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현질을 해보세요!(2)
부릅, 떠진 한스의 두 눈은 좀처럼 줄어들지않았다.
그와 동시에 표정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을 본 것 마냥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얼굴은 뭐야. 오다가 귀신이라도 봤어?”
“그, 그것이···.”
지금 눈앞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한스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한스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북히 쌓여있는 고블린 무리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몇몇 사체들에서는 피가 꿀럭거리며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짙은 피 비린내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 무슨···.”
그렇기에 한스는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정황상 이 광경은 다름 아닌 시안이 만든 것이라 생각되었으니까.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무려 수 십이었다.
평범한 고블린이 아니라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가, 무려 수 십이었다.
시안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유인한 고블린 무리들이 자그마치 수 십이었다.
한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자신조차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숫자였다.
젊었을 때의 자신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의 자신에겐 상당히 버거운 숫자였다.
그런데 그 수 십의 고블린 무리들이 깔끔하게 절단된 채 허물어져있었다.
“아.”
혹시 꿈인가?
한스의 생각이 기이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니면 벌써 노망이라도 난 것일까?
그것 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
“······ 내가 죽은 건가?”
한스는 어쩌면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시안이 자신을 위해 고블린 무리들을 유인했다.
그러나 자신은 끝내 남은 고블린들을 처리하지 못했다
자신은 지금 사경을 헤매는 중이고,
이 상황은 간절한 소망이 투영된 꿈.
이 모든 것들은 죽기 전에 스쳐지나가는 주마등 같은 것들이기는 개뿔!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한스는 버럭, 소리쳤다.
“하하··· 조금 놀랐지?”
그러자 시안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여보였다.
한스는 화를 내듯 소리쳤다.
“조금 말씀이십니까? 지금 이걸 보고 조금이라는 말이 나오십니까? 대체 어떻게 이런···! 아니, 그보다 몸은! 몸은 괜찮으신겁니까!”
“보다시피. 끄덕없어.”
시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가슴을 두들겨보였다.
그런 시안의 가슴으로 살끼리 맞부딫히는 소리가 아닌, 둔탁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쇠붙이 소리?
한스는 그때서야 시안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사롭지 않아보이는 검과 갑옷.
“그건···?”
“아, 그게 말이지.”
시안은 검을 내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빰빠라빰!
돌연 시안의 품 속에서 경쾌한 팡파르 소리가 들려왔다.
“응?”
시안은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렇게 스마트 폰 화면 위로 떠오른 알림창 하나.
《튜토리얼 퀘스트 클리어!》
그건 튜토리얼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루벤 영지를 위협하는 고블린 무리들을 퇴치하라는 내용의 퀘스트.
“어라, 클리어 되었네.”
“······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깐만 한스.”
시안은 한스의 물음을 뒤로 한 채, 떠오른 알림창을 자세히 확인했다.
꾹.
『[튜토리얼 퀘스트] - ‘이게 내 영지라고···?’ (클리어!)
→당신은 영지를 습격한 몬스터들을 멋지게 퇴치했습니다!
빠샤빠샤!
역시 루벤의 영주!
영주로서의 품격과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넘치십니다!
들리십니까!
당신을 향한 환호성이 말입니다!
분명 영지민들도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넹?
루벤에 영지민이 있기는 하냐고요?
음··· 아마도요?』
.
.
“······ 뭔데?”
시안은 잠깐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위로 떠오른 내용.
그것이 상당히 요란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경박하다고 할까.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가 맞긴 한걸까?”
아닌 거 같은데···.
시안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띠링!
《튜토리얼 퀘스트 성공!》
《영지 관리 시스템을 개방합니다!》
이윽고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동기화 중···.》
《루벤 영지의 인과를 수집합니다.》
《해당 작업은 조금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
《Loading··· 7%》
그리고는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저것이 100%가 되어야 개방되는 듯 싶었다.
영지 관리 시스템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걸릴 듯 싶었다.
시안은 스마트폰을 다시 품 속으로 집어넣었다.
“도, 도련님···?”
그러자 들려오는 한스의 물음.
바라본 한스의 표정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음···.
“일단 영지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
시안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루벤 영지로 돌아가는 길.
“그, 그러니까··· 그것이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라는 것입니까?”
한스는 우뚝, 발걸음을 멈춰서보였다.
바라본 한스의 표정은 방금 전보다 더욱 경악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답했다.
“정확히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어, 어떻게 그런···!”
그러자 한스의 표정이 경악에 경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안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마도구만 하더라도 작은 성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성능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럼에도 쉬이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티팩트(Artifact)라 함은.
그런 마도구 중에서도 궁극이라 불리는 최상급이었다.
아티팩트는 자그마한 왕국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무한했다.
이에 수많은 마도학자들과 마법사들이 아티팩트를 재현하고자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천년 전에 소실된 아티팩트만이 잔재하여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미 아티팩트라는 것도 놀라울진대,
심지어 아르나이즈가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말이 안 되었다.
아르나이즈는 천년 전에 활약한 신화 속의 영웅들이었다.
말 그대로 ‘신화’ 속의 영웅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실존한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현실과 동떨어져도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신화' 속의 이야기였으니까.
“혹시 동굴에서 떨어지셨을 때 머리를 다치신 건···.”
아무리 시안의 말이라도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머리도 다치긴 했는데···.”
“역시 그때 정신이 어떻게 되신─.”
“그런 게 아니야. 이거 봐.”
시안은 들고 있는 검을 내밀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
“내가 그 많던 고블린 무리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겠어?”
“······”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그랬으니까.
처참한 시안의 재능을 알고 있는 한스였다.
그렇기에 방금 전.
고블린 사태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말이 되기 위해서는···.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 정도가 되어야 말이 되겠군요.”
“······ 맞는 말이긴 한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기분 탓입니다.”
한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표정에 깃든 놀람의 감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기사, 나도 아직 완전히 믿기지 않으니까.’
시안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가 맞다면.
시안은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아르나이즈의 아티팩트.
그건 희대의 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했으니까.
그럼에도 시안이 한스에게는 솔직하게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시안에게 있어 한스는 집사이자 시종이었고,
친구이자 자상한 할아버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스는 시안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
그것만 봐도 한스가 시안을 얼마나 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시안의 뒤통수를 치든.
아니면 등골을 빨아먹든.
이미 골백번도 더 했어야 할 상황이었다.
진즉에 배신을 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후작가의 망나니이자 사생아였던 시안.
시안은 가문에서 찬밥 신세였다.
한 마디로 붙어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스는, 지금까지 시안의 곁을 지켰다.
“빨리 영지로 돌아가자.”
시안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한스는 멀어지는 시안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그런데 어둠의 숲치고는 마수가 너무 없는 것 같지 않아?”
시안이 침묵을 깨고 툭, 말을 내뱉었다.
한스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블린 무리들에 쫓기던 건 벌써 까먹으신 겁니까?”
“그거 말고는 없잖아. 소문으로는 어둠의 숲에는 마수가 들끓는다고 하던데··· 썩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의 말처럼 어둠의 숲 치고는 마수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한데···.”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말했다.
“너무 없잖아. 어디 도적 떼라도 안 나타나나?”
“······ 어떤 미친 도적이 어둠의 숲에 나타나겠습니까? 그런데 전에도 똑같은 말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한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몬스터한테 죽기 전에 심심해 죽을 지경이라고.”
“······ 또 그 소리이십니까.”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들이 이르기를, 언령(言靈) 마법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정말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아니, 진짜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언령 마법은 천년 전에 소실되었잖아. 말로만 존재한다 할 뿐, 천년 동안 아무도 못했는데 뭔. 그리고 이번에도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죽으시겠죠.”
“······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지금은 장비가 있으시니 반항 정도는 하실 수 있으시려나요.”
“······”
시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그러니 괜히 허세부리지 마시죠.”
시안은 기지개를 쭉, 피며 말했다.
“너무 심심하잖아.”
“처한 상황이 개판인데 심심한 게 무슨 문제입니까?”
“문제가 안될 건 뭔데?”
“······”
한스는 순간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한스. 뭐라도 재밌는 이야기 좀 꺼내봐.”
대체 무슨 생각이신건지···.
한스는 짙은 한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제가 할멈 이야기를 해드렸었던가요.”
“할멈? 한스 결혼했었어?”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기억 속.
한스는 언제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시안의 유년 시절부터 함께 해온 자였다.
실력 있는 용병이었던 한스.
그런 한스가 엘란두르에 정착하게 된 것은, 시안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듣기로는 시안의 어머니, 세실에게 어떤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워낙에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탓에 시안은 그 은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세실에게 물어도 그저 웃음만 지을 뿐.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다.
처음엔 상당히 궁금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세실님을 만나기 전이었으니 말이죠.”
세실은 다름 아닌 시안의 어머니.
한 마디로 시안이 태어나기 전.
한스는 어떤 이유로 아내와 이별했다는 뜻이었다.
“새드 엔딩이라면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한스의 말마따나 처한 상황이 지랄맞은데 괜히 나도 새드 엔딩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해피 엔딩입니다. 그 나쁜 할멈의 면판을 안 봐도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런 거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갑자기 흥미가 돋았다.
“어떻게 된 일인데?”
“그게 그러니까···.”
바로 그때.
앞선 풍경으로 일순간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음, 영지에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러게.”
시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저 말하라는 듯 한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한스의 얼굴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인기척? 설마. 이곳에 누가 있겠어. 기분 탓이겠지.”
“제가 빠르게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니야. 천천히 가도 돼.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한스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도련님은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죠.”
“아니, 한스! 이야기는 하고 가야지! 한스!”
그러나 한스는 시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듯 걷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이제 도련님도 뭣도 아니다 이거지.
시안은 혀를 한 번 차보이고는 한스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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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한스를 따라 루벤 영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안은 영지의 중앙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영지가 워낙에 아작이 나있는 탓에 중앙이라 부름이 맞는 건가 싶었다.
솔직히 영지라기보다는 폐허라는 말이 적합했지만···.
뭐, 아무튼.
남성 수 십과 그보다 조금 적은 수의 여성.
간간히 노인과 아이로 보이는 이들도 섞여있었다.
아마 저들이 루벤의 영지민들인 것 같았다.
영지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 고블린들이 죽어있어.”
“뭐, 뭐라고?”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듣자하니 시안과 한스가 처리한 고블린 무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시안과 한스는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영지민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다가갔다 싶었을 때.
영지민들이 시안의 모습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