!!!!!!!”

위하여!!!!!!!!

루벤 전역으로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건배사.

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버렸다.

가진 것 하나 없던.

재능 하나 일절 없던 시안이었건만···.

지켜주고 싶다.

저들의 웃음을.

내 영지.

내 사람들.

현재 루벤은 완전하지 않았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지난 누르비아를 패퇴시키긴 했으나.

여전히 마수들은 위협적이었으니까.

물론 레아가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마수뿐만 아니라.

슬슬 루벤을 노리는 다른 세력들도 생길 터였다.

이렇게 발전을 이룩한 루벤은 잘익은 먹잇감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루벤에서 행해지는 첫 축제.

이 축제를 이번 한 번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적당히들 먹어! 그거 다 돈이야!”

시안은 부지런히 골드를 벌어야했다.

#

엘란두르 후작령에 위치한 엘란두르 본가.

그리고 그런 거대한 저택의 안쪽.

그곳에 엘란두르의 총관, 레리트가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레리트와 마주친 시녀와 시종들이 걸음을 비켜서 고개를 숙여보였다.

평소라면 작게나마 화답을 했겠지만 레리트는 지금 그럴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도달한 문 앞.

레리트는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문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군지 알았으니까.

어쩌면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조차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똑똑.

-들어와라.

역시나 노크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리트는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달칵, 하며 열리는 문.

그 사이로 레리트는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짙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물.

듀라크 엘란두르.

이곳 엘란두르 가(家)의 가주이자.

명실상부 제국 제 1의 검.

“부르셨습니까.”

레리트는 곧장 고개를 숙여보였다.

듀라크는 그런 레리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안을 만나봐야겠다.”

그것이 끝이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

그렇기에 레리트는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듀라크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듀라크는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그것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누굴 만나겠다고 말한 적은 손에 꼽았다.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카이 엘란두르.

그 말고는 없다고 봄이 옳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체···.

레리트는 놀란 심정으로 듀라크를 바라봤다.

그러나 여전히 듀라크는 별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레리트는 천천히 방 문을 나섰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