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현질의 루벤(3)
레아는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루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레아는 천 년동안 전당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을텐데?
어떻게 루벤을 알고 있는 거지?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그럼!
시안의 물음에 레아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어둠의 숲이잖아.
“그건 맞습니다만···.”
시안은 살짝 말을 흐렸다.
그러자 레아가 옛날 생각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천 년전에 여기서 악마들과 최후의 전투를 벌였거든. 그때 진짜 난리도 아니었지.
“아···.”
시안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레아는 루벤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이곳.
어둠의 숲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기사 천 년전에 루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레아가 어떻게 루벤을 알고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악마들을 없앤 곳이 여기였어. 그 때문에 여기가 어둠의 숲이 되었지.
“원래는 여기가 어둠의 숲이 아니었나요?”
-원래는 대륙에서 가장 푸르른 산맥과 숲이 이어진 곳이었어. 엘프와 드워프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지. 엘로디와 모르크루의 고향이 여기인걸?
“오···.”
저건 신화 속에서도 전해지지 않는 비화.
-어둠의 숲으로 변질되고서는 다들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그런데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사는 영지가 생겼을 줄은 몰랐는데.
레아는 신기한 듯 루벤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그 순간.
“영주님. 여기 계셨군요.”
한 쪽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아멜리아가 시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트롤 사체는 조금 특별하게 관리해야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피가 귀하다보니···.”
트롤 사체의 처리에 관해 상의를 하려는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천천히 시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칫.
“······?”
아멜리아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일단 첫 번째로 시안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이 바위는 고개를 끝까지 들어올려야 그 끝이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심지어 검푸른빛이 감도는 것이 어째 마나석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마나석이 대륙에 존재했던가···?
무엇보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없었는데?
이걸 대체 어디서···?
아니, 그래.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갑자기 없던 바위가 튀어나온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령 저게 마나석이라도 거기까지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시안이 또 무언가를 했겠지.
그간 시안의 행보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놀람의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마나석 앞에 있는 존재.
긴 백은색의 머리와 고혹적인 외모.
그 미모는 가히 아름답다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체가 흐릿흐릿한 것이 사람이라 하기엔 미묘했다.
또한 그녀의 두 눈.
빛 아래로 비쳐보인 그녀의 두 눈은 짙은 회백색이었다.
그건 마치 얼굴에 묘비 두 개를 박아넣은 것처럼 섬뜩했다.
그렇기에 저건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존재.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말하길.
“······ 귀신?”
··· 이라 표현했다.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날카롭게 선 공포가 아멜리아의 몸을 옭아맸다.
‘아 맞다.’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시안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아멜리아에게 레아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멜리아는 레아를 본 적이 없었다.
레아가 존재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레아의 존재를 아는 이는 현재로서 둘.
시안 그리고 성녀 아리아였다.
-안녕?
레아가 아멜리아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딴에는 반갑게 인사한 모양인데
문제는 그 눈이 초점없는 회백색이라는 것이었다.
광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면 저렇게 섬뜩한 것이 또 없었다.
“아··· 아아···.”
아멜리아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마주하는 공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응? 너 어디 아프니?
레아가 걱정스럽게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코 앞에서 마주하는 레아의 짙은 회백색의 두 눈.
털썩.
아멜리아가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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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멜리아는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공포에 기절한 터라 큰 이상이 있겠느냐마는.
뭐 아무튼.
아멜리아는 시안에게서 레아의 존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샤, 샤, 샤를롯 대제의 여동생분이시라고요!?!”
아멜리아는 다시 한 번 놀라 혼절할 뻔했다.
-잘 부탁해!
“히익!”
그렇게 첫 루벤의 영지민과 인사를 나눈 레아.
레아는 앞으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루벤을 훑어보았다.
“이제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다나님?”
“네.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몸이 좋아졌어요. 정말 고마워요 엘리양.”
-이 회복의 기운은 대체··· 역겹지도 않고 포근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거지?
“오? 이 단조철. 병사들 무기 만드는데 사용하면 좋겠는데?”
“음··· 그런데 아직 다루기가 조금 힘들어.”
-단조철···? 그거 드워프들이 제련해야 얻을 수 있는 거였는데···?
“으쌰! 곡괭이가 아주 쑥쑥 박히는 구만.”
“영주님께서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에? 이 마나석들은 대체···? 심지어 이 기운은 마기?
“어이! 이번에 옥수수를 수확할 차례인가? 수확할게 워낙에 많아서.”
“농지가 바뀌더니 작물도 쑥쑥, 자라는 구만!”
-말도 안돼! 어둠의 숲은 저주받은 땅인데? 어떻게 농작물이 자랄 수가 있는거야?
“하하하! 이번에 영주님이 데려온 꼬맹이 정말 대단한 걸! 그 녀석이 알려준 방법을 쓰니까 얌전하잖아!
“이러면 슬슬 마수를 노동력으로도 쓸 수 있겠는데?”
-마수가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다고? 어떻게 그런···!
“여러분들! 모두 밥 드세요!”
“밥이다! 으아아아!”
“모두 비켜! 내가 먼저 먹을 거야!”
-맛있어 보여···!
“아아···! 바로 이 맛이야!”
“내가 진짜 이 밥 한끼 때문에 산다니까!”
“하하하하하핫!!”
죽음의 공간, 어둠의 숲.
그런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이곳은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차있어야했다.
하지만 레아가 바라본 루벤은 그렇지 않았다.
고단하지만 평범한 일상.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작지만 분명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열악하지만 따뜻함이 머무는 루벤.
“저 한 그릇만 더 주세요!”
“두라스, 넌 걸신이라도 들렸냐? 그만 좀 쳐먹어라!”
빠악!
달려가는 두라스의 뒤로 누군가 뒤통수를 쳐보였다.
“아악! 어떤 새─!”
눈을 부릅, 뜨고 바라본 시야.
그곳엔 시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서있었다.
두라스가 슬며시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 가 날아든지 모르겠지만. 치사하게 왜 먹는 걸로 그러십니까 영주님···.”
“치사하긴 염병. 저번에 트롤 상대하고 나더니, 왜 이렇게 많이 쳐먹는거야?”
“맛있으니까 그렇지 말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쳐먹어야지. 너 어제인가? 꾸역꾸역 쳐먹더니, 훈련 받다가 결국 다 토한 거 기억 안 나?”
“그, 그건···.”
당황하는 두라스.
“그러다가 밥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혹시 토 또한 맛있지 않을까···? 하면서 토를 쳐먹었잖아!”
“그, 그, 그건 단순한 호기심에···! 금방 다시 뱉었습니다!”
“다시 뱉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대체 왜 쳐먹냐고!”
“푸하하하하하!”
급식소의 사람들이 저마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그 순간.
-시안!
갑자기 레아가 시안의 앞에 나타났다.
귀신이라 그런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레아였다.
아까 전에 루벤을 둘러보겠다며 사라지길래 어디갔나 했더니만.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아를 바라봤다.
이윽고 레아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나 여기 정말정말 좋아!!
그러면서 레아가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꽤나 행복해보였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루벤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만, 한 가지.
“귀, 귀, 귀 귀신?!?”
“히이익···!!!”
“도, 도망쳐!!!”
루벤의 영지민들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반응조차 즐거운 것일까.
-내가 바로 천 년 묵은 귀신이다!
레아는 소녀처럼 꺄르르, 웃으며 도망치는 영지민들을 놀래키고 있었다.
“······”
시안은 뭐하는 건가 싶었다.
무슨 애도 아니고.
나이만 따지면 무려 천 살인데···.
“하긴.”
천 년동안 전당에만 홀로 있었으니.
사람이 그리워도 한참이나 그리웠을 터였다.
다행히 루벤도 마음에 들어하겠다.
여기서 지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음···.”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하나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마나석이 마기를 계속해서 방출한단 말이지.”
레아의 말마따나 마나석은 계속해서 마기를 방출했다.
다행히 마기가 넘치는 어둠의 숲인지라.
마나석에서 빠져나간 마기는 다시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레아가 소멸되는 것은 걱정 없었다.
하지만 걱정은 이 방출되는 마기였다.
레아의 원념에 비례해 경이로운 마기를 축적하고 있는 마나석.
방출되는 마기 또한 그에 비례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나석과의 거리가 꽤 있음에도.
저릿저릿한 마기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시안은 상관없었다.
마혼제법을 수련하고 있는 지금.
이 마기를 컨트롤 할 수 있었고.
또한 정신이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루벤의 영지민들은 아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영지민들이 마기에 침식되어 전부 미쳐버릴 터.
한 마디로 레아를 영지에 두기가 곤란했다.
“음···.”
시안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것일까.
정확히는 시안이 무얼 고민하는 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안될까? 나 진짜 여기서 너랑 살고 싶어···.
레아가 초조하게 물어왔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정말로 루벤이 좋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시안 또한 레아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마나석을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
‘어쩌지···.’
그렇게 고민만 깊어지던 그때.
띠링!
돌연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뭐지?’
시안은 스마트 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말도 안되는 현질을 해버린 당신!》
《영지의 발전 수준이 한계점을 맞이했습니다!》
띠링!
《영지 등급이 ‘부락 → 마을’ 로 변경되었습니다!》
《마을 등급에서 건설 가능한 시설들이 개방됩니다!》
그러면서 【영지 시설】 항목에 새로운 건물들이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영지 발전 수준에 맞춘 등급이 있었던 모양.
이번 현질과 맞물려 제리의 활발한 연구 덕분에 등급이 변경된 듯 싶었다.
‘그보다 부락 취급을 받고 있었어?’
뭐··· 그럴만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안은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시안은 추가된 시설들을 확인했다.
꽤나 많은 시설들이 추가된 【영지 시설】 항목.
하지만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시설이 하나 있었다.
『《영주관 Lv.1》 (450,000G)
▶당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요!
설마··· 그냥 평범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만일 그렇다면 지금 당장 뛰쳐나오세요!
설마 영지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평범한 집에 모셔놓을 생각은 아니시죠?
영주는 영지를 대표하는 존재!
그야말로 영지의 얼굴!
영주의 품위에 따라 영지의 품격도 결정된다고요!
검소하게 사는 게 반드시 미덕은 아니랍니다!』
- (기본 효과) 영지의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기본 효과) 영주 관련 편의 시설들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 (기본 효과) 영지의 시설들을 Lv.3 까지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
.
“음?”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큰 효과는 없는 시설이었다.
말 그대로 영주의 품위와 관련된 시설인 모양.
하지만 이것 하나.
- (기본 효과) 영지의 시설들을 Lv.3까지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업그레이드에 제한이 있었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보아하니 Lv.2가 마지막이었던 모양.
이윽고 영주관에 설치할 수 있는 각종 편의 시설들
휴게소, 개인 연무장 등.
말 그대로 편의 시설이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시설이 시안의 눈에 들어왔다.
『《영주관의 결계석》 (30,000G)
▶영주관은 영주가 살고있는 공간!
그런 공간은 다른 곳과는 달리 더욱 특별해야하죠!
이 영주관의 결계석은 마나석의 마력을 기반으로 영주관에 결계를 형성한답니다!
마나석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결계의 등급도 향상!
밤에 두 발 뻗고 자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
.
“영주관의 결계석?”
정확히는 결계석이 아니라.
결계를 만드는 방이라 할 수 있었다.
지하에 착공하는 형식으로 내부의 구조가 꽤나 거대했다.
거진 공동이라 부를만한 크기.
그 안에 마나석.
그러니까 결계석을 끼우면 결계가 작동되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결계석의 등급에 따라 결계의 등급도 결정되는 모양.
“이거라면···?”
레아의 마나석을 끼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끔찍한 마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터.
심지어 그 마력이 결계로 변환되는 터라, 영주관에 있는 이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터였다.
설계도를 보아하니 얼추···.
레아의 마나석이 들어갈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45만 골드에 3만 골드라···.”
문제는 그렇게 넓은 만큼 가격이 미쳐 날뛴다는 점이었다.
도합 48만 골드의 가격.
시안은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금화를 확인했다.
[보유 중인 금화 - 500,000 G]
50만 골드.
부락에서 마을로 발전시키는데 무려 55만 골드를 사용한 셈이었다.
샤를롯의 긍지를 더하면 무려 105만 골드를 현질한 셈.
어쨌든 영주관을 구매하면 고작 2만 골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영지 유지 관리비를 생각하면.
2만 골드는 함부로 현질할 수 없는 돈이었다.
사실상 모든 돈을 털어버리는 셈.
‘딱히 지금 영주관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지내는 곳이 불편하지 않았고.
지금 당장 추가로 업그레이드할 시설들은 없었다.
언젠가는 구매해야겠지만.
지금 굳이 48만 골드를 지불하면서까지 영주관을 지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저 돈은 따로 쓸 곳을 정해두었었다.
[광고 제거 + 무제한 성장 버프 사용권 (500,000 G)]
다름 아닌 광고 제거와 무제한 성장 버프 사용권.
마혼수라검과 더불어 마혼제법을 수련하고 있는 지금.
시안은 정말이지 하루가 빠듯했다.
영지 관리 하랴.
수련 하랴.
영지민들 문제 해결해라.
샤를롯의 버프를 적용받고 있음에도 하루가 빠듯했다.
하지만 뭐.
‘까짓 거. 광고 좀 보고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지.’
무엇보다.
-방법이 없어···?
레아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 년 동안 홀로 카일을 기다려온 레아.
그 지독한 외로움에서 레아가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시안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시안을 만났고.
그런 시안을 따라 루벤에서 사람들의 정을 느꼈다.
-나 진짜진짜 여기서 살고 싶어···.
저렇게 좋아하는 레아의 모습.
어떻게 그냥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뭐.
엄밀히 따지면 이 돈도 레아가 전당을 털어서 준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레아를 위해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방법을 찾은 것 같네요.”
-정말? 진짜?
시안의 말에 레아가 뛸듯이 기뻐했다.
“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가 진짜 잘할게! 누가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말만해!
레아가 허공을 이리저리 부유하며 소리쳤다.
천 년의 원귀, 레아.
아리아조차 어찌하지 못했던 레아는 대륙에서 감히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마스터 상급의 듀라크.
8위계(位界)에 닿은 에그리트.
그 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가 해코지 하려들면 내가 다 지켜줄게! 넌 걱정하지마!
시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해코지할 사람이 없어서 시안을 해코지하겠거니와.
루벤까지 해코지하러 오는 미친 놈이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저 멀리.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나는 아멜리아를 불렀다.
“아멜리아.”
“핫! 네, 넵?”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흠칫 놀라보였다.
그리고는 슬쩍, 레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레아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저번에 말했던 트롤 사체 말이야.”
“아, 그거요.”
아멜리아가 곧장 말을 이었다.
“잠시 보류하려고요. 아무래도 팔지 못한 마나석도 있고. 무엇보다 현재 돈도 많으시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가 알고 있는 것만 무려 155만 골드였다.
155만 골드.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러니 당분간 돈 걱정은 없을─.
“바로 팔자.”
“네?”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왜긴.”
시안은 가만히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흠칫!!
그런 시안의 시선에 아멜리아가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떨리는 아멜리아의 두 눈동자.
그 사이로 어떤 끔찍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닐거야. 절대 아닐거야.
아니어야만 해.
아멜리아는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시안의 입만 바라봤다.
그리고 열린 시안의 입.
“돈 다 썼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멜리아는 단번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말이 안되었다.
155만 골드가 당최 어떤 돈인 그걸 다썼단 말인가.
지금 당장 아멜리아한테 쓰라고 해도 던져줘도.
아마 평생토록 쓰지 못할 돈이었다.
그런데 그걸 고작 며칠 사이에 다 썼다고?
‘에이, 말이 안되지.’
아멜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 마나석도 같이 좀 팔아줬으면 좋겠는데.”
어째, 시안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끔뻑끔뻑 거리는 두 눈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러자 시안이 살며시 그런 아멜리아의 시선을 회피했다.
“······”
진짜 뭐하는 새···.
아니, 사람일까.
이걸 두고 밑 빠진 독이라 하는 걸까?
이 정도면 그냥 밑이 박살난 게 아닌가 싶은데.
털썩.
아멜리아의 정신이 그대로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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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을 꼽으라면 누구나 3가문의 이름을 댄다.
검술 명가, 엘란두르.
마법 명가, 로르실트.
그리고 제국의 심장, 황가.
그러나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세력’을 꼽으라면.
여기에 덧붙여지는 이들이 더럿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 달(Shadow Moon).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이자.
암흑가를 지배하는 지하 세계의 길드였다.
그런 그림자 달 길드가 위치한 암흑 도시, 베네르.
그리고 그런 베네르에 위치한 어느 한 어두운 골목길.
“의뢰인가?”
커너는 벽에 기대어 서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였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커너에게 건넸다.
커너는 그 내용을 확인했다.
“시안 엘란두르를 죽이라고?”
커너는 살짝 놀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
사내는 간단하게 답을 해보였다.
커너는 가만히 사내를 바라봤다.
그림자 달 길드 소속이자.
암살자로 활동하고 있는 커너.
대가만 확실히 지불한다면야 능력이 닿는 선에서 어떤 의뢰든 수행한다.
그런데.
“굳이 내가 해야할 이유가 있나?”
이번에는 조금 의아했다.
“고블린 잡는데 오우거 잡는 칼을 쓰는 것도 정도가 있지.”
커너는 특급 암살자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의뢰도 실패하지 않은 특급 중의 특급 암살자.
시안을 암살하는데 있어 굳이 커너를 쓸 필요가 없었다.
이는 말 그대로 고블린 잡는데 오우거 잡는 칼을 쓰는 격.
의뢰인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전혀 안 맞았다.
“확실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으니까.”
사내는 간략하게 답을 해보였다.
그럼에도 커너가 이해하지 못하자 사내가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길드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의뢰다.”
“······ 길드장이?”
커너는 잠시 말 문이 막혔다.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
흔히 암흑가라 함은 범죄나 폭력.
각종 불법 행위가 판을 치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런 암흑가에 살아가는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인은 고사하고 고문, 강간, 납치.
창의적인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놈들이었다.
그러면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으니.
그야 말로 짐승.
심히 개새끼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는.
그런 개새끼들이 날뛰는 암흑가에 단신의 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광기에 미쳐있는 개새끼들을 모조리 짓밟았고.
혼돈으로 가득찬 암흑가에 ‘규칙’ 이라는 것을 부여했으며.
끝내 암흑가의 정점에 올라선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부여한 규칙.
그건 무분별한 범죄 행위를 억제하는 것으로 그 때문에 커너는 다이애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담아둘 뿐이었다.
마음에 안든다고 규칙을 어기는 순간.
그대로 모가지만 날아갈 것이 분명했으니까.
어쨌든 그런 다이애나가 직접 관리하는 의뢰.
그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의뢰인도 평범한 자가 아니군.”
“의뢰인에 대한 사항은 극비다.”
사내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커너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자 달 길드장과 접촉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물다.
높디 높으신 분.
제국을 쥐락펴락할 정도가 아니면 불가하다.
그리고 그런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에 시안이라는 요소를 대입하면···.
커너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의뢰가 들어왔으면 수행을 하면 그뿐.
커너는 사내에게 물었다.
“의뢰비는?”
“20만 골드. 선불로 주지.”
사내는 전표 하나를 커너에게 건넸다.
커너는 눈을 크게 떠보였다.
20만 골드.
이건 의뢰비치고 상당히 과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뒤가 구린 의뢰.
하지만 뭐.
상관 없지 않은가.
커너는 전표를 품 속에 넣었다.
“금방 끝내고 돌아오지.”
이윽고 커너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