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아르나이즈 유산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천 년전.
아르나이즈 카일은 자신의 유산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어떤 모종의 진실을 마주하고서 말이죠.
카일은 그 진실을 다른 아르나이즈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떠나야만 했던 카일.
과연 그가 마주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흔적을 찾아 진실을 밝혀내세요!』
<보상: ???>
.
.
-카일이 무엇 때문에 나를 떠나야 했는지 알고 싶어.
이윽고 들려오는 레아의 목소리.
레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천 년도 더 지난 일이고. 또 그래서 이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 해서 나도 포기했던 일이지만···.
레아는 차분히 시선을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천 년의 세월이 흘러 나타난 시안.
시안은 아득한 세월에 묻혀 사라진 이야기를.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레아의 존재를 알아주었다.
무엇보다.
시안은 카일의 후계자.
그러니.
-너랑 함께 하다보면 언젠가 그 진실 또한 알 수 있을 것 같아.
바라본 레아의 눈빛에는 어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너랑 같이 갈래! 나도 데려가 줘!
“어···.”
시안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스토리 연계 퀘스트.
아무래도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엔 그나마 내용이 있었지만.
그냥 찾으라는 말 뿐, 사실상 지난 번처럼 내용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마 조디악 소드의 선택처럼.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만 제대로 된 내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안을 따라오겠다는 레아.
조금 뜬금 없긴 했지만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천 년의 원귀, 레아.
레아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현재 대륙에서 레아를 대적할 자가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
저기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아리아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광기에 미쳐있다면야 상당히 위험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레아가 따라와준다면.
상당히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좋습니다.”
시안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나 안 데려가면 유산이 어디에 있는 지 안 알─. 어어?
“같이 가시죠.”
-저, 정말?
“네.”
시안이 단번에 수락할 줄 몰랐던 걸까.
레아는 상당히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그런 레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저를 따라오시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잠깐만.
그러면서 레아가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졌다.
그렇게 잠시 레아를 기다리자니.
쿠구구구궁···!
갑자기 전당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전당 한 쪽의 바닥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겉보기로는 커다란 바위의 무엇이었다.
특히나 검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이···.
“······ 마나석?”
마나석의 성질과 굉장히 흡사했다.
시안은 솟아오른 바위 위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손 끝으로 느껴지는 마력.
역시나.
이건 마나석이었다.
“그런데 무슨 크기가···.”
시안은 한 발 물러나며 마나석의 크기를 가늠해보았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끝이 보일 정도의 크기.
심지어 그 안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은 최상급은 커녕,
등급조차 감히 매길 수 없는 마나석이었다.
바로 그때.
-이게 내 본체야.
어느덧 모습을 드러낸 레아가 말했다.
보아하니 이 마나석이 레아를 담고 있는 그릇인 것 같았다.
하기사, 레아는 무려 천 년의 원귀.
그런 레아를 담을 수 있는 마나석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이걸 가져가면 돼.
이걸 대체 어떻게 가져간단 말인가!
못 가져간다.
이건 절대 못 가져간다.
그 순간.
-크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마.
레아가 시안에게 무언가를 건네보였다.
‘······ 주머니?’
그건 작은 주머니였다.
주먹보다 조금 큰.
시안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 주머니와 모양도, 크기도 비슷한 주머니였다.
-여기다 저걸 넣으면 돼.
“······ 네?”
시안은 레아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주먹보다 조금 큰 주머니.
바위만한 마나석.
애시당초 말이 안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시안의 의문을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레아가 한 쪽 구석에서 수박한만 크기의 돌덩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거침없이 돌덩이를 주머니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자.
쑤욱.
하면서 돌덩이가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 아공간 주머니?”
시안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공간 주머니.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주머니였다.
현재 대륙에는 이와 비슷한 마도구가 있었다.
무게를 감소시키고,
부피를 줄여 수납할 수 있는 아공간 주머니.
마도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마도구로서,
그 가격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만들 수 있는 존재도 몇 없었거니와.
애초에 만들어도, 팔지를 않았으니까.
레아가 건넨 주머니는 바로 그런 아공간 주머니였다.
아니, 이건 그런 아공간 주머니 정도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대륙에 존재하는 아공간 주머니와는 결 자체를 달리했다.
아공간 주머니는 이렇게 크기 차이가 확연한 것을 수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말 그대로 다른 공간과 연결하는 차원 주머니.
그리고 이게 가능한 순간.
그건 더 이상 ‘마도구’라 부를 수가 없었다.
아티팩트(Artifact).
이건 마도학의 궁극이라 불리는 아티팩트의 영역이었다.
수많은 마도학자들이 재현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던.
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잔재처럼 남아있을 뿐인.
그 말은 즉.
-오빠가 예전에 쓰던 거야.
이건 샤를롯의 유산이었다.
바로 그때.
띠링!
《인벤토리(Inventory)를 획득하셨습니다!》
갑자기 스마트 폰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인벤토리 수납 가능 공간 (29/30)]
[공간 5칸 확장 업그레이드] - 5,000 G
[수납 무게 1% 감소 업그레이드] - 5,000 G
.
.
‘이거 모바일 영주와 관련이 있는 아티팩트였어?’
그도 그럴 것이 떠오른 알림창.
그건 다름 아닌 아공간 주머니의 업그레이드였다.
그 말은 즉.
이 아공간 주머니가 모바일 영주와 관련있는 아티팩트라는 뜻.
‘음···.’
바로 그때.
띠링!
《들고 다니기 힘드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
.
‘······ 이놈의 현질은 진짜.’
시안은 꾹, 알림창의 X버튼을 눌렀다.
아무튼.
이 아공간 주머니.
그러니까, 인벤토리가 있으면 저 바위만한 마나석을 옮기는 데 문제는 없어보였다.
보아하니 물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하나당 1칸의 공간만 차지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어.
레아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 마나석은 주변으로 계속 마기를 방출하거든. 그 때문에 마기가 계속 소실되고 있어.
이곳 아르나이즈 전당은 결계가 있었기에 큰 상관이 없었다.
빠져나가는 마기를 다시 잡아주었으니까.
하지만 전당 밖으로 나가면 그럴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 이 마나석은 이 전당처럼 결계가 있거나.
혹은 마기가 넘치는 지역에만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은 대륙에서 아예 없다시피 했다.
결국 레아는 이 전당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
-네가 방법을 좀 찾아주면 안될까···?
그렇기에 레아는 시안에게 어렵게 부탁을 했지만.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시안에게는 문제조차 되지 않는 부탁이었다.
다름 아닌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대륙에서 유일하게 마기가 넘치다 못해 들끓는 지역이었다.
레아의 새로운 보금자리로는 더없이 완벽했고.
동시에 시안과 함께하겠다는 뜻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 커다란 마나석을 루벤에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건데···.
‘그건 루벤에 가서 생각해자.’
시안은 일단 생각을 접어두었다.
어쨌든.
레아를 데려가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카일의 유산과 황가의 유산.
-그건 주머니 안에 다 넣어놨어. 한 번 확인해봐.
시안은 인벤토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쑤욱, 하며 인벤토리가 시안의 손을 삼켰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빈 공간.
‘어떻게 꺼내는 거지?’
시안은 잠시 고민 끝에 머릿속으로 카일의 유산을 떠올렸다.
그러자 손에 착, 감기는 무언가.
시안은 그것을 꺼내들었고.
손에 들린 것은 낡디 낡은 책이었다.
오랜 세월에 삭아버린 고서(古書).
겉표지에는 ‘[魔魂制法]’라 쓰여져있었다.
대륙 공용어가 아닌 터라 시안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화아아아악!
갑자기 책에서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빛이 책을 온전히 뒤덮더니 책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띠링!
《카일의 유산, 마혼제법(魔魂制法)을 습득하셨습니다!》
스마트 폰으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수련 항목에 【마혼제법(魔魂制法)】이 추가되었습니다!》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0%]
그렇게 생겨난 마혼제법의 수련 항목.
‘역시··· 마혼제법이었구나.’
카일의 오러 연공법이자.
마기(魔氣)를 다루는 근원적인 방법.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아가 눈을 크게 떠보였다.
-진짜··· 카일의 후계자가 맞구나.
아마 조금은 반신반의 하던 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마혼제법을 흡수하는 모습에 시안이 카일의 후계자임을 이제는 완전히 확신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카일의 유산, 마혼제법(魔魂制法).
샤를롯의 유산, 인벤토리(Inventory).
이제 남은 건 황가의 유산이었다.
다름 아닌 샤를롯이 후손을 위해 남겨두었다던 유산.
시안은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모든 물품들을 쏟아내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도구들이었다.
또한 그 중에는 상당한 양의 보석도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샤를롯이 남긴 유산이라는 것일까.
그 품질 또한 최상급이었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대충 계산해도 100만 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미친···!!”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탄성.
시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어보였다.
시안은 곧 쏟아진 마도구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와는 달리.
모바일 영주에서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아쉽게도 아티팩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평범한 마도구는 아닌 것 같았는데···.
-나도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르는 게 좀 있어.
레아도 딱히 아는 게 많지 않아보였다.
‘음··· 제리한테 한 번 줘볼까?’
마도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제리.
루벤으로 돌아가 엘로디의 연구소에서 연구하다보면 이 용도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 아는가?
제리가 여기에 착안해 엄청난 성능의 마도구를 개발해낼지도?
어쩌면··· 아티팩트의 재현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건 다름 아닌 샤를롯이 사용하던 마도구였으니까.
시안은 그렇게 생각을 굳히며 마도구들을 다시 인벤토리에 담았다.
바로 그때.
시안의 시야로 꽤나 특이한 마도구가 하나 보였다.
나침반 같은 생김새였는데···.
문제는 그 안 쪽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시안은 그것을 레아에게 물었다.
“이건 뭐죠?”
-응? 아, 그거.
레아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주변에 변형된 마기가 있는 지를 측정하는 장치인데. 그러니까··· 악마 탐지기?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는데 까먹었어.
“악마 탐지기요?”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옛날에 악마들의 접근을 알아채는 데 쓰던 거야. 악마가 접근하면 막 요란하게 울려. 예전에 악마들이 사람으로 감쪽같이 변신해서 접근하고 그랬거든. 그래서 필요했던 건데··· 지금은 뭐.
레아는 심드렁한 어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한테는 필요 없을 걸? 카일은 악마의 존재를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챘거든. 그것도 오빠가 쓰던 건데, 엘로디가 버리라는 거, 오빠가 넣어놓고 까먹고 있던 거야.
“버려요?”
-그거 사실 엘로디가 시험 삼아 만든 거거든. 그래서 성능도 썩 좋지는 않아. 나중에 엘로디가 제대로 만들긴 했지만··· 아, 제대로 만든 게 주머니에 있었을텐데?
“아···.”
한 마디로 쓰레기나 다름 없었다.
시험 삼아 만든 것도 만든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악마는 천 년전에 사라졌다.
지금의 시대에선 아무짝에 쓸모 없는 물건.
심지어 카일의 마혼제법을 배우는 시안에게는 아예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버리는 건 아까웠기에.
시안은 대충 인벤토리에 넣어놨다.
이로써.
전당에서 챙길 것은 전부 챙겼다.
건국일 행사도 끝이 났고.
이제는 루벤으로 돌아갈 때.
시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그런데···.’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상당히 거슬리던 시선.
‘쟤는 아까부터 왜 자꾸 힐끔거려?’
그곳엔 아리아가 시안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
시안은 레아의 마나석을 인벤토리에 수납한 뒤 전당을 빠져나왔다.
-주머니에서도 마나석의 마기가 소실돼. 너무 오래 담아두면 소멸하니까 꼭! 꼭 나를 꺼내줘야해!
그렇게 레아는 마나석이 인벤토리에 들어가자마자 존재를 감추었다.
그리고 바위만한 크기의 마나석을 담은 탓일까.
인벤토리에서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마 무게를 완전히 감소시켜주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게 감소 업그레이드를 하든가 해야겠네.’
그래도 아주 못 걷겠다 정도는 아니었기에.
일단은 보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안은 전당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뒤를 따르던 아리아.
“······”
아리아는 지금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2가지였다.
그 중 첫 번째는 역시나 전당에서 있었던 일.
다름 아닌 시안의 행보였다.
아리아가 듣던 시안은 망나니였다.
엘란두르라는 가문의 막내이자.
그 가문에서도 찬밥 취급을 받던 무능력자.
물론 아리아가 직접 경험한 시안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 재수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망나니 소리를 들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아니, 정확히는 원귀와 대적할 당시.
시안은 ‘무능력’이라는 소문조차 완벽하게 부정해버렸다.
자신조차 감당이 불가했던 천 년의 원귀.
시안은 그 원귀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밀려오는 어둠 앞에서도 당당히 맞섰다.
심지어 원귀와 얽힌 이야기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혀내었고.
그녀에게 잠식된 광기를 걷어내었다.
잠식된 광기를 걷어낸다니.
이게 말이 되지 않았다.
마기(魔氣)는 광기의 마나다.
본질부터가 어둠으로 물든 악(惡)의 마나.
그렇기에 마기에 잠식된 이는 반드시 멸해야했다.
그것이 신성 제국 내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오던 율법.
그런데···.
대체 어떻게?
혹시 그 위령제 때문이었을까.
아리아는 아까 전의 위령제를 다시 떠올렸다.
시안이 행한 위령제.
아니, 그걸 위령제라 할 수 있을까.
위령제는 다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고결한 제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다치고 상처받은 영혼이었지.
광기에 미쳐버린 영혼을 정화하는 제사는 아니었다.
그런 위령제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헀다.
정확히는 신성 제국의 그 어떤 누구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시안이 행한 위령제는···.
형식도, 절차도 지키지 않은 초라한 위령제.
그러나 아리아는 그 안에 담긴 시안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진심에 아리아 본인부터가 경건해지지 않았는가.
잊혀지고 버려졌던 이를 외면하지 않았던.
그 어떤 위령제보다 고결했던 시안의 위령제.
아리아는 어쩌면···.
시안이 꽤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아리아는 퍼뜩, 고개를 털어버렸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어쨌든.
아리아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 그 두 번째.
그건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야.”
갑자기 앞선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어? 어?”
아리아는 화들짝 놀라다 못해 당황해보였다.
바라본 시야.
그곳엔 언제 다가왔는지 시안이 아리아 앞에 있었다.
“왜, 왜.”
아리아는 아무것도 아닌 척 대수롭지 않게 답을 해보였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너. 이거 필요하냐?”
정확히는 무언가를 건네면서.
아리아는 시안이 건넨 물건을 살폈다.
나침반처럼 생긴 무언가.
악마 탐지기.
···라고 했던 물건이었다.
그 천년 묵은 귀신이 했던 말이니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 이후로 뭐라뭐라 했던 것 같은데.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 없었다.
만일 저게 악마 탐지기가 맞다면.
저건 아리아가 이 전당에 들어오고자 했던 이유이자.
아리아가 애타게 찾고 있던 샤를롯의 유산이었으니까.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응. 아, 아니?”
“응 아니? 그건 뭐야? 필요하다는 거야, 필요 없다는 거야.”
“상관 없다는 의미···?”
아리아는 짐짓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시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이거 그냥 버려야겠다.”
“뭐? 그걸 왜 버려?”
“나도 굳이 쓸모 없고. 너도 상관 없다며. 그럼 그냥 버려야지.”
그러면서 시안이 휙, 등을 돌렸다.
진짜로 가져다 버릴 기세였다.
“잠깐!”
아리아는 그런 시안을 황급히 불러 세웠다.
멈춰 바라본 시야.
아리아가 살짝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버, 버릴 거면··· 나 주든가.”
그러면서 은근슬쩍 기대하는 눈빛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참 알기 쉬운 성녀라니까.
“줄까?”
그러자 아리아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어보였다.
“굳이 필요는 없는데. 뭐, 준다면야···.”
누가 봐도 필요해보였다.
아니,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이 전당에 들어온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별로 필요 없나 보네. 그냥 이거 갖다 버려야 겠다.”
“그걸 왜 버려!”
아리아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핫!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시안의 시선이 가만히 아리아를 향했다.
“야. 적당히 하고 그냥 필요하다고 말하지?”
더 이상의 연기는 무의미한 상황.
“······ 필요해.”
아리아가 끝내 인정했다.
시안은 진즉에 그럴 것이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필요하면 줄게.”
“진짜?”
“그럼.”
고개를 끄덕이는 시안의 답에 아리아가 얼굴에 화색을 띠며 웃어보였다.
정확히는.
“선제시.”
이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
아리아의 표정에서 정신이 잠깐, 출타했다가 돌아왔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시안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공짜로 받아갈 생각이었어?”
“그런 거 아니었어?”
“얘가 미쳤나.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대륙에 무슨 자선 사업가만 있는 줄─. 아, 너네 신성 제국 교단은 그럴 수 있겠구나.”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마.”
“······”
아리아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