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2화 (12/322)

§ 12화 - 루벤의 영주(2)

“마, 말도··· 안돼.”

그레이슨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정확히는 그레이슨뿐만 아니라,

지금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그러했다.

“어, 어떻게 이런···.”

그레이슨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홉고블린에게 당한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꿀럭,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통증으로 일그러진 정신은 지금도 놓아달라 부르짖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레이슨은 알 수 있었다.

직접 겪어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돌연변이 기종인 홉고블린.

광폭화가 진행된 홉고블린은 너무도 강대했다.

아무리 그레이슨이 뛰어난 사냥꾼이라지만.

어둠의 숲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이라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저 홉고블린을 대적할 수 있는 건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

그것도 오러 유저(User) 중급 이상의 기사만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레이슨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홉고블린을 이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루벤을 지킨다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임을.

그리고 그것은.

꽈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시안이 홉고블린에게 잡히는 순간, 현실이 되었다.

“아, 안돼···.”

“아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절망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레이슨은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그레이슨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짙은 절망이 자리잡았다.

“도련님!!!!”

한스라는 노인의 절규 가득찬 비명만이 처절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 누구도.

여기에 있는 그 어떤 누구도.

서─걱!

기적이라는 꿈을 꾸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기에 시안의 외침이 터져나왔을 때.

콰─직!

끝내 시안의 검이 홉고블린의 머리를 관통했을 때.

쿠웅!

그리하여 홉고블린의 강대함이 시안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

“······!!”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경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내려앉는 침묵.

바로 그때.

“루벤은!”

크나큰 시안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이 적막한 침묵을 깨고 모두의 귓가에 또렷이 들려왔다.

시안은 커다란 홉고블린의 시체 위에 올라있었다.

비틀거리는 몸.

그러나 시안은 쓰러지지 않았다.

고블린 군단들 그리고 영지민들.

시간이 정지된 듯 전장의 모든 존재들이 시안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서 시안이 검을 치켜들어보였다.

뚝뚝, 홉고블린의 새빨간 피가 떨어져내린다.

이윽고 수 백의 고블린 무리들을 향해 겨누어지는 검.

터져나오는 일갈.

“루벤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기세가 폭발한다.

수 백의 고블린 무리들을 눈앞에 두고 있건만, 시안은 당당히 그 앞에 서서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 전체를 오시하는 듯한 위압감마저 품고 있었다.

허세인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은 만신창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검을 겨누는 손은 떨려왔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그런데.

“앞으로 마주하는 모든 불가능에 맞서 싸울지니!”

다가갈 수가 없다.

폭발하는 기세가 전장을 들끓는 폭력으로 가득 채운다.

“나는 시안 엘란두르! 루벤의 영주다!”

시안은 오연히 서있었다.

마치 올 테면 와보라는 듯이.

그러자.

“키, 키엑···!”

“케르륵···!”

폭발하는 기세에 전의(戰意)가 짓눌린다.

고블린 무리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돌아서 도망치는 고블린들의 얼굴에는 짙은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고블린 무리들이 모두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안은 모든 고블린들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쓰러진 홉고블린.

도망치는 고블린 무리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이, 이겼어··· 이겼다고···.”

“우리가··· 우리가···!”

승리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 순간.

시안이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 광경 속에서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도저히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 고개 저었던 그 강대함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루벤의 영주 앞에 무너지는 순간을.

#

“하아···.”

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별 지랄염병을 쌌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함성소리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시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런 쇼맨십은 별로 취향이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전장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시안이 홉고블린을 처리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홉고블린 ‘하나’였다.

아직 남아있는 고블린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전력이 루벤에는 아직 부족했다.

물론 튼튼한 목책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목책만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특히, 보급은 정말이지 열악하다 못해 처참했다.

게다가 가뜩이나 없는 보급인데 시안을 엄호한다고 탈탈 털었을 것이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계속 싸웠다면 필시 사상자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상처뿐인 승리.

이 이상의 싸움은 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약간의 쇼맨십을 부렸다.

뒤바뀐 전장의 흐름을 살짝 이용했다.

시안은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금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뭐.

결과가 좋지 않은가.

“다행히 통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지랄염병이 될 뻔했다.

“도련님!!!!”

그 순간 성난 노호와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한스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시안은 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한스, 나 여기있어.”

“괜찮으신 겁니까!!!”

“아니, 안 괜찮아. 죽을 것 같아. 진짜로.”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통은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그러지 않았다.

진짜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

“나 좀 살려줘 한스···.”

사실 시안은 지금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어둠의 숲은 어둠의 숲이라는 것일까.

홉고블린이 생각보다 훨씬 강대했다.

물론 S등급의 방어구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홉고블린이 주는 충격을 완전히 무효화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시안이 홉고블린한테 잡혔을 때.

그땐 정말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온몸이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나마 S등급의 방어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

아니, 이미 하직했을 터였다.

“아윽···!”

찌릿, 하는 끔찍한 통증에 시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뼈가 몇 군데 아작이 난 거 같은데···.”

“제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가온 한스가 시안의 몸을 이곳저곳 살폈다.

그리고.

‘이건···.’

한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몸 상태가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처참하다?

아니, 이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될 지경이었다.

시안은 뼈가 몇 군데 부러진 것 같다고 했지만 몇 군데가 아니었다.

전신의 뼈가 거의 아작이 나 있었다.

아마 홉고블린에게 쥐어짜내어졌을 때, 그때 으스러진 것 같았다.

그나마 S등급 갑옷 덕분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뿐.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렇게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터였다.

“뭐야.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나 곧 죽어?”

그런데 시안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한스는 멍하니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그때.

띠링!

시안의 품 속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안은 스마트 폰을 꺼내 확인했다.

『[튜토리얼 영지 퀘스트] - ‘영주의 권세란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을 때 생기는 법!’ (클리어!)

▶루벤 영지를 습격해온 고블린 군단!

당신은 정말로 멋지게 고블린 군단을 퇴치했습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말이에요!

뭐, 부상자는 많지만···.

그래도 엄청난 성과라고요!

영지민들이 모두 도망치려 할 때.

모두가 안된다고 고개 저을 때.

당신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증오하는 영지민들을 끝끝내 설득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블린 군단을 멋지게 퇴치했죠!

음··· 좋아요!

이번만큼은 허세를 부려도 용납해드릴게요!

당신, 정말정말 엄청났어요!』

.

.

“휴, 클리어 했구나.”

시안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한스, 나 좀 일으켜줄래? 혼자서 일어나기 힘들어서 말이지.”

“······ 알겠습니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시안을 일으켜세웠다.

시안은 한스의 부축을 받으며 목책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터벅.

한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다름 아닌 그레이슨이 시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레이슨뿐만이 아니었다.

루벤의 영지민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영지민들이 나와 시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시안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에 멈춰섰다.

“무슨 일이지?”

시안은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시안은 고개를 돌려 그레이슨을 바라봤다.

영지민들을 이끌고 있었던 그레이슨.

그레이슨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시안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건 시안의 상태가 처참했을 뿐.

그레이슨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

시안은 그런 그레이슨에게 물었다.

“할 말이 있어?”

그리고 그레이슨 또한 아무런 답을 해오지 않았다.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참다 못한 한스가 한 발 나서던 때.

“지금 도련님께서─.”

“홉고블린을.”

닫혀있던 그레이슨의 입이 열렸다.

“이길 자신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레이슨은 시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얼 묻고 싶은 걸까.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자신 없었어. 나 싸우는 거 봐서 알잖아.”

“······”

그레이슨은 이번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봤으니까.

두 눈으로 똑똑히.

“자신 있었다면 그렇게 엉망진창 싸웠겠어?”

그래서 저 말이 사실임을.

그레이슨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시안과 그레이슨.

아니, 시안과 루벤의 영지민들.

이들이 만난 시간은 짧았다.

아니, 짧다는 말로도 부족해 그냥 없었다.

시안이 그레이슨을 위해, 영지민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시안의 말마따나 시안은 영주고, 이들은 영지민이니까?

그러나 그레이슨은 시안의 면전에다 본인들은 영지민이 아니라며 부정했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레이슨은, 루벤의 영지민들은.

지금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을 시안 또한 품고 있었다.

사실 시안은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레이슨을 구하려 뛰어들어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도 무모한 행동이었으니까.

뒤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홉고블린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당시의 시안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시안은 그레이슨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시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렴. 이는 시안이 귀족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다.’

혹시 이 때문이었을까.

음, 글쎄.

“같이 버림받은 처지라며.”

잘 모르겠다.

“버림 받은 사람끼리 서로를 또 버리면 좀 그렇잖아. 우리끼리라도 잘 해봐야지.”

“고작···.”

그레이슨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작 그딴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목숨을···!”

“그런가 봐.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시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통증인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

그레이슨은 가만히 그런 시안을 바라봤다.

지금 시안의 모습은 정말이지 꼴사납기 그지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은 마치 시궁창을 굴러먹다 온 것만 같았다.

저게 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안은 정말이지 볼품 없었다.

귀족으로서의 품격도.

영주로서의 위엄도.

시안에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일순간 그레이슨의 몸이 천천히 낮아졌다.

이윽고 한쪽 무릎을 꿇고,

다붓이 고개를 숙인다.

“영지민 그레이슨.”

그리고 들려오는 그레이슨의 목소리.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안에게 예를 표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모든 루벤의 영지민들이 시안에게 예를 표했다.

“어···.”

멍해지는 정신.

그것과 동시에.

띠링!

다시 한 번 시안의 품 속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당신은 루벤의 영주로서 의무를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아니, 의무를 뛰어넘어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죠!》

《그런 당신의 고결함은 영지민들 모두가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띠링!

《퀘스트 초! 과! 달! 성!》

《보상의 수준이 변화합니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알림창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영지민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영주로 모시고 섬길 것입니다!》

《이제부터 영지민들 모두가 당신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설령 그것이 부당함에 기반한 명령일지라도요!》

《하지만 안심하지 마세요.》

《부당한 요구가 반복되고 반복되면, 언제고 등을 돌릴 수 있답니다!》

《권세란 맡은 바 의무를 다했을 때 생겨나는 법!》

《언제나 당신이 지켜야하는 의무 또한 함께 해야하고, 그것은 더욱더 무거워진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세요!》

#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난 직후.

“도련님. 아무래도 사제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안의 상태를 살피던 한스가 말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아무래도 상태가 꽤나 심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우리 루벤에 사제가 어딨어.”

“당연히 초청을─.”

“어둠의 숲에 사제가 올까?”

“······”

한스는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시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 적어도 포션이라도···.”

“포션은 또 어디서 구해.”

“······”

한스는 다시 한 번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신체의 회복력을 증진시키는 포션은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으니까.

바로 그때.

“제가 알고 있는 상단이 있긴 합니다만···.”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저희들이 사냥한 마수들을 파는 상단이죠.”

그곳엔 그레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오···?”

시안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둠의 숲까지 오는 상단이라니.

역시 상인들은 돈이 되면 뭐든지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상단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상단 구성원이 두 명이거든요. 그것도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상단이니 포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음··· 하지만 포션은 비싼데.”

“그렇긴 합니다만··· 혹시 가문에서 지원받으신 것은 없으십니까.”

“어···.”

그레이슨의 말에 이번에는 시안의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도련님. 포션은 아니더라도 가문에서 받은 돈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돈이면 충분히 포션을 구매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 그게···.”

“왜 그러십니까?”

시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 돈, 다 썼는데···.”

“······?”

그리고 이번에는 한스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가문에서 받은 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1만 골드.

물론 S등급 장비를 산다고 3천 골드를 쓴 사실을 한스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은 돈은 무려 7천 골드 가량이었다.

7천 골드면 4인 가족이 무려 20년을 놀고 먹을 수 있는 금액.

그런데 그 돈을 다 썼다고?

지금 저게 제정신으로 하는─!

“하하하하. 덕분에 고블린 습격을 막아냈으니까 되었지 뭐.”

“아니, 그게 무슨···.”

한스는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바로 그때.

“영주님. 혹시 목책을 더 설비할 수 있으신 겁니까?”

그레이슨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목책? 그건 갑자기 왜? 무슨 문제 있어?”

“그것이···.”

그레이슨은 난처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골자는 간단했다.

어둠의 숲 안쪽에 어떤 일이 생긴 것 같다.

“추측으로는 강대한 마수가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만···.”

그 때문에 안 쪽에서 자리잡고 있던 마수의 무리들이 밀려났다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난 곳이 바로 이곳, 루벤.

“이번 고블린 무리들도 사실 그렇게 밀려난 놈들입니다. 세력 싸움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 것이지요.”

한 마디로 앞으로 수없이 많은 마수들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뜻이었다.

고블린보다도 더 강력한.

“그래서 루벤에 더 강한 방어 설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

그러면 또 현질해야하는데.

아니, 그보다 또 마수가 쳐들어온다고?

이제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또 마수가 쳐들어온다니.

아무리 마수가 들끓는 어둠의 숲이라지만···.

시안의 정신이 멍해졌다.

물론 모바일 영주에서 방어 설비를 지을 수 있다면야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 돈이 없다는 것.

게다가 방어 설비만 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홉고블린과 같은 돌연변이.

홉고블린만 해도 괴악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물며 트롤, 오우거와 같은 상급 마수의 돌연변이들은 어떠할까.

이런 돌연변이들이 없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모바일 영주의 방어 설비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는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으니까.

현질만 제대로 한다면.

그러나 방어는 어디까지나 방어였다.

돌연변이를 직접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레이슨이 방금 말한 강대한 마수.

그 강대한 마수가 루벤 쪽으로 향한다면?

방어 설비 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강대한 마수와 대적할 수 있는 전력이 필요했다.

루벤을 지켜낼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이.

그런데 대체 누가, 어떻게···?

바로 그때.

띠링!

일순간 스마트 폰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업적 '진정한 루벤의 영주' 달성!》

《특별 할인 항목이 추가 개방됩니다!》

“······ 응?”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새로이 창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초급 패키지 (품절)』

다름 아닌 초보자 성장 지원 초급 패키지.

시안이 S등급 장비 세트를 얻을 수 있었던 패키지였다.

그리고 그 옆에 써져있는 (품절).

당연했다.

1회 구매 한정이었고, 시안은 그것을 구매했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 아래.

정확히는 ‘초보자 성장 지원 초급 패키지’가 있던 바로 그 아래.

새로이 떠오른 알림창 하나가 시안의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중급 패키지 (10,000 G)

구성품: 아르나이즈 무공(武功)』

-본 제품은 단 1회만 구매 가능합니다.

-본 제품은 인과 초특가 할인 제품으로 구매 시 환불이 불가합니다.

.

.

‘······ 초급 패키지가 끝이 아니었어?’

그리고 중급 패키지의 구성품.

'아르나이즈 무공···? 저거 설마···?'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시안은 황급히 품 속의 돈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렇게 확인한 금액은···.

짤랑.

백금화 넷.

400골드였다.

튼튼한 목책과 즉시 완료권을 구매하고 남은.

포션 하나 사면 없어질.

“······”

“진짜 다 썼·········던 겁니까?”

시안과 한스의 어이가 각자 다른 의미로 출타했다.

내려앉는 침묵.

그리고 이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돈.

“그레이슨. 아까 상단에 마수 사체를 판다고 했었나?”

현질할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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