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현질의 루벤(1)
저 먼 시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아직 거리가 있는 터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루벤의 풍경조차 정겨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
바로 그때.
“저기···.”
옆으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곳.
그곳엔 단아한 분위기의 여성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제리의 어머니, 다나였다.
다나는 많이 회복을 한 상태였다.
피골이 상접했던 얼굴엔 적당히 살집이 붙었고.
초췌했던 혈색 또한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진 미라나 다름 없던 지난 번과는 달리.
지금 다나는 그래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안심이 되었던 걸까.
제리는 그런 다나의 무릎에 누워 자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회복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쾌적한 치료원에서 엘리의 보살핌을 받으면 곧 회복할 터였다.
“저곳이··· 루벤인가요?”
다나가 시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다나의 얼굴에는 어딘가 두려움이 엿보였다.
시안을 두려워한다기 보다는 이곳.
어둠의 숲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에게는 고향 같은 영지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제국조차 어찌하지 못했던 금기 구역.
그런 금기 구역에 자리한 루벤은 그야말로 죽음의 영지였다.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거늘.
하물며 그 정착지가 어둠의 숲이라면야.
그런 다나의 걱정을 알아챈 것일까.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하시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으니까요.”
시안의 옆으로 아멜리아가 붙으며 다나를 달랬다.
그러자 다나가 오해를 했다는 듯 손사래를 쳐보였다.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험한 곳에서 저처럼 아픈 사람이 있으면, 괜히 발목을 잡을까··· 그게 걱정스럽네요.”
다나는 그러면서 상당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듯 소리쳤다.
“설마요. 그춍 영중님?”
그리고 시안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어왔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런데···.
“넌 아까부터 자꾸 뭘 먹는 거야?”
“넹? 아, 이겅용?”
꿀꺽.
“샌드위치요.”
“샌드위치?”
시안은 그때서야 아멜리아 손에 들려있는 샌드위치를 볼 수 있었다.
“다나님이 만들어 주신 건데. 지이인짜 맛있어요.”
그러면서 아멜리아가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었다.
“음···! 정말 너무 맛있어요!”
“맛있게 드셔주시니 제가 더 기쁘네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다나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아멜리아는 샌드위치를 다시 한 입 베어물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맛에 발을 동동, 굴러보였다.
“영주님도 한 번 드셔보세요! 진짜! 지인짜 맛있어요!”
“하나 드릴까요?”
다나는 시안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건넸다.
시안은 다나가 건네는 샌드위치를 받아들었다.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샌드위치.
시안은 별 기대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었다.
바삭.
···하며 씹히는 빵.
이어 그 안의 재료들이 펼치는 조화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 미친.”
확실히···.
아멜리아가 호들갑 떨 만했다.
“그쵸? 진짜 맛있죠?”
시안은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먹어치웠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샌드위치.
다나가 어머니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많이 만들었는데, 더 드릴까요?”
“저 더 주세요!”
아멜리아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더 가져갔다.
시안은 감탄스러운 얼굴로 다나를 바라봤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엘란두르의 저택에 있는 수석 쉐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제리의 손재주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이윽고 다나가 시안에게 말했다.
“혹시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만하세요. 영주님께는 정말··· 갚을 수도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 이렇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다나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다나를 바라보던 시안.
‘잠깐. 이러면···.’
시안의 머릿속으로 퍼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다름 아닌 영지에 있는 배식소 Lv.1.
영지의 음식을 담당하고 있는 시설로서.
영지민들의 만족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간 루벤에서 끼니를 때우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평범함에 비추어보았을 땐.
여전히 열악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루벤에 딱히 이렇다할 식재료가 없었으니까.
오죽하면 아멜리아가 루치아에 가자마자 입을 비죽였겠는가.
심지어 실력 좋은 요리사도 없어 추가 효과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 특별한 재료 없이 이 정도의 맛을 내는 다나의 솜씨.
만일 그곳을 다나가 운영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현질을 해야할 것 같았다.
‘딱 기다려라.’
시안은 품 속의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달래고 있자니.
어느덧 루벤의 풍경이 가까워졌다.
이제 한 눈에 보이는 루벤의 풍경.
그리고.
“······ 어라?”
그 풍경을 바라본 시안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루벤의 풍경이··· 조금 이상했으니까.
부러져 산산히 조각나버린 나무들.
땅을 통째로 뒤집어 엎은 듯한 흙 잔해들.
심지어 루벤을 둘러싼 튼튼한 목책 Lv.1.
그것들의 대부분이 부서져있었다.
“뭐, 뭐죠···?”
아멜리아 또한 놀라며 물어왔다.
시안은 대답 대신 마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시안은 루벤의 앞에 나와있는 병사들과 영지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
“여, 영주님?”
“영주님이다!”
시안을 발견한 사람들이 놀라소리쳤다.
#
“이봐! 다들 나와봐! 영주님께서 돌아오셨어!”
“영주님이?”
“어디 어디!”
시안이 왔음을 알리는 외침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보아하니 루벤의 거의 모든 이들이 나와있는 것 같았는데···.
“영주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영주님이 안 계시니 많이 섭섭했습니다!”
박살이 나버린 풍경과는 달리.
그래도 분위기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사람들 사이로 한 노인이 걸어나왔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다름 아닌 한스였다.
한스는 천천히 시안에게로 걸어왔다.
그런데 어째, 건국일 행사에 다녀온 사이 한스가 폭삭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원체 늙었긴 했다만.
지금은 진짜 오늘 내일 할 것만 같았다.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안이 묻자 한스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크게 걱정하실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스가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루벤에 마수가 너무도 많이 습격해왔습니다.”
“마수가?”
시안은 의문을 표함과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참하게 박살이 난 풍경.
아무래도 전투의 흔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습격해오는 것도 모자라, 얼마 전엔 트롤 무리들이 습격해왔습니다.”
“뭐? 트롤까지?”
시안은 크게 놀라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트롤은 결코 만만히 볼 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트롤이라함은 그 특징으로 재생력을 꼽는다.
잘린 팔 다리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재생력.
그 때문에 트롤의 피는 포션의 재료로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이곳은 다름 아닌 어둠의 숲.
광폭화(Over Drive)가 이루어진 마수는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한 마디로 어둠의 숲에서 트롤은 죽지 않는 불사체나 다름 없었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신기전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 슬슬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라는 것이 한스의 설명이었다.
“흐음···.”
시안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마수가 습격을 해온다고? 지난 번에 오크 부락을 궤멸하면서 잠잠해졌잖아.”
물론 계속해서 잠잠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아무리 어둠의 숲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마수가 들끓을 이유가···.
“그레이슨이 말하길, 숲 안 쪽에 자리잡은 강대한 마수가 움직였다고합니다.”
“아···.”
시안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둠의 숲 안 쪽에 자리잡은 강대한 마수.
그 때문에 영역에서 밀린 마수 무리들이 루벤 쪽으로 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도 마수가 너무 많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한데··· 정확한 사유를 파악하기 위해 현재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조사를 떠난 상황입니다.”
“음···.”
시안은 모든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홀로 조사를 떠난 루카스와 그레이슨.
어둠의 숲을 다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무려 엑스퍼트의 기사였고.
그레이슨은 수 십년간 어둠의 숲에서 살아온 실력 좋은 사냥꾼이었다.
아무리 어둠의 숲이라고는 하지만.
둘은 제 한 몸 건사할 실력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지금 당장 루벤은···.”
한스는 상당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평소 한스답지 않은 분위기.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 것 같았다.
그래도 한스가 적절하게 대처해준 덕에 큰 피해는 없었던 모양.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렇게나···.’
사령영지, 루벤.
정말 한시라도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늦지는 않았다.
시안은 고개를 돌려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아멜리아. 잠깐 제리랑 다나를 부탁해도 될까?”
“알겠어요.”
아멜리아의 대답과 함께 시안은 다시 한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스.”
“말씀하시지요.”
“영지민들이랑 병사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줘. 별 다른 말은 하지 말고.”
“하지만···.”
한스는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확고한 시안의 의지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시안은 곧장 영지 안으로 들어갔다.
#
루벤의 안 쪽으로 들어온 시안.
내부의 사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겉으로는 크게 이상이 없어보였지만,
일부 헤져있는 시설들이 더럿 보였다.
“영지 안 쪽까지 이런 상태라···.”
한스의 말마따나 상황이 꽤나 심각해보였다.
내부를 한 번 둘러본 시안은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곧장 모바일 영주를 실행.
거침없이 【영지시설】 항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수많은 시설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시안은 스크롤을 쭈욱, 내렸다.
이윽고 시안의 눈에 들어온 시설.
『[목책 업그레이드] - 《단단한 석책 Lv.2》 (20,000G)
▶튼튼한 목책은 어떠셨나요!
역시 방어 시설의 근본!
당연히 몬스터 따위는 뚝딱! 해치우셨겠죠?
네에?
몬스터를 뚝딱! 해치우기는 커녕.
목책이 부서져버렸다고요?
오··· 저런!
그러니까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강철과도 같은 강도를 자랑하지만.
진짜 강철처럼 단단하지는 않다고요!
그럼 이게 강철이지 나무겠어요?
하핫!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당신을 위한 업그레이드가 있으니까요!
이름하야 단단한 석책 Lv.2!
빠밤!
이건 말 그대로 단단한 돌로 만든 석책이랍니다!
심지어 초월자들이 가공한 터라 진짜 강철과도 같은 강도를 자랑한다고요!
물론!
이것도 강철에 비하면 강도가 약간 떨어진답니다!
진짜 강철처럼 단단하면 이게 철책이지 석책이겠어요?
하지만 이 석책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
어줍잖은 몬스터 따위 뚜샤뚜샤!
빈집 털이 걱정은 뚝!
이제 단단한 석책 Lv.2와 함께 안심하고 외출해보세요! 』
.
.
다름 아닌 목책의 업그레이드였다.
그 가격만 무려 2만 골드에 달하는 업그레이드.
지난 튼튼한 목책 Lv.1이 5천 골드임을 생각하면, 자그마치 4배나 되는 비용이었다.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사실상 새로 짓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에 지난 날에는 섣불리 업그레이드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꾹.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구매 완료!》
간단한 터치와 함께 구매가 완료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로써 부서진 목책은 알아서 보강이 될 터.
하지만.
“방어 시설을 더 보강해야해.”
시안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마수가 들끓는 어둠의 숲.
그런 마수들을 막기 위해서는 고작 석책만으로는 안되었다.
특히 강대한 마수가 움직였다면.
지금의 방어 시설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깊어요 해자 Lv.1》 (50,000G)
▶적의 접근을 막는 것에는 비단 방벽만이 있는 것이 아니죠!
무작정 벽을 높이기가 어려우신가요?
방벽의 내구도가 심히 걱정되신다고요?
그렇다면 이 해자를 한 번 설치해보세요!
방벽 주위의 땅을 파버려 습격해오는 적들은 모조리 매장시켜버린답니다!
네?
적들이 땅 속에서 기어올라오면 어쩌냐고요?
그런 걱정은 댓츠 NO! NO!
그 깊이만 무려 30M라고요!
빠지면 그야 말로 나락의 구렁텅이!
게다가 물까지 가득 채워져있어 빠지면 그대로 꾸르륵!
익사해버린답니다!
심지어 온도 조절기능까지 있어 펄펄 끓이는 것까지 가능!
어라?
물을 채우면 고여서 썩게 되고.
심한 악취가 나지 않겠냐고요?
오우! 잇츠 노 프라블럼!
이 ‘깊어요 해자Lv.1’은 자동 정화 기능이 있답니다!
사시사철 언제나 맑은 물!
뜨거운 여름 날에는 목욕도 해보세요!
물론 마나를 공급해줄 무언가가 필요하겠지만요!』
.
.
“깊어요 해자? 좋은데?”
방벽 주변의 땅을 파서 적들의 침입을 막는 방어 시설.
이러면 단순히 석책의 내구도만 믿지 않아도 될 터.
심지어 물을 끓일 수도 있다고 하니 공격 기능까지 겸비한 셈.
보아하니 마나 공급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루벤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광산에서 마나석 하나 주워다 끼우면 되었으니까.
결국 문제는 무려 5만 골드나 하는 가격인데···.
꾹.
그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구매 완료오!》
다시 떠오른 구매 완료 알림창.
시안은 계속해서 시설들을 살폈다.
『《다 보여 경비탑! Lv.1》 (30,000G)
▶영지를 습격해오는 적들이 어디에 있는 지 파악하기 어려우시다고요?
방벽은 튼튼히 했는데.
땅굴을 파거나, 하늘을 날아오는 적들이 두려우시다고요?
그렇다면 이 ‘다 보여 경비탑! Lv.1’을 설치해보세요!
이 ‘다 보여 경비탑! Lv.1’은 당신의 영지를 습격하는 모든 적들의 위치를 훤히─.』
.
.
꾹.
《······ 구매?》
갑자기 알림창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림창은 새로운 시설을 추천해보였다.
그리고.
꾹.
시안은 설명이 나오기도 전에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굳이 설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딱 하나.
시설의 성능만 보면 될 뿐.
방어에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싶으면.
꾹.
그냥 구매해버렸다!
그리고.
“아, 이왕 사는 김에 신기전도 몇 대 더 구매해야겠다.”
신기전은 그야말로 성(城)폭행 병기.
그 화력은 어마어마했으나.
보아하니 한 대로는 조금 부족한 듯 싶었다.
그리고 신기전의 가격은 한 대당 2만 골드.
본래라면 한대를 구매하는데 있어서도 손을 부들부들, 떨었겠지만.
꾸구구국.
시안은 5대에 달하는 신기전을 거침없이 구매했다.
《······》
알림창에는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바일 영주가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음···.”
시안은 현질한 시설들을 살폈다.
얼추 이 정도면···.
방어 설비는 완비된 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줄 알았냐?”
시안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냐고?
[보유 중인 금화 - 800,000 G]
인벤토리에는 아직도 80만 골드가 남아있었으니까!
“하하하! 설마 고작 이 정도로 깐족거린 건 아니겠지!”
시안의 두 눈이 희번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도발에 응한 것일까.
띠링!
화면 위로 영지시설의 항목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2라운드!
『[쾌적한 치료원 업그레이드] - 《환상의 치료원 Lv.2》 (5,000G)
꾹.
《구, 구매애!!》
『[대장간 업그레이드] - 《뜨거운 대장간 Lv.2》 (6,000G)
꾹.
《완료오!!》
『[비옥한 농지 업그레이드] - 《풍족한 농지 Lv.2》 (5,000G)
꾹.
《구, 구, 구매···?!》
『[광산 업그레이드] - 《안전한 광산 Lv.2》 (6,000G)
꾹.
《구매!!!》
『[배식소 업그레이드] - 《맛있는 급식소 Lv.2》 (7,000G)
꾹.
《완료오오!!》
『[마수 목장 업그레이드] - 《뛰노는 마수 목장 Lv.2》 (7,000G)
꾹.
《구─.》
『[병사 훈련소 업그레이드] - 《정예 병사 훈련소 Lv.2》 (6,000G)
띠링!
《과, 과도한 현질은 재산 탕진의─!》
꾹.
“응?”
방금 뭔가 다른게 떠올랐던 것 같은데.
알림창이 떠오르자마자 눌러버린 탓에 볼 수가 없었다.
“아 몰라.”
대충 영지에 필요한 거였겠지.
꾹. 꾹.
시안은 거침없이 시설들을 현질했다.
#
시안이 떠나간 자리.
“걱정하지마세요.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다들 마수들에는 도가 트셔서 절대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멜리아는 다나와 제리를 안심시켰다.
다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두려움을 아멜리아는 볼 수 있었다.
“잠시만요.”
아멜리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스에게 다가가 주변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물었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한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어떻게 방법이 없나요?”
“지금으로선 그렇습니다. 보다시피 목책도 거진 다 부서진 터라, 이제 방어를 하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만일 이 상황에서 마수 무리가 한 번 더 들이닥친다면···.”
한스는 차마 뒷말을 맺지 못했다.
끊임없이 들이닥치던 마수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던 트롤의 불사.
만일 신기전의 화력이 없었다면.
그때 끝장이 났을 터였다.
“······”
“······”
한스와 아멜리아의 얼굴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막 영지 다워지기 시작하는 루벤.
건국일 행사도 무사히 마쳤겠다.
앞으로 루벤에게 남은 것은 밝은 희망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여버릴 줄은···.
아멜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였다.
다름 아닌 시안이 떠나간 자리.
시안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영지 안 쪽으로─.
“······ 응?”
아멜리아의 표정이 순간 붕, 떠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의 시야로 보인 광경.
뚝딱뚝딱.
그건 부서진 목책이 알아서 보수되고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작이 나있던 목책이었는데?
자세히보니 보수도 아니었다.
목책보다 더욱 튼튼한 석책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쿠구구구구구궁···!!!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어, 갑자기 뭐야!”
“지진? 아니, 이건 지진이 아닌데···?”
“서, 설마 마수 무리들이 또 습격을?”
“전원 전투 준비!!”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촤라라라락.
쿠구구구궁···!
뚝딱뚝딱.
병사들은 그대로 무기를 내려보였다.
루벤 전체로 펼쳐지는 장엄한 광경.
언제고 한 번 겪어봤던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루벤 자체를 아예 갈아엎는 수준.
촤라라락!
뚝딱뚝딱.
루벤 전역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났고.
파바바바박!
쿠구궁···!
방벽 주변의 땅이 갈리며 깊은 해자가 만들어졌다.
그 모습은 영지를 넘어서···.
요새(要塞).
그것도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새롭게 태어나는 루벤.
루벤이 새로이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쩌억, 벌어지는 사람들의 입.
경악 어린 시선.
“마, 말도···말도···.”
“어억···!”
“이, 이 무슨···!”
어느 누구도 제대로 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