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201화 (201/205)

집행자 유천하 (5)

훙-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언령.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등장에 나도, 라피냐도 모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순간적으로 멈칫했던 순간, 그 순간 아리엘의 마력은 빠른 속도로 하나의 심상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이 상황이 환상인가 싶어 만상의 눈을 극성으로 전개하고 있던 내 시야에는 아리엘의 마음이 자아내는 풍경이 그대로 엿보였고, 그건 이내 현실에 덧칠해졌으니.

바로 그 순간.

우우웅-!!

마치 물속에 떨어진 염료처럼, 칙칙했던 대지 위로 붉은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턴가 시작되고 있는 하나의 길을 선명한 채도로 색칠해나가며, 구불구불하게 뻗어 나가고 있는 어떠한 길을 현실에 끄집어내면서, 무언가의 이정표를 새겨내면서.

그렇게 모두의 눈에 엿보이도록 말이다.

-아!

그리고 물론- 그 길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차원 단면의 틈새에서 도주하고 있던 마수가 이동하고 있는 경로였으니, 아리엘은 그 붉은 선이 뻗어 나가는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고, 그곳에는 분명 마수가 존재했을 뿐.

-저기! 저깄다!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오자마자 마수의 이능을 간파해낸 저 판단력이나, 저토록 손쉽게 위치를 특정해낸 활용성만큼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약간 어처구니도 없었으니- 그건 아리엘이 이런 곳에 왔다는 사실이 거슬리긴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확실히 쓸모있는 서포터란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기분이 조금 우스워졌던 탓이었다.

“······.”

아니, 실제로 작게나마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나는 이내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

물론- 도대체 왜 저 세 명이 이곳에 있는 건지, 그것도 남궁설아는 대체 왜 껴있는 건지, 어떻게 이러한 시점에 이곳에 와 있는 건진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선은 저것부터.’

퍼엉-!! 나는 저 병아리들의 등장에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곧바로 허공을 박차며 그곳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빠르게 생각을 가라앉힘과 동시에 의념을 가다듬었다.

애초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마수의 위치를 특정한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잠깐의 정체 동안 마수는 벌써 200m를 더 뻗어 나간 상태였으니, 더 늦장을 부려봤자 구덩이에서 벗어나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리고 물론- 다시 녀석을 붙잡아다 이곳으로 밀어 넣고, 마력을 깎아내야 할 걸 생각하자면 그리 내버려 둘 수는 없었고 말이다.

하물며 진시우로 인해 마력이 줄어들었다 한들, 근원석의 회복력은 회복력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마수의 도주를 멈춰 세우고, 다시 아직은 이면세계에 들어가 있는 녀석의 본체를 현실로 끄집어내기 위해서 검강을 발현한 채 그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무리 위치가 드러났더라도 결국 멈춰 세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아.’

만상의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내 시야는 어떠한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었다.

─────────────······

붉은 길이 새겨지자마자 언덕의 경사를 타고 그곳을 향해 뻗어 나가는 누군가를, 다시 소리조차 뒤로 남겨둔 채로 빛살처럼 대지를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군청색의 궤적을. 속도에 한해선 내가 이제껏 봐온 이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말이다.

그리고 물론.

쾅-!! 뒤늦은 굉음을 꼬리에 매단 채로 늘어진 그녀- 남궁설아의 신형은 순식간에 붉은 길의 끝, 마수의 본체가 있는 곳에 도달하였으니, 그대로 대지를 거칠게 짓밟은 그녀는 마수를 향해 검을 뻗어내기 시작했다.

극쾌의 움직임 속에서도 다시 패도의 기세를 머금은 채, 군청색의 별빛을 발하면서- 잠시 느려지고는, 다시 순식간에 가속한다.

큉- 벼락처럼 뻗어 나가는 극쾌의 일격.

그렇게 순간적으로 수축하고, 다시 팽창하는 허벅지의 근육과 팔의 곡선이 눈에 들어왔고, 음속을 넘어 가속되었던 육체에 부하가 걸리며 생겨나는 동중정動中靜의 움직임 속에는 분명 하나의 흐름이 담겨 있었으니.

그것은 분명.

──────────────!!!

창천의 기세를 머금고 그어진 검이었다.

콰아앙-!! 그렇게 남궁설아의 검에서 뻗어 나간 참격은 패도적인 기세로 붉어진 대지를 후려쳤고, 그러자 마수가 발하는 이능이 흐트러지며 놈은 그대로 현실로 튀어나왔다.

그것도- 고통 어린 포효를 외쳐대면서, 흐트러진 마력 파동까지 터트리면서 말이다.

분명 마수는 차원 단면 너머에 위치해 있었을 텐데도 남궁설아의 검에 담긴 의념과 강기는 그 마력을 뚫고서 녀석을 강타한 모양.

확실히 이전에 비하자면 의념도, 검기도, 상당히 숙련됐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부족해.’

그렇다 한들 상대는 평범한 마수가 아니었고, 이능을 사용하는 수호자급 마수를 홀로 제지하기엔 남궁설아로선 아직 힘들었을 뿐.

[──어──은───같으니──!!]

그걸 증명하듯 분노가 담긴 마수의 거체는 순식간에 그림자의 채찍으로 분열하며 남궁설아를 후려쳤고, 순식간에 3차로 가속한 그녀의 신형은 그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능의 발현까진 막지 못했다.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잿빛의 그림자.

카드득-!! 현실로 튀어나왔던 거체가 다시 눈 깜빡할 사이에 그림자의 형태로 녹아들었고, 그리고는 이내 사방을 향해 펼쳐진다.

“······!”

당연히 남궁설아 또한 뒤늦게나마 녀석의 자취를 다시 뒤쫓으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이내 잠시 멈칫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으니- 아무래도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쏘아져 나간 녀석의 형태에 그녀로서는 본체의 위치를 찾아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비록 아리엘의 언령으로 흔적이 드러났을지언정, 이곳에서 놈의 본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저쪽.”

“······!”

나는 그대로 혼란스러워하는 남궁설아를 스치며 마수의 핵을 향해 달려나갔고,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나를 따라 남궁설아 또한 이내 다시금 발을 박차며 대지를 내달렸다.

따로 설명을 덧붙여주진 않았으나 아무래도 그녀는 그냥 내 판단을 신뢰하는 모양.

물론 그 신뢰의 이유가 있듯이 지금도 내 눈은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가는 붉은 거미줄 사이에서도 녀석의 본체를 그대로 뒤쫓아가는 중이었고, 나는 쭉쭉 늘어지는 그림자의 길을 따라 놈의 목적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데- 녀석은 아리엘이 거슬렸던 걸까?

-어?!

다른 이들까지 저 자신의 위치를 특정해내게 만든 그녀가 불쾌했던 건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 언령이 갖는 위험을 곧바로 간파해낸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수는 지금 나와 남궁설아마저 무시한 채 그대로 아리엘이 있는 곳을 향해 뻗어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일정 범위를 벗어난 순간에는 그대로 본체를 현실에 드러낸 채로, 제 목적을 숨길 생각조차 없다는 듯, 그렇게 말이다.

물론 서로의 위치와 속도를 생각하자면 그전에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녀석의 행동과 마력을 관찰해보니 마수는 자신의 재생력과 깨지기 직전의 마력 방벽을 믿고서 그대로 아리엘을 들이받을 계획인 듯싶었다.

아무래도 후자의 이유가 맞았던 모양.

[──를──후회──만들어──!!]

그렇게 5초도 안 되는 잠깐 사이 다시 수백 미터를 거슬러 뻗어 나간 녀석과 그런 녀석을 뒤따라 내달린 우리는 거대한 광산 구덩이의 끝자락 가까이 다다르기 시작했고, 마수는 한순간에 대지를 박차고 나아갔다.

하지만- 아리엘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일지언정 따로 언령을 사용하진 않았으니, 나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

지금 아리엘의 앞에는 작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마수에 비해서는 작디작은 한 사람이 검을 든 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엘을 지키려는 듯 그 앞을 막아서며, 다시 그 검에 순백의 빛을 덮어씌운 채로.

제 손등에서 백색의 마력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그 순간.

“······.”

“······.”

느려진 감각 속에서도 나는 그녀- 이하린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이하린은 저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는 마수를 향해 검을 들어 올리면서도 눈은 나를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무언가 작게 입을 달싹거렸다.

-제가 할게요.

20m에 이르는 마수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검을 들고 있기에 평소와 달리 차가워진 표정 속에서도 약간은 떨리는 눈빛으로, 내게 그러한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돌진하는 마수의 동체를 가로막으며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갔으니.

그리고 그렇게.

후웅.

백색의 참격이 곡선을 그리며 그어졌고, 마치- 꽃잎이 흩날리듯이, 이하린의 검극은 거대한 그림자의 형태를 맞아 춤추었다.

퀴이잉··· 카가각-!

한순간에 빗겨나가는 마수의 중심축.

그녀의 특성 <검의 반려>가 만들어내는 기예인지, 아니면 그녀의 노력이 쌓여 만들어낸 광경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이하린의 검은 지금 부드럽게 원을 그려내며 제 몸의 열 배가 넘는 마수의 거체를 흘려냈다.

무척이나 유연하고, 탄력적인 원을 그려내며. 녀석의 힘을 모조리 땅에 처박음으로써.

그것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유하게.

──────────────!!!

콰앙-!!! 그렇게 1m하고도 그 반쯤 되는 작은 소녀는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저 거대한 마수의 돌진을 막아냈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다시금 마수의 입에선 거친 하울링이 터져 나왔으나, 이하린은 손등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그대로 전신에 퍼트린 채 그 마력의 파동마저 제자리에서 흘려넘기었고, 그리고는 다시금 내게 시선을 보내왔을 뿐.

“······.”

조금 전 돌진을 막아낼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렇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기예.

아니, 분명 저 움직임은 그녀의 특성이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불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의념조차 몰랐던 그녀를 생각하자면 저렇게 평온한 기세로 일념을 그려내며 유검의 극의를 펼쳐내고 있었으니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가 그녀를 가호하고 있을지언정, 적어도 저렇게 의념을 가다듬은 것도, 업륜을 응용하는 것도 모두 그녀의 노력이었기에.

이하린이 보내오는 알 수 없는 눈빛이 내게 미묘한 감흥을 안겨주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아니야.’

그래도 역시 지금의 그녀 또한 황혼급 마수를 단독으로 막아서기엔 아직 일렀고, 나로서는 당장 눈앞의 마수한테 집어 삼켜질 것 같은 작은 그녀가 팔을 후들거리며 그에 맞서는 장면이 그리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지금 당장 저 정도로는 위험하진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계속 쓸데없는 걱정이 피어나면서 말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또한 번뇌였을 뿐.

허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우리 또한 이미 마수의 앞에 도달한 참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상념을 털어내며, 그리고 다시 이하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러면서도 다시 놈을 구덩이 밑바닥으로 굴려뜨리기 위해서 패검의 형을 자아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틀림의──잔재들──모여─!!]

콰아앙-!!! 다시금 참격에 얻어맞아 튕겨 나가면서도 마수는 이상한 외침을 터트렸고, 굴러 내려가는 녀석의 몸에선 한순간에 수십 개의 눈이 돋아나며 데굴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걸 응시하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쿠드드득-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고, 녀석의 몸에 돋아난 눈동자의 대부분은 조금 전 저와 부딪힌 이하린을 응시하였고, 다시 그다음으로는 나를, 그리고는 일부는 진시우를 바라보고는 주변에 있던 아이들까지 더해 한 번에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건 상당히 혐오스러운 외관이었으니, 아이들은 일제히 인상을 찌푸렸을 뿐.

하지만.

[──위대──연께서──찾──!!]

콰과과과-!!! 그런 감상과는 별개로 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하울링과 함께 근원석의 마력이 폭주하듯 활성화되기 시작했기에, 그 즉시 우리는 마수를 향해 발을 박찼다.

무언가 지금 녀석이 보여주는 행동과 모습이 어째 영 심상치 않아 보였던 탓이었다.

물론 아리엘은 이미 조금 전부터 그때처럼 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 정신을 집중하는 중이었고, 그런 아리엘을 지키기 위해 이하린은 그녀가 있는 방향을 향해 흩날리는 마력 파동조차 모조리 베어내고 있었으니-

“좌측 하단부.”

“예. 맡기세요.”

-이 순간 직접적으로 녀석의 본체를 공격한 건 나와 남궁설아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어느새 라피냐와 교대를 끝마친 진시우 또한 밑에서 대기하는 그녀를 뒤로하곤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 국소부위로 쏘아진 빛의 포화가 마수를 후려쳤고, 그와 동시에 우리도 녀석의 몸을 베어냈다.

서걱-! 다리가 베여나간 마수의 거체는 잠시 휘청거렸고, 이내 다시 녹아내려 갔다.

[─인과──를───찾아──!!]

한데, 다소 이상해 보이는 녀석의 상태.

마수는 아까부터 계속 무언가 신경 쓰이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고, 심지어 지금은 이제껏 계속 도주를 시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왠지 약간 자폭에 가까운 움직임을 내비쳤다.

아니, 갈라지는 잿빛의 육체도, 몰아치는 마력도, 모두 그 추측을 긍정해주었을 뿐.

그렇게 녀석의 이상행동엔 신경을 쓸 새도 없이 마수의 육체는 다시 한번 더 갈라진 채 사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단번에 공격을 뻗어내었다.

카드득··· 콰과과과-!!

공간을 마련한 채 밑에서 마수를 기다리고 있는 라피냐에게도, 이곳으로 다가오는 진시우에게도, 정신을 집중하는 아리엘에게도.

그 앞을 막아서는 이하린에게도, 저를 향해 달려드는 나와 남궁설아에게도, 심지어 눈치를 살피고 있던 하오란에게도 말이다.

-시, 시발?!

물론 우스운 공격은 아니었을지언정, 이곳에 저 하오란 녀석을 제외하곤 저 정도에 당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 공격을 파훼해낼 수 있었다.

하물며 하오란도 아리엘도 모두 이하린의 뒤쪽에 서 있었기에, 이하린은 손등의 업륜에서 빛을 발하며 그대로 백색의 참격을 뻗어내 단번에 그것을 모두 베어냈을 따름.

그러자- 그와 동시에.

──────────────!!

사방에서 상쇄된 마력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뒤섞인 서로의 마력이 각각의 색채로 흩날렸고, 잿빛과 백색, 청색, 흑색이 공존하는 마력의 눈꽃 사이에서, 나는 마수의 안면 위로 떠오르는 미묘한 기색에 의아함을 억누른 채 그대로 마수의 몸을 후려쳤다.

흔들리는 형상을 강타하는 중검의 극점.

지면을 향해 몸을 누이는 잿빛의 동체.

콰앙-!! 그에 따라 나는 한 번 더 참격을 그어 녀석을 튕겨냈고, 조금 전 무리해서인지 마수는 아까보다 더 작아진 상태였기에, 중심을 무너트리기도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더욱더 의아했을 뿐.

‘비효율적이야.’

조금 전까지는 계속 도주하려고 했던 녀석이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다시 무엇에 녀석이 저런 변화를 내비쳤는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검은 계속해서 참격을 뻗어내며 녀석의 몸을 밀어 넣었지만 말이다.

[──인과의 교차─누가 비───!]

카가가각-!! 다시금 뻗어 나간 탄검의 강기가 녀석을 세차게 후려쳤고, 녀석의 몸은 그대로 경사에 몸을 맡긴 채 굴러내려 갔으니- 자연스럽게 흙이 비산하며 흩날린다.

일어나는 흙먼지 속에 터져 나오는 마력.

그리고- 마찬가지로 울려 퍼지는 외침.

[비틀림─비틀림─비틀림─비틀림!]

“정신이 나갔더냐.”

하지만 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암야를 둘러쓴 나는 계속 녀석의 몸에 검을 꽂아 넣고 있었으니, 먼지 속에 가려진 세계에서 나는 놈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언가 정신이 나간 듯한, 혼미한 눈빛.

그러면서도 왠지 이죽거리는 듯한 입가.

나는 담담히 그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누가 이번────틀림 이──냐!]

“헛소리는 너희 교주에게나 하거라.”

하지만 지금도 계속 외쳐대는 저 미친 소리도 그렇고, 갑자기 변화한 녀석의 상태도 그렇고, 처음 목격했던 광경도 그렇고, 그에 내 기분은 조금씩 가라앉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그 이유 또한 분명하였고 말이다.

퀴잉- 콰과과과과과-!!!

[비틀림을──크륵─!]

저렇게까지 대놓고 꽥꽥 되고 있는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멍청이가 아니었고, 하물며 그게 무엇인지도 짐작해볼 수 있었으니 어찌 저 말을 모른 체하겠는가?

애초에 내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었다.

인과의 비틀림- 그건 분명 아크샤에게 들었던, 내게 번뇌를 안겨준 말이었으니까.

게다가 저 말을 외쳐대는 게 원작에서도 수상한 행적을 보였던 그림자 교단의 마인이라면, 다시 마인의 정신이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까지 내비치고 있다면, 오히려 이걸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게 멍청한 것이겠지.

그러므로- 나는 잠시 되새겨보았다.

‘진시우, 이하린, 그리고··· 나.’

지금 이곳에 있는 인과의 특이점.

전생자, 빙의자, 그리고 환생자.

그렇기에 다시.

──────────────!!!

인과와 비틀림, 침식과 만상세계.

멸망한 세계와 되돌아간 시간선.

“······.”

물론 그 무엇하나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원작과 이제까지의 경험. 그리고 아크샤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저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 저 녀석이 갑자기 저런 말을 외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림자 교단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

물론- 솔직히 이 부분은 확신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긴 했으나, 적어도 지금 이 녀석이 지껄이고 있는 말도 그렇고, 갑자기 변화한 녀석의 행동도 그렇고, 나는 지금의 이 상황에 관심을 기울여 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크샤가 세계의 인과를 구분해낸 이상, 다른 누군가 또한 이 세계에 이질감을 느낀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단 하나였을 뿐.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

바로 그렇다면, 과연 교단, 아니 저 녀석의 너머에 자리한 무언가는 이곳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오직 그것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제껏 녀석이 보여준 행동을 돌이켜보면, 그림자 교단은 아크샤처럼 명확하게 구분해낼 순 없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이 거슬렸으니- 하필이면 녀석이 변화를 일으켰을 때 이하린이 이곳에 왔다는 게 무언가 거슬렸고, 녀석들이 비틀림을 찾는다는 게 거슬렸다.

또한- 지금의 나로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 거슬렸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아리엘.”

나는 그림자 교단을 사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었고, 단서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입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면, 드러난 흔적 속에서 최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응? 천하 지금 나 부른 거야?

-아, 예, 옙! 부르셨습니다!

때마침 단서가 이렇게 직접 나를 찾아왔으니- 우선은 이걸 생포해야 했고, 그러므로 나는 불쾌해진 기분을 억누른 채, 복잡해지는 상념을 모두 내버린 뒤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그러자 계속해서 굴러 내려가던 녀석의 육체는 어느새 다시금 바닥에 도착했으니, 나는 그곳에서 대기하는 라피냐를 바라보며, 다시 멀리서 눈을 깜빡거리는 아리엘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을 덧붙였을 뿐.

“준비 끝났으면, 마력만 날려버려.”

-모야. 쟤는 저기서 어케 알았데?

그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경사의 맨 꼭대기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던 아리엘은 작게 투덜거렸지만, 이내 그녀는 무언가 기분이 좋다는 듯 미소 지었다.

물론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한 건 일단 이 녀석을 확실하게 생포하는 것.

그리고- 그렇다면야.

[맡겨주세욤 ٩(๑^∀^๑)۶]

생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전력이 와있다면야 써먹는 게 더 효율적일 터였다.

실수로라도 죽이면 곤란해지니 말이다.

우우웅-!! 그렇게 저 멀리서 아리엘의 마력이 요동치는 게 대기를 타고 느껴졌고, 내 말과 아리엘의 반응에 마수를 얼려버리려던 라피냐 또한 궁금하다는 듯 잠시 멈춰 섰다.

물론, 그러자 계속 알 수 없는 외침을 쏟아내던 마수는 다시 이능을 사용하며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가려고 하였고 말이다.

훙.

하지만- 그 순간.

[그대로.]

마수가 있던 자리 위로 푸른 마력이 떠오르며 그대로 마력의 문자를 만들어냈으니, 그 문자는 무언가의 염원을 담고 몰아쳤다.

그것도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형상으로.

─────────────······

다만 나는 그 심상치 않은 마력의 반응, 그러니까 만상의 눈이 아니더라도 가시화된 마력의 문자에 의아함을 느끼고 아리엘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저 멀리서 손등의 빛을 발하는 그녀였을 따름.

화사한 미소와 함께 손등을 내민 아리엘의 마력이, 업륜과 공명하며 퍼져 나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기서.”

우우웅-!!

나조차도 자유자재로 이용해 먹을 수 있을 만큼 만상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근원의 마력은, 그대로 원래부터 마력의 제어를 타고났던 아리엘을 통해 그녀의 심상과 공명하여 주변에 자리한 대기의 마력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대로 현실에 그 심상을 그려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집중된 정신력 속에, 그러면서도 하나의 심상으로 이어진 마력의 흐름 속에, 언령의 문자를 만들어냄으로써.

한 번에 3개의 심상을 자아내면서 말이다.

‘업륜과 상성이 좋군.’

만상의 눈에 엿보이는 아리엘의 심상.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자아낸 염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펑!]

“펑!”

장난스럽게 그려진 문자 속에 담겨진 바람까지 모두 얽히고, 뒤섞여, 휘몰아친 3중의 언령은 그대로 서로 유기적으로 공명하며 연결되었고, 그대로 빛으로 화해 퍼져 나왔다.

마수가 이능을 온전히 사용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 심상을 완성시켜 가면서 말이다.

──────────────!!!

그렇게 아리엘이 만들어낸 언어의 사슬은 한순간에 빛으로 화해 마수를 강타했고, 그대로 이능을 발현하려던 잿빛의 마력을 옭아맸으니, 그 사슬은 상당히 신비한 현상을 자아내며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수의 근원석 속에 자리한 마력마저 그대로 불태워가면서, 동시에 녀석이 발현하려는 이능의 전조마저 그대로 묶어버린 채로.

그리고 그렇게.

[──께서 보고─니──하라─!]

순식간에 구속당한 마수의 근원석이 거세게 요동치며 마력을 토해내고, 순수한 마력량의 차이로 아리엘이 만든 언령을 깨트리려고 그림자의 파동을 터트리기 시작했을 때.

바로 그 순간.

“죽이시면 안 됩···.”

“알아요. 파악했어요.”

툭- 그러한 마수의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피냐의 손이 드디어 잿빛의 형상을 짚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등에 자리한 4획의 업륜 또한 빛을 토해내었으니.

라피냐는 한순간에 흩날리는 눈송이 사이에서 작게나마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참··· 끝나고 할 일이 많겠네요. 이거.”

콰지직- 그것도 새하얀 눈꽃을, 그곳에서 피워내면서, 그대로 마수를 덮어씌우면서. 그 여파만으로 광산의 전역을 얼려버리면서.

얼어붙는 마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그곳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약간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 속에.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동상을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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