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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41화 (41/322)

§ 41화 - 천 년의 기다림(2)

“너 미쳤어?!”

아리아가 소리쳤다.

시안은 이번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터벅.

그저 터벅.

아리아 앞으로 나서보일 뿐이었다.

시안은 시선을 돌려 원귀를 바라봤다.

원귀는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안을 향한 짙은 회백색의 두 눈이 떨려온다.

그리고 그곳엔 여전히 지독한 분노와 끔찍한 증오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시안은 안에 깃든 또 다른 감정을 하나 더 느낄 수 있었다.

카일은 무려 천 년전의 존재였다.

이제는 죽어 사라진 존재.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카일은 오지 않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닥쳐!!!>

지옥의 이명처럼 길게 울리는 굉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폭사하는 어둠에 두려움과 공포가 파고든다.

이성이 마비되며 생각이 지워진다.

“안되겠어.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에 아리아가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시안은 다시 한 번 그런 아리아를 막아세웠다.

“너···!”

아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여전히 답이 없었고.

터벅.

폭사하는 어둠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시안은 아리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앞의 원귀(怨鬼).

그녀가 그리워하던 남자가 카일인 것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나 딱 그뿐이었다.

원귀는 오랜 세월 원한에 사무쳐 광기에 삼켜졌다.

저건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악귀.

없어져 마땅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시안은 카일의 유산을 찾기 위해 이 전당에 들어왔다.

그리고 퀘스트의 내용에 따르면.

저 원귀를 퇴치해야만, 그 유산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 원귀를 퇴치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마.

지금 이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시안은 분명 그리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시안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이상했다.

황태자 콘라드가 해준 이야기

그건 이 전당에 얽힌 하나의 이야기 였다.

황제조차 탐을 낸 뛰어난 남자와.

그런 남자와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여인의 이야기.

남자는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었고.

여인 또한 남자를 그리워하다 죽었다.

다만, 여인은 남자를 잊지 못하였고.

그 영혼이 이곳 아르나이즈 전당에 잠들었다.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고자.

당시 시안은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는데,

왜 아르나이즈 전당에 잠들었는지가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카일이라면 수긍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아르나이즈 전당에 잠들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아르나이즈 전당에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저 원귀가 만들어낸 결계라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카일이 다른 아르나이즈들에게 부탁해 만든 결계.

즉, 엘로디가 만든 결계였다.

엘로디는 10위계(位界)의 대마도사.

대륙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은 엑시드(Exceed)의 경지.

그런 엘로디가 만든 결계였다.

아무리 원귀가 아리아조차 감당이 불가능한 존재라고는 하나.

엘로디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엘로디가 만든 결계를 뚫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원귀는 전당에 잠들기는 커녕.

애초에 이 전당에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어야했다.

그런데 어떻게 원귀는 이 전당에 잠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 속의 여인은 황가에 대한 원한으로 원귀가 되었다.

자신과 남자.

그러니까 카일과 갈라놓은 원한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황태자 콘라드는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태자가 여기 전당에 들어왔을 당시.

진즉에 저 원귀에 의해 찢어발겨졌을테니까.

지금도 보라.

원귀는 시안을 보자마자 죽이려 들었다.

원귀가 황가에 대한 원한으로 사무쳐있다면.

그 황가의 후손을 용서할 수가 없을 터였다.

아리아조차 감당이 불가능한 원귀.

애초에 콘라드 뿐만 아니라.

현 황제, 발루아가를 포함한 전대 황제들은 모조리 전당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원귀는 그러지 않았다.

되려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그런 것치고는 지금 시안에게는 버젓이 나타났다.

대체 왜?

이 두 가지 물음.

여기서 시작된 의문은.

끝내 시안으로 하여금 진실에 닿게 해주었다.

“당신.”

전제부터가 틀렸다.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저 원귀(怨鬼)는.

“카일이 사랑한 여인이 아니잖아.”

카일이 사랑한 여인이 아니다.

“뭐, 뭐라고···?”

아리아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원귀.

-······

원귀는 말이 없었다.

마치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이게 대체 무슨···!”

그런 원귀의 반응에 아리아가 크게 놀라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

“자, 잠깐···!  그럼 저 원귀는 대체 누군데?”

저 원귀는 누구란 말인가.

이 또한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콘라드가 들려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4명이다.

뛰어났던 남자.

그런 남자를 탐냈던 황제.

그런 남자를 그리워한 여인.

그리고 잊혀진 하나의 존재.

그 어느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존재.

버려진.

“황제의 동생.”

남자와 강제로 결혼한 황제의 동생.

그리고 여기서 남자가 카일이라면.

황제는 당연히 샤를롯이 된다.

그렇기에 저 원귀는 카일이 사랑한 여인이 아니라.

“당신. 샤를롯의 동생이잖아.”

카일과 강제로 결혼했던 샤를롯의 동생이었다.

“무,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아리아가 경악에 가득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래서···. 그래서 뭐가 잘못된건데···.

그리고 이어진 원귀의 반응.

시안은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콘라드는 전당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면서 내용이 변질된 것 같다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추측이었다.

애초에 그 이야기를 퍼트린 건 저 원귀.

그러니까 샤를롯의 여동생이었다.

그녀가 강제로 카일과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콘라드가 들려준 이야기는 결국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해보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카일을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카일은 끝내 그녀를 떠났고.

그녀는 그런 카일을 잊지 못했다.

하여 끝내 그를 기다리고자 마음 먹는다.

그녀는 샤를롯에게 부탁해 이 전당에 잠들었다.

아마 샤를롯은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것이 그녀가 엘로디의 결계를 뚫고 이 전당에 잠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세간에 퍼트린다.

진실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카일이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것도 지어낸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 목적은 간단했다.

혹시라도 카일이 사랑한 그 여인이 여기에 잠들었다고 알려지면.

언젠가.

그 언젠가.

카일이 이곳에 찾아와줄까.

그런 기대 속에서 그녀는 이 전당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카일은 나와 약혼한 사이였어···. 하지만 홀연히 떠나가버렸지. 난··· 난 그런 그를 기다리려 했던 것 뿐이야··· 이게 뭐가 잘못된 건데···. 그래서···. 그래서 뭐가 잘못된건데!

그녀가 말한다.

-그리고 네가··· 네가 뭘 알아···. 이곳에서 기다리던 나의 심정을 네가 뭘 알아!!!

모른다.

알 수도 없다.

감히 이해하려고 드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

드워프와 엘프와 같은 이종족들과는 달리.

인간의 수명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못한다.

그런데 하물며 천 년이라니.

까마득해도 너무도 까마득하다.

그 아득한 세월의 고통을 어찌,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시안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카일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당신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카일은 사랑하는 여인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있다면 아마 한 명.

지금 눈앞에 있는 당신이었겠지.

-뭐··· 라고?

그녀가 소리친다.

-웃기는 소리하지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나를··· 나를 농락하는 거냐!!

끝없는 사념이 폭사한다.

드리운 어둠은 시안으로 하여금 죽음을 윽박지른다.

정신이 깜빡이며, 의식이 저만치 멀어진다.

하지만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며 억지로 버텼다.

카일은 사랑하는 여인이 없었다.

어째서 그런 오해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카일이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무려 천 년 전의 사정을 시안이 알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카일은 사랑하는 다른 여인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 영주는 분명 이렇게 말했으니까.

《아르나이즈 카일은 모종의 진실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죠.》

카일이 떠난 건 여인 때문이 아니라.

어떤 모종의 진실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존재하지도 않는 여인 때문에.

“카일은 당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 따위가 대체 뭘 안다고 지껄여!!

광기가 짙어지며 섬뜩한 죽음이 밀려왔다.

“야!!”

아리아가 크게 놀라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죽는다.

시안이 밝힌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저 망령은, 원귀는 이미 늦었다.

이미 광기에 삼켜져 미쳐버린 존재.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라져 마땅한 존재다.

그러니 없애야 한다.

아리아는 최대한의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우뚝.

아리아의 몸이 굳어버렸다.

굳어져 바라본 시야.

그곳엔 시안이 검을 가만히 치켜들고 있었다.

흉측한 어둠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야 하건만.

시안은 묵묵히 또 담담히. 검을 들고 있었다.

“제 말이 사실임을 당신께 증명해보일 수는 없습니다.”

시안이 나지막히 말을 내뱉는다.

시안은 그녀에게 증명해줄 것이 없었다.

모바일 영주를 증명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그 사실을 증명해줄 다른 무언가가 있다 한들.

이미 아득한 세월에 묻혀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안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 말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지난 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다름 아닌 시안이 처음 카일을 만난 날.

카일이 처음 시안에게 보여준,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劒)을.

-······!!!!

그녀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추었다.

일시에 드리운 어둠이 사라진다.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은 충격이 휘몰아친다.

시안은 검을 계속 휘둘렀다.

천천히 그렇다고 느리지 않은 속도로.

쌔액.

시안은 오러의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내재된 마기가 있었으나 아직 다루지 못한다.

그렇기에 휘두르는 검에는 아무런 기세도 담겨있을 수가 없었다.

또 그뿐일까.

재능도 처참해서 그저 따라하기만 하는 검로를 제대로 펼칠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 까마득한 경지의 검술을 어찌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시안이 배운 건 베기(斬)와 찌르기(衝).

이 두 가지 동작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세도 엉성하고.

심지어 발도 꼬여 넘어질 뻔했다.

카일이 보여준 경이로운 힘도.

그 안에 깃든 묘리도.

그 어떠한 것도 담겨있지 않은 초라한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劒).

하지만.

-아아···.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지난 천 년.

기억이 추억이 되고,

그 추억조차 희미해져버리는 아득한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으니까.

어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 그녀의 눈에는 한 남자가 보였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던.

어떤 한 남자가.

시안의 검이 흘러간다.

어설프고 또 엉성한 검.

“······”

아리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멍한 정신.

시안의 검이 계속 흘러간다.

“이건··· 이건···.”

아리아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건 위령제(慰靈祭)잖아···.”

위령제(慰靈祭).

영혼을 위로하는 고결한 제사.

위령(慰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함은 그 어떤 것보다 성스러운 일.

그 고결함을 쉽게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신성 제국 내에서도 일부 자격있는 이들.

추기경급 이상만이 할 수 있는 제사였다.

그리고 지금.

시안이 행하는 위령제(慰靈祭).

이건 신성 제국에서 행하는 그 어떤 위령제보다 고결했다.

심지어 성녀(聖女)인 자신이 행하는 위령제보다도 더.

아리아의 시선이 원귀에게로 향했다.

-아아···.

그녀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악에 받힌 증오와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소리내어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카일···.

그녀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완전히 사그라드는 어둠.

신성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한 광기였건만.

이제 그녀에게서 광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시안의 검이 멈춘다.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띠링!

『[스토리 퀘스트] - ‘아르나이즈의 유산’ (클리어!)』

《카일이 남긴 유산을 찾아온 당신!》

《천 년을 거슬러 올라온 운명을 드디어 마주합니다!》

《그리고 전당을 지키는 망령을 찾아내어 끝내 퇴치했죠!》

[보상: 카일의 유산]

그리고.

《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모바일 영주에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띠링!

『[스토리 히든 퀘스트] - ‘천 년의 기다림’ (클리어!)]』

히든 퀘스트가 달성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숨겨진 이야기.》

《그렇기에 잊혀졌던 이야기.》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다른 이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은 이야기를.》

《거짓된 이야기라 비웃었던 이야기를.》

《오직 당신만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밝혀내었고.》

《그녀를 연민했으며.》

《끝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죠.》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보인 당신의 고결한 행동.》

《그것은 아르나이즈들의 선택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띠링!

《전설 업적 ‘아르나이즈의 유지를 잇는 자’ 달성!》

《전설 등급 업적 달성으로 숨겨진 특별 항목이 개방됩니다!》

《히든 퀘스트 달성으로 추가 보상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면서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추가 보상: 샤를롯의 유산]

[추가 보상: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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