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마나석 광산(3)
루카스는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싶었다.
부릅, 떠진 두 눈으로 보이는 시야.
콰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앙!!!
숲의 일대가 말 그대로 초전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 이, 이게 대체···!”
루카스는 저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아니, 믿는 게 이상했다.
저게··· 저게 정녕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취, 취익?!”
“취익??”
갑작스러운 폭격과 굉음에 오크들이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곳 오크 부락에 존재하는 오크들은 무려 3천.
일대를 초토화시켜버리기는 했으나,
3천의 오크들을 모조리 전멸시킨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오크 부락 하나가 순식간에 궤멸되긴 했지만.
“취이이익!?”
“취익!?!”
오크들은 자신들의 부락 하나가 궤멸되어있는 광경에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이 일의 원흉을 찾듯.
오크들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루벤의 병사들을 발견하더니.
“취이이익!!”
“취이익!!”
거친 콧바람을 내뱉으며 저돌적으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붉은 광채는 선명한 윤곽을 가졌고,
그 모습은 다시 끔찍한 괴물이 되었다.
수 천에 달하는 괴물들이 달려든다.
광기가 짙어지며, 쿠르르릉. 숲이 흔들린다.
다가오는 죽음의 물결.
그것은 마치 밤바다의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물결을 지켜보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하나 둘씩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발사!”
어디선가 시안의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슈슈슈슈슈슉!!
그와 동시에 수 백 다발의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릉!!
달려들던 오크의 무리들이···.
그러니까, 그 오크들이 있던 일대가 초전박살이 나버렸다.
그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경악으로 가득찬 아멜리아의 물음이 들려왔다.
평소라면 뭐라도 대답이라도 해주었겠지만.
“어, 어, 어떻게···?”
현재의 루카스는 그럴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루카스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시안은 가장 최전방에 서 있었다.
후방에 빠져 안전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시안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가장 위급 상황일 때, 스스로가 먼저 나서겠다는 듯 말이다.
이윽고 루카스의 시선이 시안이 작동하고 있는 무언가로 향했다.
신기전(神機箭).
커다란 수레의 모습을 한 저것은 루카스 또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듣기로는 전략병기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루카스는 '그래봤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크 부락에 있는 3천의 오크.
그건 고작 병기 하나로 어찌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겪어본 신기전은 단순한 전략병기가 아니었다.
“발사!”
전쟁의 판도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는 결전병기.
콰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앙!!!!
“취이이익!!”
“꾸이이익!”
전혀···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다.
오크 무리들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휩쓸려 폭사하고 있었다.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
상성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존재만으로 비대칭을 유발하는 전력.
저건 그야말로 최강의 전력이었다.
루벤 쪽의 희생은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
‘······ 처음부터 이겨놓은 싸움이었다고?’
멍청한 건 시안이 아니라,
아무것도 몰랐던 루카스 본인이었다.
살아 있는 오크는 이제 1천 가량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 대부분의 오크들이 폭사한 것이었다.
“······”
루카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바로 그 순간.
쿠우웅···!
멀지 않은 곳에서 진동이 울렸다.
흠칫.
그와 동시에 루카스의 감각으로 어렴풋한 무언가가 잡혔다.
루카스는 가만히 눈을 감아 기감을 확장했다.
‘오크···?’
라고 하기엔 다르다.
지금 루카스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힘은 평범한 오크와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강대한 힘이 느껴진다.
크워어어어어어어!!!
피부로 느껴진 뒤에야 소리가 인지된다.
이윽고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드득···! 콰앙!
숲의 사물들이 무조건적으로 박살난다.
루카스는 놀람을 삼키고서 모습을 드러낸 오크를 바라봤다.
저걸··· 과연 오크라고 해야할까?
“저, 저, 저, 저게···!”
“세, 세상에나···!”
루벤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오크는 끔찍한 괴물이었다.
생김새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오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5m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
밤의 안식을 맞이한 듯한 칠흑과도 같은 피부.
그 사이로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꿈틀거리는 근육들은 모든 것을 분쇄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저것은 오우거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바로 그때.
“화살 재장전!!”
시안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시안 또한 검은 오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신기전의 방향은 어느 샌가 검은 오크를 향하고 있었다.
“발사!”
슈슈슈슈슈슈슉!!
이어진 시안의 외침과 함께 하늘이 수 백 다발의 화살로 뒤덮였다.
콰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앙!!!!
자욱한 먼지 안개가 일며, 검은 오크가 있던 일대가 초토화 되었다.
그리고 검은 오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화살 재장전!!”
시안의 날카로운 외침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발사!”
슈슈슈슈슈슈슉!!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진 시안의 외침과 함께 하늘이 수 백 다발의 화살로 뒤덮였다.
콰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앙!!!!
콰르르르르릉!!!
천지가 진동하며 그 일대가 완전히 뒤집어져버린다.
저 정도면 그 어떤 존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건만.
“화살 재장전!!”
시안의 날카로운 외침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라본 시안의 표정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슈슈슈슈슈슈슉!!
콰콰콰쾅!!!
콰르르르르릉!!!
시안은 몇 번이고 신기전의 화살을 같은 곳에 발사했다.
숲은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세번 가량을 이어지고 나서야 신기전의 불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닥.
루카스가 앞선 시야를 뚫고 달려들었다.
생각할 여지도, 고민할 틈도 없었다.
검을 움켜쥐고, 긴장을 끌어올린다.
자욱한 먼지 안개로 시야가 가려져 있었지만 루카스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검은 오크는 죽지 않았다.
먼지 안개 사이로 터져나오는 거대한 괴성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 괴성 안에 담긴 지독한 광기가 숲 가득히 울려퍼졌다.
그리고 보인 검은 오크.
오크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저 끔찍한 화력에 멀쩡하다면 그것도 이상한 것이리라.
그러나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돌연변이 마수.
광폭화(OverDrive)가 진행된 검은 오크는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증폭된다.
그 증폭된 신체능력에는 재생력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신기전의 광범위한 화력은 검은 오크의 목숨을 끊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정확히는 계속해서 화력을 쏟아부었다면 검은 오크는 죽었을 테지만.
이제 남아있는 화살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괴성과 함께 검은 오크 주변으로 짙은 칠흑의 광기가 뿜어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짓뭉개진 상처가 하나 둘씩 아물기 시작했다.
“저, 저, 저, 화력에도 살아남았다고···?”
“마, 말도 안돼!!”
“저, 저게 어떻게 오크야···.”
“괴, 괴물···!”
병사들의 전의가 짓눌린다.
포악한 광기에 정신이 오염되듯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
그것은 비단 루벤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이를 까득, 깨물며 몸을 내던졌다.
신기전의 화력을 견딘 검은 오크.
저건 더 이상 오크라 부를 수가 없었다.
오우거(Ogre).
두 발로 땅을 딛는 몬스터들 중 가장 흉악한 몬스터.
저 검은 오크는 오우거와 충분히 비견될 만했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했다.
여기서 저 검은 오크를 처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
루카스는 오러의 힘을 끌어내었다.
우우웅···!
루카스의 검이 새파랗게 물들며 주변의 대기를 진동시켰다.
오러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엑스퍼트의 경지.
루카스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먼지 안개 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꽈아앙!
섬뜩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폭음과 함께 유발된 풍압이 순식간에 먼지 안개를 흩어버렸다.
그리고 루카스는 볼 수 있었다.
히죽.
거대한 둔기로 자신의 검을 막아낸 검은 오크의 모습을.
“······!”
루카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방금 루카스가 내지른 검격에는 분명한 오러의 힘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엑스퍼트의 경지에 닿은 기사.
루카스가 사출하는 오러는 괴악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검은 오크는 그 힘에 휩쓸려 쓰러져야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낱 마수 따위가···?
루카스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검은 오크가 들고 있는, 정확히는 자신의 검을 막은 거대한 둔기에는 칠흑의 아우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루카스에겐 너무도 익숙한 힘.
“오러···?”
저건 분명한 오러의 힘이었다.
“어떻게!”
루카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
그 모두를 갈고 닦아야 얻을 수 있는 힘이었다.
오죽하면 비기너(Beginner)의 경지에도 닿지 못해 포기하는 자들이 넘쳐흐르겠는가.
그런 힘을 어떻게 마수가···!
그 순간.
루카스의 감각으로 이질적인 기운이 잡혔다.
살짝 내려다 본 시선.
‘마나석?’
검은 오크 가슴 한 켠에 큼지막한 마나석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마력까지.
그때서야 루카스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마나석에 깃들어있는 마기의 힘을 사용하는 것인가.’
천년간 응축된 최상급의 마나석.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그 힘이 저 검은 오크에게로 흘러들어간 듯 싶었다.
심지어 검은 오크에게 박혀있는 마나석의 크기는 거대했다.
일반적인 마나석이 주먹만하다면,
검은 오크에게 박혀있는 건 수박과도 비견될 만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기(魔氣)는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폭발적인 신기전의 화력에도 살아남은 것도.
루카스의 일격을 막아낸 것도 다 저 때문인 것 같았다.
콰앙!
괴악한 힘에 밀린 끝에 루카스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루카스는 황급히 균형을 잡으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어쨌거나 진실은 오크는 오러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오러와 비슷한 힘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루카스가 엑스퍼트에 이르는 기사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상대다.
‘아니.’
전력을 다해 싸워도 쉽지 않은 상대다.
루카스는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가진 바 모든 오러를 끌어내었다.
그런데.
“취익!”
“취이익!”
일순간 주변으로 거친 콧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돌아본 시야.
그곳엔 수많은 오크들이 루카스를 포위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루카스는 덮쳐오는 오크들을 베어내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도 많은 탓에 쉽사리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오크들이 모두 모여든 것 같았다.
신기전의 화력을 쏟는다면 일시에 소탕이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신기전은 적과 아군을 식별할 눈이 없었다.
이대로 신기전을 발사한다면 오크들은 물론이고 루카스까지 휘말릴 것은 자명한 일.
루카스는 저 화력에서 멀쩡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신기전은 루카스의 존재로 인해 불을 뿜지 못하고 있었다.
히죽.
검은 오크가 기괴하게 이죽거렸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윽고 거친 괴성과 함께, 검은 오크가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루카스가 있는 곳이 아닌, 바로 신기전이 있는 루벤의 진영 쪽이었다.
‘당했다!’
루카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처음부터··· 놈은 신기전을 노릴 생각이었다.
오크 무리들을 초토화 시켜버리는 전략병기.
저 신기전만 없으면 자신들의 승리는 당연시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검은 오크는 처음부터 신기전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검은 오크를 막을 수 있는 건 루카스,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빨리 검은 오크를 저지해야 하건만···!
“취익!”
“취이익!”
주변을 포위한 오크들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서걱! 콰직!
콰악!
“끄윽···!”
루카스는 상처를 도외시하면서 미친듯이 오크를 베어넘겼다.
그러나 끝도 없이 몰려오는 오크들에 쉽사리 나아갈 수가 없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검은 오크는 신기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신기전이 부서지면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막아라!”
“신기전을 반드시 지켜라!”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나왔다.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신기전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섰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러나 터져나오는 검은 오크의 괴성.
그 안에 깃든 광기가 병사들의 투지를 짓누른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지만, 어찌될 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안돼···.”
끝이다.
자신의 실수로 이렇게···.
바로 그때.
타닥.
병사들 옆을 스치듯 누군가가 뛰쳐나갔다.
그의 얼굴을 본 루카스 였건만.
꺾인 루카스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할 수 없다.
직접 검을 맞대어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저 검은 오크를 대적할 수 없다.
저건 그저 죽음을 앞당기는 행동일 뿐.
루카스는.
“모두 뒤로 물러나!!”
저것을 불가능이라 고개를 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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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행동도 필요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걸 따질 상대가 아니었다.
콰아아앙!
둔탁한 폭음이 터져나오며 돌진해오던 검은 오크의 기세가 저지되었다.
단 한 번의 공방.
시안은 알 수 있었다.
‘다르다.’
그리고 위험하다.
시안은 저려오는 손아귀를 몇 번 움켜쥐었다.
검은 오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나석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나석에 깃든 마기(魔氣)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러의 힘과 유사했고,
그렇기에 시안은 S등급의 검으로도 검은 오크를 베어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S등급의 검이었기에 시안이 버틸 수 있었다.
“크르르륵···!”
검은 오크는 가만히 시안을 바라봤다.
그런 검은 오크의 시선에는 서늘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한낱 먹잇감 따위가 감히 자신의 길을 가로막았다는 분노가.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칠흑의 마기(魔氣)가 먹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끔찍한 살의를 담은 그것은 묵직한 폭력이 되었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눈앞의 검은 오크는 홉고블린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오로지 살상만을 목표로 하는 광기.
그 광기에는 목표만을 물어뜯는 괴악한 파괴력이 담겨있었다.
S등급의 갑옷은 그 충격을 몇 번 막아낼 줄 것이었다.
그러나 한 두번이 고작.
그 이상을 허용한다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전신의 뼈가 박살나고 내장이 터져죽는다.
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일며 짙은 망설임이 발목을 붙잡는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이상하게 머리가 차분했다.
심장은 공포에 폭발할 듯 방망이질 친다.
두려움에 잠식된 이성은 제대로 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몸은 떨지 않았다.
도리어 시안을 향하는 놈의 맹목적이고도 저릿한 살의에 감각이 깨어난다.
이윽고 시안이 호흡을 삼켰을 때.
그 모든 것들이 일시에 사라진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지독한 광기에 잠긴 괴성이 공간을 잠식한다.
검은 오크가 지독한 살의를 피워올리며 시안에게 달려들었다.
시안은 그 모습을 눈에 담음과 동시에,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스마트 폰에서 보았던 은발의 미남자.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라 추정되는 존재.
남자가 처음 시안에게 마혼수라검을 보여주었을 때.
시안은 그 검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있음에도.
시안은 남자의 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과제를 하나하나씩 해나가며.
미천한 재능에도 그의 발치를 따라가려던.
어느 순간부터였던가.
어렴풋이 남자의 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미약한 무엇이었다.
미약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무엇이었다.
그러나 시안은 확실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남자의 검은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고 이어졌다.
어느 순간이 베는 것이고, 또 어느 순간이 찌르는 것인지.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남자의 검은 자연스러웠다.
그 자체가 하나의 물과 같은 흐름이었다.
귀에는 짙은 이명이 들려온다.
잡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고.
아무것도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타닥!
그저 검은 오크를 향해 달려드는 자신의 모습만이 비쳐보일 뿐이었다.
쌔액, 허공에 갈리는 공기의 비명이 들려온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옆에서 다시 위로.
이어지고 이어진다.
생각은 반박자 늦게 행동을 인지한다.
시안의 검은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휘둘려졌고, 시안의 몸은 마치 하나의 춤사위처럼 움직였다.
어느 순간.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 모르겠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놈이 달려든다. 동시에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듯한 감각이 인다.
보인다. 놈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가 행할 행동들이.
그리고 시안이 달뜬 호흡을 한 번 삼켰을 때.
참(斬).
서─걱.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잇는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옆에서 다시 위로. 이어지고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발이 움직인다.
허리가 틀어지고, 어깨가 휘둘러진다.
일련의 동작들이 그저 자연스럽기 때문에 행동이 이어진다.
휘두르는 시안의 검이 시야를 어지럽혀왔다.
시안은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인지할 수 없는 무의식의 너머.
그 사이로 내질러지는 검.
그리고 그것은.
시안이 지금까지 펼친.
콰─직!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베기(斬)와 찌르기(衝)’였다.
“······!!!”
“······!!!”
“······!!!”
사람들의 경악 어린 시선이 모두 시안에게 향했다.
모두 입을 쩌억, 벌린 채 시안의 모습을 지켜봤다.
시안은 그때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하아···! 하아···!”
차오르는 숨.
그리고.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27.3%(+26.5%)]
품 속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쿠우우우우웅!
시안의 앞으로 검은 오크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