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수비대 (3)
일제히 기울어지는 아이들의 고개.
“······?”
“······?”
열심히 눈치를 보면서도 내게 말을 걸어오던 이하린과 아리엘은 물론이고, 멍하니 앉아있던 남궁설아조차도 라피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이건 나 또한 조금 당황스러웠기에 그러한 반응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으니,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다시 물음을 건네보았다.
그러니까.
“그래서··· 대체 뭘 고르라는 겁니까?”
대체 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단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물론, 내 물음에 갸웃거리던 그녀들 또한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모습을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본 라피냐는 이내 작게 고개를 털어내고선 대답을 돌려주었다.
“뭐긴요. 팀명이지요.”
“······.”
그것도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아, 당연히 정식 명칭은 아니에요. 다만 아직 공식적으로 작전이 시작되는 건 아니라, 그전까지 임시로 부를 만한 명칭 하나 정도는 정해두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어요?”
“······아니.”
“솔직히 여러분은 좀 특별한 편제가 될 예정이니까, 알기 쉽게 지어본 거예요 나름.”
나는 잠시 어이없는 기분에 라피냐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냥 다 받아들이라는 듯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 심경을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부분은 단순히 저 이상한 팀명만이 아니었으니, 나는 이내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 말은 즉.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이 인원 모두 작전에 참여하는 게 되었다는 겁니까?”
“예. 그렇게 됐네요. 어쩔 수 없이요.”
저런 우스꽝스러운 팀명까지 지어줄 정도로, 라피냐 또한 그녀들, 이하린과 아이들의 참전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전부 팀으로 묶어버리면서까지.
“······.”
아니, 정말 그녀들의 참전이 반려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쪽이 더 속 편하긴 하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분명 라피냐 또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불만에 차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되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조금 떨떠름했다.
“낮에는 분명··· 반려를 요청해본다고···.”
“애초에 등천의 구도자에서 보낸 거라 제 선에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했잖아요.”
“···조율해보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티르유 씨와도 얘기를 나눴고, 이건 좀 별개지만··· 루타텔 님도 받아들였거든요.”
“아, 아빠가! 아, 아니··· 아버지가요?”
아리엘이 두 눈을 크게 깜빡거린다.
“예. 나중에 전화하신다고 하시더군요.”
“······저, 저한테요?”
“그럼 누구한테 할까요? 뭐, 그래도 걱정은 하시는 것 같았으니까 잘 얘기해보세요.”
“아··· 네, 넵. 감사합니다.”
라피냐는 도대체 뭐를 하고 온 걸까.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채, 이 상황을 떠맡기고선 회의에 들어간다고 하길래 혹시나 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더니, 반려는커녕 오히려 더 확실한 지지까지 받아왔다.
벙찐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던 아이들이 잠시 놀라긴 했으나, 이내 환히 웃을 정도로 도움이 되는, 그러니까 저 아이들의 자신감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말을 말이다.
“와! 루타텔 님이 허락해주셨나 봐요!”
“···응! 그런가 봐! 아빠도 있었구나···. 잘 됐다 이러면, 다 같은 팀이니까. 그치?”
“네! 저희 셋이 아니라 다 같이예요···!”
나를 보며 두 눈을 반짝거리는 그녀.
[좋아 (ง˙∇˙)ว(ว˙∇˙)ง(૭ ᐕ)૭٩( ᐛ )ง]
아니, 허공에 떠다니는 문자까지 보아하니 아리엘도 상당히 기뻐 보이는 듯했다.
물론 팀명이란 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꿈틀거리던 진시우의 얼굴은 이 시점에서 완전히 구겨져 버렸고, 나 또한 다소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게 됐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들의 기분은 한순간에 들떠버렸을 뿐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리엘은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꾸준히 눈치를 보며 쭈글거리고 있던 이하린 또한 안심했다는 듯 방실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렇게.
“······.”
그나마 남궁설아가 별다른 감정의 변화를 내비치진 않는듯했으나, 그녀도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잘 부탁한다는 듯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왔으니 큰 의미는 없었다.
참으로 복잡하고, 심란해지는 기분.
하지만 그런 내 심경은 상관없다는 듯 라피냐는 계속 아까의 주제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팀명은 뭐로 할건데요?”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 어째 회의를 하다 보니 작전의 골자가 달라져서, 저도 빨리 보고를 올려야 하거든요. 임시지만 편제는 확정을 해야 해서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그런 명칭으로 들고 온 건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
볼까지 살짝 상기된 채로 이하린과 이야기하며 신나하던 아리엘이 그 말에 무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어왔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이름인가요?”
하지만 물론.
“귀엽잖아요. 다들 아기자기하고.”
“······.”
그건 별 의미 없는 의문이었고 말이다.
“안 그래도 생도가 한 명만 껴도 시선이 확 쏠릴 텐데, 어쩌다 보니까 생도로만 이루어진 삐약이 모임이 되어버렸잖아요? 어차피 임시인 거 확실히 기억에 남게 해줘야지요.”
“······.”
“제대로 각인을 시켜놔야 현장에서 타 기관에서 나온 분들이나, 다른 집행자들을 마주쳤을 때 괜한 일이 안 생길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라피냐가 생긋 웃어 보였다.
“얌전히, 대충 아무거나 하나 골라봐요.”
“······.”
어째 약간은 심술을 부린다는 느낌.
아니, 혼자 멀찍이 떨어져 앉아 라피냐를 노려보고 있는 진시우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라피냐가 장난 아닌 장난을 치고 있는 건 맞아 보였고, 그녀는 아무래도 우리에게 미묘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꾸러기 수비대라든가 떡잎 뭐라던가, 그런 유치한 명칭이 의미하듯이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생도라는 게 신경 쓰이는 것 아닐까?
나와 진시우가 처음 그녀에게 걸렸을 때도 그렇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렇고, 그녀는 미성년자의 본격적인 작전 참여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근데 너무 유치해요. 뭔··· 애도 아니고.”
“평소에 아리엘 씨 언령은 그런 느낌 아니었나요? 자료를 보니까 비슷하던데요 뭘.”
“아니, 저기··· 그··· 오해가 있으신데, 언령은 그냥 직관적으로 말하는 것뿐이에요.”
“음? 팀명도 직관적으로 어울리잖아요.”
“······.”
아무래도 그때의 우리를 수용했듯이, 이번에도 그 모든 걸 고려하고서라도 나름대로 쓸만한 전력이라는 걸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받아들여진 건지, 그녀의 사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일이 이렇게 일단락지어진 모양.
저 미묘한 표정과 태도가 어째 사고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으니, 왠지 그와 비슷한 이유지 않을까 싶긴 하였다.
그리고 물론.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애초에 그런 관점에 대해서는 나 또한 다소 애매한 입장에 위치해 있었고 말이다.
아니, 당연히 나로서는 이하린도 아리엘도 이런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는 주관적인 견해로서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했고, 나 또한 스스로도 내 걱정이 과하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의 문제.
실질적으로 이 세상에서 그녀들에게 위험이 될만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나눈다면 압도적으로 후자의 비율이 더 높을 터였고, 유망주, 아니 유망주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둘의 실력은 분명 수십억 인구 중에서도 수천 명 안에 들만한 실력이었다.
하물며 이곳에서 마주하게 될 위협 중에서도, 정말로 위기에 가까운 상황을 마주할 확률은 그리 높지도 않을 테니, 사실상 멸화급 마수만을 조심하면 그만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내 걱정은, 실제로는 조금 과민한 것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터.
그래서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바로 그러한, 복잡미묘한 생각이.
“알았으니까. 10초 안에 골라봐요.”
“어··· 저, 저는··· 떡잎 방범대?”
“모야. 하린이는 그런 취향이야?”
“아, 아니요··· 그··· 개인적으로 다른 쪽은 이름이 뭔가 영··· 불길한 느낌이라서요.”
“응? 그게 왜? 꾸러기는 귀엽잖아.”
“그··· 고향에서, 음··· 아니에요···!”
분명 처음의 이유는 달랐을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그리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처음에는 하나의 이유로 그녀의 안위를 신경 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다른 의미의 걱정이 섞여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자각이 늦었을 뿐, 지금의 나는 분명 단순히 빙의자 이하린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원작자 이하린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이하린을, 17살 소녀의 안위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걱정하는 중이었다.
농담이라기엔 실로 웃기지도 않는 노릇.
마음의 흔들림이 낳은 파문은 심상에 원을 새겨 넣었고, 그 파문이 낳은 생각은 번민이 되어 이따금 나를 덮치려고 출렁거린다.
무림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가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과정과 결과에 모순이 생겨버렸고, 한번 자각하고 나니 그 흔적이 새삼스럽게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다시금 우스운 상황이었다.
필요치 않은 걸 걱정하였기에 심마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싶을 정도였고, 그러한 마음의 흔들림이 그리 나쁘진 않다는 게 다시 어이가 없었으니까.
‘수양이 부족한 걸까.’
그러나- 하사도로 나아가 여덟 번째의 매듭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마음의 기둥을 세워 마음의 검을 휘두르기 위해선, 나는 분명 나의 세계가 무엇인질 깨우쳐야 했다.
허나 깊은 심해 속에 가라앉아있다 다시 부상하게 된 세상은 몹시 난해했고, 세계는 내게 끊임없이 새로운 번민을 선사해주었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무엇일까.
이래서야 대체 언제 사람의 한계를 넘어, 제대로 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걸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나 보군.”
아니, 실제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간 모양인지 옆에 있던 진시우가 싸늘한 눈으로 나를 향해 코웃음을 쳤고, 그리고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굉장히 불쾌한, 그러면서도 왠지는 모르지만 다소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
왜 저러나 싶어 순간적으로 의아한 기분이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어느 게 더 유치한가에 대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느라 진시우의 말을 듣지 못한 듯싶었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던 이하린만은 그래도 진시우의 말을 들었는지 우리가 있는 곳을 그대로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큼지막한 눈을 깜빡거리며,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여,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였지만, 괜히 불필요한 곳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기에 적당히 관심을 끊어주려 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이하린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도, 옆에 있던 진시우의 미묘한 반응도 전부 무시하고는 이내 적당히 화제를 돌려보았다.
어차피- 들어봐야 할 내용은 있었으니까.
“꾸러긴지 뭔지 아무거나 고르고, 그것보다는 먼저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응? 갑자기 무슨 설명이요?”
그러자 갑작스러운 내 말에 사근사근 떠들어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았고, 그에 라피냐가 내게 물음을 건네왔으니, 나는 그 물음에 담담히 대답해주었다.
왜냐하면.
“낮에 있었던 현상, 회의 내용, 팀이 이렇게 구성된 이유. 설명이 가능한 건 전부 다.”
“아······.”
“어떤 내용이 오갔을진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만큼,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어느 이름이 더 유치한가가 아닌, 앞으로의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
라피냐가 설명해준 내용은 간단했다.
그녀가 아이들의 합류를 받아들인 이유도, 티르유가 그녀들을 추천한 이유도, 팀이 이렇게 된 이유도 생각보단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니까.
“결국 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이군요.”
“정확히는 꽤 쓸만한 구석이 있어서지만, 그 배경을 따지자면 그렇기야 하겠지요···?”
결국 쓸만한 인력의 수가 부족했다는 말.
확실히 아무리 여러 기관이 협업하는 작전이라 한들, 날이 갈수록 침식의 비율이 커져만 가는 이 세계에서 마인 사냥에 손을 보탤 수 있을 만한 인력은 많지 않을 터였다.
아니, 애초에 그건 당연한 부분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침식을 저지하기엔 3천 명이라는 등천자의 숫자는 너무나도 적었고, 거기에 등천에 이르지 못한 공략자들과 강제로 동원되는 헌터들. 그리고 교환비를 고려치 않고 물량으로 쏟아붓는 일반 특수군까지 합쳐져야 그나마 사람이 사는 반경을 가까스로 지켜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니, 당장 남미에서 시행되는 이 나름대로 큰 규모의 작전 또한,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등천자의 숫자는 결코 50을 못 넘길 터.
그렇다 보니- 다시.
“불안한 점도 있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최상위권 유망주라면 제한적으론 등천자 수준의 기량이라 봐도 될 테니까요.”
“과찬이세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활용이 가능한 전력이 제 발로 찾아온 걸, 라피냐의 처지에선 마냥 내치기는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아니, 단순히 전력상의 문제라면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이 인원은 각자의 포텐셜이나 활용도의 측면을 봤을 땐, 분명 나름대로 특별한 자원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나만 해도 아리엘의 도움을 받는다 가정하면 멸화급 주교를 상대로도 확실히 우세한 양상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을 한 팀으로 구성한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이에요. 인력은 항시 부족한 것이고, 각각의 장점을 살리는 팀을 짜려고 해도 신기하게 이게 최적의 조합이더군요.”
“······.”
“물론, 맨 처음에 제안한 건 티르유 씨였지만, 저와 루타텔 님이 봐도 이 조합은 서로의 장단점을 서로서로 보완할 수 있었고, 각각의 특장점을 받쳐주기에도 용이했어요.”
주관적인 요소를 접어둔 채, 객관적으로 합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로서도 그녀들의 참전이 마냥 꺼림칙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저 만일이라는 가정은, 결국 실제로 맞닥트리면 무의미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지.
하지만 나로서도 이젠 가닥이 잡혀갔다.
“실질적인 밸런스를 고려한 겁니까?”
“예. 하물며 알아보니 서로 친분이 있어 서로의 합이 괜찮아 보이더군요. 승천제 때 보여준 모습들만 봐도 그랬고요. 물론···.”
한 사람은 별로 안 친해 보이지만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누군가를 바라보았고, 마찬가지로 아이들 또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
그녀의 말에 어느새 다시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한 진시우의 짜증 서린 얼굴을 말이다.
이 상황이 싫은 건지, 이런 분위기가 안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시우 녀석은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인상을 많이 쓴다는 느낌이었고,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등천회랑에서의 녀석은 혼자 냉소적인 얼굴로 돌아다닐 뿐이지 저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냥 녀석이 다른 사람들 앞에 그리 잘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긴 했고, 사실 지금 라피냐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진시우를 다소 낯설어하는 중이었을 따름이었다.
물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저러면 이마에 주름 생기는데···.”
“뭐···?”
뭔 헛소리냐는 듯 되돌아온 녀석의 반응에 빠르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는 그녀.
사실 이하린의 입장에서야 진시우는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일 테고, 녀석의 성격이나 과거를 알고 있을 테니 다른 아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게 당연했다.
그저 진시우의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녀의 소심한 성격이 제대로 빛을 발해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을 뿐.
하지만 그 부분에는 관심이 없었고, 딱히 둘이 친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 나는 이하린을 노려보는 녀석의 시선을 돌릴 겸, 다시 새어나간 주제도 되돌릴 겸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그럼 팀은 저희 다섯으로 고정인 것입니까? 생도만으로도 괜찮은지요.”
“생도만··· 이라기엔 미묘하죠? 애초에 제가 봤을 때 이렇게 된 상황의 원인은 당신인 것 같아서 말이에요. 고집쟁이 등천자 씨.”
“······.”
라피냐가 주변의 둘러앉은 아이들을 바라보고는 다 안다는 듯 코웃음을 쳐보였다.
하지만 저 세 사람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따로 대꾸는 하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을 뿐.
그러자 라피냐도 이내 말을 덧붙였다.
“뭐, 애초에 말했듯이, 저도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야기해본 결과- 확실히 여러분의 구성은 제 생각보다도 쓸만한 구석이 더 많았을 뿐이지만요.”
“······쓸만한 구석이요···?”
“예. 수호자급 공략전, 마인 토벌전, 침식 방어전, 혹은 추격전, 암습, 심문, 그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물론-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들어 올렸고, 이내 나를 가리켜보았다.
“이 팀의 핵심은 유천하 씨 당신이고요.”
“······.”
듣기에 따라선 다소 미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인지라 나는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남궁설아나 이하린은 물론이고, 아리엘이나 진시우까지 저 말을 수긍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라피냐의 말에 크게 불만이 없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건 라피냐 또한 느낀 모양인지, 그녀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 보이고는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여나갔다.
“사실상 기량 자체는 이미 하이랭커 급에, 마인 사냥이라는 작전에 걸맞게, 대인전에 더 탁월한 경험과 강점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더 인원을 붙여봤자 밸런스가 안 맞아요.”
“······그렇습니까?”
“예. 애초에 이 팀의 접점이 누구인지도 뻔하고, 저 성질 더러운 꼬맹, 아니 시우 씨랑 나름 죽도 잘 맞아 보이고, 각각의 능력과도 그럭저럭 연계가 잘 될 것 같으니까요.”
다소 모호한 말이었지만 나는, 아니 눈치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 또한 라피냐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 화력전을 제외하고선, 운용 가능한 전력 중에 유천하 씨를 대체할 인력은 없어요. 하이랭커는 대부분 침식을 저지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사실 저도 아직 당신을 잘 모르겠거든요···?”
“······.”
“어느 수준이 실력의 한계점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유천하 당신 혼자서도 어지간한 적은 토벌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최고의 인력을, 최선의 효율로 운용하려면 당연히 이런 쪽이 효율적이겠지요.”
라피냐의 손이 주변을 향해 빙 돌아간다.
“메인 공격수는 유천하 당신. 거기에 화력전이나 대 마수전에서는 시우 씨가 보조하고, 전체적인 상황에서는 아리엘 씨가 지원. 여기 남궁설아 씨나 이하린 씨는 그런 아리엘 씨와 시우 씨를 도와 유천하 당신의 결정력을 살릴 수 있도록 팀을 운영하면 됩니다.”
그녀의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전투 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건지 눈을 데굴거렸고, 이내 무언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어력이 부족한 진시우 또한 저런 방식의 운영 방향을 납득한 모양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물론.
“사실상 가장 궂은 일과 위험한 일은 당신에게 맡긴다는 말인데, 뭐. 불만 있나요?”
“아니요. 마음에 듭니다.”
나로서도 이러한 방식이 더 편했을 뿐.
물론 실제의 상황이라면 그렇게까지 딱딱 구분되진 않겠지만, 저런 부류의 지원만 받더라도 혼자서 대부분을 해결할 자신이 있었으니, 굳이 위험한 일에 다른 아이들이 정면에 나설일이 없다는 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사실 원래라면 내 스스로 조금 더 위험한 상황에 마주 하고 싶기도 해 남미로 온 것이기도 하였으나, 이렇게 된 이상 멸화급 마수를 조우하고 싶단 생각은 사라졌다.
나 혼자라면 생사의 간극에서 깨달음을 노려보겠지만, 이 조합으로는 아니었으니까.
“예. 좋네요. 그럼, 비록 임시긴 하겠지만··· 이 팀의 팀장은 당신에게 맡겨볼게요.”
라피냐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고, 무언가를 달라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물론, 이 상황에서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나는 암야 속에 집어넣어 놨던 집행자 대행증을 꺼내주었고, 라피냐는 그에 제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신분증.
“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고, 불안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쪽은 보호자 허락도 받았고, 다들 그렇게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니까 한번 기대해볼게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 팀장 선정에 불만이신 분?”
라피냐는 산뜻한 목소리로 그리 되물었으나 당연히 아무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없네요? 그럼 유천하 씨 당신을 꾸러기 수비대 대장으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무언가 달라진 집행증과 함께 다시 장난스러운 헛소리를 건네왔으니,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무시하고선 질문을 꺼내보았을 뿐.
일단 구성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들었으나, 정작 중요한 건 아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것보다 그럼 저희 팀 자체에 부여된 임무는 무엇입니까? 아까 언급한, 쓸만한 구석을 생각해보자면 따로 있을 듯한데요.”
“아, 그걸 얘기 안 해줬네요 아직?”
이렇게까지 내게 효율을 집중시켜서, 이러한 구성의 팀에게 과연 어떤 역할을 시키려는 것일까- 바로 그러한 부분이 말이다.
그리고 물론, 이제껏 내가 보여줬던 모습과 그에 따른 라피냐의 반응이 있었기에 나 또한 그걸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으니, 라피냐는 이내 미소와 함께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내가 예상했던 말을, 그대로.
“타천자 추적 및 포획, 그리고 심문.”
“······.”
“잘하는 것 같던데, 한번 마음껏 해봐요.”
무척이나 짙은 미소와 함께 건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