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완벽한 일격
믿을 수가···.
믿을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돼···.”
루카스는 정신이 멍한 상태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런 루카스의 주변으로 수많은 오크들이 있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오크들 또한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루카스가 바라보는 곳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쌔액, 허공에 갈리는 공기의 비명이 들려온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옆에서 다시 위로.
시안의 검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것은 특정 구간을 구분지을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어, 어떻게···?”
루카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검은 오크는 오러의 힘을 사용하는 마수(魔獸)였다.
정확히는 오러의 힘이 아니었지만, 오러와 같은 힘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오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오러를 사용하는 존재뿐.
그렇기에 이곳에서 오직 루카스만이,
엑스퍼트 초급의 기사인 루카스만이 저 검은 오크를 대적할 수 있었다.
‘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마수이거늘···!’
심지어 그런 루카스조차 승부를 쉬이 장담할 수 없는 강대한 마수였다.
그에 반면 시안은 오러를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오러는 커녕, 오러의 개념도 깨우치지 못했다.
후작가의 망나니라 불리던 둔재 중의 둔재.
그렇기에 시안은 결단코 저 검은 오크를 대적할 수 없었다.
그건 가능성의 여부를 점칠 수도 없는 불가능,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생각했다.
그런데.
챙! 채챙!
대적하고 있었다.
시안이 검은 오크를 대적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시안이 펼치는 검술.
쌔액!
콰아앙!
저건 루카스조차 쉬이 펼칠 수 없는.
아니, 보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묘리들이 깃들어있었다.
잠깐.
이해할 수··· 없다고?
“대, 대체 어떻게···!”
그 순간.
뚝.
시안의 호흡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세가 터져나온다.
‘엘란두르의 비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검술 명가의 엘란두르.
그런 엘란두르 가문에는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는 비기가 있었다.
그것은 현 엘란두르의 가주인 듀라크 엘란두르.
그를 마스터 상급의 경지로 올려놓은 비기이기도 했다.
루카스는 그 비기를 어깨 너머로나마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듀라크의 것이 아니라 카이 엘란두르가 행한 비기를 본 적이 있었다.
엘란두르 가문의 장자, 카이 엘란두르.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천재 중의 천재.
그는 현 가주인 듀라크를 뛰어넘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26의 나이로 마스터 초급의 경지에 닿은 존재였으니까.
카이는 언젠가 듀라크를 넘어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스터 최상급.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촉망받는 인재였다.
루카스는 그런 카이를 먼 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펼치는 검술 또한 본 적이 있었다.
하여 지금.
시안의 주변으로 터져나오는 기세.
저건 그때 카이가 보였던 기세와 사뭇 닮아있었다.
시안 또한 엘란두르의 자제였으니, 그 비기를 알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
루카스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저건 엘란두르의 비기가 아니다.’
지금 시안이 보이는 것은 카이가 선보인 것과는 달랐다.
수준의 차이는 당연히 카이가 앞서 있었다.
비기너(Beginner)도 되지 못한 시안.
마스터(Master) 초급에 닿은 카이.
애초에 수준의 차이를 논하는게 무의미할 정도로 그 차이는 까마득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정말 그 수준의 차이가 맞는건가 의문이 들었다.
오러의 경지는 까마득할지 모르겠다.
검술의 경지 또한 까마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근원적인 무(武).
그것엔 되려 시안이 아득히 앞서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루카스는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내질러지는 시안의 검.
그건 지금까지 루카스가 살면서 봐왔던.
콰─직!
가장 완벽한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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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오크가 쓰러지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사실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크들은 루카스를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크가 강력한 마수라고는 하나,
루카스는 무려 엑스퍼트의 경지에 닿은 기사.
오크들이 루카스를 포위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냥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았다.
루카스가 검은 오크를 대적하지 못하게.
그리하여 검은 오크가 신기전을 박살내도록.
하지만 검은 오크는 결국 시안의 손에 쓰러졌고.
거리낄 것이 없어진 루카스는 그야말로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라 한들,
오크의 수준으로는 루카스를 어찌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오크 무리들은 루카스의 손에 의해 도륙나버렸다.
애초에 신기전의 테러를 당한 직후라 남아있는 오크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상황은 일방적이다 못해 압도적으로 흘러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종결.
오크 부락은 궤멸했고,
그에 반해 루벤의 피해는 전무(全無)했다.
정확히는.
“아윽···!”
시안의 부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안은 차분히 상황을 둘러보았다.
루카스가 얼마 남지 않은 오크 잔당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병사들 또한 그런 루카스를 돕고 있었다.
“좀 쉬어도 되겠네.”
그렇기에 고블린 때처럼 지랄염병···.
그러니까, 쇼맨십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철푸덕.
시안은 안심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흑···!”
그와 동시에 온몸으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무아지경에 빠져있던 터라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안은 검은 오크에게 자잘한 일격들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행히 온전한 일격을 얻어 맞은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S등급의 갑옷이 막아주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안은 진즉에 죽었을 터였다.
“엘리가 한소리 하겠네.”
벌써부터 엘리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시안은 헛웃음을 한 번 흘렸다.
그리고는 차분히 시선을 돌려 쓰러진 오크를 바라봤다.
5m가 넘는 거대한 덩치.
널브러진 검은 오크의 사체는 마치 하나의 동산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가슴께에 박혀있는 수박만한 마나석.
그 마나석에는 여전히 거뭇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의 힘을 사용하는 마수라니.”
그 때문인지 검은 오크는 강했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쓰러뜨렸는지조차 시안은 알지 못했다.
이런 마수를 쓰러뜨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그 중 첫 번째는.
“S등급의 검이 오러의 힘을 내는 것 같단 말이지.”
오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오러뿐이었다.
그러나 시안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시안이 검은 오크를 이길 방법은 없었다.
상처를 내기는 커녕, 첫 격돌의 순간부터 진즉에 나가떨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검은 오크는 시안의 밑에 쓰러져있었고,
그 사체에는 더없이 깔끔한 베기와 찌르기, 2개의 상처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말은 즉.
S등급의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러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 뭐로 만든 건지···.”
이런 검이 있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
장인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
그들이 만든 무기라도 이건 불가능했다.
오러없이 오러의 힘을 낸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럼 여기에 오러의 힘까지 더해지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건데?”
시안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S등급의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러의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대적할 자격일 뿐이었다.
시안이 검은 오크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화면 위로 알림창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27.3%(+26.5%)]
“26.5%가 올랐단 말이지.”
무려 26.5%가 올라버린 마혼수라검의 진행률.
평소 마혼수라검의 진행률은 0.1%~0.2%가 올랐다.
그것도 성장 버프를 풀로 당겨서.
근육이 파들파들, 떨릴 때까지 과제를 수행해야지만 겨우 0.1%가 오르던 진행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상승한 진행률은 무려 26.5%.
자그마치 260일 가량의 진행률이 단번에 오른 격이었다.
“묘리를 깨우치면 그만큼 빨리 오른다는 건가.”
아니면 결국은 실전이라는 뜻이라는건가.
어쩌면 둘 모두 일 것이라 시안은 생각했다.
그 순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한쪽으로 한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한스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상황을 대충 정리하고 오는 것 같았다.
그런 한스의 뒤를 이어 아멜리아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둘은 금방 시안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다치신 곳은!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괘, 괜찮으세요?”
동시에 묻는 한스와 아멜리아의 모습.
시안은 그 둘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괜찮아. 홉고블린 때와 비교하면 살만해.”
물론 살만하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도 부들부들, 떨리는 몸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정말로 홉고블린 때와 비교하면 살만했다.
그땐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나는 괜찮아. 그보다 병사들은? 혹시 다친 사람이 있어?”
“······”
“······”
이어진 시안의 말에 한스와 아멜리아가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시안의 걱정과는 달리 병사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신기전의 화력도 화력이지만,
시안이 전장을 압도하는 무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 보이는 시안의 상태.
시안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심각해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겨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거늘.
시안은 그럼에도 자신보다 병사들을, 영지민들을 먼저 챙기고 있었다.
“어떻게 매번···.”
“······”
시안을 바라보는 한스와 아멜리아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저벅.
시야 한 켠으로 또 다른 인기척이 들려왔다.
시안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바라본 시야.
그곳엔 피칠갑을 한 루카스가 서 있었다.
거진 수 백의 오크들을 도륙낸 루카스.
루카스는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시선은 시안에게 고정된 채로 루카스는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루카스가 알고 있던 시안은 무능력한 존재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나본 시안은 그러했다.
돈에 미친 자.
돈이라면 사리분별 안되는 탐욕스럽고 멍청한 영주.
루카스는 시안을 그렇게 정의내렸다.
해서 검은 오크가 등장했을 때 루카스는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자신밖에 상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건 루카스 입장에서는 가장 최선의 판단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충(忠)이라는 기사도에 반하는 일이었다.
루카스는 아멜리아의 호위기사이면서,
동시에 루벤의 영지민.
시안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판단으로 인해 영지민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그로 인해 아멜리아까지 죽을 위기에 처했다.
만일 시안이 아니었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멍청한 건 바로 자신이었다.
어리석은 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던 루카스 자신이었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루카스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안에 관련된 모든 소문들을 하나 둘씩 지워버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죄송합니다.”
루카스가 돌연 시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루카스는 시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시안을 향해 숙여진 루카스의 고개는 쉽사리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루카스의 모습에 시안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루카스가 왜 저러는지 대충 알 것 같았으니까.
“······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숙여진 루카스의 고개는 수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기사로서의 자존심.
사람들을 위험에 빠드렸다는 죄책감.
그리고 아멜리아를 구해준 시안에 대한 고마움까지.
그 무게가 어떤지 알았기에.
시안은 지금 루카스의 행동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하는 건 맞지.”
“말씀하십시오.”
루카스는 역시나 변명을 하지 않았다.
“여, 영주님···.”
아멜리아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끼어들었지만,
시안은 그런 아멜리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루카스, 앞으로는 네가 한스 대신에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
“······?”
그러자 한스와 아멜리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루카스 또한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보였다.
“······ 제가 말입니까?”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한스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지만, 보다시피 한스는 오늘 내일 할 정도로 많이 늙었거든.”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도련님?”
시안은 한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루카스. 네가 병사들을 훈련시켜줬으면 해.”
루카스는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
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기사였다.
그 말은 즉.
추가 효과를 받는 기준인 ‘뛰어난 교관’의 조건은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훈련도 루카스가 더 잘 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스는 용병이었고,
루카스는 기사였으니까.
실력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지는 모르겠지만,
체계적인 부분에서는 루카스가 더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루카스는 현역 기사이지 않은가.
솔직히 실력적인 부분도 루카스가 더 뛰어나다고 봐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부려먹기 좋은 인재가 없었다.
“······”
루카스는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이어진 루카스의 말.
“저는 아가씨를 호위해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병사들을 책임지면 루카스는 하루의 대부분을 병사들과 함께해야한다.
솔직히 말만 훈련이었지.
시안의 말은 사실상 병사들을 지휘하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멜리아 옆에 붙어있을 수 없게 된다.
아멜리아는 혼자가 되는 상황.
하지만.
“그건 걱정하지마.”
시안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말을 이었다.
“아멜리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줄테니까.”
“네, 네?”
그러자 아멜리아가 크게 당황해보였다.
“왜?”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어떻게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아멜리아는 괜시리 가슴이 뛰는 기분이었다.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시안이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멜리아는 우리 루벤의 상단주잖아. 당연히 영주인 내가 지켜줘야지.”
아멜리아는 절대 놓쳐서도, 잃어서도 안될 인재였다.
앞으로 아멜리아가 벌어올 골드가 얼마인데 아멜리아를 잃는 단 말인가.
그건 시안이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런 뜻··· 이셨군요.”
아멜리아는 왜인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그런 시안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 루카스?”
아멜리아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루카스가 저렇게 쉽게 수긍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알고 있는지 루카스가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시안 영주님이라면 아가씨를 믿고 보내드려도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
아멜리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처음···이었다.
루카스가 저렇게 말한 적은.
루카스는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아멜리아의 안전만을 생각했다.
어떤 의견이든 아멜리아의 의견을 따라주는 루카스였지만,
유일하게 아멜리아를 거스르는 일이 바로 아멜리아의 안전과 관련한 일이었다.
그런데 타인에게 자신의 안전을 맡긴다?
그건 루카스가 호위기사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잠깐.
나를 믿고 보내다니?
“따라오게. 병사들을 소개시켜주지.”
이윽고 들려오는 한스의 목소리.
“그럼 아가씨를 부탁드립니다.”
루카스는 시안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한스를 뒤따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된 시안과 아멜리아.
“아··· 저···.”
아멜리아는 상당히 어색한 기분이었다.
아마 루카스의 말 때문인 것 같았다.
“아멜리아.”
“네, 네?”
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무, 무, 무엇이죠···?”
방망이질 치는 심장.
이윽고 시안이 손가락으로 어느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검은 오크. 얼마쯤 할까?”
에휴.
나는 대체 뭘 생각한 걸까.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유심히 검은 오크의 사체를 살피고는 말했다.
“이 정도면··· 못해도 3,000골드는 너끈 하겠는데요.”
“3천 골드!”
시안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 그럼···! 저기 저 그냥 오크들은?”
“자세히 봐야알겠지만 아마··· 마리당 50골드는 받지 않을까요?”
“50골드?!”
시안의 두 눈이 찢어질듯이 떠졌다.
이번에 잡은 오크의 수는 무려 3천.
그럼 오크 사체로만 얻은 골드는 도합···.
‘15만 골드!!!!!’
여기에 최상급 마나석 광산까지!
“아아!! 아아···! 아아아아···!!!”
시안은 뇌전 마법에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니, 감전된 것을 넘어 접신이라도 된 듯.
몸을 파들파들, 떨어대고 있었다!
“왜, 왜 그러··· 시는···?”
아멜리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시안은 여전히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딘지 무섭기까지 한 모습.
“아, 참!”
그러다 뚝.
시안의 접신이 끊어졌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이럴 때가 아니지! 퀘스트!!”
시안은 황급히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켰다.
그러자 그런 시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띠링!
스마트 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영지 퀘스트] - ‘손자병법도 감탄을 금치 못한 필승 전략, 선빵!’ (클리어!)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자신감있게 선빵을 친 것도 모자라,
멋지게 적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실력까지!
아군이 전멸할 수 있는 위기가 있었음에도,
당신은 멋지게 그 위기를 극복해냈죠!
바지 영주?
댓츠 NO NO!!
이제는 나를 킹왕짱 영주라 불러다오!
빠밤!
당신의 어마무시한 활약으로 인해 아군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대승!
완전 초대승!!
만일 손자 선생님께서 당신의 전투를 지켜봤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방장 사기맵이 분명하다.’
손자 선생님께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당신의 기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자! 자신감 있게 선빵을 친 당신!
천하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위! 풍! 당! 당!
가서 당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려보세요!』
.
.
띠링!
《【영지시설】 항목에 ‘엘로디의 연구소 Lv.1’가 개방되었습니다.》
《【영지시설】 항목에 상위 등급의 시설들이 개방되었습니다.》
《엘로디의 연구소에서는 영지 발전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엘로디의 지식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엘로디가 남긴 지식들을 이용하여 영지를 멋지게 발전시켜보세요!》
.
.
“어··· 음.”
시안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가 클리어가 된 것이 좋기는 한데 역시나.
저 모바일 영주의 말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 손자가 누군데?’
모바일 영주가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특히 전략 쪽에 특화된 어마어마한 능력자인 것 같았는데···.
‘알게 뭐냐.’
시안은 딱 거기까지만 궁금해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시안은 곧장 【영지시설】 항목에 접속했다.
그리고 퀘스트 보상 덕분인지 ‘New!’ 라는 글귀가 붙어있는 시설들이 더럿 보였다.
척 보기에도 유용한 시설들이 많았다.
‘나중에 천천히 확인해보자.’
시안은 스크롤을 주르륵, 내렸다.
이윽고 찾고 있던 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로디의 연구소 Lv.1》 (50,000G)
▶당신! 혹시 이런 상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시간을 정지시켜서··· 크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상상을 실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니까요.
하지만 여기!
그 수많은 상상들을 현실로 이루어낸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로디!
과거, 대마도사라 불렸던 어마무시한 마법사였죠!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의 마법사!
대표적으로는 역시 시간을 정지시키는··· 엣헴!
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엘로디의 지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엘로디의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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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시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로디의 연구소가 주는 효과가 어마무시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기술 연구 속도 +10,000%.
이건 효율이 자그마치 100배라는 뜻이었다.
100일 걸릴 연구가 하루면 충분했고,
1,000일 걸릴 연구가 10일이면 끝난다는 뜻.
‘미쳤잖아?’
그야 말로 '미쳤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다.
과연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인 대마도사 엘로디.
반드시 연구소를 설치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냥 주는 게 아니었어?’
시안은 엘로디의 연구소 옆에 붙어있는 글귀를 바라봤다.
다름 아닌 (50,000 G).
쉽게 말해 엘로디의 연구소를 짓기 위해서는 5만 골드를 지불해야한다는 뜻이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것이라 그냥 주는 것인줄 알았건만.
‘어쩐지 ‘개방’이라는 말을 쓰더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엘로디라는 이름 값을 본다면 헐값이나 다름 없었지만.
“돈이 안 필요한 게 없네.”
정말이지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현질 유도였다.
시안은 품 속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안에 든 금화를 쏟아내었다.
텅텅.
정확히는 그 안에 든 공기를 쏟아내었다.
“······”
한 푼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만 1천 골드가 있었지만, 신기전을 비롯한 화살과 마나석.
그것들을 구매한다고 다 써버렸으니까.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바라본 그곳엔 아멜리아가 이상한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아멜리아는 시안이 뭐하는 건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전기에 감전되었다가.
또 접신을 했다가.
그러더니 이상한 물건을 꺼내더니 뭐라 혼자 중얼거리지를 않은가.
한 마디로 혼자 쌩쇼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멜리아. 저 오크들 당장 팔아버리자!”
또 돈을 벌잔다.
“······ 아, 네.”
아멜리아는 그냥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