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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3화 (3/322)

§ 3화 - 도망쳐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1)

“그, 그것이··· 죄, 죄송하지만 더 이상 마차가 갈 수 없을 것 가, 같습니다.”

노인은 아무런 대답을 해오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마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그 거리가 조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부를 바라보는 담담한 노인의 눈빛.

그 이유를 묻는 것일까.

아니면 방금 전 마부가 보인 태도를 질책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마부는 그에 대한 답을 해야만 했다.

“그, 그게 여기 보시다시피···.”

마부는 몸을 움찔, 떨어보이며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이동한 시선.

히이이이잉!

그것엔 마차를 끌던 말들이 거친 투레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두려움에 떠는 듯한 모습.

말들은 어쩐 일인지 이 이상의 이동을 거부하고 있었다.

말들을 바라보던 노인의 시선이 다시금 마부에게 향했다.

그리고 마부를 향해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됐어 한스.”

일순간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청년.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한스라 불린 노인의 시선이 시안에게 향했다.

“하지만 도련님. 아직 루벤까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내리시면···.”

“오히려 천천히 가고 좋네. 뭐가 그리 급하다고.”

“······”

이어진 시안의 대답에 한스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급할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급해서는 안되었다.

지금 향하고 있는 목적지 루벤.

그곳에 빨리 도달해봤자 좋을 건 없었으니까.

“······ 알겠습니다.”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차가 멈추고.

“아으으윽···!”

시안은 크게 기지개를 피며 마차 밖으로 나왔다.

어둑어둑해지다 못해 시꺼멓게 물든 풍경.

마부가 미리 준비한 자그마한 횃불만이 시야를 작게 밝히고 있었다.

시안은 횃불이 주는 빛에 의지하며 품 속을 뒤적거렸다.

이윽고 큼지막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뒤따라나오는 한스에게 건넸다.

“한스. 이거 마부한테 전해줘.”

한스는 무심코 시안이 건네는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짤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한스는 슬쩍, 주머니 안에 든 내용물을 살펴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안에게 말했다.

“도련님. 약속된 운임비는 50골드였습니다. 그런데 주신 주머니에는 100골드가···.”

“알아.”

시안은 단호하게 답을 해왔다.

그리고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한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50골드도 이미 많은 금액입니다. 굳이 더 얹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의 물가 기준.

4인 가족이 한달 동안 적당히 사치를 부리며 살 수 있는 금액이 대략 30골드 내외였다.

아무리 위험지역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마차를 태워주는 것으로 50골드는 이미 차고 넘치는 금액이었다.

그걸 시안이라고 모르지는 않았으나.

“괜찮아. 그냥 줘.”

시안은 뜻을 꺾지 않았다.

뭐, 딱히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몇 가지 꼽자면···.

영지 운용 자금으로 후작가에서 지원한 돈이 좀 있었고.

물론 말이 영지 운용 자금이었지 사실상 노잣돈이었지만···.

뭐, 아무튼.

모두 루벤 영지로 가지 않겠다고 고개 저었을 때, 유일하게 나서준 마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번에 딸 시집 보낸다고 하잖아.”

아마 그래서 돈이 많이 필요해 지원한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목숨을 건 것은 변함 없었다.

게다가 여길 마차없이 왔을 생각을 하면···.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줘.”

“······”

단호한 시안의 태도에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후작가의 망나니라 불리던 시안.

한스는 절대로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보라.

이게 대체 어딜 봐서 망나니의 모습이란 말인가.

“······ 알겠습니다.”

한스는 천천히 마부에게 다가갔다.

“도련님께서 특별히 더 챙겨주셨다. 유용하게 잘 쓰도록.”

“······!”

마부는 손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에 눈을 부릅, 떠보였다.

그리고 살며시 확인한 금액.

“이, 이렇게나 많이···!”

마부는 시안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방금 전, 자신이 시안을 한심하게 봤던 것에 죄책감이라도 든 것일까.

마부의 눈망울이 살짝 떨려왔다.

이윽고 마부의 허리가 부러져라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딸 결혼 축하한다고 전해줘.”

시안은 그저 손짓으로 작은 화답을 해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비쳐진 시야 앞으로 칠흑의 밤에 삼켜진 숲의 풍경이 비쳐보인다.

마치 심연의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흉폭한 마수라면 또 모를까.

‘이딴 곳에 영지가 있다니 참···.’

오면서 계속 들던 생각이었지만 직접 보니 더 가관이었다.

.

시안은 잠시 망설이다 터벅,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숲 안 쪽으로 진입하려던 그때.

“저···.”

일순간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떠난 줄 알았건만.

마부는 어쩐 일인지 그 자리에 서성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스가 물었다.

“할 말이 있나?”

“아··· 그··· 할 말이라기 보다는···.”

마부는 고민이라도 하듯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마부의 모습에 한스가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설마, 도련님이 준 돈이 부족하다는─.”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마부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마구잡이로 손사래를 치는 마부.

“그럼 무엇이지?”

“그게 실은, 제가 오면서 중간에 한 번 길을 잃었었는데···.”

마부는 조금의 뜸을 더 들여보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 몬스터를 한 번 만났었습니다.”

“뭐라고?”

갑작스런 마부의 말에 한스가 살짝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시안 또한 그런 한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몬스터를? 전혀 기척을 못 느꼈는데?”

“아마 그러셨을 겁니다. 그게 어쩐 일인지 공격을 해오지 않았거든요.”

“······ 공격해오지 않았다고?”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닌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 분명 눈이 마주쳤었거든요.”

마부는 그때의 일이 떠오른 것인지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그런데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마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지만··· 자세히 보니 어떤 동굴 주위를 계속 서성이기만 했습니다. 마치 그곳에 다가가기를 두려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가가기를 두려워 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시안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는 오로지 본능만이 남은 짐승이었다.

특히 같은 몬스터라 할지라도,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몬스터는 더욱 정도가 심했다.

어둠의 숲에 드리운 마기(魔氣)는 놈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것을 도려내었으니까.

새까만 증오와 광기로 뒤덮인 축생이자 맹목적인 살의로 빚은 짐승.

그것이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였다.

그런 마수가 두려움이란 감정을 내보였다?

“저도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는데···.”

“흐음···.”

시안은 잠깐의 고민 끝에 물었다.

“그 동굴이라는 것이 어디였지?”

“여기서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만, 서쪽으로 쭉 가시면 유독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마부는 최대한 자세히 동굴의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긴 설명이 끝나고.

“부, 부디 도움이 되셨으면···.”

마부는 그제서야 주섬주섬, 떠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아마 별로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애초에 시안과 한스가 믿어줄지도 의문이었을 테고.

그러나 시안에게 100골드를 받은 것이 상당히 고마웠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죄책감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뭐라도 화답을 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 같았다.

한 마디로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

“고마워. 참고하도록 할게.”

그렇기에 시안 또한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

시안은 한스와 함께 어둠의 숲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쯤인 것 같은데···.”

시안은 루벤 영지가 있는 곳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시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에···.

아니, 그나마 몬스터들이 없는 곳에 영지를 세운 것일까.

“어떻게 몬스터가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여기 어둠의 숲 맞아?”

시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았다.

“다행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한데···.”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말했다.

“너무 없잖아. 어디 도적 떼라도 안 나타나나?”

“······ 어떤 미친 도적이 어둠의 숲에 나타나겠습니까?”

한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몬스터한테 죽기 전에 심심해 죽을 지경이라고.”

“······”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로 그때.

앞선 풍경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마치 숲이 끝나는 경계선과도 같은 풍경.

“아무래도 루벤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런 거 같네.”

“제가 먼저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한스는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루벤.

“······”

“······”

시안과 한스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보이는 루벤 영지의 풍경.

이건 도저히 영지라고 부를 만한 풍경이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건물의 잔해들.

그것은 마치 안개에 둘러쌓인 고요한 묘지와도 같았다.

이게 영지인지.

아니면 폐허인지.

생기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반대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보일 뿐이었다.

바람을 타고 어렴풋이 피 비린내가 느껴진다.

그리 머지 않은 시점.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게 루벤 영지라는 거지?

앞으로 내가 영주로서 다스려야 하는?

“어···.”

시안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걸까?”

“······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한스는 저벅, 영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걸 영지라 불러야 함이 맞는건가 싶었지만 아무튼.

시안 또한 그런 한스를 따라 영지 안으로 들어갔다.

반파를 넘어 잔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풍경.

시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 그나마 멀쩡한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민가처럼 보이는, 정확히는 민가였던 것.

시안은 천천히 건물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전부 채 열리기도 전.

케륵?

시안은 가장 먼저 괴성과도 같은 무언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열린 문틈 사이로 붉은 광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을 온전히 열었을 때.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었다.

번뜩이는 붉은 광채.

손에 들려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

입가로 뚝뚝, 흐르는 피.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찰나.

키에에에에에에엑!!!!

터져나오는 끔찍한 살기.

“어쩐지.”

오면서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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