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도망쳐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3)
“괜찮단다 시안. 모두 괜찮아질거야.”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시안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포근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시안은 마주 웃어보이며 생각했다.
아, 이거 꿈이네.
시안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죽었다.
이건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그리운 그때의 꿈.
처음엔 더없이 반가웠다.
그러나 이제는 자각몽임을 단번에 알 정도로 무덤덤하다.
하도 많이 꾸었으니까.
“엄만 괜찮아. 우리 시안이 있으니까 엄마는 끄덕 없단다.”
세실은 언제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시안은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괜찮지 않았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어머니의 모습을, 시안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럴 수 없었던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시안은 알고 있었다.
당시의 어린 시안은 알지 못했지만.
지금 꿈 속의 시안은 알고 있었다.
“괜찮단다. 모두 괜찮아 질 거란다.”
저건 시안이 아닌 세실, 본인 스스로에게 했던 말임을.
시안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꿈이란 참으로 야속하다.
잊을 만하다 싶으면 그 기억을 끄집어 내니까.
“시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렴. 이는 시안이 귀족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다.”
엄마는 할 수 없지만···.
시안의 기억 속에서 세실은 무척이나 현명했다.
고작 평민 혹은 시녀라고 생각될 수 없을만큼.
“네. 꼭 그럴게요.”
시안은 세실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세실이 살짝 놀라 보였다.
이윽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
이제 슬슬 깰 때가 되었다.
꿈은 결국 꿈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거다.
지금은 무뎌지고 무뎌진 감정이다.
그저 가슴 속에 굳건히 박혀있을 뿐.
꿈이 꿈처럼 흐른다.
이윽고 부유하던 정신이 되돌아온다.
“으음···.”
시안은 아찔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멍한 정신.
의식은 돌아왔으나 정신은 아직 몽롱했다.
시안은 잠시 정신을 못차리고 몇 번 꿈틀거렸다.
이윽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몸 상태는 크게 이상이 없었다.
도망치면서 여기저기 긁힌 것들.
고블린에게 당한 상처.
추락할 때 접질린 관절.
이것들 이외에는 이렇다할 부상은 없었다.
“괜찮은 게 맞는건가.”
뭐, 죽지 않은게 어디냐.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곧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쏟아지듯 떠올랐다.
시안은 달뜬 숨을 한 번 삼키고는 잠시 기다렸다.
다름 아닌 정신을 잃기 전 들렸던 목소리.
혹시 그 목소리가 또 들려올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음.”
시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삭, 무너져내린 동굴 안.
어두컴컴한 동굴 내부였으나 시야 한 켠에서 자그마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지정표처럼 그것은 빛나고 있었다.
“가봐야겠지?”
시안은 큰 망설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끝에 도달하자 보인 것은 넓고 휑한 공동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제단.
제단 위에는 자그마한 무언가가 놓여져있었다.
새어나오던 빛은 다름 아닌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바로 앞까지 접근한 시안은 제단에 놓인 것을 빤히 바라봤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직사각형의 무언가.
그건 마치 정교한 마도구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는데···.
[Smart Phone]
제단 밑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 쓴 거야?”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시안이 알고 있는 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대륙 공용어가 아니었다.
“룬어?”
그렇다고 하기엔 생긴 모양이 사뭇 달랐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룬어.
물론 시안은 룬어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본 적은 있었고, 그건 이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일순간 글자가 일그러지더니 새로운 글자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새로운 형태의 글자, 대륙 공용어로 완성되었다.
[스마트 폰]
“스마트 폰?”
뭔데 이건?
시안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먹지 못했다.
스마트폰.
맹세하건대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였다.
“겉보기로는 마도구처럼 보이는데···.”
마도학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마도구.
시안은 스마트 폰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화아아악!
그러자 스마트 폰에서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시안은 순간적으로 뻗었던 손을 떼었다.
스마트 폰에 맞닿은 손 쪽으로 빛이 흡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빛은 거미줄처럼 이어지며 시안의 손으로 계속해서 흡수되었다.
“뭐, 뭐야.”
당황스러운 심정이 드는 것도 잠시.
이내 빛이 전부 흡수되고.
띠링!
일순간 스마트 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스마트 폰 화면으로 무언가 떠올랐다.
《새로운 관리자에 적합한 인과를 측정합니다.》
《측정 중···.》
.
.
.
《완료!》
《모바일 영주를 설치하시겠습니까?》
“모바일··· 영주?”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상황에 시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시안은 확인 차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저 알림창 너머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버튼을 눌러야 하는 건가?”
시안은 잠깐의 고민 끝에 설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시금 띠링! 하는 알림음이 들려오며 화면이 바뀌었다.
《모바일 영주를 설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Loding···.》
.
.
《영지의 정보를 동기화 중입니다···.》
《관리자 확인 중···.》
.
.
.
《동기화 및 확인 완료!》
《모바일 영주님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바뀐 화면에 보인 것은 황폐화 된 땅 그리고 불타는 초목.
그 사이로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년 전, 세상에는 크나큰 위기가 닥쳐왔다. 악마들의 침공. 강력한 악마들의 침략에 세상은 불타고···.》
“갑자기 뭔데?”
시안은 말 그대로 이게 뭔가 싶었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대항했지만 마신의 힘은 너무도···.》
그런 시안의 심정과는 별개로 스마트폰에서는 화면이 바뀌며 계속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안은 송출되는 화면과 목소리를 무시한 채,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폈다.
바로 그때.
《스토리를 스킵하시겠습니까?》
“스토리 스킵?”
이것도 눌러야 진행되는 건가?
시안은 설치 버튼과 비슷하게 생긴 스킵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아쉬워요! 전달자가 머리 싸매며 준비한 스토리인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원래 게임의 스토리는 스킵하라고 있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스킵된 스토리는 언제든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궁금하시면 꼭 보러와주세요!》
이윽고 금방 화면이 바뀌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띠링!
다시금 들려오는 알림음과 함께 꽤나 긴 글의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튜토리얼 퀘스트] - ‘이게 내 영지라고···?’
→루벤 영지에 첫 취임하게 된 당신.
두근두근! 세근네근! 이두박근!
떨리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며 영지에 왔습니다만···.
어머나 세상에!
이게 영지야! 몬스터 소굴이야!
영지를 점령하다시피한 몬스터 무리들!
영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루벤 영지를 위협하는 몬스터 무리들을 퇴치하세요!』
<보상 - 영지 관리 시스템 개방>
“······ 이건 또 뭔데?”
시안의 어이가 일순간 승천했다.
#
승천한 시안의 어이는 금방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어이와 함께 출타한 정신은 조금 뒤늦게 돌아왔다.
그 때문일까.
“튜토리얼 퀘스트?”
뭐라는 건지 하나도 알아먹지 못했다!
“이게 대체 뭔데?”
시안은 떠오르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일단.
이 스마트 폰인지 뭐시기인지.
이것부터가 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짐작가는 것은 있었다.
일종의 마도구.
마도학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마도구들은 상식의 범주를 가볍게 넘나든다.
그렇기에 지금 이 스마트 폰 또한 마도구의 일종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내가 루벤 영지의 영주로 온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기억을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누군가 미리 그 정보를 입력해놓았다면 가능할 수 있겠으나···.
시안이 루벤의 영주가 된 것은 고작 며칠 전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아?”
그러다 퍼뜩, 시안은 조금 전에 떠올랐던 알림창이 생각났다.
‘동기화 및 확인 완료!’
동기화.
“설마 나에 관한 정보를 동기화했다고?”
불가능했다.
이건 단언할 수 있었다.
물론 시안이 마도학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엘란두르의 가문에 있으면서 먼 발치나마 많은 마도구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는 못했지만···.
뭐, 아무튼.
확신하건대 시안은 이런 마도구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람의 정보를 동기화하는 마도구라니.
그런 마도구 있다는 것조차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 순간.
그건 더 이상 ‘마도구’라 부를 수가 없었다.
아티팩트(Artifact).
그건 마도학의 궁극이라 불리는 아티팩트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아티팩트는 천년 전에 소실되었다.
수많은 마도학자들이 아티팩트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저 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잔재처럼 남아있을 뿐.
말 그대로 천년 전에 소실되었─.
“잠깐.”
시안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다름 아닌 동굴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들려왔던 기이한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르나이즈를 호출합니다.’
아르나이즈(Arnaiz).
일명 ‘6인의 아르나이즈’라 불리던 이들은 천년 전, 세상을 구원한 영웅들이었다.
악마들의 침략에 맞서 지금의 대륙을 지켜낸 신화 속의 영웅들.
‘Error: 응답 가능한 아르나이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르나이즈들은 천년 전에 모두 죽었으니까.
지금은 그들이 활약하던 시대로부터 무려 천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살아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혹시 그 때문일까.
이후에 들려온 목소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과율에 의거하여 새로운 관리자를 탐색합니다.’
그렇게 저 말을 끝으로 동굴이 무너졌고,
시안은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안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하나.
“내가 새로운 관리자가 되었다?”
이 스마트 폰의 뭐시기하는 것에?
전후상황만 보고 판단하면 그러했다.
“흐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일단은 넘어가자.”
시안은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넘겨 짚는 것에 불과했다.
이 스마트폰이 마도구인지 아니면 아티팩트인지.
아르나이즈가 시안이 생각하는 그 아르나이즈인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것들이 지금 당장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다.
아티팩트면 어떻고,
아르나이즈면 또 어떻단 말인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
『[튜토리얼 퀘스트] - ‘이게 내 영지라고···?’』
저 튜토리얼 퀘스트라는 것을 해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모든 고블린들이 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시안을 따라 동굴로 들어온 고블린들은 모두 죽었지만 입구에 있던 고블린들은 아직 남아있었다.
아마 동굴 밖을 서성이며 시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보상으로 준다는 영지 관리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궁금하고.”
단순하게 보면 영지를 관리하는 어떤 것인 거 같은데···.
저것을 개방하고나서 나머지 문제들을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저 퀘스트가 우선.
정확히는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우선.
하지만.
“음··· 그런데 어떻게 처리하지?”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은 고블린 무리들을 상대할 저력이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유인을 하지도 않았겠지.
“아까처럼 동굴 안으로 유인을 하면···.”
시안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의 동족들이 찢겨져나가는 것을 본 놈들이었다.
광폭화로 인해 이성의 영역이 도려내어졌다고는 하나 죽음에 대한 공포, 그 본능의 영역은 남아있었다.
게다가 처음 들려왔던 기이한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고블린들을 폭사시킨 그 빛이 또 작동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애써 유인했는데 빛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낭패였다.
“한스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하나?”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고블린 수는 많았고,
아무리 한스라도 저 많은 수의 고블린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던 바로 그때.
띠링!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뭐지?”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떠오른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봤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초급 패키지 (3,000 G)
구성품: S등급 장비 1종 세트.』
-본 제품은 단 1회만 구매 가능합니다.
-본 제품은 인과 초특가 할인 제품으로 구매 시 환불이 불가합니다.
“이건 또 무슨···.”
그리고 다시.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 현질?”
아니, 진짜 뭐라는 거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