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202화 (202/205)

꾸러기 수비대 (1)

빛 한 점 없는 잿빛의 세계. 색채도, 생명도, 모두 스러지고 물들어버린 심연의 대지.

그리고- 끊겨버린 누군가의 기억.

“······.”

마치 어둠을 그러모아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탑이 그곳에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다시 한 인영이 서 있었으니- 현실과 이면의 경계가 뒤섞인 그 혼돈의 세계에서 인영은 두 눈을 감은 채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금씩 맥동하는 심연의 고동 소리를 들으며, 짙어지는 어둠 속에 잠겨 들어가며, 다시 그림자로 연결된 영혼들을 불러들이면서.

그리고 그렇게- 인영의 정신이 검디검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침식에 맞닿았을 때.

바로 그 순간.

[오거라.]

저 머나먼 대지에서 사람을 살해하고 있던 오스벨런- 그림자 교단의 멸화급 주교 또한 한순간에 점멸하는 의식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는 제 머릿속에 들려오는 짙은 목소리를 받아들이며 그대로 어둠에 잠겨 들었다.

조금 전 인영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대로 제 영혼을 뒤덮는 그림자에 녹아듦으로써.

오오오옹-

그리고 그건- 저가 무엇을 하고 있었든 간에, 이 현상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을지언정, 분명 본능적으로 받아들인 행동이었다.

아니, 그건 오스벨런만이 그런 게 아니었고,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일을 행하며, 다시 교주의 명에 따라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숨어 들어갔던 주교들 또한 바로 그 시점에 의식이 점멸되며 심연에 빨려 들어왔을 뿐.

하여, 멸화급 주교 오스벨런은 다시 의식을 되찾자마자, 곧바로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그녀는 천천히 두 눈을 떠올렸다.

주변에 느껴지는 영혼의 파장을 느끼면서, 다시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자 그 순간.

[들어라.]

“······.”

그녀의 눈에 비치는 건 꿈틀대는 심연의 형상이었으니- 육신도, 물질도 무의미해진 영혼의 세계에서 오스벨런은 멍해진 눈으로 소용돌이치는 혼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알 수 없는 어둠이었으나, 제 눈앞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의미하는 게 확실하였기에, 다시 그 의미는 하나뿐이었기에.

그렇기에.

“아.”

오스벨런은 위대한 심연을 바라보았다.

[인과가 비틀렸으니 너희에게 명하노라.]

그리고- 그 형상, 그림자 교단의 교주이자, 심연의 대리인은 짙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으니,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는 물론이고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 또한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을 따름.

갑작스레 찾아온 의식의 점멸이 당황스러웠고, 이 광경이 혼란스러웠으나, 그들은 저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림자를 받아들여 타천한 마인들은 그대로 심연의 대리인을 받들었고, 인영은 그런 주교들의 영혼이 자아내는 일렁임을 바라보며 그대로 제 기억을 보여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전까지 의식이 연결되어있던 한 마수의 기억을, 다시 저 자신이 종용함으로써 만들어냈던 결과물을.

그러니까.

콰지직-!!

“······!!”

“······?!”

난데없는 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그러면서도 추격전에서 마수화까지, 여러 교전을 걸친 끝에 비틀림을 확인하고서는 그대로 집행자의 손에 근원석이 얼어붙으며 끊겨버린 황혼급 주교- 테흘리안의 기억을 말이다.

그렇게 이 순간 타천자들은 마치 저 자신들이 겪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한순간에 사지가 베이는 기억을 되새기게 되었고, 다시 전신이 얼어붙는 감각을 체감했으며, 빛에 마력이 타오르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이들의 얼굴까지도.

“아···.”

그야말로 난데없이 가해진 정신의 충격.

하지만 마인들이 자아내는 영혼의 흔들림을 목격하였음에도, 교주는 다른 기억까지 흘려보냈고, 그러면서도 담담히 읊조렸다.

[앞서의 세 명, 뒤따라온 세 명, 그들 중에 인과를 비틀어낸 자가 있으니, 너희들은 너희의 능력으로 그것을 시험해야 할지어다.]

“······.”

[그것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인과일지니.]

물론 마인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교주가 말하는 인과가 무엇인지, 비틀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지언정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그 말을 받들었으니, 오로지 오스벨런만이 의문을 자아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물론.

“시험이라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녀가 의문을 가진 건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가 아니었고, 그저 무엇을 해야 하냐는 것이었기에, 그리 되물어보았고 말이다.

당연히 지금 교주가 보여준 기억을 통해, 저들 중엔 그녀로서도 위험한 이들이 섞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나, 멸화급 주교 오스벨런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니, 근래 주교급이 저자들의 손에 포획당했다는 사실 또한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으나, 그녀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치 않았다.

오스벨런에게 중요한 건 오직- 단 하나.

“심연의 도래를 위해, 미천한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위대한 그림자시여.”

다시 찾아올 심연의 도래였고, 그로 인해 시작될 세 번째 혼돈이었기에, 그걸 위해 심연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또한.

[하려고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하거라.]

교주에게도 마인들의 의사 따윈 중요치 않았고, 중요한 건 오직 그것이었을 따름.

[비틀린 인과의 축은, 다시 비틀림 속에 그 빛을 강하게 드러낼지니, 너희에게 죽음을 허하고, 다시 본질의 해방을 허하겠노라.]

“······.”

[그러니 비틀린 인과를 찾아 멸하거라.]

그리고 그렇게.

[비틀림이 더해지더라도, 비틀림이 사라지더라도, 그 모든 것은 흐름을 낳게 될 테니.]

인영은 마인들을 향해 차분히 그리 읊조렸고, 그에 오스벨런의 입가가 꿈틀거렸으니.

[그 흐름 속에 심연이 도래할 것이다.]

이 순간-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른 표정은 분명, 무척이나 고양된, 그러면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황홀한 미소였을 따름이었다.

***

투두두두-!!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졌고, 동시에 사방에선 소란스러운 인기척마저 느껴진다.

-B조! 안 깨진다니까 제대로 걸어!

-쫄지 말고 제대로 묶으세요 거기!

때아닌 겨울이 찾아온 도심에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북적거렸고, 이면순례자는 물론이고 세계연맹에서 파견된 공략자와 지원조까지 찾아와 수습을 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뒤처리가 소란스러워진 느낌.

하지만 아무리 버려진 거점도시라 한들, 도심의 한가운데서 일어났던 사건이 사건이었던데다가, 20m에 달하는 수호자급 마수를 운반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게다가 이렇게 소란을 떨었음에도 사안의 중요성을 생각하자면 정보는 분명 대부분 은폐처리가 될 테니, 그걸 위한 작업을 하러 방문한 능력자들 또한 다소 엿보였을 따름.

-일단 인적 피해가 없다는 게 다행인데··· 정보 통제를 어떻게 할지가 골치 아프네.

-뭘 어떻게 해. 보상 주고 잠금 걸어야지. 어차피 전부 다 목격한 사람은 별로 없잖아.

-으음··· 예산 좀 깨지겠는데요 이거?

아무래도 시가지에서 발생했던 전투의 피해도 그렇고, 그걸 목격했던 사람들에 대한 후속 조치도 그렇고, 이능과 자본의 힘에 기대 전부 다 제대로 처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일단, 최소한의 수습만 하고 바로 임시본부로 이동할 거라 하니까. 잠시 기다려.”

“응! 얌전히 있을게!”

“넵···! 기다릴게요!”

순수하게 전투원의 역할만을 맡은 우리로서는 이젠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었으니, 나는 잠시 지휘소에 앉아 현장을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 내 옆에서 눈치를 보며 재잘거리는 이 병아리 같은 애들이 골치가 아프긴 했으나, 일단은 머리를 식힐 겸, 그리고 생각해볼 게 있어 의식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일단 저곳에도 시선이 가긴 하였으니까.

-아니, 뭐 이렇게 다 박살이 나 있데.

-저런 놈을 생포했는데 아무리 집행자들이라도 쉽진 않았겠지. 햐. 살벌하다 진짜.

참고로 현재 2km에 가까운 넓디넓은 광산의 면적은 모조리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고, 그 가운데에선 다시 꽁꽁 얼어 거대한 조각상이 되어버린 마수가 견인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거대했던 체구를 손쉽게 옮길 수 있을 리는 없으니, 그걸 만들어낸 장본인- 라피냐가 직접 옆에서 조절을 해주는 모양.

-잔존 마력량은··· 아, 이 정도면 더 깎아도 되겠네요. 근원석은 따로 막아놨거든요.

-예. 그럼 이 부분만 조금 풀어주십시오.

안 그래도 마지막 폭주로 인해 마력이 많이 소비되었던지라 마수의 동체는 처음보단 많이 작아진 상태였는데, 지금 라피냐는 거기서 조금 더 면적을 줄여나가는 중이었다.

부분적으로 얼음을 녹이면서, 조금씩.

솔직히 말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작업이었으나, 적어도 만상의 눈으로 엿보았을 때는 문제가 없었을 뿐.

물론 나 또한 처음에는 생각보다 고화력으로 발현된 이능에 라피냐가 마수를 죽이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 우려했지만, 괜히 그렇게 업륜까지 사용해 얼렸던 게 아니었다.

적어도 효과 자체는 확실해 보였으니까.

‘업륜을 각기 다르게 변환시킨다라···.’

포획할 당시- 라피냐의 손에선 3획의 업륜이 빛을 발했고, 그와 동시에 각각의 업륜은 각기 다른 역할로서 마수를 냉동시켰다.

하나는 마수의 근원석만을 둘러싼 채로.

하나는 마수의 형체만을 얼려버린 채로.

하나는 그 모든 것을 같이 아우른 채로.

그것도 그 모든 걸 마수의 본체를 죽이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성질로 얼려냄으로써. 그 성질마저 제각기 변환시키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꽤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아리엘이 보여줬던 응용을 생각해봐도, 확실히 이능과 업륜의 조합에선 순수한 무공보다는 원래부터 초상 능력에 가까운 쪽의 범용성이 더 뛰어나단 느낌이라 해야 할까?

‘무공에서도 나름 쓸 만은 하지만···.’

물론 탄검강을 참격으로 뻗어내는 규모나, 발출된 기를 다루는 것도 그렇고, 어검의 방식으로 응용하는 것도 그렇고- 나 또한 업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맞긴 했다.

그저 새삼스레 궤가 다르다 느껴진 것이었고, 그게 왠지 모르게 조금 흥미로웠을 뿐.

“······.”

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나는 이능에 대한 관점으로 뻗어 나가려던 생각을 빠르게 털어냈고, 다시 현장에서 진행되는 운반작업에, 그리고는 지휘소 바깥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그러자 작게나마 흘러들어오는 목소리.

-저기 선배님···? 근데 마수를 생포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것도 수호자급을?

-그건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니지. 지금 여기 둘러싼 집행자 수만 봐도 심상치 않잖아.

-음··· 솔직히 조금 무서울 정도긴 해요.

마침 저 부분에 대해서는 들은 게 있었기에 나는 잠시 이후의 일정을 생각해보았다.

일단 듣기로는 남미 어딘가에 만들어져있는 임시 본부까지 운반이 완료된 이후에, 다시 특별한 마법적 조치까지 더해질 예정이라는데, 녀석을 타천자로 되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으나, 최소한 자아까진 깨운 다음 심문을 거치고, 몇 가지 실험을 거쳐서 최대한 정보를 뽑아낼 계획인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긴 했다.

타천의 마인이 단번에 마수가 되는 것도, 마수가 변한 뒤에도 계속 이능을 사용하는 것도,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조금 미심쩍인 부분이 있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마수를 상대할 때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자면, 아무래도 저 정도 수준의 이변은 다른 무언가가 개입했단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제껏 파악되었다는 정보를 보면 교단 자체에서도 침식에 관한 연구와 성과를 거머쥐었다는 건 맞아 보였으나, 저건 조금 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해 보였던 탓이었다.

하여, 나는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원작에서 그림자 교단이 보여줬던 행적과 드러났던 정보를, 다시 미심쩍게 넘어갔던 알 수 없는 떡밥들과 그와 관련되어 원작의 이하린이 보여줬던 아리송한 태도들까지도. 그 무엇 하나 쉽게 여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물론.

“근데··· 쪼오금 궁금해서 그런데, 시우 너도 원래 천하랑 같이 이러고 다녔던 거야?”

“······.”

“으음··· 혹시 피곤해? 말 걸지 말까?”

당연히 그러한 그림자 교단의 위험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 만큼, 지금의 이 상황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고 말이다.

“하린아··· 쟤가 나 무시해애.”

“···아, 피, 피곤하신가 봐요!”

남궁설아야 그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왠지 모르게 구석에 박혀있는 하오란을 감시하는 중이었지만, 아리엘과 이하린은 지금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그런 일까지 있었음에도, 그 정도는 정말 별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렇게.

그리고- 그러한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한 채 묵묵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진시우는 아까부터 나보고 어떻게 해보라는 듯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으나, 골치가 아팠던 나는 그것을 잠시 그대로 무시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봤을 때는 저 애들이 이러한 장소에 올 이유는 없었고,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하필 이러한 시점에, 이 도시에 왔다는 사실이 절대 우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저 둘에게 분명 내 뜻을 전하였고, 두 사람도 분명 그걸 이해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 그건 그렇고··· 아까 천하 복장 있잖아. 되게 신기하지 않았어? 뭔가 그렇던데.”

“맞아요···! 아까 싸우실 때는 머리까지 풀고 계시던데··· 뭔가, 뭔가··· 정말······.”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이 아이들은 기어코 이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으니- 이하린에게 저작권리의 가호가 있는 이상, 나로서는 이하린과 아리엘이 나를 쫓아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명백히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게 아니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조우와 타이밍은, 정말 말이 안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대체 내가 그동안 해온 고민은 무슨 의미였던 걸까 싶어 조금은 어이가 없었을 정도였고, 우려되는 마음 반, 알 수 없는 기분 반 속에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그래서, 대체 왜 여기에 나타난 건데.”

작전이 끝난 뒤부터 계속 상황을 외면하고 있던 걸 멈추고선, 다시 말을 건네었을 뿐.

그러자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나를 열심히 눈을 반짝거리며 구경하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동시에 두 눈을 깜빡거렸고, 이내 겸연쩍은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만, 쑥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면서도 정작 대답을 돌려주진 않았으니,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어보았다.

허탈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설마 우연이라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아··· 아니 근데 우연은 맞아! 우리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 왔겠어? 그치?”

“아··· 넵! 우연이에요! 여기로 온 거는!”

나는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스리슬쩍 내 시선을 피해 눈을 데굴거리는 그녀.

하여, 나는 남궁설아를 불러보았다.

“설아 씨.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되도록 자세히요.”

“······아.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이하린이 순간 움찔하였으나, 적어도 남궁설아는 내게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던 하오란을 잠시 응시하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우선, 저희도 마인을 잡으러 왔습니다.”

“······.”

당당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을 뿐.

“하지만 말한 것처럼 오늘의 방문과 아까의 교전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물론 추후 은공을 따라갈 계획이라 듣긴 했지만요.”

“앗, 그, 그렇게까지···.”

남궁설아의 말에 현장을 바라보고 있던 진시우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으나 그 표정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당연히 설명 또한 계속 이어졌고 말이다.

“그러니, 너무 개의치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린 씨가 이곳으로 오자고 주장하시긴 하였으나, 저희가 이런 작전이 진행되리란 사실을 알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요.”

“······.”

“다행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남궁설아는 그 말을 끝으로 어딘가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와 함께 작게 고개를 끄덕였으니- 뭐랄까,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

솔직히 말해서 너무 당당하게 대답한지라 어디부터 짚어야 할지 순간 혼란스러울 정도였으나, 나는 저 말속에서도 어느 정도 이렇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하여, 그대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살피는 이하린과 아리엘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들은 거야.”

“······.”

“하린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제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대체 왜 이렇게···.”

그것도- 이 사태의 주범으로 추측되는 그녀, 이하린을 흔들리는 눈동자를 특히 더.

그러자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이하린은 어색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그러면서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는 듯 입을 앙다물었으니, 그녀의 입가와 하얀 뺨이 작게나마 떨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더 말을 덧붙이려던 나는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

다시 허탈한 기분이 들면서도, 또 저러한 이하린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기분이 미묘해졌기에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던 탓이었다.

물론 다소 여러한 심경 속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하린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기에, 이렇게 행동으로까지 직접 보여준 그녀에게 차마 뭐라 하기는 부담스러웠기에, 그렇게 나는 그냥 원론적인 부분을 꺼내보았을 따름.

“다른 것보다, 특례법 위반입니다 이건.”

애초에 이미 나는 집행기관과 함께 있다는 걸 말한 바였고, 실제로 오늘같이 협업을 뛰는 모습을 그녀들도 목격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 애들을 적당히 타일러 돌려 보내줄 생각으로 특례법을 언급했다.

“······아. 맞다.”

그런데- 무언가 반응이 이상하단 느낌.

“그러고 보니까, 우리도 괜찮잖아 이젠.”

“아···. 그렇긴 한데··· 조금··· 조그음···.”

아리엘은 마치, 생각해보니 자기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당당히 나를 바라보았고, 그에 이하린은 긍정을 표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물론- 저 반응에 나는 당연히 무언가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무언가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 탓.

“그게 무슨 의미야.”

하지만.

“무슨 의미기는···? 우리도 천하 너처럼 이곳에 끼어들 자격이 생겼다는 말이지.”

“······뭐?”

“우리도 나름, 정식으로 여기 온 거라구.”

그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고, 나는 아리엘의 말이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으니- 그러자 내 머릿속에는 불현듯 무언가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바로, 그때 하오란을 꺼내러 갔을 때 라피냐에게 들었던, 누군가의 이름이.

그리고- 그 순간.

“도대체··· 어떻게?”

“쯧. 어떻게기는요.”

밖에서의 일이 끝났는지, 라피냐가 인상을 찡그린 채 지휘소 내부로 들어왔으니, 그녀는 워치를 거칠게 두드리며 내가 떠올렸던 생각을 빠르게 긍정해주었을 따름이었다.

“티르유. 당신 후원자가, 등천 쪽 편제에 추가로 넣었다네요. 그쪽의··· 아가씨들을.”

그것도- 내 머릿속의 그 이름을 언급하며, 무척이나 짜증 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불만스럽다는 심경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여명급 주교를 생포해왔다는 이유로요.”

“타천자를··· 말입니까?”

그리고 물론- 나는 그 말에 조금 벙찐 기분이 들어 그대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으니, 그에 두 사람은 간단히 반응을 내비쳤을 뿐.

그러니까.

“잘했지? 대단하지 그치?”

“도움은··· 분명 될 거예요.”

아리엘은 방긋거리는 미소와 함께 손으로 V를 만들어 보이면서, 그리고 이하린은 무언가 부끄럽다는 듯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그러나 부정은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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